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
34화.
깊게 눈을 감고 침잠하면, 신체 내부 깊숙한 곳으로부터 찬란한 불꽃을 태워 올리는 작은 별이 여럿 느껴졌다. 시야로 확인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저 막연히 ‘그곳에 있다’는 생각이 들 뿐이었지만 확실했다.
그 별이 가진 기질, 정시우의 육신과 연결되는 방식, 앞으로의 가능성까지. 그것들 모두가 저마다 독특한 빛을 발하며 존재감을 드러냈다. 정확히 다섯 개, 정시우가 지닌 패시브 스킬에서 두 개가 빠진 숫자였다.
‘별 중에 가장 작은, 자기들끼리 뭉쳐 있는 두 개의 별. 이건 독 내성과 화상 내성이겠네.’
실제로 독이나 화염이 그의 몸을 침범하려 들 때면 이 두 개의 별이 빛을 뿌리며 활동한다. 가장 단순하고 작은 힘이지만 꾸준히 키워나가면 그의 약점을 완전히 없애줄 것이다.
정시우는 가능하면 다른 내성도 갖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두 별을 가만히 관찰했다. 이 두 가지만은 실제로 공격을 받았을 때에만 활성화되기 때문에 소득이 그리 크지는 않았다.
그 다음으로 작은 별은 바로 얼마 전 그가 스스로 만들어낸 전투용 패시브 스킬, 헤비 웨폰 배틀이었다. 이 스킬은 육중한 무기를 사용하는 모든 전투를 보조하는 것인데, 사실 굳이 망치가 아니더라도 도끼, 몽둥이, 대검, 중병기라면 그 무엇이든 활용할 수 있었다.
‘굳이 다른 말로 설명하자면 무게를 활용하는 전투법 정도가 되겠지.’
무기의 무게를 정확히 파악하고 활용하여, 나 자신은 빠르고 효율적으로 움직이면서 적에게는 심대한 데미지를 입히는 것. 그것이 바로 이 스킬의 목표였다.
정시우가 무거운 망치를 들고 있다 하여 공격 자체는 둔할 것이라 파악하고 접근하는 놈이 있다면 그 다음 순간 묵사발이 나고 말 것이다.
이 스킬은 자신이 지닌 압도적인 힘에 속도를 더해 틈을 없애기 위해 정시우가 나름대로 연구한 결과물이나 다름없었다. 당연히 아직 엉성하다. 별이 발하는 빛에도 조금의 흔들림이 있었다.
하지만 그가 만들어낸 만큼 그에게 가장 적극적으로 반응하며, 육신과의 동화율, 전투에의 적용 수준은 단연 압도적으로 높았다. 앞으로 해머를 들고 많은 전투를 벌일수록 발전하며, 더욱 찬란한 빛을 발하게 되리라.
그도 당연한 것이 이 스킬은 무기만큼이나 정시우의 육신의 능력에 의존하는 스킬이었던 것이다.
‘이 정도면 얼추 적응은 끝난 것 같아. 지금 당장이라도 망치를 들고 날뛸 수 있을 것 같아.’
결국 그가 휴식을 취하고 육체를 점검하려던 것은 헤비 웨폰 배틀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확실히 육체의 변화는 컸지만 이젠 그 모두를 오롯이 활용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확신이 섰다.
하지만 이왕 살피는 거 나머지 스킬들도 점검해두는 것이 낫겠지. 그의 상념이 다른 별들과 거리를 두고 있는 가장 크고 밝은 두 별에게로 흘렀다.
그 두 개의 별은 그 크기도 밝기도 나머지와는 비교도 되지 않게 거대했다. 그러나 정작 두 별이 가진 속성은 정반대라는 것이 실로 흥미로운 점이었다.
‘살기.’
그것은 육신과 영혼, 마나 등등 정시우가 지닌 모든 힘과 깊숙이 연결되어 있는 스킬이었다. 그 모두를 예리하게 가다듬어 외부로 쏘아내는 것으로, 힘의 소모 없이 기세만으로 적을 꺾는 패시브 스킬.
자연히 이 스킬을 탐구하면 서로 다른 힘을 묶는 방법에 대해, 기운과 기운의 충돌에 대해 깊숙이 깨달을 수 있으리라. 하지만 지금은 무리다. 너무 막연하고 원대한 꿈이었다. 아직 기운 그 자체가 미약한 정시우가 함부로 도전할 과제는 아니었다.
그는 쩝, 입맛을 다시며 나머지 하나 남은 스킬을 확인했다. 그것이 무엇인가 하면, 바로 그가 가장 처음 얻은 패시브 스킬인 ‘무지는 용감’이었다.
‘무지는 용감’은 정시우 본인이 외부의 자극에 대해 인지하지 못하고 있을 때에 한해 빛을 발하는 스킬로, 그가 인지하지 못한 기습이나 모든 종류의 함정의 효과를 대폭 낮추어주는 스킬이었다.
‘이게 가장 미스터리란 말이지.’
이 스킬은 분명 그의 육신에 자리하고 있음에도 그의 신체, 마나 능력과는 전혀 연관이 없는 스킬이었다. 그의 인식과 의지, 외부 요인에 관여하는 스킬이다 보니 지금 정시우의 능력으로는 이 스킬이 어떻게 동작하는 것인지도 알 수 없다.
과연 그의 힘으로는 이런 인지를 초월한 스킬을 만들어내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던전 특유의 마나와 그것을 응집시키는 업적의 힘이 있었기에 가능했겠지.
‘이건 살기보다도 더 답이 없어. 놔두자.’
결국 헤비 웨폰 배틀을 제외하고는 소득이 없었던 셈이 아닌가. 정시우는 입맛을 쩝쩝 다시며 눈을 떴다. 그러자 내부가 아닌 외부로 드러난 두 개의 패시브 스킬이 눈에 띄었다. 하나는 손등에 새겨진 문신이었고, 하나는 엉덩이에서 자라난 도마뱀 꼬리였다.
‘영혼의 힘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는 짐작도 안 가고.’
소울 컬렉트 스킬은 얻은 그 순간 이래 답보 상태였다. 그렇게 순순히 자기 영혼을 내놓는 유령은 별로 없다. 애초에 요즘 유령을 못 만난 지도 제법 되었다. 이렇게 말하니 괜히 이제 곧 다시 한 놈 만나게 될 것 같아 찝찝했다.
반면 카오스 테일은 요즘 아주 조금의 진전이 있었다. 처음엔 이 꼬리가 던전에 입장하기 위한 열쇠로서만 기능하는 줄 알았던 정시우는 그냥 꼬리를 내버려두고만 있었지만, 이번에 휴식처 기능을 업그레이드하며 사실상 꼬리의 필요성이 없어지면서 생각을 달리하게 되었다.
개미굴 던전의 입장 조건을 다른 것으로 대체할 수 있게 된 마당에, 이 꼬리의 다른 활용 가능성은 없단 말인가? 그런 생각에서 시작된 그의 꼬리 탐구는 하루에 조금 못 미치는 시간 이어진 끝에 어느 정도 결실을 맺었다.
꼬리의 길이는 대략 1미터에 조금 못 미쳤는데, 두께는 딱 양손바닥으로 감쌀 수 있는 수준이었다. 도마뱀 비늘인지 악어 비늘인지는 알 수 없지만 꼬리를 뿌리부터 끝까지 빼곡하게 뒤덮은 비늘은 적어도 어지간한 강철보다는 단단했다.
또한 꼬리는 정시우의 의지에 따라 자유자재로 움직였다. 꼬리를 얻고 처음 며칠간 고생했던 것에 비하면 지금은 어색함이 완전히 사라져 있었다. 꼬리로 근처의 물 컵을 말아 쥐어 그의 손으로 가져올 수 있을 정도이니 말 다한 셈이다.
궁극적으로는 두 손이 바쁠 때 꼬리로 다른 일을 처리할 수 있을 정도로 세심한 테크닉을 기르는 것이 정시우의 새로운 목표였다.
“손이 하나 더 있는 것 같아서 부럽습니다, 형님.”
“부러우면 네 날개랑 바꿀래?”
“죄송합니다, 형님.”
냉정히 생각해보면 어째서 보다 일찍 꼬리에 관심을 주지 않은 것인지 스스로가 의아할 정도다. 플레이어들은 날개를 활용해 어디든 자유롭게 날아다니며, 따라서 기본적으로 탁월한 기동력을 지니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당연히 정시우도 꼬리를 전투에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어야 했는데!
비록 날 수는 없지만, 그의 꼬리는 무척 단단했으며 육중하기도 했다. 얼마나 육중한가 하면 꼬리를 휘두를 때 무기로 다루는 것으로 취급되어 헤비 웨폰 배틀 스킬을 적용할 수 있을 정도였다.
“후우.”
정시우는 꼬리에 힘을 주어 허공에서 붕붕 휘둘렀다. 위협적으로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났다. 그야 꼬리 길이가 길이인지라 정면의 적을 상대할 수는 없겠지만, 보다 꼬리를 능숙하게 다룰 수 있게 된다면 후방에서 공격해오는 적에 맞서는 정도는 어렵지 않게 가능해질 것이다.
단단한 비늘을 방패로 내세워 적의 공격을 막는 것도 물론 가능하다. 문득 그러다 꼬리에 손상을 입으면 어떻게 되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든 정시우가 수아린에게 확인하니 그녀는 이렇게 답했다.
“아마 오빠의 꼬리는 저희에게 있어 날개와 그리 다르지 않은 의미를 지니고 있겠죠. 그리고 저희는 어떤 일이 있어도 날개를 잃지 않아요. 물론 날개를 향한 공격이 들어오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 경우 충격이 곧장 신체 내부로 들어오죠. 그 충격은 포션이나 치유 마법으로 회복이 가능하고, 만약 그것으로 회복이 안 될 정도의 심한 충격이라면…….”
“굳이 날개로 공격을 받아내지 않아도 이미 죽은 목숨이겠지.”
“네. 체력이 다하면 더 이상 날개로 하늘을 날 수 없게 되고, 그 순간 리타이어하게 되어 지상으로 추락하는 것이죠.”
적어도 전투를 벌이다 그가 죽기 전에 먼저 꼬리를 잘릴 것에 대한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었던 것. 정시우는 수아린의 말에 흡족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꼬리를 다루는 연습을 계속했고, 지금에 이르렀다.
쇼핑을 마치고 휴식처로 돌아온 지 사흘이 흘러 있었다.
“좋아, 그러면 이제 싸우러 가자.”
정시우는 마지막으로 꼬리를 점검하고는 일어섰다. 그의 전신이 에너지로 끓어 넘쳤다. 예리하게 갈린 칼처럼 준비된 육신은 설령 기갑 오크 천부장이 다시 눈앞에 나타나더라도 무리 없이 짓밟을 수 있을 만큼 파괴적인 기세를 뿜어냈다.
휴식을 취하는 동안에도 끊임없이 달구어지며 자극을 받은 전신의 근육이 수축과 이완을 반복하며 힘을 폭발시킬 순간만을 고대했다.
“싸우러 가는 겁니까! 드디어 제가 형님을 도울 수 있는 순간이!”
미니 사이즈를 유지한 채 허공에 창을 찌르는 연습을 하던 용세하가 반색을 하며 돌아섰다. 그러나 정시우는 나비 날개를 퍼덕이며 기뻐하는 용세하에게 딱 잘라 말했다.
“네가 활약했다가 혹여나 그게 영상으로 남기라도 하면 골치 아프니까 얌전히 있어라.”
“그럴 수가…….”
가뜩이나 수아린에 이어 용세하의 이름까지 수호석에 나타나지 않은 일로 인해 용오름 길드가 전체적으로 시끄러운 분위기인데, 정시우가 대놓고 용세하를 데리고 다니면 퍽이나 재밌는 일이 일어나지 않겠는가.
물론 그가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은인에게 보답하고 싶어 하는 마음만은 알겠지만…… 정시우는 쓴웃음을 지으며 녀석을 달랬다.
“아마 그 근처에 던전도 있지 않겠어? 네 실력은 던전에서 보자고.”
“알겠습니다, 형님!”
“참 사이가 좋아 보이네요.”
동성이기에 가능한 유대감일까, 아니면 순수하게 존경심을 드러내는 용세하를 정시우가 더 반기는 것일까. 둘을 지켜보는 수아린은 뭔가 속이 조금 답답한 기분이 되고 말았다. 치사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런 속내를 드러낼 수도 없었다.
하지만 정시우는 그녀의 속내를, 순수한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픽 웃으며 대꾸할 따름이었다.
“그냥 이 녀석이 조금 심하게 들떴을 뿐이야. 너만이라도 정신 차리고 있어라. 네가 들키면 그땐 진짜 그 김하룡인지 하는 놈이랑 한 판 붙어야 할지도 모르니까.”
아무리 정시우가 레벨의 규격을 뛰어넘은 강함의 소유자라지만 정상급 플레이어를 이기는 것은 무리겠지. 그것보다도, 스스로를 수아린의 약혼자라 밝힌 그 작자와 얽혔을 때 어떤 꼴을 보게 될지가 상상이 가 더욱 질색이었다.
“뇌가 하반신에 달린 것들하곤 엮이기 싫으니까 말이지…….”
“꼭 예전에는 엮였던 적이 있다는 말처럼 들리네요.”
“안 봐도 비디오잖아.”
수아린의 눈썹이 꿈틀거렸지만 정시우는 눈치 채지 못했다. 그저 어깨를 으쓱이며 바깥으로 나가는 문을 열 따름이었다.
“그럼 이제 설악산으로 가자. 다녀오는 길에 감자랑 옥수수나 사올까.”
“지역차별 발언이라구요! ……감자떡은 맛있지만요.”
그렇게 셋의 점심 식사가 잠정적으로 결정되었다.
물론 아직 그들은 설악산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지 못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