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4
124화.
[던전 클리어]
[소요 시간 3주 13시간 38분 49초 77]
[괴형 정물 501,384, 키메라 31,519, 메티모아의 사도 1 처치]
[정산을 시작합니다.]
“후엡, 푹큭푸엣.”
두 망막 위로 어지러이 던전 클리어 문구가 떠오르는 가운데, 한 팔에 케이나를 안고 바깥으로 튀어나온 정시우가 연신 퉤퉤 검은 잔해를 토해 냈다.
“카아아아악, 퉷.”
마지막 순간 괴력을 일으켜, 정시우와 케이나를 중심으로 뭉쳐 드는 키메라를 붙잡고 완벽히 찢어 죽여 버렸기에 더 이상 거기에 침식의 힘은 남아 있지 않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기분이 아주 더럽기 짝이 없었다.
“너희 다 무사하냐?”
[고맙다, 주인님. 역시 주인님의 마나는 언제 봐도 무시무시하군.]
“저도 무사합니다, 형님.”
“저 여자…… 죽여 버릴 거야…….”
케이나는 무표정하게 그의 품에서 벗어나 자리에 서는 반면 수아린만 혼자 질투를 불태웠다. 정시우가 남자랑 친하게 지내도 질투를 할 판이었다.
그러나 이젠 그것도 그녀만의 소극적인 애정표현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된 정시우는 담담하게 그녀를 무시하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보스 룸 전체를 뒤덮고 있던 키메라…… 메티모아의 사도가 소멸하고 지금은 진짜 보스 룸의 정경이 드러나 있었다. 물론 겉으로 보기에 큰 차이는 없었지만 말이다.
“그런데 형님, 어떻게 죽이신 겁니까?”
“중심을 잡고 찢어 죽였는데?”
“아, 그렇군요…….”
[그렇게만 설명해 주면 누구도 알아듣지 못한다, 주인님.]
케이나가 한숨을 쉬며 끼어들었다.
[키메라는 주인님을 분석하고 기록을 얻어 낼 요량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치열하게 이어진 전투는 단지 주인님을 보고 배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메티모아의 권능으로 상대를 흡수하기 위해서도 필요한 절차였던 것이지.]
“키메라의 행동원리는 그것으로 알겠지만…….”
[그리고 시간이 필요했던 것은 주인님도 다르지 않았던 것이다.]
케이나의 시선을 받은 정시우가 고개를 끄덕이며 이어 해설했다.
“심장과 뇌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괴물이었잖아. 놈을 죽이기 위해서 어디를 공격해야 할지 놈과 싸우면서 알아보려 한 거야. 케이나의 도움을 받아 놈의 신체 일부를 조금씩 없앤 것도 그 시도의 일환이었고. 그런데…….”
[그런데 아무리 전투를 벌여도 놈의 마나 코어를 찾을 수가 없었다. 그때에 이르러서 주인님은 놈의 본체가 보스 룸에 넓게 퍼져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것이다. 어쩌면 전투 내내 놈의 마나의 종적을 잡기가 힘들었던 것도 그것이 이유였겠지.]
“그다음은 간단하지. 놈이 나를 덮쳐 죽이려고 한 순간에 놈의 마나가 가장 강하게 뭉친 부분을 중심으로 파괴해 버린 거야.”
놈의 마력이 소모되지 않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정시우와 벌인 전투가 놈에게 데미지를 남기지 않을 리 없었다. 놈은 단지 그 데미지를 보스 룸 전체에 퍼진 본체에 전이하여 버티고 있을 뿐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약화된 본체가 마침 한곳에 뭉치자, 정시우가 괴력을 부여받아 절대적인 힘을 갖게 된 양팔로 그것을 잡아 뜯어 죽였다. 아주 간단했다.
“그렇군요, 아주 간단한 거군요…… 하하, 하하하.”
“용세하 씨, 눈이 죽어 있어요. 정신 차려 봐요.”
새삼스레 정시우의 능력이 자신과는 다른 차원에 맞닿아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침울해지는 용세하를 수아린이 조심스레 달래 주는 가운데 정시우 개인적으로는 아주 오랜만에 보는 반가운 문구가 나타났다.
[특수 업적 ‘군체 사냥꾼’ 달성]
[추가 보상, 플레이어 스킬 획득 ? 타격 전이(패시브)]
[특수 업적 ‘들어오시게’ 달성]
[추가 보상, 플레이어 스킬 획득 ? 침식 내성(패시브)]
[스킬이 생득적 능력과 통합됩니다. 침식 내성 스킬이 Lv4가 되었습니다.]
“오, 특수 업적이잖아. 그것도 두 개네.”
“어떻게 된 게 날이면 날마다 오네요, 아주 그냥.”
“저 스킬도 엄청날 것 같은데요…….”
이어서 나머지 문구들이 차례차례 떠올랐다.
[클리어 랭크 ? EX]
[추가 보상 ‘메티모아의 온전한 파편’ 획득]
[경험치 정산 완료. 레벨이 7 올랐습니다.]
익숙한 두 가지의 격통이 정시우를 덮쳤다. 괴력의 후유증과 연달은 레벨 업으로 인한 고통. 하지만 나날이 육신이 강인해져서 그런지 이젠 이 고통도 제법 참을 만했다. 오히려 이 고통이야말로 정시우가 승리를 거둔 증거라 생각하니 제법 뿌듯하기까지 했다.
[무지는 용감 스킬이 Lv10이 되었습니다. 고통 경감 능력이 더해집니다.]
“아, 어쩌면 침식에 잘 저항할 수 있었던 것도 이 스킬 때문인지 모르겠네.”
“제가 일찍이 말씀드렸잖아요. 그 스킬이 제일 사기라고.”
스킬 레벨 업의 기쁨에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통증마저 깔끔하게 가셨다. 아니, 어쩌면 무지는 용감 스킬의 효과인지도 몰랐다.
[정시우]
[파괴자(Breaker)]
[Lv 135]
[근력 ? 485 민첩 ? 450 체력 ? 462 마력 ? 323]
[내성 ? 독 Lv11, 화염 Lv6, 저주 Lv7, 뇌전 Lv9, 빙결 Lv5, 바람 Lv6, 대지 Lv6, 침식 Lv4]
[패시브 스킬 ? 용의 감각 Lv1, 용의 위엄 Lv8, 카오스 테일 Lv4, 무지는 용감 Lv10, 소울 포스 Lv4, 헤비 웨폰 배틀 Lv7, 타격 전이 Lv1]
[액티브 스킬 ? 괴력 Lv4, 부여 Lv41, 강타 Lv41, 전투질주 Lv35, 크리티컬 불릿 Lv12, 워 크라이 Lv16, 스톤 스킨 Lv16, 크루얼 차지 Lv11]
[고유능력 ? 강탈 Lv1]
추가 보상인 스킬들과 레벨 정산까지 끝나, 한결 화려해진 정시우의 스테이터스가 그의 눈앞을 메웠다.
정시우는 원래 숫자 놀음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지만, 스테이터스를 채운 숫자 하나하나가 그의 노력에 의한 성장을 증명하는 일부가 될 수 있다 생각하니 그건 그것 나름 제법 성취감이 있었다.
특히나 레벨. 레벨 10으로 지하 플레이어 생활을 시작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135레벨이 되었다. 물론 레벨로는 마리나나 세리아의 절반을 조금 넘는 정도지만, 그의 레벨은 플레이어들의 기준을 한참 벗어나 있었으니 상관없었다.
“누가 보면 한 몇 년은 던전에서 구른 줄 알겠어요.”
“전투 빈도만 따지면 뭐 엇비슷하지 않겠어?”
“그래도 그 정돈 아니거든요.”
이어서 정시우는 이번에 새로 얻은 스킬들을 확인했다. 침식 내성이야 이번 키메라와 같이 육체나 정신에 파고 들어오려는 기생충들을 막아 내는 스킬이니 굳이 정보를 확인할 것도 없었지만, 중요한 것은 특수 업적 ‘군체 사냥꾼’ 달성으로 획득한 스킬이었다.
[타격 전이 Lv1]
[자신의 육체와 근접 무기를 기반으로 펼친 근거리 공격에 한해, 자신이 적이라 인식한 주위의 다른 상대를 대상으로 데미지를 퍼트린다. 마나를 소모하지 않는다. 스킬레벨 1 기준으로 주위 10미터 이내에 떨어진 적 2명까지, 본래 데미지의 10%를 입힐 수 있다. 스킬이 성장하면 범위, 공격인원, 데미지가 모두 증가한다.]
“스플래시! 이거 스플래시잖아요!”
스킬 설명을 서포터의 권리로 옆에서 같이 확인한 수아린이 비명을 지르듯 외쳤다. 실로 적절한 설명이 아닐 수 없다. 정시우 또한 장난 아닌 스킬의 위엄에 경악하여 중얼거렸다.
“오, 오오…… 이건 틀림없이 양손무기 특수개조로만 달성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오빠 전신이 이미 특수무기거든욧!”
타격 전이는 무척 놀라운 스킬이었다. 어떤 점이 놀라운가 하면, 마나를 소모하지 않는 패시브 스킬임에도 불구하고 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기적적인 현상을 일으킨다는 점에서 놀라웠다. 물론 정시우의 육신이 지닌 힘도 물리적으로 설명이 안 되기는 매한가지지만!
“하지만 원래 실생활에서도 스플래시를 일으킨 적이 있긴 있어. 내가 벽을 치면 진동으로 주위에 있던 놈도 흔들리거든.”
“물리적으로! 물리적으로 얻어맞잖아요, 이건!”
“그래, 미안해. 실은 나도 잘 모르겠어.”
정시우 본인이 지닌 패시브라도 본인이 이유를 알 수 없는 것들이 있다. 바로 방금 그런 스킬 목록에 타격 전이가 추가되었다. 아마 이 스킬을 연구하다 보면 정시우는 다시 한 발짝 앞으로 나아갈 수도 있지 않을까. 음, 역시 모르겠다.
“열심히 연습해야 할 스킬이 늘었구나.”
“이 던전에 들어오기 전에 스킬을 얻었더라면 스킬 레벨 10 정도는 달성했을 텐데 말이죠.”
실로 맞는 말이었다. 정시우는 당분간 매우 낮음 난이도의 개미굴 던전이 많이 생성되기를 기다려 다시 한 번 통합 던전을 만들자는 다짐을 하며 마지막으로 확인해야 할 것을 확인했다.
그것은 보스 몬스터 메티모아의 사도가 죽은 자리에 남은 칠흑의 비드와 보석, 그리고 클리어 EX랭크에 따른 보상 메티모아의 파편이었다.
“일단 이 비드에도 신의 힘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여요. 합성을 할 때에는 제물이 되는 비드가 필요하니, 이걸 제단에 같이 투입하면 되겠는걸요.”
“아, 역시 합성의 제단도 공짜로 이용할 수는 없구나.”
“당연하죠. 그리고 이 보석은…… 아아.”
수아린이 깨달은 자의 표정을 지었다.
“제가 언젠가 말씀드린 적이 있죠? 고레벨의 던전에서는 달러가 아닌 다른 재화가 루팅 보상으로 나오게 된다고.”
“아, 그러고 보니 그랬지.”
무척 높은 단계의 던전을 클리어하는 플레이어들에게만 유효한 이야기라 들어서 잊어 먹고 있었는데, 드디어 정시우에게도 그 순간이 다가온 것이다. 이제 와 돈에 집착할 필요는 없었지만, 그래도 자신도 달러가 아닌 재화를 획득하게 되었다는 사실이 그리 기분 나쁘지는 않았다.
“금도 아니고 보석이라니 분명 그 가치가 대단한 물건일 거예요. 얼른 확인해 보죠.”
“그래, 그런데 왜 그냥 보석에서 이렇게 심상치 않은 마나가…….”
정시우는 의심쩍은 눈으로 보석의 정보를 확인했다.
[흑요의 월석]
[랭크 ? S+]
[마나가 잔뜩 함유된 화산에서 분출된 용암이 마계의 사악한 기운을 담은 보름달의 냉기로 식었을 때 극히 희소한 확률로 생성되는 보석. 지극히 단단하며 마나를 증폭시키는 힘을 갖추고 있어, 악세서리뿐만 아니라 무기의 재료로서 더욱 선호된다.]
“허어.”
재화가 아니잖아.
재료잖아.
“이, 이럴 리가 없는데. 저도 31단계 던전에서 엘리트 몬스터를 죽이고 얻은 적이 있다구요. 그때는 그냥 금이었는데.”
“좋은 게 좋은 거죠. 합성의 제단에 바치면 되지 않겠습니까. 합성의 제단도 마감재를 넣으면 결과물이 좋아진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모든 인과가 날 망치 합성으로 이끄는 것 같아 기분이 별로 좋지 않은데…….”
하지만 인과에 저항하기엔 그것이 너무나 매혹적이다. 정시우는 어쩔 수 없이 그 모든 것을 바리바리 싸 들고 보스 룸 정중앙에 나타난 잿빛의 제단, 즉 합성의 제단으로 향했다.
합성의 제단은 제대로 그 공간에 있었다. 보상의 제단도 강화의 제단도, 물론 전직의 제단도 아니다. 요정상인 루타와의 거래는 역시 성공적이었다. 대가로 지불한 비드가 아깝지 않…… 은 건 아니지만.
“오빠, 메티모아의 파편은……?”
“여기. 으으, 손에 쥐고 있기만 해도 역겹네.”
정시우는 클리어 랭크 보상인 메티모아의 파편을 손에 쥐었다.
사도가 남긴 비드에도 메티모아의 힘이 담기긴 했지만, 그것을 모두 비드로 가공해 버리면 신의 힘을 온전히 쓰는 것이 불가능하다. 따라서 클리어 랭크에 따른 보상이라는 형태로 정시우에게 그것이 대부분 온전한 형태로 주어진 것. 아마 클리어 랭크가 낮아졌더라면 그만큼 신의 힘이 손실되었을 것이다.
“좋아, 해 보자고.”
메티모아의 파편은 라이아의 그것보다는 거대했으나 세트나크에 비하면 손색이 있었다. 어차피 힘 자체를 취하려는 것도 아니고 그 권능을 이용하려는 것이니 이 이상은 필요도 없다.
“후우우우…….”
[기이…….]
“아, 시끄러 새꺄.”
그는 제법 능숙해진 마나 컨트롤로 메티모아의 힘을 완벽히 ‘강탈’하여 신에게로 이어진 연결고리를 매정하게 끊어 버렸다. 메티모아도 뭔가 말하려고 하는 것 같았지만 정시우는 매정하게 놈의 메시지를 차단했다.
“그리고 이걸.”
합성의 제단에 고스란히 부여하여, 그것을 강화한다. 수아린은 신의 힘으로 제단을 변화시킨다는, 그녀의 기존 지식을 아득히 초월하는 상황 앞에 생각을 그만두기에 이르렀다.
그대로 수십 초간 이어진 강화는 성공적으로 끝이 났다. 메티모아의 힘이 오롯이 모여 잿빛의 제단을 완전히 칙칙한 검은색으로 물들여 버린 것이다.
[혼돈의 제단]
[바치는 모든 것을 하나로 합쳐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
“하, 정말 괜찮을까.”
“이제 와서 뭘 망설이시는 거예요.”
“그렇지. ……독극물을 마시려거든 접시까지 씹어 삼켜야지.”
정시우는 혼돈의 제단에 바칠 재료를 모두 꺼냈다. 우선은 숙련도를 전부 채웠음에도 아직 두 번째 옵션이 드러나지 않은 거인의 비명과, 화염 속성에 두 가지의 옵션을 지닌 거랑의 앞발.
두 아티팩트에는 아직도 남겨진 비밀이 있고, 숙련도가 아닌 다른 방법으로 그 비밀을 드러내야 한다. 하지만 이젠 됐다. 두 개를 하나로 합칠 거니까.
“그리고 여기에…….”
아직 끝이 아니다. 넣어야 할 것들이 아직 남아 있다. 방금 얻은 흑요의 월석과, 메티모아의 힘이 담긴 사도의 비드. 인벤토리에 잠자고 있던 유령 대검.
……그리고 뇌신 라이아의 힘이 담긴 라이플까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