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5
125화.
“오빠 미쳤어요!? 그것까지 넣겠다구요!?”
“흥분하지 말고 잘 생각해 봐, 아린아.”
잘 생각해도 미친 짓 같았지만 수아린은 일단 더욱 침착하게 생각해 보기로 했다.
금방 결론이 나왔다.
“오빠 미쳤어요!?”
“아, 루타가 믿어 보라잖아.”
“그 망할 꼬맹이는 믿지 마세요. 그 보물을 이…… 뭐가 튀어나올지도 모르는 제단에 투척하는 건 저는 반대예요.”
[나는 다르게 생각한다.]
케이나가 정시우 편을 들고 나섰다.
[그 아티팩트는 확실히 무척 강력해 보인다. 하지만 주인님의 특성과는 사실 그리 맞지 않는 물건이다. 물론 원거리에 강한 공격을 해야 하는 순간도 있겠지. 그러나 굳이 그런 때를 위해 그런 보물을 남겨 둘 필요는 없는 노릇이다. 마탄 보조 아티팩트는 다른 데서도 얼마든지 얻을 수 있다.]
“그렇다고 이…… 제단에 신의 아티팩트를 투자하자고요?”
[오히려 이 제단이기에 신의 아티팩트를 안심하고 투척할 수 있는 것이지.]
정시우도 케이나의 말에 동감이었다. 사실 수아린이 뭐라 말하건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쪽이 더 정확했다.
“뭐 망하면 망하는 거지. 그땐 다른 거 구하면 되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마. 결국 제일 큰 자산은 내 몸이니까!”
“그 쓸데없이 근육 강조하는 자세 취하지 마세요.”
정시우의 강철 같은 의지를 조금도 흔들 수 없다는 사실을 짐작한 수아린이 허탈해져 물러났다.
정시우는 일요일 날 아침 전에 쓰고 씻었는지 안 씻었는지 확실치 않은 중화냄비를 꺼내 냉장고에 있던 재료 다 때려 넣고 볶음인지 튀김인지 구이인지 모를 요리를 만드는 백수 청년의 심정으로 모든 합성 재료를 제단에 올렸다.
곧 제단이 음산한 빛을 토해 내며 모든 재료를 감쌌다. 마지막으로 뇌신의 레이지 라이플과는 조금 힘겨루기를 하는 듯했지만, 결국 그 모두가 정시우의 힘으로 통제되고 있었기에 끝내 완벽하게 집어삼켰다.
“뭔가 뽑기 돌리는 기분인데.”
“그렇게 불안해할 거면 중요한 물건을 안 넣었으면 좋았을걸.”
변화는 제법 길었다. 모든 물건이 형체와 특성을 잃고 한 덩어리로 뭉쳤다가 떨어졌다가를 반복했다. 마치 생물처럼 입을 쩍 벌렸다가 다물기도 하고 가까이에서 보고 있자니 그렇게 역겨울 수가 없었다.
“메티모아라는 작자랑은 상종을 하고 싶지가 않은걸요…….”
“그래도 서서히 하나로 뭉쳐지는 것 같습니다. 슬레지 해머의 형태를 띠는군요.”
메인은 어디까지나 슬레지 해머였으니 완성품도 슬레지 해머가 되는 것이 당연하지만, 혼돈의 제단이 워낙 혼돈에 가까웠기에 장담을 할 수 없다는 점이 실로 서글프다.
[주인님, 보라.]
“응? 아. 아아.”
정시우는 음산한 빛이 밝아지면 밝아질수록 제단이 점점 소멸하고 있다는 사실을 간파하고는 쓴웃음을 지었다. 역시 자신이 저지른 짓이 터무니없기는 했던 모양이다.
그로부터 얼마나 지났을까. 빛이 완전히 수그러지고 제단이 형태도 남기지 않고 사라지게 되었을 때, 정시우는 자신의 눈앞에 둥둥 떠 있는 검은 해머의 존재를 알아차렸다.
검고 반투명한 재질의 금속 손잡이는 정시우의 양팔 너비를 조금 넘기는 수준이었고, 그 끝에 매달린 추는 제법 크기는 하지만 좌우 모두 밋밋한 검고 단단한 직사각형 형태의 평범한 쇳덩어리였다. 겉으로 보기에는 말이다.
“이게 흑요의 월석이구나.”
“뭔가 느껴지세요?”
“응.”
무기 자체가 머금고 있는 마나부터가 심상치 않았다. 특히 주의할 점은 추의 양끝, 평평한 단면. 흑요의 월석이 고운 가루로 화하여 그 단면을 도배하고 있었는데, 알갱이마다 저마다의 마나를 품고 진동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만약 이것이 상대를 공격하게 되면, 이 무수한 진동의 근원이 한데 맞물려 끔찍한 파괴력을 만들어 내리라 쉬이 짐작할 수 있었다.
“쥐어 보세요.”
“응. 허어.”
겉으로 보기엔 대략 2미터 50센티미터에 달하는 길이의 장병기에 불과했지만 막상 그것을 쥐고 드니 인간의 영역을 벗어난 정시우가 느끼기에도 제법 무게감이 있는 수준의 병기가 되어 있었다. 우습게 수십 톤을 호가한다는 얘기였다.
“이거 그냥 바닥에 떨어트리기만 해도 건물 하나 부서지겠다.”
“바깥에서 돌아다닐 땐 절대 떨어트리지 마세요!”
무기는 정시우의 손에 들린 순간 그를 주인으로 인정했다. 무기 전체를 순환하는 묵직한 기세의 마나가 손잡이를 타고 그의 팔로 흘러 들어오려는 것이 느껴져, 그는 그것을 어렵지 않게 이끌어 전신을 순환시켰다.
그러니까 다시 말해 무기를 자신의 육신과 동조하는 마나 테크닉이 없다면 이 무기를 들 수조차 없다는 얘기였다.
[마신의 징벌]
[랭크 ? S++]
[공격력 ? 4,500 ? 6,500]
[숙련도 ? 0/40,000]
[속성 ? 1. 독염 B+ 2. 흑뢰 A]
[옵션 ? 1. 거대화 가능(소, 중, 대, ???) 2. 주위 마나를 흡수해 차지 스트라이크 가능 3. ???]
[신의 힘과 신의 힘을 인간과 던전의 힘으로 뭉쳐 만들어 낸 걸작. 이 물건은 신의 힘에 대한 지향성을 얻어, 상성이 맞는 신의 힘을 추가로 흡수하는 것으로 성장하게 되었다.]
“S++!?”
“켁…….”
[신의 이름이 들어갈 만하군…….]
“오.”
모두가 무기의 랭크를 보고 아연히 얼어붙은 가운데, 오직 정시우만이 흡족하게 중얼거렸다.
“기대한 대로 괴물이 나왔군.”
“아아아, 제작 과정에서 포름알데히드라도 들어간 걸까…….”
겉으로 보기엔 단순하기 짝이 없는 무기였으나 무기의 내부 구조는 지극히도 섬세했다.
무기가 지닌 속성과 옵션은 플레이어에 비유하자면 스킬이라고 할 수 있었는데, 정시우의 마력 주입 방식에 따라 첫 번째 속성인 독염을 발할 수도 있었고 두 번째 속성인 흑뢰를 발현할 수도 있었다.
다중속성이라고 해서 두 가지 속성을 모두 만들어 냈다간 서로 충돌하기 때문에, 속성을 다룰 때에는 제법 조심해야 할 터였다.
그런데 이것이 옵션으로 가면 더욱 복잡해진다.
첫 번째 옵션인 거대화에서 벌써 옵션이 세 가지. 거대화인데 대체 소 자와 중 자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지금은 아직 알 수 없지만 어쨌든 마나의 주입 정도에 따라 그것을 구분할 수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였다. 심지어는 아직 개방되지 않은 사이즈도 있는 모양이다.
두 번째 옵션은 뇌신의 레이지 라이플에 붙어 있던 차지 샷과 그 원리가 완전히 동일한 것이었다. 시전자의 마나가 아닌 주위의 마나를 빨아들여 공격의 위력을 높이는 것. 써 보기 전까진 모르겠지만 그 결과가 무시무시하리라는 것만은 확실했다.
“아아, 요정상인 때문에 저런 끔찍한 무기가 탄생하고 말았어…….”
“오직 형님만을 위한 무기로군요. ……그런데 형님, 궁금한 게 있습니다.”
그 공간에 존재하는 것만으로 블랙홀을 만들어 낼 것 같은 흉흉한 분위기의 무기로부터 간신히 시선을 떼어 낸 용세하가 정시우에게 질문했다.
“무기의 정보에 흑요의 월석이 만들어 내는 진동의 힘과 원혼의 대검의 영향력이 보이지 않는데요.”
“진동의 힘은 무기 내부에 잠재된 옵션이 아니라 대놓고 드러난 힘이잖아. 물론 숙련도를 올리면 흑요의 월석으로 인한 심화 옵션이 개방될 수도 있겠지. 그 점은 원혼의 대검도 마찬가지고.”
원혼의 대검은 그리 랭크가 높은 물건은 아니었지만, 유령과 저주라는 세트나크의 특성을 훌륭히 담아낸 희귀한 무기이기는 했다.
지금 당장은 강력한 신의 힘에 묻혀 드러나지 않지만 숙련도를 늘려가다 보면 신의 힘에 의해 잠재력이 깨어나 분명 훌륭한 옵션을 드러내 줄 터였다.
문제는 바로 그 숙련도였다.
“4만이라니 대체…….”
“한 10년 동안 죽어라 망치만 휘두르게 생겼네요.”
무기가 S랭크를 넘어서면 이런 괴악한 요구를 해 오는 것인가. 누군가에게 물어보고 싶어도 필시 정시우가 최초의 S랭크 무구 보유자일 테니 불가능한 일이었다.
“아아, 오빠의 방어구가 이 무기의 능력치 절반만 되었어도.”
“그건 포기해. 내가 생각해도 오늘 이 무기를 얻은 건 정말 여러모로 운이 좋았기에 가능한 일이었거든.”
기껏 던전에 들어오기 전에 서랍에서 완벽히 수리한 방어구이거늘 보스전까지 치른 지금 보니 넝마도 이런 넝마가 없었다. 수아린은 거의 울상이 되어 그에게 요구했다.
“이젠 당분간 무기에는 신경 안 써도 되죠? 이제 제발 방어구에도 신경 좀 써요, 우리. 오늘도 몸에 난 구멍만 몇 개예요, 대체.”
“레벨 업 하면서 멀쩡해졌으니까 괜찮…… 아, 알았어. 알았어. 다음엔 무조건 방어구. 방어구 오케이?”
“오케이. ……땡큐.”
웃어넘기자니 수아린의 울상 짓는 얼굴이 심상치 않다. 정시우 입장에선 사지가 잘리지만 않으면 다시 치유할 수 있으니 오케이였지만 수아린의 눈에는 아슬아슬한 외줄타기로만 보이니, 그런 둘의 인식 차이가 좁혀지지 않는 한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주인님, 던전이 유지 마력을 잃어 붕괴하려는 것 같다. 여기에 계속 머무를 필요도 없으니, 무기를 확인하는 일도 끝났으면 나가는 것이 어떨까.]
“아…… 아니, 그전에 아직 해야 할 일이 있어.”
정시우는 케이나의 말에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정말 인벤토리에 넣을 수나 있는 걸까 의심이 가는 마신의 징벌을 어떻게든 인벤토리에 구겨 넣고, 그는 기지개를 켜며 돌아섰다.
“유령들의 대답을 듣고 가야지.”
[아.]
던전이 완벽하게 클리어 되었다는 것은 유령들에게도 전해졌을 터. 곧 일행의 눈에도 보스 룸을 향해 부유해 오는 유령들이 느껴졌다. 사실 클리어가 끝난 시점에서 던전의 축소가 진행되고 있었으므로 그들이 날아오는 거리는 정시우가 탐험한 길이에 비하면 무척 짧았다.
[이, 이것 좀 봐.]
[우리가 지닌 힘으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파괴 규모야…….]
[으으, 이 소름 끼치는 힘의 흔적은 뭐지? 너도 느껴져?]
[그런데 너 누구냐? 너 나 아냐?]
개성 넘치는 유령들답게 날아오는 와중에도 시끄럽게 떠들어 대는 놈들. 그 숫자는 처음 정시우가 던전에 들어섰을 때 만난 유령의 10분의 1도 채 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3천을 넘기고 있었다.
[아, 저기 있다.]
[그런데 보스 룸은 깔끔하네.]
[그게 더 무서워.]
보스 룸은 대기실에 비하면 엄청 좁았기 때문에 유령들이 전부 들어오기는 힘들었지만 아무래도 놈들은 미리 대표를 정해 두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들 중 가장 힘이 강력해 보이는 유령이 나섰다.
[암천의 길드원 양시오입니다.]
그는 자신을 25단계 보스전에서 리타이어한 플레이어의 유령이라고 소개했다. 아무래도 좋지만 암천은 한국에서 용오름 다음으로 유명한 길드다. 과연 유령들을 대표하기에 적절한 인선이다.
[많은 유령이 현실을 부정하며 사라져 갔습니다. 알고 계시겠지만, 던전을 구성하고 여력이 남지 않은 유령들은 존재감마저 희미해져 끝내 사라지게 됩니다. 그들 또한 같은 결말을 맞이한 것입니다.]
“그래서 남은 게 너희뿐이냐.”
[그리고 당신에게 감사를 표하고 싶다는 유령들도 제법 있었습니다. 여기 그들이 남긴 징표입니다.]
유령이 내민 한 손에 이제 정시우가 ‘영력’이라 정의하는 영혼의 힘이 가득 뭉친 집합체가 담겨 있었다. 정시우가 그것을 받아 쥐자 순식간에 무수한 메시지가 그의 눈앞을 스치고 지나갔다. 이내 모든 것이 정리되어 간단한 문장이 되었다.
[근력이 26, 민첩이 19, 체력이 31, 마력이 66 올랐습니다.]
[각종 스킬 숙련도가 상승합니다. 부여 스킬이 Lv45, 강타 스킬이 Lv43, 전투질주 스킬이 Lv37, 헤비 웨폰 배틀 스킬이 Lv8, 크리티컬 불릿 스킬이 Lv15, 워 크라이 스킬이 Lv18, 스톤 스킨 스킬이 Lv25, 화염 내성 스킬이 Lv8, 저주 내성 스킬이 Lv9, 빙결 내성 스킬이 Lv7, 바람 내성 스킬이 Lv8, 대지 내성 스킬이 Lv7이 되었습니다.]
[플레이어 액티브 스킬 긴급탈출 Lv5를 얻었습니다.]
[플레이어 액티브 스킬 은신 Lv8을 얻었습니다. 플레이어의 생득적 능력이 통합되어 은신 스킬이 Lv23이 되었습니다.]
“……하.”
실로 묘한 기분이다. 던전을 하나하나 클리어 할 땐 유령을 만나지 못할 때도, 이렇다 할 보상을 얻지 못할 때도, 얻어 봤자 스킬 일부의 숙련도 조금 오르고 마는 경우도 많았지만, 그 모두가 이렇게 하나로 합쳐지니 순식간에 그의 전력이 상승한 것이다.
그냥 사라진 것이 아니다. 그들은 진실을 깨닫고도 그들의 흔적을, 감사의 표시를 남기기를 원했다. 정시우는 그런 그들의 태도가 마음에 들었다.
“그렇다는 건 너희는?”
[저희는 직접 곁에서 당신을 따르고 싶습니다. 우리가 플레이어 본인이 아니라는 사실은 우리도 알고 있습니다. 단지 새로운 삶을 원합니다.]
유령의 숫자는 모두 합쳐 3,185. 정시우는 그 막대한 숫자의 혼을, 그들의 무게를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였다. 쿨하기까지 한 미소에 반할 지경이었다.
“좋아, 와라.”
정시우의 소울 포스 스킬이 레벨 5로 성장했다.
유령 군단이 제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