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4
164화.
기갑 오크. 그것은 심장을 타고 흐르는 마력을 전부 동력원으로 삼아, 신체에 이식한 강력한 기계장치…… 아티팩트를 발현해 전투를 벌이는 미치광이 오크들을 이르는 말이다.
과거 용세하가 리타이어하며 생겨났던 던전에서 이 기갑 오크들이 나타났었으며, 당시의 정시우에게 긍정적인 충격을 주고 그가 마나와 육체의 상관관계에 대해 보다 깊게 깨닫게 해 주는 계기가 되어 주었던 아주 고마운 몬스터들이었다.
[동족과 싸운 적이 있나?]
“네놈들보단 약했지.”
하지만 신체구조는 근본적으로 같았다. 기갑 오크는 육체와 마나의 조화를 포기하고, 신외지물의 힘을 빌려 잘못된 방식으로 성장한 놈들. 정시우가 메탈그레X몬이라면 놈들은 스컬 그레X몬이었다.
“아냐, 난 워그레X몬 정도는 되지.”
“자화자찬도 정도껏 하세요.”
[아무래도 네놈은 우리 기갑 오크를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 같군.]
정시우가 그들을 얕보고 있다고 생각한 것일까? 기갑 오크 중 한 마리가 기계팔과 연결된 도끼를 들어 올리며 코웃음을 쳤다.
놈의 가벼운 신체 동작이 아티팩트를 활성화시켜, 응축된 힘을 분출시키기 위해 기세를 끌어 올리는 것이 느껴졌다.
[기계와 연결되어 마나를 포기함으로써 우리가 얻은 가능성…… 그것을 알아보지 못하는 한, 네놈도 도끼의 녹이 되어 스러질 뿐이다.]
그야 당연하다. 자기자신의 가능성의 한계조차 미처 파악하지 못하는 정시우가 다른 존재가 품은 가능성을 알아볼 수 있을 리가 없지 않겠는가.
다만 정시우도 눈앞의 기갑 오크들이 이전 그가 마주했던 기갑 오크 천부장에 비하면 현격히 강하다는 것만은 알 수 있었다. 그는 입가를 일그러트리며 케이나에게 확인했다.
“케이나, 몇 놈까지 맡을 수 있겠어?”
[셋까지는 가능하다.]
“그래? 난 넷까지는 가능한데.”
[그럼 난 다섯 모두 맡을 수 있다.]
[……제법 흥미로운 이야기를 하는군, 네놈들!]
서로 자존심을 세우느라 오크를 완전히 무시하는 듯한 정시우와 케이나의 태도에 단단히 열 받은 기갑 오크들이 호흡을 맞춘 듯 정확히 같은 타이밍에 돌진해 왔다.
[헥토 님의 은총으로 깨달은 가능성, 압도적인 힘! 그것을 보여 주마!]
[말만 앞서는 놈들의 혀를 단숨에 잘라 내 주지!]
마력을 품은 증기가 분출되어 순식간에 주위를 흐릿하게 만드는가 싶더니, 그 안에서 뜨겁게 달아오른 도끼가 단두대의 칼날처럼 일행을 향해 내리꽂혔다!
“하!”
[흐압!]
바로 그 순간 정시우는 물 흐르듯 자연스레 뒤로 빠지고, 케이나는 앞으로 돌진했다. 대검을 앞으로 바르게 내민 채 팬텀바이크와 하나가 되어 질주하는 그녀는 그 자체로 하나의 돌격용 랜스를 보는 것만 같았다.
차지 스킬을 익힌 자라면 경탄하지 않을 수 없는 그 테크닉에 용세하가 무심코 탄성을 자아낸 다음 순간, 그녀는 사방에서 내리쳐지는 도끼들을 아슬아슬하게 피해 내며 오크 무리를 가볍게 돌파했다.
물론 대검 끝에는 그녀가 목표로 했던 기갑 오크가 관통되어 매달려 있었다.
[일단 한 마리. 이제 둘씩 나누도록 할까.]
[나는 죽지 않았다!]
[오, 아직인가.]
하지만 이제 곧 죽을 것이다. 케이나는 그런 의미를 담아 미소를 지으며 대검을 거세게 휘둘렀다. 육신과 융화되어 있던 기계 장치의 핵심이 파괴당해, 곧 죽음을 맞이할 오크를 재차 타격했다.
[네놈 말대로 되었구나, 정말 넷의 오크 전사를 한 번에 감당할 수 있…….]
그리고 남은 기갑 오크 전사들을 향해 거대화한 마신의 징벌이 떨어져 내렸다. 정시우는 뒤로 물러나는 그 순간 오크 모두를 공격할 수 있는 궤적을 계산하여, 가볍게 휘두를 수 있을 만큼만 해머를 거대화하여 그대로 내려친 것!
[크학!?]
기갑 오크들이 그것을 보고 피했는가? 물론 불가능했다. 해머에는 요즘 정시우가 주력으로 익히고 있는 스킬 중 하나인 은신의 성질이 가미되어 있어 놈들을 공격하는 그 순간까지 실체를 감추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케이나가 돌진하며 꼬챙이에 고기 꿰듯 오크를 대검에 꿰어 버리지 않았더라면 오크들의 신경이 분산되지 않았을 터이나, 케이나가 망설임 없이 돌진하여 그녀의 주목도가 한없이 높아진 상황이었기에 이런 깜찍한 발상이 먹혀든 것!
“인생은 실전이거든!”
[크으…… 흐아아아아!]
그러나 정말 놀라운 일은 그 순간 벌어졌다. 그대로 오크 무리를 짜부시킬 것만 같았던 해머를, 경악스럽게도 놈들이 받아 내 버틴 것이다!
해머의 은신이 풀리고 타격까지 이어지는 짧은 한순간, 놈들의 의지를 하나로 모으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냥 놈들이 하나같이 단순하고 무식했을 뿐이라는 가능성도 있지만!
[고작 한 명의 힘으로…… 우리 넷을 감당하려는가!]
“아니, 그럴 리가 있냐.”
해머가 순식간에 크기를 줄였다. 힘을 주어 해머를 밀어낸 반동으로 놈들이 비틀거리는 다음 순간, 오크 놈들 중 가장 오른쪽에 있던 놈의 옆구리에 해머가 틀어박혔다. 실로 번개 같은 연격이었다.
“한 마리 끝.”
[큭…… 쿠학……!]
위에서 내려친 해머를 받아 내느라 적잖이 내상을 입은 상태에서, 정통으로 옆구리를 얻어맞은 오크가 내장을 토해 내며 쓰러졌다.
기계 장치가 끼이이익, 불길한 소리를 내더니 한순간 터져 버리는 것이 새삼스레 웃겼다. 놈이 있던 자리에는 비드만이 떨어질 뿐이었다.
“케이나, 내가 이겼지?”
[이쪽도 끝났다. 아니, 내가 더 빨랐던 것 같군.]
정시우와 거의 비슷한 타이밍에 케이나가 바닥에 떨어지는 비드를 수거해 돌아서며 시크하게 대꾸했다. 몬스터의 사체가 남지 않는 던전의 특성상 기갑 오크의 사체를 남겨 살펴볼 수 없다는 점이 살짝 아쉬웠다.
[하지만 비드만으로도 흔적을 알아보기에는 충분하지. 다른 무수한 몬스터의 기록이 느껴지는데, 이 모두를 보다 강한 힘으로 통제하는 것이 바로 헥토의 능력인가.]
“어쩐지, 느껴지는 기세에 비해 너무…… 허접하다 싶었는데.”
[네, 놈들……!]
강자란 운이 좋게 얻어걸려 강해진 사람이 아니라, 힘을 제대로 다루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다. 헥토의 은총을 입었다느니 자랑하더니 결국 무식하게 힘이 강화되었을 뿐이라면, 놈들은 이전 정시우와 싸웠던 기갑 오크 천부장만도 못한 놈들이었다.
“그리고 지금 그 힘에서조차 나한테 밀리고 있지.”
[개자식이!]
지치지도 않고 도발에 또 걸렸다. 역시 오크는 단순해서 너무 좋다니까! 정시우는 자신에게 짓쳐 드는 오크들을 마주해 미소를 지으며 마주 돌진했다. 마신의 징벌이 위협적으로 스파크를 튀겼다.
[네놈이 감히 수만 년 발전해 온 오크의 전투술을 얕보느냐!]
[인간 주제에 감히 진정한 강자의 정의를 입에 담았겠다. 그것이 무엇인지 우리가 보여 주마!]
놈들의 육신과 연결된 기계장치가 재차 증기를 뿜어냈다. 봉인된 액티브 스킬 대신, 놈들의 전신에 잠들어 있던 가능성의 별, 패시브 스킬들이 극도로 활성화되는 것이 느껴졌다.
끓어오르는 힘, 오랜 세월 단련된 오크의 기예! 그야말로 정시우가 바라 마지않던 것이다.
“그래. 진즉 전력으로 나왔어야지.”
[죽어라!]
정시우는 해머의 손잡이를 짧게 쥐고 헤드를 사선으로 쳐올렸다. 그것이 선두로 나와 그를 덮쳐 온 기갑 오크의 도끼와 허공에서 부딪히며 격렬한 굉음을 토해 냈다. 놀랍게도 놈은 괴력을 유지하고 있는 정시우의 일격을 어떻게든 버텨 내고 있었다!
‘좋아, 어딘가 기갑 오크 천부장을 떠올리게 하는 스킬인데.’
그는 오크의 전신 근육의 움직임을 모두 눈에 담으며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무지막지한 완력이 기계장치의 힘과 더해져 상승효과를 만들어 내는 광경은 또 나름 참고할 만한 점이 있어보였다.
[지금이다!]
[이것이 오크의 힘…… 쿠학!?]
[하!]
정시우가 한 놈에게 집중한 틈에 나머지 오크들이 그의 옆구리를 노리고 공격해 왔지만, 직후 한 마리는 케이나의 대검에, 한 마리는 용세하의 랜스에 저지되었다.
[강자를 자처하면서 협공은 마다하지 않는가, 실로 좋은 자세다. 실은 우리도 그렇지!]
“저도 전력을 내보겠습니다, 형님!”
“무리하지 말고 버티기만 하면 돼. 이놈 정리하고 내가 맡을 테니까.”
그동안 용세하도 많이 강해졌다지만 헥토의 힘으로 강화된 기갑 오크는 정시우의 괴력에조차 대항하는 수준! 무식하게 정면에서 덤볐다간 놈들의 도끼에 그대로 반쪽으로 갈라지고 말 터였다.
“명심하겠습니다, 형님.”
[하…… 내가 우습게 보였단 말인가!]
용세하는 신중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랜스와 방패를 들고 자세를 취했다. 자신이 정시우 일행 중 가장 약한 상대를 맡았다는 사실을 깨달은 오크가 굴욕감에 얼굴을 붉게 물들였으나, 용세하를 얕보다간 정말로 굴욕적인 꼴을 당하게 될 터였다.
물론 기분이 상한 것은 정시우의 상대도 마찬가지였다.
[정리? 끝까지 건방진 자세를 버리지 않다니……. 오크의 저력을 얕보지 마라!]
“하!”
그러나 정시우는 이미 놈의 말을 듣고 있지 않았다. 정시우가 주목한 것은 놈의 육신, 그중에서도 활발히 움직이는 기계장치!
놈의 팔뚝에서 일직선으로 증기가 분사되는 순간, 정시우는 해머를 비틀어 놈의 간격에서 벗어나며 꼬리로 놈의 팔뚝을 휘감아 고정했다.
그의 눈에는 이미 확신이 어려 있었다. 이놈에게선 더는 얻을 수 있는 게 없다는 확신이.
“그래, 결국 순수한 기량은 천부장 놈과 별 다를 바가 없구나!”
[뭐…… 헛!]
도끼가 허무하게 허공을 가른 다음 순간에는 이미 정시우의 돌려차기가 놈의 뒷목을 가격하고 있었다. 뿌득, 섬뜩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윽!?]
“너무 뻔히 보인다고!”
기갑 오크 놈들의 기계 장치는 대체로 팔과 가슴팍에 걸쳐 있으며, 움직임에 따라 솟는 증기를 공격용과 교란용으로 구사하는 동시에 거기서 얻은 추진력으로 공격해 오기도 한다. 이렇게 정직한 공격 신호도 또 없을 터였다.
[크하!]
“흡!”
놈의 기계 팔뚝 절반이 뽑혀 나와 덜렁거렸다. 스팀이 분사되는 순간 꼬리로 그것을 고정하고 발차기로 충격을 가해, 이음새를 완전히 비틀어 버린 까닭이었다. 그러나 정시우의 공격은 그것으로도 끝이 아니었다.
“자, 네 힘을 제대로 보여 주지 못하면 다음 기회는 없을 거야!”
[쿠하아아아아!]
눈 깜짝할 사이 궁지에 몰린 오크의 눈이 붉은빛으로 번뜩였다. 기계장치의 유지와 동작에 소모되던 마나가 놈의 심장에서 용솟음쳐 전신으로 확장되며, 순간적으로 놈의 덩치를 거의 1.5배에 가깝게 불려 놓았다!
[쿠와아아아아악! 이것이 오크의 힘이다!]
“오?”
확실히 기세는 강렬했다. 순간적으로 터무니없는 빠르기로 도끼를 휘둘러와, 정시우의 손에 들려 있던 해머를 허공으로 튕겨 낼 정도였다. 그가 케이나로부터 배운 요령으로 무기와 반쯤 동화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실로 굉장한 일!
[크학!]
“하.”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다. 실로 굉장한 위력의 반격을 가해 온 직후 놈의 얼굴에 아차, 하는 표정이 스쳤다. 놈은 지금 움직이고 싶어도 터무니없는 힘을 토해 낸 반동으로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그 시간은 고작 1, 2초에 지나지 않을 터이나, 정시우에게 있어 그 시간은 영원과도 같았다.
“스스로 파악하고는 있으니 다행이네.”
[큭, 쿠학!]
아직 정시우의 공격이 제대로 들어가기도 전인데 놈이 입으로 피를 토해 냈다. 기계기름과 섞여 실로 추악한 꼴이었다.
기계장치와 육신의 연결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마나 주입이 멈춘 순간 기계 장치가 폭주하며 놈의 육신에 오히려 해를 입히고 있었다.
설령 정시우를 일시적으로 밀어낸다 하더라도 그 끝은 스스로의 죽음일 터! 이건 진정한 헥토의 힘이 아니다. 아마도 놈들은 실패작일 것이다. 아니면 헥토라는 놈 자체가 실패작이거나.
“하!”
[카학!]
정시우는 침팬지처럼 덩치를 과시하는 오크의 텅 빈 복부를 향해 주먹을 찔러 넣었다. 영거리에서 내질러진 그의 주먹은 전투질주의 힘을 담고 일직선으로 뻗어 나가, 단숨에 놈의 복부를 관통해 버렸다.
“쯧, 실망이야.”
놈을 정리하고 돌아선 정시우는 용세하에게 공격이 막혀 뒤로 물러나던 기갑 오크마저 단숨에 때려잡았다. 부메랑 스킬로 해머를 되찾고 그것을 내던져 놈의 머리통을 가격하고, 거기에 이은 크루얼 차지로 몸통을 터트려 버린 것이다.
뭔가 수를 숨기고 있나 싶었지만 그냥 놈들이 모두 허접했을 뿐이란 사실을 깨달아, 적잖이 흥분했던 자신이 바보처럼 느껴질 만큼 흥이 식고 말았다.
“헥토와 기갑 오크의 조합은 실패인가. 차라리 아까 그 잿빛 거인이 낫겠다.”
그의 판단에는 근거가 있었다. 정시우가 유일하게 놈에게 위압감을 느꼈던 한 순간, 오크가 죽기 전 보인 스킬!
그것은 분명 놈이, 혹은 놈의 종족이 타고난 강력한 스킬일 터이나…… 그것은 기갑 오크인 채로는 쓸 수가 없는 스킬이었던 것이다. 그러니 실패라는 말을 할 수밖에!
[하지만 주인님, 아직 기대할 것이 남아 있지 않은가.]
정시우와 마찬가지로 어렵지 않게 기갑 오크를 정리한 케이나가 그에게 비드를 튕겨 주며 대꾸하는 말에, 정시우는 잠시 고민에 빠지다가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유령이 남아 있었구나.”
[엘리트와 보스를 기대해 보지 않겠는가. 만약 이곳이 정말로 강자의 동굴이라면, 그 이름에 마땅한 강자가 우리를 맞아 줄 터이다.]
“정말 끔찍한 기세였는데, 그것들을 이렇게.”
기갑 오크의 맹렬한 공세를 간신히 버텨 낼 뿐이었던 용세하는 정시우와 케이나의 말에 기가 막혀 중얼거릴 따름이었지만 물론 그들은 그의 말을 듣고 있지 않았다.
아직 강자의 동굴은 그 끝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