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6
36화.
[정시우]
[지하 플레이어]
[Lv 51]
[근력 ? 184 민첩 ? 188 체력 ? 202 마력 ? 46]
[패시브 스킬 ? 카오스 테일 Lv1, 무지는 용감 Lv5, 독 내성 Lv7, 화염 내성 Lv2, 소울 컬렉트 Lv1, 살기 Lv2, 헤비 웨폰 배틀 Lv2]
[액티브 스킬 ? 부여 Lv21, 강타 Lv15, 전투질주 Lv15, 마탄 Lv6, 워 크라이 Lv6, 스톤 스킨 Lv4, 크루얼 차지 Lv2]
“이거 재밌게 됐는데.”
정시우의 입가에 상큼한 미소가 어렸다. 아니, 몬스터를 잡은 것만으로 레벨이 오르다니 여태까지 그가 듣고 겪어온 것과는 조금 다르지 않은가!
수아린 역시 그와 마찬가지로 놀라고 있었다. 당연하게도 지하 플레이어인 정시우가 성장하며 서포터인 수아린과 용세하의 레벨도 올랐다.
“외부로 나온 몬스터들을 잡으면 현실에서도 레벨이 오른다…… 이게 모두에게 적용되는 일일까요?”
플레이어라면 모두 그런 것일까, 지하 플레이어인 정시우에게만 가능한 일일까. 수아린의 추측은 후자였다. 이곳은 하늘성의 영역보다는 개미굴의 영역이었으니까. 정시우를 상대하던 몬스터들이 당황한 이유와도 관련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확인해보지 뭐.”
그 자리에서 속닥이던 정시우가 뒤돌아섰다. 멍하니 그를 지켜보고만 있던 생존자들이 화들짝 놀라며 자세를 고쳤다. 그는 그것을 신경 쓰지 않고 물었다.
“너희, 몬스터 죽이고 혹시 레벨 업 같은 거 했냐?”
“그, 그럴 리가요. 저희도 상당한 숫자의 몬스터를 잡았지만 전혀……. 레벨 업은 하늘성의 던전을 클리어해야만 할 수 있는 것 아닙니까.”
“역시 그러냐.”
정시우는 머리를 긁적이려다가 투구의 존재를 깨닫곤 그만두었다. 그리고 그들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 플레이어들은 겁을 먹은 것처럼 보였지만 도망치지는 않았다.
“다친 녀석들, 괜찮냐?”
“괘, 괜찮습니다. 하늘성으로 복귀하면 아마 치료받을 수 있을 겁니다. 그…….”
개중 가장 멀쩡해 보이는 전사 녀석이 그제야 허둥지둥 일어나 정시우에게 꾸벅 고개를 숙였다.
“도와주셔서 고맙습니다.”
“어, 그래.”
“혹시 당신은 산하동의 그…….”
“여긴 앞으로 더 위험해질 예정이니까 그냥 조용히 내려가라. 알겠지?”
“앗, 그, 네. 알겠습니다.”
놈이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두 명의 부상자를 부축해 일어나려다가 한순간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죽은 동료가…….”
아마 그들에게 이런 상황은 익숙하지 않을 것이다. 하늘성의 던전에서 동료를 잃는 일은 있었겠지만, 그 경우 리타이어한 동료는 지상으로 추락해 사라지니까. 그런데 현실 세상에서 싸워 죽음을 맞이한 플레이어들은 그대로 사체를 남겨놓고 있었다.
“이대로 이들을 버려둘 수는 없어.”
“그렇지만 어떻게 하지? 난 너희들 부축하는 것만도…….”
정시우는 똥마려운 강아지처럼 쩔쩔매는 플레이어들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인벤토리에 넣어서 가면 되잖아.”
“그런 방법이!”
굉장히 비인도적인 방법이라며 태클을 거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적어도 이 야산에 몬스터와 동물들 먹이로 내버려두는 것보다는 인도적인 방법이었으니까. 전사와 두 명의 부상자는 다급히 죽은 동료 셋을 인벤토리에 넣으려 했다.
하지만 그 전에, 그들의 시체가 빛을 내며 그 자리에서 부드럽게 녹아 없어지고 말았다.
“큭!?”
“안 돼! 젠장!”
“……?”
플레이어들이 절규하는 와중 정시우는 이상한 일을 겪었다. 플레이어들의 사체가 녹아 없어지면서, 황금의 빛 무리가 나타나 정시우에게로 날아든 것이다.
다른 이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것일까? 플레이어들이 여전히 절규하고 있는 가운데, 빛 무리는 정확히 그의 왼 손등에 스며들었다. 그렇다. 소울 컬렉트 스킬이 형상화된 문양이 새겨진 바로 그 자리로.
[소울 컬렉트 스킬이 Lv2가 되었습니다. 보유 영혼 4개]
“…….”
정시우는 그 문구를 보며 가만히 침묵했다. 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나쁜 일 같지는 않았다. 그것은 무척 중요한 일이었다.
그는 손등의 문양을 슥 문질러보고는, 여전히 힘의 실체가 감도 잡히지 않는다는 사실을 새삼스레 확인하며 입을 열었다. 가만히 놔두면 그 자리에서 곡이라도 할 것 같은 플레이어들을 향해서.
“원래 플레이어들 사체는 안 남잖아. 너무 울고만 있지 마.”
“하지만…….”
“그럼 거기서 울고 있다가 몬스터한테 죽든가. 알아서 해라.”
“자, 잠깐!”
정시우는 자신을 붙잡으려는 손을 휘휘 흔들어주고는 걷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의 머릿속에서는 복잡한 계산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다른 플레이어들은 지상의 몬스터를 잡아도 성장하지 않아. 하지만 나는 다르다. 놈들이 개미굴에서 튀어나온 놈들이라 그런 것일 확률이 높지만, 어쨌든 굳이 클리어까지 가지 않아도 즉석에서 경험치와 마나를 획득한다는 것은 상당히 괜찮은 일이지.’
더불어 죽은 플레이어들의 영혼, 어째선지 그것이 정시우 자신에게로 빨려 들어왔다. 소유권이라고 말하면 조금 이상하지만…… 그냥 그 자리에 있었을 뿐인 정시우에게, 소울 컬렉트 스킬을 보유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런 일이 일어났다는 것은 굉장히 기묘한 일이었다.
아직 알 수 없는 일이 너무나 많다.
언제나 그래왔듯이 말이다.
“그래도 종합해보면 역시 나쁜 일은 아니네. 좋아, 지금부터 적극적으로 구조해보실까.”
“구조 맞죠, 오빠? 구조 맞는 거죠?”
정시우는 그 순간부로 울창한 숲속을 질주하며 몬스터와 사람의 기척을 찾았다. 조금 전 마주했던 몬스터 무리 외에도 설악산에는 어마어마한 숫자의 몬스터가 있었는데, 정시우는 놈들을 조우하는 즉각 처리하면서도 답답함을 느꼈다.
“역시 원거리 공격수단이 부족해.”
“돌을 주워 던지는 것만으로 오크 머리를 깨부수면서도 그런 얘기가 나와요?”
방금 전멸시킨 오크 무리의 사체를 뒤적이며 투덜거리는 정시우에게 수아린이 어이가 없다는 투로 반박했다. 이번에도 마나의 결정을 찾지 못한 정시우는 다시 산길을 내달리며 고민을 이어갔다.
“원거리 무기…… 뭐가 좋을까.”
“슬링은 어때요?”
“그것도 일일이 돌을 주워야 하는 건 똑같잖아.”
정시우는 기관총처럼 난사하며 적을 쓸어버릴 수 있는 원거리 스킬을 원했다. 수아린은 정시우가 돌을 주워 던지는 것만으로 오크를 죽이는 것도 충분히 사기라고 생각했지만, 지금 그가 넓은 공간을 질주하며 한꺼번에 많은 적을 상대해야 한다는 것을 아는 만큼 그의 고민도 이해했다.
“그러니 역시 마탄을 수련해 보자구요. 오빠 이 스킬엔 유독 소홀했잖아요.”
“헉, 형님. 마탄도 익히고 계셨습니까!? 그거 상당히 희귀한 스킬인데!”
“희귀한 스킬이면 뭐해…… 에잇.”
정시우는 달리던 도중 근처 나무에 마탄을 쏘아냈다. 정중앙에 틀어박힌 마탄은 나무를 관통했지만 그뿐이었다. 이 정도로는 끽해야 고블린을 죽이는 수준. 그의 모든 액티브 스킬 가운데 마탄만은 제자리걸음을 걷고 있었다.
“회전력을 가미해볼까.”
“만화에서 보면 꼭 회전을 시키는 것만으로 강해지곤 했죠.”
그렇다. 탄에 회전을 가미하면 중심이 잡혀 궤도에서 어긋나지도 않고, 파괴력도 압도적으로 높아진다. 하지만 그 정도는 나루X를 본 중학생 정도만 되어도 떠올릴 수 있는 발상. 왜 여태 그런 일을 시도해본 사람이 없겠는가? 있는데 전부 실패했을 뿐이었다.
정시우는 마탄에 회전력을 불어넣는 것이 차라리 새로운 하나의 패시브 스킬을 만드는 것보다도 어렵다는 사실을 깨닫고 깔끔하게 포기했다. 대신 다른 스킬과 합쳐볼 생각을 했다.
“마탄은 이미 그 자체로 강타의 응용형 가운데 하나지. 그러면 크루얼 차지처럼 전투질주와 합쳐볼 수는 있지 않을까?”
“감도 안 잡히는데 어떻게요?”
전투질주의 요는 마나의 성질을 보다 파괴적이고 빠르게 가공하여, 그것을 유지시키는 것이다. 간단한 스킬처럼 보여도 마나의 성질을 건드리는 상당한 고도의 스킬이었다.
정시우는 그 특이점을 진즉 깨닫고 집중적으로 수련한 덕에 전투질주의 마나를 숨을 쉬듯 자연스럽게 다룰 수 있게 되었고, 크루얼 차지를 탄생시킬 수 있었던 것도 어디까지나 그 덕분이었다.
“오히려 더 쉬울걸? 크루얼 차지는 전신에 전투질주의 마나를 두른 상태에서 그걸 강타의 묘리로 폭주시키고, 그 와중에 마나를 다른 방향으로 돌려 스톤 스킨까지 구사하는 거거든.”
“말만 들어도 머리가 터질 것 같은데…… 형님, 대체 어떻게 그런 스킬을 만드신 거죠?”
“제가 말했잖아요. 오빠는 지닌 마나양은 적어도 그 응용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구요.”
용세하는 정시우에게 경탄했지만 뿌듯해하기는 수아린이 뿌듯해했다. 용세하가 어리둥절해하는 가운데 정시우는 자신의 발상을 곧장 실행으로 옮겼다.
요는 손가락 끝에 집중하는 마나의 극소수에 전투질주를 적용하는 것. 그것을 그대로 놔두면 그의 손가락이 비틀어져버리기에, 마나를 생성한 그 순간 곧장 마탄 스킬을 발동하여 그것을 외부로 쏘아낸다!
쾅! 재수 없이 그들 앞에 놓여 있다가 마탄에 얻어맞은 바위가 산산조각으로 터져나갔다.
“…….”
[…….]
[…….]
아무 생각 없이 마탄을 쏘아낸 정시우도, 가만히 지켜보던 수아린과 용세하도 상상하지 못했던 위력에 입을 다물고 말았다. 산산조각이 난 바위, 정시우 본인이 직접 전투질주를 몸에 걸고 돌진하여 강타로 후려친 것만 같은 결과물이었다.
“……아니, 이 간단한 걸 왜 대체 다른 사람들은 안 했던 거야?”
“간단하지 않거든요? 스킬의 융합이라는 게 오빠 생각만큼 그렇게 간단한 게 아니거든요? 이미 말씀드렸잖아요. 전투질주 스킬부터가 그리 녹록한 스킬이 아니라구요.”
“혀, 형님. 연사 가능하시겠어요?”
“연사는 오히려 더 쉽지. 그런데 지금은 안 할래.”
“현명하신 판단입니다…….”
전투질주를 가미한 마탄 스킬은 물론 마탄 하나만 쓰는 것보다는 마나 소모량이 많았지만, 그렇다고 레벨 50을 넘긴 정시우의 몸에 부담이 갈 정도도 아니었다.
그냥 간단한 실험을 했을 뿐인데 강력한 공격수단을 손에 넣게 된 정시우가 만족스레 웃고 있자니, 갑자기 그의 몸에서 격렬한 마나반응이 일어났다. 이미 이전 크루얼 차지를 얻었을 때 한 번 겪은 바가 있는 반응이었다.
단지 차이점이 있다면, 이전에 없던 기록이 새겨지는 것이 아닌, 이미 보유하고 있던 기록이 다른 방향으로 발전하는 느낌이었다는 것이다.
[액티브 스킬 마탄이 크리티컬 불릿(Critical Bullet)으로 변화합니다.]
[크리티컬 불릿 Lv1]
[합성 진화 스킬. 특수하게 가공된 마나의 탄환을 쏘아내 목표물을 파괴한다.]
“스킬이 바뀌어버렸네.”
“거의 동일한 스킬이니까요. 어쨌든 하나의 스킬로 굳어졌으니 훨씬 편하게 다룰 수 있겠네요.”
“단기간에 액티브 스킬 두 개, 패시브 스킬 한 개를 만들어내시다니…… 역시 신의 축복을 받으신 게 분명하다니까.”
“시끄러워욧.”
정시우는 나중에 기회가 되면 마탄을 다루는 전용 아티팩트를 얻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하며 몸을 놀렸다. 크리티컬 불릿의 파괴력은 고블린이나 슬라임은 물론이고 오크를 죽이기에도 충분하다!
수아린은 가뜩이나 강한 그에게 원거리 공격수단까지 주어졌다는 사실에 경악했다. 이젠 그 누구도 그를 막을 수 없다. 정시우의 설악산 탐색 속도가 빨라지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게 3시간이 흘렀을 때, 정시우는 레벨 53이 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