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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홀로 로그인-196화 (196/260)

# 196

196화.

지하 플레이어로 활동하며…… 그야 물론 대부분의 상황에서 상대방을 압도하기는 했지만, 정시우도 제법 험하게 구른 만큼 고통에는 익숙해져 있었다. 적어도 스스로는 그렇게 생각했다.

“칵, 크학…….”

[꾸우오오오오오오오오!]

그러나 방금 일격으로 그 생각이 바뀌었다. 아까 놈의 공격을 받으며 세상이 무너지는 것만 같다는 생각을 했던가? 그 감상이 실로 정확했다. 무너지는 세상을 혼자 힘으로 받아 내면 이렇게 아프지 않을까 싶은 고통이 그를 덮쳐 온 것이다.

[죽어라!]

“큭!”

차라리 기절해 있었더라면 이렇게 고통스러워하며 움직이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정신을 차리고 있었던 덕분에 제2격이 날아온다는 사실을 감지하고 말았다.

저것까지 그냥 맞을까, 자신답지 않은 생각을 한 정시우였으나 이내 이에 빠득 힘을 주며 두 눈을 떴다. 이기기 위해선 이 이상 놈의 공격에 당해 줄 수 없었다.

“후…… 세이락시아, 꽉 잡아!”

[뿌이…….]

사방이 놈이 뿜어낸 먹물로 가득해 대체 어디서 어떻게 공격이 날아오는 것인지도 알 수 없었지만, 정시우는 어떻게든 세이락시아를 끌어안으며 긴급탈출을 시행했다.

[피하다니! 감히!]

“끄으으으으.”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유령에게 받아 둔 스킬이지만 지금은 그것이 그들을 구원했다. 정시우의 감각만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지만, 스킬의 힘이 더해지니 어떻게든 놈의 공격이 날아들지 않는 방향으로 둘의 몸을 날려 보내는 데 성공한 것이다.

[뿌, 뿌이이이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심연. 그 안을 긴급탈출의 힘으로 하염없이 비행하며, 정시우는 어떻게든 자신과 세이락시아의 상태를 파악하려 애썼다.

‘응, 망했네.’

그리고 상당히 절망적인 상태라는 사실만 재확인했다. 뼈와 내장이 전부 엉망진창으로 망가져 지금 움직이고 있는 것이 기적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그나마 세이락시아가 정시우보다 먼저 놈의 공격을 정통으로 맞은 덕에 정시우가 제정신을 유지할 수 있었는데, 세이락시아는 크라켄과 같은 물 속성에 속했기에 데미지가 상당히 경감된 모양이었다.

‘그래도 이대론 전투 속행이 무리야.’

적의 필살기도 아니고, 단지 마나가 집중된 다리의 일격에 딱 한 대 얻어맞았을 뿐인데 정시우와 세이락시아 둘 다 빈사상태에 몰리고 말았다.

수아린까지 보낸 것은 실수였나? 한순간 그런 생각을 했지만, 아마 수아린이 있었더라면 한 방 얻어맞은 그때 전투불능 상태가 되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상황에서 살아남으려면…… 아니, 놈을 이기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하는가. 어떻게…….

[그렇게 여유 부리고 있을 수 있는가!]

“칫.”

가뜩이나 움직이는 것도 힘들어 죽겠는데, 어디선가 크라켄의 공격이 날아든다는 것만을 본능적으로 느꼈다. 하지만 어떻게든 한 번 더라면…… 정시우는 반복재생 스킬로 긴급탈출을 반복했다. 그것으로 마지막 기회를 소모한 것이다.

‘치료해야 한다.’

지금 상태론 회피도 제대로 할 수 없다. 치료가 급선무였다. 그 외에도 상황을 타파하기 위해 해야 할 일이 많지만 당장은 그와 세이락시아를 치료해야 했다.

“크으…….”

언제 적의 공격이 추가로 날아들지 모르는 상황, 정시우는 빠르게 인벤토리로부터 중상급 체력 포션을 몇 개인가 꺼내어 마셨다.

[뿌우…… 이이…….]

세이락시아의 입가를 더듬어 포션병을 넣어 주었으나, 녀석은 그것을 제대로 마시지도 못하는 듯했다.

정시우의 체내에서도 약효는 돌고 있었으나, 차마 조각난 내장과 뼈를 모두 이어 붙이지는 못하고 있었다. 몸 상태가 그러니 당연히 괴력도 유지될 리가 없다. 스킬이 강제로 중단된 것에서 오는 고통도 상당했지만 몸 자체가 아작 나 있어 그런가 오히려 그 고통은 그리 실감나게 느껴지지 않았다.

‘역시 포션의 힘만으로는 안 되나.’

물론 처음부터 그 정도는 알고 있었다. 휴식처의 냉장고 레벨이 아무리 오른다 해도 수아린의 치유 능력을 뛰어넘을 수는 없으리라.

하지만 정시우는 자신의 능력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알고 있다. 체력 포션은 그저 베이스가 되어 주었을 뿐이다. 정시우가, 자신의 마나를 치유력으로 바꾸기 위한 베이스가!

공격을 받은 이래 전신으로 뿔뿔이 흩어져 버렸던 그의 마나가 목구멍을 타고 흐르는 포션으로 모조리 몰려들어 그 힘을 강화시켰다. 그러나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생각해 보면 훨씬 이전에도 그런 적이 있었지. 아린이가 치유 마법을 걸어 줬을 때, 내 마나를 거기에 부여해서 증폭했던 적이. 나 스스로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그건 부여가 아니었어. 이미 그때부터 내 마나를 자유자재로 바꿔 사용할 수 있었던 거야.’

정시우가 문득 그 사실을 떠올린 순간, 포션을 활성화시켜 그의 전신으로 퍼 나르던 마나의 무리가 다시 한 번 커다란 변화를 맞이했다.

[거부의 힘, 순수의 힘을 각성합니다. 마나가 진화합니다.]

그것은 역전의 신호탄이었다. 여태껏 수아린이 그에게 무수히 부여해 온 치유 마법의 특징을 기억해 낸 정시우가 자신의 마나에 신성력의 특성을 부여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아니, 그 정도가 아니다. 수아린이 다루는 신성력이 아닌, 오직 그만이 다룰 수 있는 신성력으로 마나 그 자체를 변환시키기에 이르렀다!

[큭!?]

바로 그때 정시우가 전혀 의도하지 않았던 일까지 벌어졌다. 정시우와 세이락시아의 모든 감각을 거의 완벽에 가깝게 차단하고 있던 먹물이 정시우에게서 발산되는 신성력에 주춤하며 물러나기 시작한 것이다.

정시우는 그것을 보는 순간 깨달음을 얻었다. 놈의 먹물은 결국 헤데아인지 뭔지 하는 신의 힘이 고스란히 녹아난 권능에 가까운 것! 순수한 그의 마나보다도, 신의 힘을 배척하는 신성력으로 효과적으로 배척할 수 있는 게 당연했던 것이다.

“좋아…… 이제 보인다!”

[어떻게!]

정시우는 더 이상 어둠 속을 헤매고 있을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파악한 순간 세이락시아를 끌어안고 힘차게 수중을 도약했다. 카오스 윙이 거세게 펄럭이며 그들을 단숨에 크라켄으로부터 멀리 떨어트려 놓았다.

그 자신의 몸과 세이락시아를 신성력을 포함한 마나의 권역으로 두르고 있었기에, 그들이 지나가는 궤적으로 신성력이 반짝이며 먹물을 깔끔하게 지워 냈다.

그 와중 실시간으로 상처가 회복되는 것은 물론이었다. 끊어졌던 근육이, 박살났던 뼛조각이, 터져 나오던 혈액이, 으스러졌던 내장이, 모두 원래 모습을 찾아…… 아니 마나의 도움을 받아 보다 단단하고 강력하게 재탄생하고 있었다!

[어떻게 그 힘을 다룰 수 있지!]

“나한테 물어봐도 답이 안 나오지……!”

정시우가 입은 상처는 터무니없는 것이었다. 체내에 남아 있던 거의 모든 마나를 소진해서야 간신히 전투가 가능한 수준으로까지 회복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자신만 회복해서야 놈을 이길 수가 없다.

“큿…… 조금만 더 힘내!”

[뿌이.]

정시우는 어찌 됐건 크라켄으로부터 멀리 떨어지는 데에 집중하며 마나 포션을 꺼내 마시고, 거기서 얻은 마나로 이번엔 세이락시아를 치료했다.

정시우의 일부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일까? 그의 힘은 세이락시아에게도 효과적이었다. 녀석의 상처에서 흘러나오던 피가 멎기 시작하는 것이 보였다.

[끈질기구나……!]

“하, 지금부턴 더할 거야.”

[뿌우……!]

세이락시아가 기운을 되찾는 것을 확인한 정시우가 체력 포션과 마나 포션을 추가로 하나씩 까 입에 물며 씩 웃었다.

여기저기 부러지고 터졌던 그의 비늘도 체력과 마력이 보충되며 조금씩 원상복구되고 있었다. 끝내 부러졌던 혼돈의 날개까지 제 모습을 찾았다.

[카오스 스케일 스킬이 Lv8이 되었습니다.]

[카오스 윙 스킬이 Lv2가 되었습니다.]

아니, 오히려 한 번 파괴되었다가 복구되는 과정에서 스킬 레벨이 오르기까지 했다. 분명 지금 비늘을 복구하고 있는 신성력과도 연관이 있을 것이다.

정시우의 마나는 처음 그의 몸에서 솟아난 상태 그대로 지속되어 온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스킬들을 얻고 발전해 오는 과정에서 끊임없이 그 성질이 바뀌어 왔으니까. 신성력을 일으킨 것도 거기에 영향을 끼쳤겠지.

‘여기에 아린이의 치유까지 받는다면 정말 터무니없는 일이 일어나겠지만…… 그래도 지금은 이걸로 충분해.’

포션의 힘을 증폭해도, 스스로 신성력을 만들어 내도 완치는 불가능했다. 거기까지는 바라지도 않았다. 다만 지금은 불완전한 몸 상태로나마, 새로 깨달은 자신의 가능성으로 최대한 적과 부딪혀 볼 따름이다.

[어떻게 해서 그 힘을 다루느냐고 묻고 있잖아!]

제 모습을 찾고 자신의 힘을 밀어내기까지 하는 정시우에게 본능적인 공포감이라도 느낀 것일까. 아주 살짝 겁에 질린 것처럼 보이는 크라켄의 포효가 온 바다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놈은 그와 함께 재차 수중으로 먹물을 거세게 뿜어내며, 그것을 추진력으로 삼아 정시우와 세이락시아에게 몸통박치기라도 할 기세로 수중을 박찼다.

[대답하지 않겠다면 그대로 죽일 따름이다!]

놈의 몸 주위를 맴도는 두껍고 거대한 얼음의 창이 수십 개에서 수백 개로 불어나는가 싶더니 그대로 정시우를 향해 짓쳐 들었다!

[뿌우우우우우!]

세이락시아가 거칠게 울부짖었다. 녀석의 힘이 정시우가 가까스로 다시 만들어 낸 좁디좁은 마나의 영역 안에 가득 찼다. 녀석도 이제 크라켄과 상대할 때 힘을 어떤 방식으로 발휘해야 하는지 깨닫고 있었던 것이다.

“좋아, 이대로 유지하면서 가자.”

[뿌이!]

정시우는 영역을 좁히는 대신 힘을 보다 집중시키며 수중을 비행했다. 전투를 속행해도 무리가 없다는 판단이 선 순간, 그 영역에 이번엔 화염의 신 파에토의 힘까지 더해졌다.

그리고 그것이 세이락시아의 물의 힘과 충돌하지 않고 한데 어울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오묘한 빛을 형성했다. 정시우가 아니라면 불가능한 기행이었다.

“충격이 온다. 단숨에 돌파할 거야!”

[뿌우우우오오오오옹!]

피할 틈도 없이 날아드는 수백 개의 물의 창과 마주한 정시우가 재차 세이락시아의 등에 몸을 밀착시키곤 눈을 부릅떴다. 크라켄과 정면으로 충돌하는 것만은 어떻게든 피해 내며, 물의 창을 정면으로 돌파한다!

“흐오오오오오!”

헤데아의 영역 안에서는 신의 번개라도 잘라 낼 것처럼 용맹한 위엄을 뽐내던 물의 창의 세례가 그들을 흔적도 남기지 않고 갈아 버릴 것처럼 쏟아진 다음 순간, 놀랍게도 그들의 몸에는 일절 해를 입히지 못하고 증발해 버렸다.

물의 힘과 불의 힘이 섞여, 신성력으로 다져진 정시우의 마나 영역에 맞닿은 순간 형태를 잃어버리고 만 것이다. 정시우는 그것을 마나 드레인으로 탐욕스레 빨아들이며 조금의 자신감을 되찾았다.

“좋았어! 역시 누가 뭐라 해도 메드로…… 열기와 냉기의 퓨전이 최고지!”

[뿌이!]

이 자리에 수아린이 있었더라면 적극적으로 태클을 걸어 줬을 텐데 그러지 못해 애석할 따름이었다. 정시우는 어쨌든 기세를 잃지 않고 일직선으로 물의 창 세례를 돌파, 그 끝에 막 그들을 향해 다리를 뻗어 내고 있던 크라켄과 조우했다.

[넌…… 넌 대체 무엇이냐? 헥토의 종속인가 했더니 그것도 아니고, 헤데아 님과 연관이 있는 종자는 더더욱 아닐 지언데……!]

먹물로 형성된 헤데아의 영역을 당돌하게 흩어 버리며 돌진해 오는 정시우와 세이락시아를 보며 놀라 크라켄이 물었지만 그는 그것을 깔끔하게 무시하며 해머로 놈의 몸체 표면을 긁어냈다.

신성력과 그가 기존에 지니고 있던 마나가 섞여, 메시지가 일컫기를 거부의 힘이며 순수의 힘으로 진화한 그것이 파에토의 힘을 받아들여 해머 끝에서 눈부시도록 찬란하게 타올랐다!

[끄아아아아아악!]

크라켄이 재차 비명을 질렀다. 처음 정시우의 일격에 당했을 때보다도 끔찍한 비명이었다. 그야 정시우의 마나가 본질적으로 달라졌으니 그도 당연한 일이었다.

정시우는 놈의 반격이 오기 전 세이락시아를 조종해 잽싸게 놈의 영역을 벗어나며 숨을 헐떡였다. 아슬아슬하게 5킬로미터의 다리를 스치며 풍압에 상처가 다시 벌어졌지만, 이제 그 정도로는 위축되지 않았다.

“뿌이, 할 수 있겠어?”

[뿌이!]

둘 다 이제 간신히 만신창이에서 벗어난 상태. 지금이라도 아차 하는 순간 아까와 똑같은 꼴이 날 것이다. 바로 죽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정시우는 지금 붙잡은 승기를 놓칠 생각이 없었다. 그것은 세이락시아 역시 마찬가지였다.

“좋아. 누가 이 바다의 주인인지 저 문어 대가리한테 알려 주자고.”

정시우는 괴력을 발동하고, 해머를 굳게 쥐며 재차 돌진했다. 그것에 맞서는 크라켄은 이 가는 소리를 내며 다리를 마구 휘둘러 왔지만, 이제 더는 그것이 두렵지 않았다.

인간과 크라켄이 재차 충돌했다.

전투는 클라이막스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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