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3
113화.
심장이 거세게 뛰었다.
무언가 울부짖는 소리가 났다.
정시우가 데스나이트의 능력을 미리 알아차리고 움직인 것은, 그야말로 직감이라고 밖엔 표현할 수가 없었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찰나의 순간을 읽어 내고 곧장 행동에 옮길 수 있게 한 감각의 연결 작용!
그에게 마지막까지 부족했던 마나 감지 능력이 완숙에 이르면서, 비로소 정시우는 스스로의 힘으로 다음 단계로 넘어갈 자격을 얻은 것이다.
허공에서 정시우가 짧게 체류하는 한순간, 마나의 빅뱅이라고 불러 부족하지 않을 일이 일어났다.
여섯 개의 스킬이 하나로 뭉쳐, 섞여, 다음 순간 그의 정신을 아득하게 만드는 대폭발과 함께 육신 전체로 퍼져 나갔다. 특별하고도 유일하게 진화한 마나가 전신을 가득 채웠다. 말 그대로 육신과 하나가 된 것이다.
비록 모든 패시브 스킬을 하나로 만들 수는 없었지만, 지금 그는 하나의 완성된 스킬과 육신을 완벽히 동화하는 데에 성공했다. 그것이 정시우를 현 인류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경지에 이끌었다. 기적이라 불러도 좋으리라.
‘아아, 역시 그렇구나.’
정시우는 스킬의 격변이 끝난 후,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그의 전신에 걸쳐 존재하게 된 하나의 위대한 스킬을 되짚어 보며 비로소 깨달았다. 일전의 꿈속에서 용이 느꼈던 전능감의 일부를, 그도 또한 체감했다.
‘육신과 마나의 교류는 결코 일방적이지도, 기존 상식에 속박되지도 않는다. 나는 이제야 그것을 체화한 거야.’
그는 이제 전신으로 모든 감각을 느꼈다. 그것이 실로 자연스러웠다. 육체 기관에 기반을 두고 탄생한 능력이, 그의 육체 그 자체를 진화시켰다.
용의 감각의 일부를 체현해 내는 데 성공한 것이다.
[플레이어 스킬 직감, 시각, 미각, 후각, 청각, 촉각이 하나로 통합되어 진화합니다.]
[플레이어 스킬, 용의 감각(패시브) Lv1을 익혔습니다.]
[카오스 테일 스킬이 Lv4가 되었습니다. 새로운 개미굴 시설의 개방 조건이 일부 해제되었습니다.]
“후우우우…….”
정시우는 깊은 숨을 내쉬며 착지했다. 허공으로 점프하여 크리티컬 불릿을 쏘아 내고 짧게 체류하는 한순간 일어난 변화라기엔 너무나 극적이어서 스스로도 웃음이 나왔다.
[너는…… 용이구나.]
데스나이트의 말이었다. 수십 분간의 격투를 치르며 정시우에게 끊임없이 타격당한 신체 각 부위를 크리티컬 불릿으로 꿰뚫려, 이제 그녀는 완전히 전투불능 상태에 이르러 있었다. 그럼에도 끈질긴 언데드의 힘이 그녀의 의식을 붙들어 두고 있는 것이다.
“용 아닌데?”
[하, 그럼 용이 되어 가는 인간인가.]
마나와 육신을 움직이는 방법을 빌려 왔을 뿐인데 한 번 만나보지도 못한 용과 동일시하니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다. 정시우는 입술을 삐죽 내밀며 주먹을 들어 올렸다.
“어쨌든 네 덕에 성장할 수 있었어. 곱게 보내 주지.”
단지 공격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품은 것만으로, 숨 쉬는 것보다도 자연스럽게 마나가 주먹에 몰려들었다. 마나와의 친화도가 대략 5배 정도는 상승한 것만 같다. 용의 감각…… 정말 터무니없는 능력이었다.
[아아…….]
데스나이트의 목소리가 희미해졌다. 그가 굳이 마무리를 하지 않더라도 몇 분 안에 모든 마력을 잃고 소멸하겠지. 그럼에도 그녀는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결국, 지키지 못했다…….]
“세트나크를?”
[아니…….]
언제부터였을까? 베아체의 목소리는 더 이상 음산하지도, 쇠를 긁는 듯 거슬리지도 않았다. 흉험한 데스나이트의 인상에는 어울리지 않는 청초한 목소리에 어지러움을 느낄 지경이다.
[그 안에…… 내 동생이…….]
“뭐야, 진짜 보스는 저 안에 있나.”
[살아 있다.]
괜히 언데드가 아닌지라 헛소리를 하는군. 역시 흑의 관을 떼어 놓고 전투를 벌인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자화자찬을 하며 정시우는 더 이상 망설이지 않고 주먹을 내질렀다.
[그 아이를 살려 주겠다는 것이, 세트나크의…….]
까지 말했을 때, 데스나이트의 투구가 정시우의 주먹에 얻어맞아 터져 나갔다.
적이 무슨 사정을 갖고 있건 전혀 봐주지 않는 것이 정시우의 모토였으니까.
[레벨이 4 올랐습니다.]
레벨이 많이 오르리라는 것은 이미 기대하고 있던 바다. 베아체는 단언컨대 여태껏 정시우가 마주했던 적 중 가장 고등했다. 아마 처음부터 흑의 관이 없는 환경에서 격돌했더라면 지금보다 형편없이 밀렸으리라.
[파장이 맞지 않는 영혼을 흡수할 수 있게 되어, 레벨 262 데스나이트 베아체의 영혼을 흡수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흡수하시겠습니까?]
그런데 두 번째로 나타난 안내 메시지는 정시우가 전혀 기대하지도 못하던 것이었다. 흡수? 플레이어도 아닌 언데드 몬스터의 영혼을 흡수한다고?
순간적으로 당황하여 기회를 놓칠 뻔한 정시우였으나 과연 용의 감각은 대단했다. 기회가 주어진 것을 파악하자마자 본능적으로 마나를 끌어 올려, 흔적도 남기지 않고 풍화되는 데스나이트의 시체에서 영혼을 건져 올려 왼손등의 낙인으로 흡수한 것이다.
[격이 높은 영혼을 손상 없이 온전히 흡수하였습니다. 소울 포스 스킬이 Lv4가 되었습니다.]
정시우는 얼결에 흡수가 완료된 것을 느끼곤 손등의 문신을 쓱쓱 문질렀다. 그 안에서 베아체가 무어라 외치는 것이 들려왔지만 당장은 무시하기로 했다. 아직 해야 할 일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오빠, 저기 데스나이트의 대검이 남았어요.”
“형님, 망치 여기 있습니다. 그리고 저 흑의 관도…….”
“응.”
우선은 전리품을 챙기고, 아까 자신이 내던졌던 거인의 비명 또한 회수했다. 거인의 비명도 거랑의 앞발도 손상이 심해 당분간 서랍에 넣어 두어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제일 중요한 건 이거란 말이지.”
그는 한손으로 어렵지 않게 관을 들어 올렸다. 처음 느꼈던 때와 마찬가지로 무지막지한 신의 힘이 뭉쳐 있는 것이 느껴졌다. 이곳저곳 닳아 손상된 것으로 보아, 어쩌면 그랜드캐니언에 나타났던 신의 파편은 이 관의 일부가 아니었을까?
[훌륭하다, 인간이여.]
그때 세트나크의 목소리가 정시우의 귀를 진동시켰다.
[아주 흥미로운 전투였다.]
“아, 이 새끼 또 말 거네.”
베아체랑 한창 싸우고 있을 땐 조용히 하더니, 역시 이 73마성은 놈에게 있어 별로 중요한 장소가 아니었던 모양이다. 라이아와는 달리 대범하다 해야 할지, 뭐라 해야 할지. 정시우는 그리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어쨌든 목적만 완수하면 되는 것이다.
[베아체의 말은 옳다. 나는 그녀에게 동생의 삶을 약속하여, 그 대가로 그녀를 나의 기사로 삼았지.]
“뭐?”
그런데 놈의 말이 의외였다.
[이 세계를 둘러보면 알게 될 것이다. 완전한 나의 영역이 되어, 생자는 오래 버티지 못하는 환경이 되었지. 베아체와 그녀의 동생은 이 세계에서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인간이었다.]
“너 왜 갑자기 배경설명 모드냐?”
[하지만 베아체는 알고 있었다. 자신에 비해 약한 남동생이 곧 언데드화 하리라는 것을. 그러나 이 세상에서 동생을 끌고 도망치기엔 마도의 지식이 부족하다. 그래서 선택한 방법이…….]
“너한테 의탁한 거라고?”
놈의 말에 맞춰 주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게임에서 선택지를 골라 시나리오를 진행하는 주인공과 비슷한 것 같아 영 내키지 않았지만 그래도 흥미가 가는 내용인지라 어쩔 수 없이 반응해 주는 정시우. 역시나 세트나크는 심히 기뻐했다.
[그렇다. 홀로 이 마성에 도달하여 내게 충성을 맹세하고, 그 대가로 동생을 살려 줄 것을 원했지. 그리고 나는 그에 응했다.]
“네 힘으로 둘러싸서……?”
[가사 상태에 빠져 활동할 수도, 생각할 수도 없지만 그럼에도 생자로서 살아 있는 것이지. 물론 그 관을 부수게 되면 이번에야말로 이 세상의 기운에 노출되어 조금의 여유도 없이 곧장 언데드로 화하게 될 터. 자, 너는 어떻게 할 테냐?]
아하, 과연. 정시우에게 이런 심적 고민을 안겨 주기 위해 이런 장광설을 늘어놓은 모양이었다. 아무래도 정시우를 가슴 한구석에 정의를 품고 살아가는 히어로 정도로 착각한 듯한데…… 정시우로선 그저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야 당연히 망설임 없이…….”
그러나 그 말과 함께 흑의 관을 이루는 세트나크의 힘을 얄짤 없이 강탈하려던 그때, 정시우는 손등의 낙인이 격렬하게 빛을 토해 내는 것을 감지하고 말았다. 말할 것도 없이 베아체의 반발이었다.
그 순간만을 기다렸다는 듯 세트나크의 속삭임이 이어졌다.
[자아, 너는 영혼의 주인으로서 어떤 선택을 내리겠는가?]
아아. 그것은 아까, 영혼 집합체를 상대로 정시우가 소울 포스의 새로운 힘을 각성했던 때에 나눈 대화의 연장이었다. 영혼 개개의 개성과 의지를 인정하면서도 그들을 제 뜻대로 부릴 것을 다짐한 정시우에게, 세트나크는 다시 다그쳐 캐묻는 것이다.
정말 그들의 의사를 무시하고 제 뜻만을 행할 것인지, 그렇다면 정말 그것을 존중이라 부를 수 있는지. 나아가 주인과 부하의 경계는 어디에 있는지…….
“하, 진짜.”
정시우는 흑의 관을 꽉 쥐었다. 세트나크는 더할 나위 없이 흥분하여 그의 선택을 기다렸다.
다음 순간 그는 흑의 관을 쥔 채 아까 자신이 뚫어 놓았던 천장의 구멍에 다이브했다.
[음?]
대체 그것에 무슨 의미가 있는가. 최상층에 고정시켜 놓기는 했지만 흑의 관을 아래로 떨어트린다 해서 마성이 붕괴하지는 않을 터였다. 그런데 대체 무슨 의도가 있어 관을…….
[설마……?]
“베아체, 넌 내게 아주 큰 빚을 진 거야.”
속삭이듯 중얼거리는 정시우의 말에 화답하듯 손등의 문신이 밝은 빛을 토해 냈다. 정시우는 그것을 보며 피식 웃어 버리곤 흑의 관을 꽉 감싸 안았다. 아까 베아체가 마나로 대검과 자신을 동조했던 것을 떠올리며, 마나를 흘려 흑의 관을 완전히 자신의 컨트롤하에 넣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나의 힘이다. 너의 강탈 능력은 나도 익히 알아보았으나 나의 힘을 그리 가볍게 취급하는 것이 가능하리라고…….]
가능했다.
[뭣!?]
얻은 지 불과 몇 분밖에 지나지 않은 능력이었으나 용의 감각은 과연 탁월했다. 전신으로 흑의 관을 느끼고, 그것의 구조를 깊숙이 파악하고, 끝내 그 안에서 지극히 미약한 숨을 쉬는 존재를 감지하며, 마지막으로 자신의 마나로 그 모두를 감싸 안았다.
그것으로 흑의 관을 그의 육신과 동조시켰다.
시선을 내리면 그곳에 보이는 것은 마성의 하층이 붕괴된 탓에 허공에 둥둥 뜬 지구로의 귀환 게이트. 세트나크는 끝까지 그 가능성을 믿지 않았으나, 정시우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대로 게이트에 제 몸과, 품에 끌어안은 채인 흑의 관을 함께 던져 넣었다.
그리고 통과했다.
[이, 럴 수가…….]
세상에 홀로 남은 세트나크는 정시우의 신형이 완전히 사라지는 순간, 정말로 그가 남긴 파편이 완전히 지구로 넘어간 것을 인식하고는 경악성을 토해 내고 말았다.
그 본인이 소유한 힘이니만큼 통제력은 계속 듣고 있었을 터이다. 그런데 그것이 정시우의 마나에 감싸여 기어이 세상을 넘어가 버렸다고? 도저히 믿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그것은 신의 힘을 제 것으로 만드는 일과는 또 한층 달랐다.
[그렇다는 것은, 혹시 놈은…….]
유지력을 완전히 잃어 붕괴하기 시작하는 73마성. 신의 목소리는 그 안에서 불분명하게 울려 퍼지다, 끝내 마성의 파편과 붕괴하는 마력에 의해 완전히 묻히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