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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홀로 로그인-35화 (35/260)

# 35

35화.

설악산 일대, 무장한 군인들이 포위망을 형성하고 있었다.

[헬기가 추락했습니다. 위치를 그것으로 추적당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겁니다.]

[하루 전까지만 해도 이렇게 조직적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는데 어째서지? 어제 일었던 섬광과 모종의 연관성이 있는 건가?]

[부대는 경계하라. 적의 집단행동 가능성이 있다.]

“수신양호. 씨X…….”

고블린이나 슬라임을 비롯한 소형 몬스터는 어떻게든 소총으로 제압하는 것이 가능했지만 그렇다고 놈들에게 당할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더욱이 헬기 촬영 영상 속에서는 고블린보다 월등히 강한 몬스터의 모습도 잡혔기 때문에 포위망을 형성한 군인들은 사형장에 끌려 나온 죄수와 비슷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빌어먹을, 일주일만 버티면 말차였는데…….”

“그러니 다행이지. 너 말차 나갔을 때 이 건 터졌으면 휴가고 자시고 바로 부대 복귀였어, 임마.”

“그렇습니다…….”

초유의 사태에 긴장한 것은 병사나 간부나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언제 몬스터가 튀어나올지 모르는 수풀 너머를 조준하며 반쯤 욕설이 섞인 대화를 나누었다.

“플레이어들 쪽은 어떻습니까?”

“영 별론가 보던데. 잡아도 잡아도 끝이 안 난다고. 야, 조준 똑바로 해라. 인간보다 키 작은 생물이면 그냥 다 쏴버려.”

“그래도 이곳까지는 안 내려올 것 같은데…….”

“혹시 플레이어들이 다 죽기라도 하면 그땐 우리들 차례야. 정신 똑바로 차려.”

그러던 그때, 뒤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났다.

“아, 여기서부턴 바이크로 못 가겠네.”

“누구냐!”

“야 이 미친 새끼야, 총구 돌리지 마!”

가뜩이나 잔뜩 긴장하고 있던 상황이다. 거수자의 등장에 놀란 병사 몇 명인가가 급하게 뒤로 돌아섰다가는 다른 이들에게 뒤통수를 맞았다.

지금 그들의 적은 북괴군이 아니라 몬스터인데 사람 목소리가 났다고 총구를 돌리면 어떻게 하겠는가! 간부는 제발 이 해프닝이 매스컴에 기록되지 않길 바라며 돌아섰다. 어쨌든 누구인지는 확인해야 했다.

“정지…… 이, 씨X.”

그러나 당연하게도, 목소리를 냈던 이는 이미 그 자리에서 사라지고 없었다. 그들이 볼 수 있었던 것은 오직 감자떡이 담겨 있던 봉투뿐이었다.

“우물우물…… 이게 왜 그렇게 맛있는 건지 난 아직도 잘 모르겠어.”

“전 좋아해요. 어머니 돌아가시기 전에 즐겨 드시던 것 중 하나였거든요.”

“아무렇지 않게 무거운 추억 얘기를 꺼내지 말아줄래?”

한편 군인들을 골려먹은 정시우는 그들의 주의를 끌고 곧장 도약하여, 그들이 그렇게나 경계하는 수풀 너머를 걷고 있었다. 볼은 감자떡으로 불룩했다.

“그냥 몰래 들어올 수도 있었을 텐데.”

“목숨 값이지, 목숨 값. 내가 살려주는 셈이니까 골려도 돼.”

“그런 건가요……?”

어째서 대한민국 남자는 전역만 했다 하면 군인들을 못 놀려 안달인 생명체로 진화한단 말인가. 나이가 어려 군 경험이 없는 용세하는 정시우의 입가에 걸린 썩은 미소를 이해하지 못해 고개를 갸웃할 따름이었다.

“근처에는…… 플레이어가 없네요.”

그때 수아린이 눈을 지그시 감았다 뜨며 말했다. 동시에 몬스터의 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한국의 플레이어들이 이곳에서 활약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사위가 고요했다.

“애초에 한국을 탈탈 털어봤자 플레이어의 숫자가 그렇게 많은 것도 아니고, 이제 막 플레이어로 선택받은 이들은 한창 하늘성에서 훈련을 하고 있을 테니까요. 뭐가 나타날지 모르는 현장에 투입될 정도로 숙련된 플레이어들은 그리 많지 않아요.”

“고블린이나 슬라임은 그렇다 치고, 그때 그 영상에는 분명 오크도 있었죠…….”

아무래도 던전 한두 개가 만들어낸 참사는 아닌 것 같았다. 한 던전에서 연달아 죽은 플레이어들이 추락한 것도 아니고, 어떻게 각기 다른 던전에서 죽은 플레이어들이 비슷한 곳에 떨어질 수 있었던 것일까. 정시우는 고뇌하다가는 입을 열어 말했다.

“혹시 종합 던전 같은 곳도 있냐.”

“던전은 디즈니랜드가 아니에요, 오빠. 개미굴은 더더욱 그렇죠.”

하늘성의 소천전장이 통째로 지상에 떨어졌다면 이해할 수 있지만 그런 일은 없겠지. 아무래도 던전이 터지고 보스 몬스터가 해방되면서 무슨 일인가가 생긴 것이 분명했다.

“몬스터들한테 물어보면 뭔가 알고 있겠지. 이쪽이야. 조금 많이 가면 나올 것 같아.”

“그 먼 거리에 있는 몬스터의 기척을 읽어내시다니 대단합니다!”

단지 감으로 방향을 찍었다고 하면 아무리 용세하라도 화내겠지. 정시우는 입을 다물고 조용히 산속을 질주했다. 전투질주 스킬은 나날이 발전하여 이제 마나를 원하는 만큼 소모하여 원하는 결과를 이끌어낼 수 있을 정도의 경지에 이르러 있었다.

[쿠그르아아아아아아!]

“정말 있잖아!”

얼마나 내달렸을까, 정확히 정시우가 가리킨 방향으로부터 나지막이 들려오는 몬스터의 괴성에 수아린이 경악하여 외쳤다. 사실 정시우는 어느 방향이 되었든 이 정도 달렸으면 몬스터와 조우하지 않았을까 생각했지만 굳이 그것을 입 밖에 내지는 않았다.

“사, 살려주세요. 살려……!”

“뭐야, 사람도 있었어?”

그동안 산에 갇혀 있었는데도 살아남았다고? 정시우는 놀라 중얼거리며 달리는 속도를 높였다. 그리고 이내 자신이 착각하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쿠하아아아아아아! 키기기기기, 키하아가가가가!]

“끄, 끄으으…….”

그곳에는 정시우가 생각했던 대로 몬스터가 있었다. 단 그 숫자가 상당히 많았다. 무장한 고블린이 수백 마리, 그들 중앙에 조악한 철갑을 걸친 오크가 수십 마리. 놈들만으로 어지간한 던전 하나를 채울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이 있다면, 분명 종족이 다른 그놈들이 한편이라도 먹은 것처럼 행동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뭐, 원래 판타지는 다 이런 법이지. 마왕이 나타났다든가 드래곤이 가디언을 부린다든가 둘 중 하나 아닐까.”

“오빠도 사고가 제법 유연해졌…… 아니,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수아린이 빽 소리를 질렀다. 수십의 오크와 수백의 고블린에게 린치를 당하고 있는 사람, 아니 플레이어 무리를 가리키며 외쳤다!

“저들을 구해야죠!”

“안 그래도 서두르고 있거……든!”

현장은 참혹했다. 이미 전신이 뜯겨 죽어버린 플레이어가 셋, 중상을 입은 플레이어가 둘, 장비를 든든하게 차려입은 덕에 아직까진 두 다리로 우뚝 선 채 버티고 있는 플레이어가 하나였는데, 꼴을 보아하니 몬스터들을 각개격파 하다가 어느 순간 포위를 당한 형색이었다.

‘역시 하급 몬스터답지 않게 머리를 쓰는구나. 놈들의 윗대가리가 있다는 뜻이지. 서로 다른 몬스터 종족을 한데 묶을 수 있는 윗대가리…… 역시 던전이 해방되면서 단순히 그 던전의 보스만 튀어나오는 걸로 끝나진 않은 모양이군.’

정시우는 이런 사태에 놀아나고 있는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지기 시작했지만 그렇다고 속도를 줄이지는 않았다.

그는 전투질주를 도중에 크루얼 차지로 전환했다. 곧 몬스터들도 그를 눈치 챘다.

[쿠루가아아악!]

[새로운 희생양! 제물!]

[죽여, 놈을 죽여!]

고블린들이 일제히 독침을 쏘았지만 정시우는 모두 깔끔하게 무시했다. 설령 방어구가 없었더라도 독침은 그의 돌진을 이겨내지 못했을 것이다.

그가 저지되지 않는 것을 보고 당황한 고블린들을 제치고 오크들이 나섰지만 기갑 오크 백부장마저 어쩌지 못하는 돌진을 놈들이 막을 수나 있겠는가? 그의 돌진 경로에 끼어든 오크들은 도끼로 그를 내려칠 틈도 없이 분쇄되어 죽었다. 말 그대로 부딪힌 순간 전신이 터져버린 것이다.

“무, 무슨…….”

[쿠가가아아아아!]

그제야 정시우의 강함을 어렴풋이 깨달은 몬스터 무리의 우두머리가 고함을 내질렀지만 때는 이미 늦어 있었다. 정시우는 돌진 경로에 있던 몬스터 모두를 갈아버린 후, 상처 입은 플레이어들을 가로막는 위치에 이르러 절묘하게 돌진을 멈추었다.

“야, 네 친구들 지켜라.”

“아, 알겠습니다!”

갑옷으로 무장하고 바스타드 소드를 들고 있던 그 플레이어는 정시우에게 잔뜩 쫄아 고개를 끄덕이며 다급히 동료들에게 합류했다.

그러는 사이, 정시우는 자신에게 쉴 새 없이 독침을 쏘아대는 고블린들을 짜증스레 쏘아보더니 팔뚝에 박힌 독침들을 뽑아내 내던졌다. 고블린 몇 마리가 재수 없게 그것에 얻어맞고 폭사했다.

[우리는 놈을 이기지 못한다.]

[못 이겨! 보스가 와도 못 이겨!]

[제물로 기꺼이 바친다! 제물로!]

“제물 같은 소리 하네!”

정시우는 냅다 망치를 대지에 내리쳤다. 순간적으로 발현된 강타의 힘이 대지에 직격하며 일대에 충격파를 퍼트렸다. 그것을 버티지 못할 정도로 약한 고블린들 대다수가 우르르 바닥에 쓰러지는 모습이 흡사 코미디였다.

“도망치면 더 아프게 뒈질 줄 알아라!”

정시우에게서 송곳 같은 기세를 품고 발산되는 살기! 그의 마나가 일천하여 그것만으로 몬스터를 죽인다거나 하는 일은 없었지만, 적어도 놈들을 제자리에 얼어붙도록 만들기엔 충분했다.

“좋아, 그렇게 딱 붙어 있어라!”

그는 사납게 이를 드러내며 다시 돌진했다. 그 손에 들린 망치가 햇빛을 예리하게 반사한 다음 순간, 망치가 횡으로 그어지며 궤도에 있던 몬스터들을 갈아버렸다.

“대, 대체 저 힘은…….”

“최상위 플레이어일 거야. 분명해.”

“그렇지만 망치를 들고 다니는 플레이어가 우리나라에 있던가……?”

살려줬으면 지들끼리 살길을 도모하면 될 것을 멍하니 그 자리에 주저앉아 내친김에 정시우의 품평회까지 여는 플레이어들. 그것이 그들을 조연처럼 보이게 만든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일까? 물론 정시우가 알 바는 아니었다.

“역시 그 사람 같아. 체격이 동일하다고.”

“산하동의 그…….”

[쿠가가가가가가!]

“히익!”

[쿠하아아아아아아! 제물! 새로운 세상을 위한 제물!]

몬스터들은 정시우에게 상대도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부나방처럼 그에게 모두 몰려들었다. 정시우에겐 고마운 일이다. 많이 움직일 필요도 없이 그냥 망치만 휘두르면 되니까!

앞뒤좌우로 몰려드는 몬스터들을 정시우는 마치 두더지잡기라도 하듯이 차례대로 때려잡았다. 슬레지 해머는 절묘한 힘을 품고 허공을 쉴 새 없이 가르며 한 방에 한 마리, 혹은 두 마리씩 끊임없이 몬스터의 머리통을 터트렸다.

[제물!]

“혹시 네놈들도 그 제물에 카운트되는 거냐?”

정시우가 아무런 생각 없이 던진 말에 고블린 한 마리가 반응했다. 그는 다시 망치를 휘둘러 놈들을 죽이며 입맛을 다셨다.

“이것들을 다 죽이면 새로운 뭔가가 튀어나오나? 악마 같은?”

“강할 것 같으면 도망쳐야 해요.”

“이제 죽지 않을 정도로는 조심할 거라니까 그러네.”

그런데 어째설까, 끊임없이 정시우에게 달려들어 죽어가길 반복하던 몬스터 무리 가운데에서 어떤 놈이 문득 지껄였다.

[크르르르가, 뭔가 이상하다.]

[정말 그렇다.]

[뭐가 그러쿠웩!]

정시우는 놈들을 죽이는 한편으로 놈들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역시 다른 몬스터들도 그 비슷한 말을 지껄이고 있었다.

[변화가 없다.]

[마나가 퍼지지 않는다.]

[의식이 진행되지 않는다.]

[……저놈, 이상한 인간 같다.]

그 자리에 있던 몬스터의 70% 이상이 죽어나간 시점에서 비로소 몬스터들은 그런 결론을 냈다. 그들을 쳐 죽이고 있는 괴물, 정시우가 놈들의 계획에서 벗어난 존재라는 결론을.

“대체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내가 쟤네를 방해하고 있는 모양이야.”

“어쩌면 오빠가 지하 플레이어라는 사실과 뭔가 관계가 있는 건지도…….”

수아린이 조용히 중얼거렸다. 용세하 또한 공감이었다.

정시우는 뭐가 어찌 되었든 알 바 아니었다. 일단 몬스터들을 다 죽이는 데에 집중했다.

사태가 어긋났음을 인지한 몬스터들은 그제야 다급히 도망을 친다느니 원군을 부른다느니 발악을 개시했으나 정시우에게 공격해오는 건 자유여도 도망치는 건 자유가 아니었다. 그는 주위 바위를 던져내고 망치를 휘두르며 기어이 몬스터들을 전멸시켰다.

정시우의 레벨이,

1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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