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홀로 로그인-145화 (145/260)

# 145

145화.

[나는 세루타. 이곳 신전을 지키는 제사장이다.]

“신전……?”

정시우의 중얼거림에 망둥이가 끄음, 하는 소리를 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내 말을 이해하는군.]

“아, 거기서부터 시작하는 거였냐.”

정시우는 멍한 표정으로 자신과 망둥이를 번갈아 보는 일행에게 대충 가만히 있어 보라는 손짓을 했다. 고래, 세이락시아는 여전히 뿌오오오옹, 자기주장 강한 울음을 울고 있을 뿐이었다.

[녀석이 당신을 데려왔다는 것은, 분명 당신을 보며 느끼는 바가 있었던 것이겠지. 무엇보다 우리와 소통하는 그 기이한 능력, 신전에 들일 자격은 충분하다. 필시 그분께서도 허락할 것이다.]

“미안한데 다짜고짜 저 이상한 곳으로 끌고 들어갈 생각하지 말고 차근차근히 좀 설명해 줄래?”

정시우의 질문에 세루타가 간단하게 대꾸했다.

[이곳을 우리가 만들었을 것 같은가?]

그럴 리가. 아무리 봐도 인공적인 느낌이 강했다. 정시우는 그렇게 대꾸하려다 말고 멈칫했다.

“그러면 여기를 누가 만들었다는 거야……?”

[우리도 정확히는 알 수 없다.]

“하하, 이 녀석 보게.”

“오빠, 스톱!”

정시우가 망치를 꺼내 들려는 것을 수아린이 필사적으로 말렸다. 그녀는 설령 대화를 못 알아들어도 그의 폭력성이 발현되는 시점만은 귀신같이 파악하는 수준에 이르러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망둥이는 그의 생각도 모르는지 여전히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우리가 우리 자신에 대해 깨달았을 때 우리는 이미 이곳에 있었다. 모든 것이 우리를 위해 준비되어 있었으니 그분이 누구인지는 중요치 않다. 우리는 단지 그분을 섬기며, 이세계의 신의 이름을 강요해오는 삿된 자들과 맞서 싸울 뿐이다.]

“……!”

정시우의 머릿속에서 번개가 치는 것 같았다. 의문 한 가지가 해결되는 순간이었다. 이세계의 신에게 종속되지 않은 지구의 해저 몬스터들, 놈들이 무사했던 이유!

이미 이세계의 신과는 다른 존재를 굳게 믿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가설이 입증된 순간이었다.

“잠깐만, 그러면 이름도 몰라?”

[그렇다. 단지 그분이 자신에 대해 남기고 간 흔적으로부터 그분의 존재를 느끼고, 우리의 앞길을 정할 뿐이다. 나는 바로 그것을 관리하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 나를 신전에 들이겠다는 이유는 뭔데?”

[뿌오오오오옹!]

정시우의 물음에 어째선지 언덕 아래 즈음에서 가만히 대기하던 세이락시아가 자랑스럽게 울었다. 세루타가 녀석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분의 의지를 가장 강하게 이어 받은 존재가 있으니 그것이 바로 세이락시아다. 그리고 그런 세이락시아가 데려온 것이 바로 당신이지. 이제 내가 왜 당신을 신전에 들이려 하는지 알겠는가.]

모르겠는데요, 하고 대꾸해 주고 싶었지만 그러자니 조금씩 켕기는 부분이 있었다. 말이 궁해진 정시우는 일단 일행을 이끌고 세루타와 함께 신전에 들어가고자 했으나, 고래가 꾸오오옹, 소리를 내며 꼬리를 쳐 그들을 막았다.

[아무래도 신전에의 출입을 허락받은 이는 이 남자뿐인 듯하군.]

“앗, 이 순간 갑자기 마음속에 차오르는 허무감과 엑스트라 느낌은 대체 뭐지……?”

“고래를 네가 테이밍하지 못해 유감이구나, 마리나 비셋.”

다들 떨떠름한 얼굴이었으나 막무가내로 돌입하기엔 고래가 너무 컸다. 결국 그들은 현실을 인정하고 뒤로 물러났다.

반면 정시우는 정통 판타지 서사시의 주인공이라도 된 것만 같은 느낌에 살짝 짜증이 났으나 끝내 어쩔 수 없이 세루타를 따라 홀로 신전 안으로 돌입했다.

“신전 한 번 더럽게 크네.”

[그분을 모시는 데에 이것도 좁다. 투덜대지 말고 들어오라. 그분께서 남기신 계시와, 뚜렷한 흔적이 아직까지 이곳에 남아 있으니.]

제사장을 칭할 만큼 높은 위치에 있으면서도, 신의 대리자인 세이락시아의 말을 순순히 따라 생판 남인 정시우를 그렇게나 중요한 신전 내부로 안내하는 것을 보면 그들에게 있어 신의 존재감이 막대하다는 것을 익히 짐작할 수 있었다.

웅장한 신전 통로를 걸어 통과하며 정시우에게도 조금씩 기대감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통로는 여전히 길고도 넓었다.

“으음……?”

그러던 중, 갑자기 이 신성하게까지 느껴지는 공간의 담담한 마나와는 다른 청량한 마나가 정시우를 자극했다. 그의 걸음걸이가 조금 빨라졌다. 그에 따라 마나의 농도도 점점 더 짙어졌다. 세루타가 그를 쫓아야 할 수준이었다.

[어,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고나 있는가! 이 신전의 통로는 목적지를 뚜렷이 인지하지 못한 자가 걸으면 미로로 통하게 하는 마력의 함정이……!]

“굉장히 익숙한 느낌이 뒤에서 날 기다리는 것 같은데.”

이것을 어디서 느꼈더라. 신의 힘? 아니다. 보다 근본적인 영역에서 정시우와의 접점이 있는 힘이었다. 그렇다면 정시우가 지닌 용의 힘? 그것은 어디까지나 정시우 본인이 지니고 있는 마력일 뿐이다. 그렇다면…….

눈앞이 환해졌다. 거대한 신전의 내부가 극명하게 드러났다. 간신히 정시우를 쫓아온 세루타가 헥헥거리며 그에게 말했다.

[그, 그렇다. 잘 찾아왔구나. 보라, 이것이 바로 우리를 이끄시는 분의…….]

그러나 정시우는 더 이상 놈의 말을 듣고 있을 수 없었다. 마냥 하얗고 거대한 공간, 원통으로 둘러쳐진 벽에 빽빽이 적힌 글자들을 무시하고 그 중앙바닥에 그려진 기이한 문양의 원에 집중했다. 마나는 그것에서 느껴졌다.

정시우는 그제야 그것이 자신이 휴식처에서 느껴 온 마나와 비슷하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 순간, 그의 육신에 격렬한 변화가 들이닥쳤다.

[심해관에 입성하였습니다. 지하 플레이어의 권한이 확장됩니다. 거주지역에서 심해관으로 넘어오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심해관의 힘이 수중에 숨어 있던 모든 삿된 것들의 기척을 드러냅니다. 숨겨져 있던 ‘수중던전’으로의 입장이 가능해집니다. 수중던전으로의 입장은 심해관에서만 가능합니다.]

[지하 플레이어 스킬, 카오스 스케일(패시브)을 각성합니다. 스톤 스킨이 카오스 스케일에 통합되어, 카오스 스케일이 Lv3이 되었습니다.]

[심해관 플레이어의 자격을 얻어 인벤토리가 두 배로 확장됩니다.]

정시우의 상상은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엇나갔다. 처음 세이락시아가 자신을 이곳으로 안내했을 때, 그는 또 지긋지긋한 용 타령을 듣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아니었다. 이곳은 개미굴, 혹은 하늘성과도 연관되어 있는 곳이었다. 플레이어를 위한 시스템이 몬스터들 사이에 파묻혀 있었다니!

[시, 신전이 반응하고 있다!]

[뿌오오오오오오옹!]

여전히 고전 RPG의 NPC 같은 대사를 내뱉는 세루타. 한편 밖에서 무엇인가를 느꼈는지 세이락시아까지 크게 울부짖었다.

한편 정시우는 스킬 획득과 동시에 자신의 피부 위를 촘촘하게 덮어 나가는, 용의 그것과도 비슷한 검은 비늘을 보며 전율했다.

‘이거, 카오스 테일과 비슷한 성질의 스킬이잖아……!’

비늘이 그의 전신을 뒤덮자 마치 흑색의 갑주를 입은 것만 같았다. 자신의 몸이라서 그런지 전혀 징그럽다는 느낌은 없었다. 어차피 생물의 그것이 아니라 마나로 이루어진 것이었기에.

그리고 그런 만큼, 그 자신의 의지에 따라 얼마든지 통제하는 것이 가능했다. 그가 자연스럽게 마나를 거두자 비늘은 나타났던 것보다도 빠른 속도로 사라졌다. 정시우는 매끈해진 자신의 손을 매만져 보며 고개를 들었다.

[시, 신이시여.]

망둥이가 고개를 숙이고 자신을 경배하고 있었다.

“아…… 아냐. 아니거든.”

[역시 신의 재림이셨군요!]

“아 글쎄 아니라고.”

분명 조금 전까진 대화가 통하던 상대였던 것 같은데 이것 참 이상하기도 하지. 정시우는 혀를 차며 일단 놈을 무시하고 현 상황의 파악에 힘쓰기로 했다.

우선 이곳, 심해관. 하늘성이나 개미굴과 동일하게 던전으로 입장할 있는 일종의 지역명이 아닐까, 하는 것이 그의 추측이었다.

그 증거가 바로 이 신전에 설치된 던전 입장용 마법진이었다. 여태까지 정시우는 수중던전을 개미굴을 통해 얼마든지 갈 수 있는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의 생각이 모든 면에서 틀렸던 것.

물론 개미굴 던전이 해저에 있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이르는 수중던전이란, 바다와 관련된 신들이 이끄는 수족들이 등장하는 그들 전용의 던전을 이르는 것이다.

완벽하게 수중환경에 맞추어진 던전. 단지 일부가 물로 이루어져 있거나 평범한 몬스터가 물에 빠진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그 안에 등장하는 몬스터까지 모두 물과 관계된 던전.

‘하늘성에도 수중환경의 던전이 별로 없다는 얘기를 들었지……. 그런데 생각해 보면 지구가 아닌 이세계에 바다가 없을 리가 없어. 즉…… 여태까지 나를 비롯한 플레이어들이 인식하지 못했던 대부분의 수중던전은.’

그 누구의 손에도 닿지 않은 채, 방치되어 있었다는 얘기가 된다. 그렇다면 저렇게나 많은 수중 몬스터가 벌써 바다로 풀려난 것도 납득이 가고…….

그리고 그 입장권이 이제야 정시우에게 최초로 주어진 것이다.

‘카오스 스케일. 심해관에 입성한 순간 각성한 스킬…… 그렇다면 이건.’

이 시점에서 본능적으로 스킬의 능력을 깨달은 그는 설마 하는 생각에 다급히 스킬의 정보를 불러냈다. 얼추 느끼고는 있었지만 실로 어처구니없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카오스 스케일 Lv3]

[그 어떤 환경에서도 자유로이 호흡하고 움직일 수 있게 된다. 비늘은 마나를 끌어 올릴수록 단단해져, 신체 내외부로 가해지는 충격을 수월하게 막아 낼 수 있게 된다.]

스킬의 설명이 장난 아니게 막연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이 있다면 이 스킬이 있어 정시우가 수중던전에서 활동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정시우는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이서희가 걸어 준 결계를 해제해 보았으나, 굳이 카오스 스케일을 피부 표면으로 끌어 올리지 않았음에도 편안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었다.

“하.”

[허어, 역시…….]

그는 심해에 노출된 상태였음에도 수압에도 고통 받지 않았고, 물이 코와 입으로 흘러 들어오는 일도 없었다. 이서희의 결계에 보호받던 때처럼 물속에서 산소를 걸러 내어 흡입하는 것이 가능했다.

지상에 비해 산소의 양이 적기는 했으나 레벨이 워낙 높아 그 정도로는 불편함을 느낄 정도도 못 되었다.

“후우, 하아…….”

반면 원한다면 물로 전신을 적시는 것도 가능했다. 전신으로 퍼져 있는 카오스 스케일이 그의 의지를 받아들여 움직인 결과였다.

그제야 스킬의 의미가 명확해졌다. 어떤 환경에서도 자유롭다는 것은 철저하게 정시우의 기준에 맞추어 움직일 수 있다는 뜻이었다.

‘그러면 다른 일행도 이곳에 들어올 수 있나?’

하늘성의 플레이어가 되기 위해선 선택을 받아야 한다. 개미굴의 플레이어는…… 그것은 정시우에게만 가능한 케이스이니 제쳐 두고, 이곳 심해관에 들어오는데 정시우는 특별한 자격증명을 거치지 않았다.

일행이 이곳으로 들어올 수 있다면 그들도 수중던전의 입장권을 획득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떠올린 생각을 즉시 실행에 옮기려 한 정시우였으나 애석하게도 그것이 불가능했다.

세루타가 심해관에 들어오기 위해선 목적으로 하는 곳의 이미지가 명확해야 한다는 말을 했던가? 정시우가 일행의 손을 직접 붙잡아 이끌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어느 순간 길을 잃어 심해관에 도달하지 못했던 것이다. 설마 그런 쓸데없는 헛소리가 복선이었을 줄이야!

“어째서지?”

“그냥 개미굴과 심해관 모두가 시우 님에게만 허락된 영역이라고 보면 되지 않을까요?”

“으으, 그거 짜증나. 나도 심해관 들어가고 싶어! 시우랑 같이 던전 갈래!”

“누가 저 여자에게 마취 총이라도 쏴 줘.”

별 생각 없이 세이락시아를 따라왔다가 일거리와 스킬을 하나 더 떠맡게 된 정시우는 짜증을 내야 할지 기뻐해야 할지조차 감이 가지 않았다.

세루타는 그사이 다른 몬스터들을 불렀는지 그 녀석들까지 정시우를 숭앙하는 기묘한 분위기를 형성하고 있었고, 그 안에 이방인처럼 방치된 정시우의 일행은 심히 불통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결국, 정시우 일행은 그 자리에선 우선 퇴각을 하기로 결정했다.

정시우에게 또 하나의 신비가 깃든 역사적인 순간이었으나, 세상은 그것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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