소설리스트

나 홀로 로그인-213화 (213/260)

# 213

213화.

아프리카 대륙은 뉴 에이지를 성공적으로 방어해 내지 못했다.

그나마 모로코와 알제리를 비롯한 몇몇 개 아프리카 북쪽의 국가들은 다른 대륙 국가들의 도움을 받아 플레이어들을 본격적으로 육성하고 대량의 몬스터 웨이브를 버텨 냈지만, 사람들이 쉬이 손을 대지 못하는 사하라 사막 중심부에서부터 시작된 대량의 몬스터 발발에 알제리를 시작으로 사하라 사막에 속하거나 접한 다른 국가들이 차례로 무너진 것이다.

그러나 인류가 아프리카 대륙보다는 당장 문명의 중심지가 되는 다른 대륙에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는 사이 닥쳐온 크레센트 에이지의 여파로 끝내 위로는 모로코, 아래로는 남아프리카공화국마저 멸망에 이르게 되었다. 대륙 전멸이라고 칭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대륙이야말로 에리우 님의 왕국이 되기에 완벽한 곳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찌. 특히 그 중심에 걸쳐 있는 넓은 사막이.]

“그야 그렇겠지…….”

정시우는 사리테의 설명에 맥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에리우가 왕국을 세운다면 그 수도는 틀림없이 사하라 사막의 모래사막 언저리가 되겠지. 최근 암석의 힘도 제법 잘 다루게 되었으니 암석사막도 포함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왕국을 잘 세워서 인간들과 그대로 동맹을 맺게 되었으면 좋았을 텐데, 왜 핵이다 화학 병기다 하는 말이 나오게 된 것이란 말인가. 정시우는 이마를 싸매며 사리테에게 물었다.

“엘을 만나기 전에 일이 왜 이렇게 됐는지 처음부터 설명이나 한 번 해 봐.”

[후…… 두 번은 없다, 찌.]

인간들이 몬스터의 황제, 에리우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은 정시우가 이세계로 떠나고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엘이 이세계의 몬스터들을 일차적으로 소탕하고 몬스터들을 대규모로 집합시켜, 사막의 낙원과 연결되어 있으면서 인간들의 영역과도 일정 이상 거리를 두는 거대한 대륙…… 아프리카의 사하라 사막부터 그 이남까지를 영토로 삼았다는 사실을 아프리카 대륙에서 가장 마지막까지 버티고 있던 이집트의 플레이어들이 알아차리게 된 것이다.

[몬스터들이 한 마리의 절대자를 따라 움직이고 있다. 거대한, 너무나 거대한 한 마리의 호랑이를 따라서……!]

[지구 침공이 본격화된 거야. 놈들이 송곳니를 드러내기 시작한 거라고!]

그 경악스러운 사실에 인류는 전율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그것을 기회라고 보는 시각도 있었다. 인류가 남지 않게 된, 몬스터들만으로 가득한 대륙. 거리낌 없이 대량살상병기를 사용할 수 있는 여건이 갖추어졌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들의 수장을 자칭하며 나타난 백색 털의 호랑이가 영어를 구사하며 대화를 요청하고 있습니다만…….]

[몬스터와 대화? 신들의 수작에 넘어가게 될 뿐이야. 몬스터와 대화가 가능할 리가 없지 않은가!]

[정시우를 알고 있답니다.]

[또 그란 말인가? 그래서 그 정시우는 대체 어디에 간 거지? 하루하루 인류의 존망을 건 싸움이 벌어지고 있는데……!]

물론 당시 정시우는 이세계에 가 있었기에 에리우의 눈앞에 나타날 수 없었다. 그는 언젠가 에리우와 인간들 사이에 다리를 직접 놓아 주겠다 말했었지만, 엘의 능력이 그의 예상보다도 더욱 뛰어나 사태가 지나치게 빠르게 진행된 것이 불운이었다.

물론 만약을 위해 그가 준비해 두었던 이들, 즉 마리나와 세리아, 이서희가 나섰지만 안타깝게도 그녀들의 힘만으로는 다른 이들을 설득할 수가 없었다.

[역시 정시우 그자도 몬스터인 것이 아닌가?]

[그를 적으로 돌리면 답이 없습니다. 하지만…….]

[그래. 지금은 저 몬스터들을 배제할 때다.]

정시우는 이세계 몬스터들의 침입을 막기 위해서라도 인류가 엘과의 대화를 먼저 원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인간들은 엘의 활약으로 지상 몬스터의 위협이 극단적으로 줄어들자, 그것을 적극적으로 움직이지 않는 엘의 몬스터 무리까지 처리할 기회라고 받아들였던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너희한테 시비를 틀 만큼 여유로워졌다고!?”

[당신이 이세계로 떠난 후에, 어째선지는 모르겠지만 놈들의 공세가 줄어들었다, 찌. 우리의 자경단만으로 충분히 감당이 될 만큼, 찌.]

“줄어들어……?”

쉬이 믿을 수 없는 말이었지만 사리테가 이런 걸로 굳이 그에게 거짓말을 할 이유도 없었다. 그래서 인간들이 엘과 그녀가 이끄는 몬스터들을 새로운 적으로 삼았다면…… 영 있을 수 없는 얘기도 아니라고, 정시우는 생각했다.

[상황은 이미 걷잡을 수 없다, 찌. 결국은 에리우 님이 이길 것이라 믿지만, 그 과정에서 나올 피해가 무섭다, 찌.]

“솔직한 네 마음을 말해.”

[나만은 죽기 싫다, 찌. 싸움을 말리지 못할 거면 나라도 이곳에 숨겨 줘, 찌.]

너무 솔직하게 나와서 살짝 질릴 정도였으나 어쨌든 그것으로 충분했다. 정시우는 한숨을 내쉬며 발을 내딛었다. 거주지역의 초원지대를 지나, 작게 돋아난 동굴을 지나면 곧 사막의 낙원에 도착할 수 있었다.

“엘 안 보이는데?”

[이 시국에 낙원 안에 계실 리가 없잖아, 찌. 여기서 바로 사하라로 간다, 찌.]

사리테는 주위 몬스터들의 인사를 간단하게 받아넘기며 일행을 이끌었다. 정시우 담당 사절이기 때문인가, 아무래도 녀석은 레벨에 비해 직급이 제법 높게 책정되어 있는 모양이었다.

[이쪽이다, 찌.]

사하라 사막으로 통하는 출입구는 한창 몬스터들의 왕래로 바쁜 상황이었다. 잔뜩 성이 난 몬스터들이 드나드는 것을 가리키며 사리테가 말했다.

[에리우 님이 화가 나시면 다들 저렇게 험상궂은 표정을 짓고 다녀야 한다, 찌. 에리우 님을 화나게 만든 대상을 용서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찌. 적어도 겉으로는 말이찌.]

“그러냐, 찌.”

사리테도 그 순간부터 인상을 굳혔다. 출입구를 통해 사막으로 나온 일행은 모래를 머금은 바람을 밀어내며 엘의 모습을 찾았는데, 다행히도 그녀는 그곳에서부터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그녀 뒤로 야생 몬스터치고는 제법 질서정연하게 도열해 있는 수십만 마리의 몬스터가 보였다. 심지어 저것은 그녀가 다스리는 몬스터의 일부에 불과하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녀가 얼마나 대단한 업적을 이룬 것인지 가히 짐작할 만했다.

[슈!]

사리테의 말마따나 분기탱천해 있던 것처럼 보이던 엘은 부하 몬스터들을 상대로 굉장히 사나운 기세로 말을 쏟아 내고 있던 것처럼 보였으나, 뒤에서 다가오던 정시우 일행의 모습을 발견하자 태세를 전환하여 반갑게 꼬리를 흔들며 다가왔다.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처럼 그녀 주위를 천천히 휘돌고 있던 모래 입자들이 사뿐히 가라앉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너무 늦었잖아!]

“할 일이 많았거든.”

그는 엘에게 그렇게 대꾸하며 고개를 들어 하늘을 살폈다. 수십 기나 되는 정찰기가 위협비행을 하고 있었다. 이래서야 엘이 화가 나는 것도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화가 잘 안 됐어?”

[그래, 잘 안 됐다…….]

엘이 고개를 푹 숙이며 대꾸했다. 잔뜩 차올라 있던 독기가 정시우와 마주하며 조금 빠져 제법 순순히 속상해하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었던 것이다.

머리라도 쓰다듬어 주면 금방 달랠 수 있을 것처럼 보이지만…… 안타깝게도 지금은 삐진 아이를 달래 주는 것으로 해결할 수 있는 사태를 넘어서 있었다.

[인간은 대화로 일을 해결할 수 있다고 슈는 말했지만, 내가 보기에 인간들은 우리 몬스터와 똑같다. 점잖은 체하는 건 단지 강한 상대를 앞에 두었을 때뿐, 약점이 보이면 물어뜯고 틈이 보이면 기습하며 자신보다 약한 자를 잡아먹고 스스로를 높인다. 적어도 몬스터들은 그것을 당당히 드러내지만 인간은 그것을 감추니 더욱 비겁하고 저열하다.]

“…….”

[완벽히 자신들과 같지 않으면 얘기를 들을 생각도 하지 않고 배척하려 드니, 역시 인간의 언어를 배운 것은 헛된 일이었다. 그들이 대화로 일을 해결하려 들 때는 자신보다 월등히 강한, 이도 박히지 않는 상대를 앞에 두었을 때이다.]

엘은 홀로 인류 전체에, 지구에 재앙을 가져올 수 있는 몬스터다. 그녀가 지닌 무력과 고유능력은 바로 그런 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자신을 따르는 많은 몬스터들을 이세계의 몬스터들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그들의 생존을 위해 인간들과 평화협정을 맺고자 했다.

그러나 인간들은 몬스터의 형상을 하고 있는 그녀를 받아들이지 못해 적으로 규정했다. 그리고 지금은 공격하려고까지 하고 있다. 차라리 그녀가 홀몸이었더라면 그녀의 이야기를 들었을지도 모르지만…….

[그들은 대량살상병기라는 수단을 이용하여 내가 다스리는 몬스터들을 인질로 잡은 것이다. 그것은 이미 전쟁이다. 우리는 전쟁을 시작했고, 더 이상 나 혼자 원한다고 해서 그것을 그만둘 수는 없게 되었다. 또한 나는 그것을 그만둘 의사 또한 없다. 슈, 날 설득하려 하는 것이라면 소용이 없다.]

“엘…….”

물론 정시우도 그것을 알고 있었다. 애초에 그 역시 엘을 설득하러 온 것이 아니었다. 엘을 설득할 수도, 인간들을 설득할 수도 없다는 것을 가장 잘 알고 있는 것은 그였으니까.

몬스터의 희생도 내지 않고, 인간의 희생도 내지 않고 일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하나였다. 엘도 그도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다음에 만나면…….”

그것을 먼저 입에 낸 것은 정시우였다. 루타의 말이 맞았다. 진즉부터 나와 있었던 답을 핑계 대며 미룬 대가는 스스로 치러야 했다. 더 이상은 도망칠 수 없는 것이다.

자신의 본성으로부터.

“다음에 만나면, 서로 모든 것을 걸고 전투를 하자고 말했었지.”

[아아, 그랬었지.]

비로소 엘의 얼굴에 미소가 걸렸다. 실로 호전적인 미소. 필시 정시우가 먼저 그 말을 하기만 기다렸던 것이리라. 어쩌면 일부러 이런 상황을 조장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지만 설마, 그것까진 아니겠지.

“내가 이기면 너와 네 모든 것은 내 것이 된다. 그렇게 되면 난 너희가 ‘내 것’임을 인간들에게 증명하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 어떤 일이든 불사할 생각이야.”

[내가 이기면 슈, 너와 네 모든 것이 내 것이 된다. 우리 둘이 함께라면 그 어떤 것도 맞서 이길 수 있을 것이다.]

엘은 그렇게 말하고는 씩 웃으며 앞발을 들었다. 순식간에 주위에서 모래 결정들이 빙글빙글 회전하며 수십 개의 회오리를 형성했다. 그들이 있는 곳은 다름 아닌 사하라 사막. 지구상에서 그녀의 능력이 가장 증폭되는 영역이다.

[네가 싫다고 한다면 장소를 바꿀 수도 있다.]

“아니, 여기서 싸우자. 그래야 너도 납득할 수 있겠지.”

[호오.]

정시우의 가벼운 도발에 엘은 더욱 만족스럽게 웃으며 앞발로 바닥을 내려쳤다. 순식간에 거대한 모래의 벽이 솟구치며, 사방으로 1킬로미터 이내에 있던 모든 생명체가 튕겨 나가고 말았다. 에리우의 수하들도 정시우의 일행도 구분 없이.

[끄아악! 정렬하느라 30분 걸렸는데!]

[둘이 잘 되어 가는 중 아니었냐!]

“그 안에서 뭘 하려고 벽을 세운 거죠!?”

되게 반가운 사람을 만난 것처럼 굴더니 갑자기 또 히스테리를 부린다며 바깥으로 쫓겨난 몬스터들이 구시렁거렸지만 다행히도 엘은 그것을 듣지 못하는 상태였다. 그녀는 오직 전투에 대한 흥분과 기대감으로 몸이 달아올라 있었다.

[이 벽이라면 네가 무슨 짓을 해도 무너지지 않으니, 마음대로 날뛰어도 된다.]

“참 호쾌한 크기의 링이네.”

무엇을 해도 괜찮다, 라…… 역시 아직 엘은 그에 대해 파악하고 있지 못한 모양이다. 그러나 정시우는 별 말 없이 픽 웃으며 해머를 들었다. 그의 갑옷 위로 검은 비늘이 촘촘히 돋아나고, 등 뒤로 화려하게 검은 날개가 돋아났다.

[그러면…… 간다!]

그것을 본 엘의 표정이 살짝 굳었지만, 곧 사나운 미소를 지으며 돌격해 왔다. 엘이 한 발을 내딛는 순간 단단하게 굳은 모래가 그녀의 몸을 빠르게 튕겨 내는 것을 보며 정시우의 눈에 이채가 돌았다.

“좋아, 해 보자고.”

그 역시 대지를 딛고 앞으로 나아갔다.

어느덧 비늘과 완전히 융화된 포효의 근원이 서서히 빛을 발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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