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
5화.
[던전 클리어]
[소요 시간 3:21:37]
[모든 함정 파괴]
[웨어울프 150, 자이언트 블랙 울프 1 처치]
“뭐야 이거!”
정시우는 돌연 그의 망막 위로 떠오르는 문자열을 보며 기겁했다. 그 모습을 보며 수아린이 피식 웃었다. 자신 또한 한때 그와 같았으니까.
“모든 플레이어에게 기본적으로 주어지는 능력인 ‘인터페이스’예요. 하늘성과 관련된 모든 것과 관련된 기록을 확인하게 해 주죠. 시야를 방해하는 일은 없을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그 말인즉 내가…….”
“네. 테스트 던전을 클리어하여 어엿한 플레이어가 되었단 얘기예요. 축하해요, 정시우 씨.”
수아린은 새삼스럽게 웃음이 나왔다. 이렇게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이 던전을 클리어할 수 있을 줄은 몰랐으니까. 그것도 하늘성과 던전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던 정시우와 함께!
비록 이곳은 하늘성이 아닌 개미굴이었고, 던전에 떨어져서부터 클리어에 이르기까지 기괴하기가 짝이 없었지만 그럼에도 클리어는 클리어였다.
[클리어 랭크 ? EX]
[추가 보상, 플레이어 스킬 획득 ? 무지는 용감(패시브)]
먼저 나타났던 문자열이 사라지고 두 번째로 나타난 문자열. 그 내용을 확인하며 정시우는 눈살을 찌푸렸다.
“뭐?”
스킬이 무엇인지는 이미 수아린에게 들어서 알고 있다. 던전을 클리어하거나 특수한 몬스터를 사냥했을 때, 혹은 특수한 조건을 달성했을 때 얻을 수 있는 특수한 마나의 결정!
특정한 행동을 보조해 주거나 이전에 없던 감각을 열어 주거나 하는 이적을 통틀어 부르는 말이라고 했다. 한 마디로 있으면 좋은 것이다.
실제로도 두 번째 문자열을 확인한 직후, 정시우의 신체 내부 깊숙한 곳에서 미약한 불꽃 한 줄기가 피어나는 것이 느껴졌다. 평생 모르고 있던 내장이 활동을 시작한 것만 같은 기분이었지만 그 기분이 과히 나쁘지 않았다.
그래, 스킬 그 자체는 나쁘지 않다. 스킬은 그리 쉽게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수아린의 사전설명도 있었고, 테스트 던전을 클리어한 애송이일 뿐인 그에게는 스킬 하나도 커다란 힘이 되어 줄 수 있을 테니까!
문제는 그에게 주어진 스킬 이름이었다. 무지는 용감이라니! 이 말이 칭찬으로 쓰인 역사는 적어도 정시우가 기억하는 한 없는데!
“무지는 용감, 이라구요……? 처음 듣는 이름인데요. 혹시 유니크?”
“유니크라는 게 중요하냐 지금!”
“중요하죠 그럼! 세상에서 그 스킬을 가진 게 오직 정시우 씨 한 명뿐이란 얘기인데요!”
안 되겠다, 이 여자와는 말이 통하지 않는다. 정시우는 일단 ‘무지는 용감’이라는 스킬이 어떤 능력인지를 확인해 보고자 했으나 생각해 보니 어떻게 확인하는 것인지를 몰랐다. 그가 허둥지둥하는 사이 문자열이 재차 갱신되었다.
[지하 플레이어가 되었습니다.]
[지하 플레이어 스킬 획득 ? 카오스 테일(패시브)]
[인벤토리를 얻었습니다.]
[경험치 정산 완료. 레벨이 9 올랐습니다.]
직후, 어마어마한 격통이 정시우를 덮쳤다.
“으으으으으으읍!”
“꺅!”
아무래도 수아린 역시 그와 같은 타이밍에 던전 클리어 보상을 받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녀가 한 일이라곤 던전을 탐험하며 정시우에게 조언을 해 준 것밖엔 없지만 그것만으로도 정산이 되었던 것일까? 궁금하기는 했지만 지금은 몸이 너무 아파 그녀에게 신경을 쓸 겨를이 없었다.
“끄으으으으으!”
그러나 정시우는 괜히 초인이 아니었다. 이 고통이 단지 육신에 그가 알 수 없는 힘이 깃들어 그를 강화시키는 과정에서 오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그는 이내 이를 악물고 제자리에 버티어 섰다.
던전과 마나, 하늘성과 개미굴, 그 안에 이레귤러로서 끼어 들어간 자신이 어떻게 변화되는지 보다 생생히 느끼기 위해서.
그리고 경악했다.
‘미친…… 이건 아까 스킬 하나 얻었을 때랑은 차원이 다르잖아!’
일반인, 엄격히 말하면 초인이지만 마나와는 관련이 없는 삶을 살아왔던 정시우가 어엿한 지하 플레이어로서 거듭나며 겪는 변화는 실로 어마어마했다.
우선 던전을 구성하던 대다수의 마나와 기록이 그에게로 흡수되며 그의 육신을 개변했다. 세포 하나하나에 마나의 씨앗을 불어넣어 그것이 싹을 틔워 성장할 수 있게끔 가능성을 개화시키고, 마나 없이 살아온 세월 동안 알게 모르게 노폐물이 쌓인 육신을 깨끗이 정화했다.
그것은 그의 몸을 구성하는 뼈를, 피를, 근육을, 살을, 피부를 철저하게 분해하고 새로 조립했으며, 어긋난 것을 바로 잇고 부족한 것을 채웠다.
일반적인 플레이어였다면 이 시점에서 변화가 끝났을 것이나, 정시우의 육신 가득한 불가해한 힘은 마나를 흡수해 크기를 더욱 불리는 데에 성공했다. 마나란 만물에 깃드는 힘인 만큼 당연히 그의 능력도 증폭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극적인 변화는 아니었지만, 마나와 만나 합쳐지는 과정에서 그의 초인력은 근본적으로 달라졌으며 무한한 발전 가능성을 품기에 이르렀다. 아직은 능력의 주인인 정시우도 예측하지 못할 초월자의 가능성을!
정시우는 서로 다른 성질의 이 두 가지 힘이 어떤 식으로 합쳐지고 발전하는지에 대해서까지는 알지 못했다.
그는 그저 육신에 자리하게 된 새로운 힘이 어떤 식으로 움직이는지 약간이나마 감을 잡는 데 성공했을 뿐이었다. 그리고 사실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대단했다.
[정시우]
[지하 플레이어]
[Lv 10]
[근력 ? 102 민첩 ? 101 체력 ? 113 마력 ? 10]
[패시브 스킬 ? 카오스 테일 Lv1, 무지는 용감 Lv1]
[액티브 스킬 ? 없음]
“으으으으으으.”
모든 경험치가 정산되어 성장이 끝난 후에도 정시우는 잠시간 제정신을 찾지 못하고 비틀거렸다. 그야 자신을 둘러싼 세상이 근본적인 변화를 맞이했으니 그도 당연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그것도 오래가지는 않아, 그는 곧 꼬리로 무게중심을 잡고 제자리에…….
“뭐시라?”
꼬리라고? 그는 다급히 엉덩이를 더듬었다. 그러자 꼬리뼈가 있어야 할 그 자리에 삐죽 튀어나온, 단단하고 기다란 무언가가 잡혔다. 굉장한 저항감이 있었지만 일단 그것을 자신의 눈앞으로 가져오니, 그것은 검은 비늘로 덮인 꼬리였다.
“…….”
정시우는 말을 잃고 말았다. 꼬리라니, 그것도 이런 괴상한 도마뱀 꼬리라니! 플레이어들에게 날개가 달린다는 것까지는 알고 있었지만 꼬리라니!
단순한 모형이겠거니 현실도피를 하고 싶었지만 그의 뜻대로 살랑살랑 자유롭게도 움직이는 꼬리를 보고 있자면 그런 생각을 할 수도 없었다.
어째서 날개가 아닌 꼬리가, 그것도 하필이면 이렇게 거무칙칙한 도마뱀 꼬리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자니 다시금 그의 눈앞에 문자열이 주르륵 나타났다.
[카오스 테일 Lv1]
[지하 플레이어와 개미굴을 잇는 열쇠. 카오스 테일로 땅을 파 개미굴에 입장하는 것이 가능하다. 신체의 일부로 취급되며 이를 이용해 공격과 방어를 할 수 있다. 스킬 레벨이 오르면 보다 강력해지며 일정 단계에 이르러 변화한다.]
“이걸로…… 땅을 파라고…….”
차라리 삽으로 파는 게 훨씬 빠르겠다! 한바탕 욕지거리를 내뱉고 싶어진 정시우였으나, 플레이어들이 자신들의 날개로 날아서만 하늘성과 던전에 입장할 수 있다는 사실로 미루어 생각해 보면 꼬리의 역할 또한 날개와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는 판단이 섰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플레이어를 맨몸으로 받아 내는 게 개미굴의 입장 조건이고, 테스트 던전을 클리어하면 정식으로 개미굴로 들어올 수 있는 열쇠를 준다는 건가. 이 세상을 이 꼴로 만들어 놓은 양반이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제법 머리를 쓰셨어그래.’
이 꼬리를 돋아나게 한 양반을 만나게 되거든 뭐라 한 마디 해 주고 싶었지만 당장은 무리다. 정시우는 우울한 심정으로 일단 지금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했다.
그것은 바로 방금 알아낸 ‘스킬 열람 능력’으로 자신이 보유한 두 번째 스킬, ‘무지는 용감’의 능력을 확인하는 것이었다.
[무지는 용감 Lv1]
[공포는 인식에서 오는 법, 당신에게 닥쳐올 위험을 모르고 있을 때 당신은 더욱 용맹해진다. 자신이 당하는 모든 기습공격의 데미지를 절반 이하로 줄이며, 자신이 모르는 함정이나 스킬을 상대로 결코 치명상을 입지 않는다. 스킬 레벨이 오르면 능력이 보다 강화되고 다양해진다.]
“음.”
플레이어와 던전에 대해선 잘 모르고 있는 정시우가 봐도 굉장히 좋은 능력이었다. 어쩌면 이것은 던전에 들어와서부터 정시우가 내내 개돌을 반복했기 때문에 얻은 스킬인 것일까? 스킬 이름이 기분 나쁘지만 이 정도 효용이라면 감수할 법 하다고 정시우는 생각했다.
“너는 어떻게 생각하냐, 아린…… 아?”
자신만의 세계에서 벗어난 정시우가 수아린을 돌아보며 말을 건네었다. 아니, 건네려 했다. 그러나 수아린은 지금 그의 말에 대답해 줄 상태가 아니었다.
“너…… 그게 뭐야?”
“저도 모르겠어요!”
수아린이 울먹이며 외쳤다. 그녀의 목소리가 이전보다 제법 많이 작게 들렸다. 아니, 작아져 있는 것은 그녀의 목소리뿐만이 아니었다. 그녀의 몸도, 하얀 깃털날개도, 옷도, 그녀의 모든 것이 작아져 있었다.
“서포터라는 게 이런 거였나 봐요!”
정시우의 손바닥 위에 올라올 수 있을 만큼, 작아져 있었다.
“그냥 온전히 살려 주면 될 걸 이렇게 치사하게…….”
“아, 아녜요. 저는 원래 죽어야 할 목숨이었던 걸요. 그것을 이렇게나마 살아갈 수 있게 되었으니 불만은 없어요, 불만은 없지만…… 그래도.”
지하 플레이어가 되어 마나를 확인할 수 있게 된 정시우의 눈에 수아린의 작은 몸뚱아리에 집중된 마력이 보였다. 테스트 던전을 클리어하고 10레벨의 지하 플레이어로 거듭난 정시우와 비교해도 그리 꿀리지 않는 양이지만, 결국 그 정도였다.
219레벨의 치유사였던 수아린은 더 이상 없다. 지금 그녀는 레벨 3의 서포터에 불과했다.
레벨과 마나를 모두 잃고, 심지어 옛날이야기에나 나오는 요정 같은 신세로 전락한 것이다. 정시우는 감히 그녀의 심정을 이해한다는 말을 해 줄 수가 없었다. 대신 그는 머리를 긁적이며 조심스레 한 손을 내밀었다.
“그…… 여기는 어두우니까, 울어도 잘 안 보일 거야.”
“흐으…… 고마워요, 오빠.”
“오, 오빠…….”
썩 나쁘지 않은 울림에 정시우는 무심코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수아린이 그것을 보지 않았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수아린은 그의 손바닥 위에서 한참을 울었고, 진정될 즈음엔 부끄러워졌는지 몸을 비틀며 그 위에서 빠져나왔다. 천사의 그것을 닮은 하얀 깃털 날개만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었기에, 날갯짓을 하며 허공에 부유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절 구해 준 사람이 오빠라서 정말 기뻐요. 하지만 부끄러우니까 이 이상은 얘기 안 할래요.”
“음, 뭐. 사실 난 이미 충분히 부끄러워.”
잘 안 보인다고는 했지만 사실 정시우와 수아린 모두 이 정도 어둠은 훤히 꿰뚫어 볼 수 있다. 두 사람은 민망한 미소를 교환하며 픽 웃어 버렸다.
“어, 어쨌든 저는 앞으로 시우 오빠를 전심전력으로 돕겠어요. 그렇게 하면 언젠가 분명 제 몸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믿어요.”
“목적의식이 있다는 건 좋은 일이지.”
정시우를 보라! 플레이어가 되겠다는 일념으로 십 년이 넘도록 빈둥…… 자기개발에 매진한 덕에 끝내 지하 플레이어로 거듭나지 않았는가!
“오빠, 현재 본인 상태의 확인은 끝나셨나요?”
“응.”
“그러면 이제 아이템 정산을 할 차례네요. 자, 저를 따라오세요.”
울고 개운해진 것일까, 수아린은 자신에게 맡겨진 서포터라는 역할에 집중하기로 마음먹은 듯이 보였다. 그녀는 깃털날개를 퍼덕이며 앞으로 나아가자 정시우 역시 그 뒤를 따랐고, 곧 어둠 속에서 희미한 백광을 발하는 제단을 발견할 수 있었다.
“여태 모은 비드를 이곳에 바쳐 보상을 획득해야 한다는 것은 이미 말씀드렸죠? 한 자리 수를 바치면 주로 포션이나 붕대 같은 소모품이 나오고, 두 자리 수 이상부터는 장비의 획득이 가능해지죠. 당연하지만 많이 바치면 많이 바칠수록 질이 높은 물건을 얻을 수 있고, 희귀한 확률로 특수한 마법이나 권능이 깃든 물건 또한 제단에서 획득 가능해요. 물론 테스트 던전에서 그렇게 휘황찬란한 물건이 나오지는 않겠지만요.”
그녀의 설명을 차분히 듣고 난 후, 정시우는 소모품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았다. 포션이나 붕대는 상태 회복을 위한 것, 하지만 그의 옆에서 퍼덕거리며 날고 있는 수아린의 능력은 다름 아닌 치유다.
비록 마나를 대부분 잃어버리기는 했으나 지금 그녀의 능력으로도 정시우를 치료하는 것은 문제가 없었다. 그렇다면.
“한꺼번에 바칠 수 있는 비드의 제한은 없는 거야?”
“일단 없다고는 알고 있는데…… 안 돼요, 잠깐만요!”
“돼.”
정시우는 씩 웃었다.
그리곤 151개의 비드를 한꺼번에 제단에 쏟아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