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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홀로 로그인-122화 (122/260)

# 122

122화.

“이런 게 있었으면 진즉 말을 해 줬어야지!?”

“저도 몰랐는걸요!?”

설마 했던 던전 사물 변환 아이템의 존재에 경악한 정시우와 수아린이 시선을 교환하는 순간 요정상인 루타는 제 본분을 잊지 않고 외쳤다.

“레벨 200 이하 의태 몬스터의 비드 7,500개, 레벨 200 이상 키메라의 비드 1,200개만 받고 팔겠습니다!”

“이 자식이…….”

손님을 위해 어쩌고 저쩌고 하더니 역시 비드를 받아먹을 생각뿐이었구나! 하지만 그녀로부터 신의 힘에 대한 설명과 조언을 들어 놓고도 이 변환서를 사지 않을 수는 없다.

정시우는 이를 득득 갈면서도 순순히 비드를 꺼내어 지불했다. 루타는 더할 나위 없이 밝은 표정이 되어 외쳤다.

“지금 당장 찢으세요! 던전 구조의 변화를 일으켜, 보상의 제단의 형태를 무조건 합성의 제단으로 고정시켜 줄 거랍니다!”

“그러면? 메티모아의 힘을 제단에 흡수시켜 놓고 제단을 이용하면 되는 거냐?”

“바로 그렇습니다! 메티모아가 지닌 혼돈의 힘은 사물의 합성에도 관여하는 절대적인 힘! 무엇을 합성하든 최고의 결과를 이끌어 내주겠지요. 신의 힘이 그 안에 담기는 것은 보너스!”

무엇을 합성할지는 이미 정해 두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거랑의 앞발과 거인의 비명이다. 두 아티팩트는 지닌 바 옵션은 무척 훌륭하지만, 아무래도 워낙 저렙 던전에서 얻은 녀석들인지라 파괴력과 내구력이 떨어지는 면이 있었다.

정시우가 마나를 부여해 어떻게든 부서지지 않도록 조심해서 다루고는 있었지만, 만약 그에게 용의 감각이 없었더라면 진즉 두 망치는 바스러져 없어졌을 터였다.

“두 가지 더 있을 텐데요!”

“두 가지? ……설마?”

“바로 그렇답니다! 지금 떠올리신 두 가지 물건입니다!”

“그런 잡탕을 만들라고?”

“혼돈 속에서 창조를 이끌어 내는 것이 메티모아의 힘이지요! 메티모아의 힘은 설령 다른 신의 힘이라 할지라도 완벽하게 재탄생시킬 수 있답니다!”

처음부터 결론이 나 있었던 문제였는가. 정시우는 루타가 말하는 대로 순순히 주문서를 찢으며 한숨을 쉬었다.

[던전의 구조에 변화가 일어납니다.]

“그래, 네가 시키는 대로 해 보자. 결과물이 마음에 안 들면 그때 가서 너를 조질 뿐이야.”

“무, 무서워요. 물론 실망하실 일은 없겠지만요! 그럼 할 말도 다 했고 거래도 끝냈으니 저는 먼저 거주 지역으로 가 보겠습니다! 다시 만날 그때까지 안녕!”

아, 튀었다. 하지만 거주 지역에서 다시 보자는 말을 하는 것을 보면 적어도 스스로의 생각을 의심하고 있지는 않은 모양이니…… 정시우도 납득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 옆에서 수아린이 삐죽거렸다.

“정말 정신없는 녀석이네요.”

[주인님에 대한 한없는 호의로 무장한 것으로 보였다.]

“기분 나빠.”

놀라운 만남이기는 했으나 언제까지고 그 여운에 사로잡혀 있을 수는 없다. 요정상인은 보스 전투 전에 나타난다는 말을 제 입으로 했으니까. 즉, 보스 룸이 코앞에 놓여 있다는 뜻이다.

“생각해 보면 여태까지 신의 축복을 받았다는 놈들하고 싸운 적은 있어도, 신의 파편을 직접적으로 지니고 있는 놈하고는 싸워 본 적이 없지.”

“뇌신의 강림체와 비슷할까요.”

“더 역겹겠지.”

키메라들은 역겹다. 레벨이 오르면 오를수록 더욱 많은 종류의 몬스터들과 결합을 하기 때문에 레벨 250을 넘는 키메라들은 정말 끔찍하게 역겹다. 하물며 메티모아의 힘을 품은 키메라라면 어떻겠는가.

[나는 준비가 되었다, 주인님.]

“가능하면 대기해 줘. 내가 위험해 보이면 그때 참전해.”

[알겠다.]

케이나의 힘은 반칙에 가깝다. 물불 안 가릴 상황이라면 몰라도 정시우의 경험과 성장이 중요한 순간에 그녀의 도움을 받아 일을 쉽게 처리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럼 가자.”

“넵.”

루타와 조우한 지점을 지나 5분 정도 체력과 마나를 회복하며 느긋하게 걸어, 그들은 이내 거대한 공동을 가로막고 있는 철문 앞에 도달할 수 있었다. 몬스터의 기척은 기이하리만치 없다. 불길한 기운도 느껴지지 않는다. 모두 철문 안에 숨어 있다.

[주인님.]

정시우가 철문을 열려던 때 케이나가 그에게 속삭이듯 말했다.

“바닥을 보면 철문이 열렸던 흔적이 있다.”

“……과연.”

보스가 비선공 모드를 유지하는 3초 룰은 아무래도 통하지 않을 모양이다. 보스가 자력으로 문을 열었는지, 다른 몬스터들이 문을 열었는지는 몰라도 이미 한 번, 혹은 그 이상 던전의 문이 열렸으니 말이다.

“이곳은 무수한 던전이 통합되어 만들어진 곳이고, 그렇다는 것은 그 무수한 던전의 보스 몬스터가 다 보스 룸에 뭉쳤다는 뜻이고…….”

“심지어 다른 몬스터가 보스 룸에 출입한 흔적까지 있어. 상상 이상의 혼종이 기다리고 있겠네.”

보스의 모습을 상상만 해도 구역질이 나온다. 그런 몬스터의 모습을 보고 나면 밥을 못 먹게 될 테니 미리 한 끼 해치우고 들어갈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역겨운 놈의 면상을 보게 되면 기껏 먹은 것을 게워 내게 될지도 모르니 역시 참았다.

“아린아, 방어막 부탁한다. 세하 너는 지금은 물러서라.”

“네, 오빠.”

“알겠습니다, 형님.”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미니 모드로 돌아와 정시우의 품으로 들어가는 용세하. 직후 수아린의 신성 방어막이 정시우와 케이나의 전신을 감쌌다.

그녀의 신성력은 언데드는 물론 키메라를 상대하는 데에도 효험이 있었다. 고레벨 파티가 될수록 사제가 필수라는 말은 결코 그냥 하는 말이 아닌 것이다.

“좋아, 연다.”

정시우는 한 손가락을 들어 크리티컬 불릿을 쏘아냈다. 빠르게 튀어 나간 마탄이 철문을 깔끔하게 꿰뚫어, 그 무지막지한 충격력으로 철문을 박살 냈다.

“……이건, 또.”

그러나 그 안에는 정시우가 상상했던 것과는 정반대의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어서 오라, 개미굴의 주인.]

그자는 그리 크지 않았다. 물론 정시우보다는 훨씬 커 신장 2미터 50센티미터에 어지간한 보디빌더는 깨갱할 만큼 단단한 근육질의 몸체를 지니고는 있었지만, 정시우가 상상했던 괴물과는 거리가 멀었다.

[어째서 놀라고 있는가.]

“멀쩡하게 생겨서.”

[메티모아 님의 힘을 네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대충 알겠군.]

정시우의 대꾸에 놈이 쿡, 소리를 내며 웃었다. 머리 위로 솟은 기형의 뿔이 놈의 고갯짓을 따라 까딱거렸다.

[그분은 혼돈의 신 가운데에서도 가장 창조와 밀접하게 연관되신 분. 바깥의 실패작들만을 보고 그분을 판단했다면 안타까운 일이다.]

“그거 어째 어디서 들어 본 말이다.”

정시우는 심드렁하게 대꾸하며 망치를 들어 올렸다. 뇌신 라이아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신의 힘이 주는 부하를 견뎌 내지 못하고 리자드맨으로 화한 플레이어들을 보며 이서희가 따지자, 그는 신의 힘에 휘둘릴 뿐 선택받지 못한 자들이 그렇게 된다 했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난 사람을 가리는 놈 하곤 상종을 하지 않아.”

[네 의지는 아무런 의미도 갖지 못한다. 중요한 것은 오직 그분의 선택이다. 너는 선택받았고, 증명했다. 나머진 나에 의한 집행이다.]

놈이 양팔을 들었다. 놈의 팔꿈치에서부터 손목에 이르기까지 날개를 펼치듯 튀어나온 날카로운 검은색의 블레이드가 날카롭게 번뜩였다.

[집행!]

“큭!?”

직후 놈의 몸이 정시우의 코앞에 나타났다. 그의 왼쪽 팔을 베어 버릴 기세로 휘둘러지는 블레이드를 정시우는 망치를 뻗어 간신히 막아 냈다. 쩌적, 불길하게 금이 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 새끼가……!”

[설마 반응하다니. 팔 하나는 가져올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케이나와 같은 수법이다. 마력을 움직여 몸을 동조시키는 말도 안 되는 마나 운용법! 하지만 놈의 속도는 케이나보다도 월등했다. 만약 정시우가 이전에 케이나와 한판 붙지 않았더라면 그대로 팔이 잘려 나가고 말았을 것이다.

[주인님!]

“아니, 내가 할게!”

[둘이 덤벼도 괜찮다.]

“개소리 하네.”

정시우의 양손에서 망치가 사라졌다. 이제는 익숙해진 스왑 테크닉을 이용해 바로 인벤토리에 넣어 버린 것이다. 당연하지만, C++등급의 망치로는 놈을 상대할 수 없다는 판단을 내렸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망치 대신 그의 손에 들린 것이 있었으니, 바로 뇌신의 레이지 라이플이었다.

[총?]

“지껄여!”

정시우는 그것을 쏘는 대신 곧장 위로 휘둘렀다. 놀랍게도 그의 마나가 주입된 뇌신의 레이지 라이플이 허공에 뇌전을 품은 일선을 그려 내며 그 궤적에 있던 키메라의 뿔을 잘라 버렸다!

[큭.]

바닥에 떨어지는 뿔을 잽싸게 낚아챈 키메라가 뒤로 두 발짝 물러섰다. 손바닥으로 뿔을 흡수하자 다시 머리 위로 돋아나는 것이 실로 신비하다.

[무식하게 힘만 강한 줄 알았는데.]

“맘대로 지껄이라고.”

거리를 벌리면 오히려 고마울 뿐이다. 정시우는 자연스럽게 방아쇠를 당겨 탄환을 쏘아 냈다. 강력한 뇌전으로 이루어진 마탄이 허공에 푸른 선을 그었으나, 이번엔 키메라가 그것을 피했다.

[일단 귀찮은 양팔을 먼저 흡수해 주지.]

놈의 발이 허공을 딛는다. 도약은 바로 그 순간 이루어졌다. 더욱이 그 순간 놈의 마나가 정시우의 사방으로 흩어져 어디로 움직일지 쉬이 파악하지 못하게 했다. 정시우가 마나를 읽는 것을 알아내고 그새 대항책을 만들어 낸 것이다!

하지만 놈이 한 가지 알지 못하는 것이 있다면, 정시우는 단지 힘이 강할 뿐이 아니라 머리도 제법 쓸 만하다는 사실이다.

“차지 샷!”

그 짧은 순간 정시우는 망설이지도 않고 라이플의 옵션을 발동했다. 차지 샷은 시전자의 마나가 아닌 주위 마나를 끌어당겨 탄환을 발사하는 기술. 그러나 그것에도 어느 정도 제한이 있어, 상대의 몸속에 품고 있는 마나까지는 그리 빠르게 빼앗지 못한다.

그것은 정말로 눈 한 번 깜빡일 만큼 짧은 시간이었다. 놈이 마나를 흩뿌리며 원래 있던 곳을 박차, 마나를 따라 후보지 중 한 곳에 나타나기까지의 시간.

그 짧은 시간 정시우는 차지 샷을 발동해 놈이 흩뿌린 마나를 흡수했다.

차지 샷을 쏘아 내기까지의 시간이 긴 만큼 정말로 그것을 발동하려던 것은 아니다. 단지 차이를 알고 싶었던 것뿐이다.

단순히 놈이 흩뿌린 마나라면 빠르게 흡수할 수 있다. 다만 놈이 실제로 나타나는 위치에 뿌려진 마나는 놈의 직접 통제를 받는 만큼 그만큼 빠르게는 흡수할 수가 없다. 그렇다고는 해도 정말로 미묘한 차이일 뿐이지만…….

“흡!”

정시우는 그 미묘한 차이를 읽어 냈다. 용의 감각에는 그만한 힘이 있었다.

[칵!?]

정시우가 차지 샷을 취소하고 라이플을 힘차게 휘두르자, 귀신같이 그 위치에 나타난 키메라가 그의 마나가 듬뿍 담긴 강타에 얻어맞고 땅에 짓눌렸다.

이번에도 다시 뿔이 부러져 허공으로 튕겼으나, 키메라가 그것을 회수하기 전 케이나가 발출한 대검이 그것을 산산조각으로 흩어 없앴다.

[주인님은 공격해라. 내가 놈의 복원을 막겠다.]

“고마워, 케이나.”

[이, 네, 놈…….]

그의 반격을 전혀 예상치 못했던 키메라가 뒤로 물러나며 치를 떨었다. 조금이라곤 하나 손상을 입은 것이 명백했다.

“동료가 있으면 더 불러도 돼.”

정시우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키메라는 그 말에 부들부들 떨더니 곧장 다시 쇄도해 왔다.

메티모아가 그렇게나 사랑한다는 혼돈의 서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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