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2
112화.
데스나이트 베아체는 세트나크의 축복을 받아 죽음의 마력을 전신으로 다루는 데에 특화되어 있는 엘리트 전사였다. 마력과 육신의 동조를 최대로 이끌어 내 전신을 무기로 삼는 방식은 실로 정시우의 지향점과 닮아 있었다.
[나는 마법을 다루지 못한다.]
데스나이트가 기이한 마력의 운용과 함께 발을 내뻗었다. 신체의 움직임에 마력을 동조하는 것이 아니라, 마력을 빠르게 발출하며 그것에 신체의 움직임을 이끌어 결과적으로 순간이동이라도 하듯 정시우의 눈앞에 나타났다.
그녀는 그 한 수만으로 정시우보다 마력의 운용에 있어 앞서 있음을 입증했다.
[하지만 마법은 그저 강해지기 위한 길의 하나일 뿐, 마력과 신체만으로 모든 존재는 절대자의 가능성을 품을 수 있다.]
“마력을 먼저 발출하고 그것에 육신의 움직임을 맞추다니, 그따위 일이 가능한 거였나.”
육신을 움직이며 마력을 거기에 맞추는 것이라면 정시우에게도 가능하다. 마력을 응용하는 첫 번째 단계, 부여와 강타가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그 순서를 반대로 한다면 지금 데스나이트가 보인 기적적인 움직임이 가능해진다. 여태까지의 정시우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방식. 정시우가 용의 꿈에서 보았던 마력과 육신의 합일, 그 과정에 있는 능력임에 분명했다.
그러나 눈앞에서 흩어진 잔상 대신 정시우의 뒤쪽으로 나타난 데스나이트가 대검을 휘둘러 그대로 정시우의 허리를 베어 버릴 것만 같던 그때, 정시우는 아크로바틱하게 몸을 낮춰 그것을 피해 냈다.
“그래도 결국 마나의 흐름과 방향성만 읽어 내면 움직임을 놓칠 일은 없거든!”
[너의 눈은 무척 좋구나. ……하지만 그것에 네 움직임을 맞출 수 있을까?]
발의 움직임을 확인한 순간에는 검이 날아든다. 그것을 피해 내면 정반대 방향에서 강력한 발차기가 덮쳐 온다.
그것은 마치 순간이동 능력을 지닌 상대와 싸우는 것만 같았다. 확실히, 이런 능력을 자제하지 않고 마구 구사했더라면 흑의 관을 제대로 지킬 수는 없었을 것이다. 상대의 전력을 보기 위해 정시우는 가장 탁월한 선택을 한 셈이었다.
[하!]
“큭!”
데스나이트의 대검과 그가 급하게 들어 올린 슬레지 해머의 손잡이가 부딪혔다.
제아무리 정시우의 마력을 부여했다고는 하나 거랑의 앞발의 랭크는 절대적으로 낮다. 단 한 번의 공격에 손잡이가 부러지고 말았다. 정시우의 반응이 느렸던 탓에, 영 좋지 못한 부분에 직격했기 때문이다.
“오빠!”
“괜찮아.”
깜짝 놀라 뛰쳐나오려는 수아린을 말리고 손잡이가 턱없이 짧아진 해머를 휘둘러 추가타를 넣으려던 데스나이트를 저지했다. 대검 대신 데스나이트가 정면으로 뿜어낸 검은 숨결이 그의 피부에 맞닿아, 저주로 형상화되지 못하고 좌절되었다.
[데스나이트의 저주 어린 숨결을 저주 내성으로 아슬아슬하게 막아 냅니다. 미처 막아 내지 못한 저주의 기운을 육신에 부여된 신성력으로 완전히 해소합니다.]
[저주 내성 스킬이 Lv7이 되었습니다.]
[저주 내성까지…… 넌 완벽하게 준비된 전사로구나. 하지만 이제 어쩔 테지?]
“어쩌긴.”
거인의 비명은 헤드 자체가 반쯤 박살이 나 바닥을 구르고 있고, 짧아진 거랑의 앞발은 도저히 마음대로 휘두를 만한 상황이 못 된다.
그렇다면 아까 활약했던 유령 대검을 꺼내들어 상대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겠지. 랭크로도 그리 밀리지 않고, 육신을 지니고 있다지만 영혼 또한 품고 있는 언데드인 데스나이트에게 효과적으로 데미지를 줄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정시우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순식간에 마나를 내뻗어 정시우의 뒤쪽으로 보내곤, 다음 순간 그곳으로 이동해 대검을 찔러 오는 데스나이트를 향해 그는 과감하게 발길질을 했다.
“넌 마력과 신체만으로 절대자가 될 수 있다고 했지.”
[컥!?]
정시우의 발차기는 실로 절묘하여, 대검을 미처 끝까지 내뻗기 전 어정쩡한 상태의 데스나이트의 팔목을 정확히 가격했다. 송곳처럼 날카롭게 집중된 마나가 발끝에서 터져 데스나이트를 상처 입혔다. 마나를 읽어 내고 따라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한 것이다.
“나도 네 말에 적극적으로 동감이야.”
[나를 상대로 맨몸으로 덤비겠다는 것인가.]
한 방 얻어맞았음에도 데스나이트는 흡족한 목소리를 냈다. 자신에게 유리한 전투로 이끌고 갈 수 있음에도 일부러 그 조건을 포기한 시점에서부터 정시우가 마음에 들기는 했지만, 설마 이 정도로 멍청할 줄이야!
[그렇다 해도 봐주는 일은 없다!]
“누가 누굴 봐준다는 건지.”
정시우는 가소롭다는 듯 코웃음을 치며 재차 몸을 젖혔다. 데스나이트가 내지른 대검이 그의 코앞을 스쳐 지나가는 순간 양손으로 그것을 붙잡아, 번개처럼 쏘아올린 무릎으로 가격했다.
[큭!]
정시우의 전신은 그 자체로 무기. 비록 마력을 움직여 육체를 동조하는 짓은 엄두도 못 내지만, 육체의 움직임에 마력을 따라 움직이는 부여와 강타만이라면 이미 세계 유수 플레이어들보다도 월등한 수준에 이르러 있었다.
더욱이 그는 전투질주 스킬을 발현할 때에 변화되는 마나의 특성을 고스란히 담아내 이용할 줄 알았는데, 그 결과 그의 무릎 찍기에는 용암이 분출하는 것만 같은 파괴력이 담겼다. 대검을 놓치지 않으려던 데스나이트의 손아귀가 찢길 정도였다!
“방심하고 있으면 그대로 죽을 거야!”
[하!]
데스나이트의 대검에는 금이 갔지만, 그것을 빼앗아 무장해제시킬 수는 없었다. 단순히 손에 쥐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데스나이트의 전신을 흐르는 마나가 대검에도 일정 부분 상시 흐르고 있어 쉬이 떼어 낼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것은 결코 부여 따위 기초 기술이 아니다. 마치 정시우가 팬텀바이크를 자신의 육신으로 삼고 크루얼 차지를 펼쳤던 것과 같은 상황이다. 그 상태를 공격당하는 순간에도 계속 유지한다는 점이 실로 대단하지 않은가. 그는 순순히 대검을 놓아주고 물러나며 입맛을 다셨다.
“역시 배울 점이 많겠어.”
[미안하군. 이 수업의 끝은…… 네놈의 죽음이니까!]
상대가 전력을 발하게 되어 기뻐하는 변태 정시우와, 관을 되찾기 위해서라도 그를 죽일 수밖에 없는 베아체의 전투는 그 기세를 점점 더해 갔다. 주먹과 대검이 정면으로 충돌하고 발과 투구가 단단함을 겨루었다.
정시우의 방어구가 하나둘 깨져 나가는 가운데 무한한 것처럼 보였던 데스나이트의 마나도 아주 조금씩이나마 줄어들기 시작했다. 관으로부터 떨어져 마기를 공급받을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럼에도 여전히 데스나이트는 압도적으로 빨랐으며, 강했다.
[죽어라!]
“대체 어떻게 하는 건지 일주일에 세 번 정도 교습이라도 받고 싶을 정도야!”
[뭣……?]
그러나 그보다 더 놀라운 것이 있다면, 극한 환경에서의 전투 끝에 서서히 그녀의 움직임을 따라잡기 시작하는 정시우의 능력이었다.
“좋았어, 방법이 보이기 시작했어.”
[방법!? 웃긴 소리를……!]
데스나이트는 자신보다 미묘하게 빠른 타이밍에 주먹을 내질러 대검의 공격을 차단하고 손목을 가격하는 정시우의 몸놀림을 확인하며 이를 갈았다.
[단지 마나로 강화된 육신을, 경악스러운 반응속도를 활용해 무리하게 움직이고 있을 뿐이잖아!]
“그야 지금 당장 그런 고도의 마나 테크닉을 따라할 수야 없잖아. 그러니 몸으로 때우는 수밖에. 더욱이 애초 내가 숙련하려고 했던 게 바로 이 부분이란 말이지.”
굳이 종류를 나누자면 지금 데스나이트의 마나 컨트롤은 액티브 스킬과 육신을 합일하는 과정에 있었다. 마나를 움직이고 그에 육신을 뒤따르게 하니 실로 액티브라는 표현이 적절하다.
반면 정시우의 방식은 패시브 스킬과 육신을 합일하는 과정에 가까웠다. 오감을 최대로 끌어 올리고, 직감이라고밖에 설명할 수 없는 감각을 북돋워 상대의 마나가 움직이는 패턴을 예지에 가깝도록 빠르게 읽어내어 반응하고 있었으니까!
[대체 넌 정체가 무엇이지!? 그런 조막만한 마나를 활용하는 것만으로 내 움직임을 따라붙다니…… 앗!]
“네 힘은 계속 빠지고 있는데, 모르고 있었구나.”
대검을 회수하며 회피 동작을 취하기 직전, 몸에서 힘이 가장 빠지는 절묘한 타이밍. 정시우는 아주 자연스럽게 데스나이트의 품에 파고드는 데 성공했다.
한껏 뒤로 당겨진 그의 왼손 주먹은 격발 순간만을 기다리는 총알과도 같았다.
“하!”
[카학!]
데스나이트의 복부에 주먹 강타가 작렬했다. 끔찍한 충격에 데스나이트의 복부 갑옷이 완전히 아작이 나고, 그 너머에 갇혀 있던 차가운 살결도 마구 헤집어져 썩은 피를 흘렸다. 마기로 이루어진 칼날이 튀어나와 그의 주먹을 갈기갈기 찢어 놓았지만 새삼스럽지도 않았다.
[강타 스킬이 Lv41이 되었습니다.]
[촉각 스킬이 Lv2가 되었습니다.]
“하아, 하아…….”
[어떻, 게…….]
데스나이트가 경악했다. 그러나 정시우는 수아린의 치료에 의해 주먹이 정상으로 돌아오자마자 재차 그녀에게 돌격했다. 그의 전신에 퍼진 패시브 스킬들이 맹렬히 공명하는 것이 느껴졌다.
전투 속에서 격한 자극을 받는 직감 스킬이, 그것과 동조를 이룬다.
“아직 남은 걸 내보여.”
[괴물 같은 자식.]
누가 누굴 보고 괴물이라고 하는지 모르겠다. 그것은 데스나이트라기보단 그냥 살아 있는 인간이 하는 말처럼도 들렸다. 정시우는 피식 웃으며 전신의 감각을 돋웠다. 시각과 후각만으로는 파악하지 못하는 적의 움직임도 오감을 조화시키면 얼마든지 읽어 낼 수 있었다.
‘그리고 오감에서 비롯되었으나 보다 적극적으로 작용하여 외부를 읽어 내고 대응할 수 있게 하는 감각이 바로 직감.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이 초월적인 감각이 오감과 하나가 되었을 때, 비로소 나는 평범한 인간의 육신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는 거야.’
날아드는 대검의 궤도를 읽어 내고 자연스럽게 그 옆으로 돌아간다. 섬전과 같이 튀어 나간 주먹이 데스나이트의 대검의 옆면에서 몇 번째인가 모를 대폭발을 일으켜 기어이 데스나이트가 그것을 놓치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것이야말로 데스나이트가 그토록이나 기다리던 반격의 순간이었다.
[나의 검은…… 물질에 구애되지 않는다!]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보이던 데스나이트의 양손에서 각각 섬뜩한 예기를 자랑하는 마기의 검이 솟구쳤다.
그것은 그대로 내질러져 마악 주먹을 내지른 채인 정시우의 전신을 꿰뚫어 버릴 것처럼 보였다. 방어구가 없기에 단 한순간도 버티지 못할 터, 죽지는 않더라도 치명상을 입어 전투불능이 될 것임에 확실하다!
그런데 그것이 빗나갔다.
[하……?]
데스나이트는 다음 순간 일어난 일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다. 그대로 정시우의 목과 가슴을 뚫어 버릴 것이라 생각했던 마기의 검은 허무하게 허공을 내려그었다. 직전 주먹을 내질렀던 정시우는 그 자리에 없었다.
“미안, 알고 있었어.”
위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시선을 드니, 무릎을 튕겨 데스나이트의 머리 위치보다 아주 조금 높은 허공에 떠오른 정시우의 양손이 어느덧 데스나이트를 조준하고 있었다.
앞으로 쭉 뻗어진 열 개의 손가락 끝에 감도는 마나의 덩어리를 확인한 데스나이트의 동공이 크게 흔들렸다.
[마탄……!?]
그것도 그냥 마탄이 아닌 크리티컬 불릿이다. 그가 그것을 전투 내내 써먹지 않은 것은 데스나이트의 방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서! 그리고 그 의도는, 데스나이트가 미처 예상치도 못했던 반응속도와 조화를 이루어 보기 좋게 먹혀들었다.
[크아아아악!]
데스나이트는 으레 그러했듯 특유의 마나 운용법으로 공격을 피하고자 했으나, 이미 준비된 열 개의 크리티컬 불릿은 그녀가 움직이는 것보다 빠르게 그녀의 전신을 꿰어 버렸다.
[직감, 시각, 후각, 청각, 촉각, 미각 스킬이 공명을 이루어 하나의 스킬로 진화합니다.]
그와 함께 정시우가 그렇게나 기다리던 순간이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