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
6화.
수아린은 그 작은 몸집으로 용케도 정시우의 고막이 아프도록 고함을 내질렀다.
“이게 대체 무슨 짓이에요! 시우 오빠는 이제 막 플레이어가 되었을 뿐인데다, 하늘성에 들어가지 못해 기초 보급도 받지 못하는 상황인데 그것을 대신해 줄 수 있는 비드를 이렇게 한꺼번에……!”
“너한테 치유능력이 있잖아. 그걸로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안 돼요!”
“그래도 이미 늦었어.”
“아아아아아아……!”
그렇다. 이미 늦은 것이다. 제단에 쏟아진 151개의 비드는 이미 흔적도 없이 모습을 감추었고, 그 결과 제단 위에 거무죽죽한 빛의 덩어리가 생겨나 있었다. 저 빛이 사라지기 전까지는 무엇이 튀어나올지 알 수 없었다.
“그렇다면 제발 갑옷이라도, 제발 급소를 보호할 수 있는 갑옷이라도!”
“왜 그렇게 흥분하는 거야, 정 뭐하면 다음에 다른 던전에 들어갈 때 갑옷 하나 사 입고 들어가면 되잖아. 지금이 어느 시댄데.”
“그걸로 통했으면 제가 이렇게 놀라지 않아요. 하지만 시우 오빠, 현대문물은 이 안에서 통용되지 않아요. 비단 화기나 통신기기뿐만이 아니라, 현대의 기술력으로 만들어 낸 냉병기와 장비류도 마찬가지라구요.”
던전이 대체 어떤 시스템으로 돌아가는 것인지 알 수 없게 하는 설명이었다. 하지만 그에 반박하는 정시우라고 아무 생각도 없는 것은 아니었다.
“어차피 여긴 테스트 던전이잖아. 테스트 던전에서 얻은 비드에 그리 큰 가치도 없을 텐데 그걸 또 몇 무리로 나누어 보상을 받는다고 다음 던전을 잘 헤쳐 나갈 수 있겠어? 그럴 바엔 보상을 하나로 줄여 쓸모 있는 것을 얻어 나가는 게 맞다고 봐.”
“물론 그건 하늘성의 플레이어들에겐 정설로 통용되는 얘기지만 여긴 개미굴인 걸요…….”
수아린은 정시우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하늘에서 추락하는 자신을 보고 힘껏 점프하여 붙잡았을 때부터 ‘아, 아무 생각도 없는 사람이구나.’ 하고 생각하기는 했지만, 지금 그를 보고 있자면 흡사 미지를 보며 즐거워져 더더욱 힘차게 돌진하는 사람 같지 않은가!
“정말이지 무식하면 용감하다더니…….”
“뭐 인마?”
자신이 얻은 스킬을 신경 쓰고 있던 정시우에게 크리티컬 히트! 그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으리라. ‘무지는 용감’이라는 스킬 이름이 실로 그의 성격과 딱 맞아떨어진다는 사실을 말이다.
“제가 말했잖아요? 이 테스트 던전에 등장하는 몬스터들은 결코 테스트 던전에 나올 만한 녀석들이 아니었어요. 그러니 나누어 바쳤더라도 충분히 쓸 만한 물건이…….”
“그렇다는 건 생각해 봐. 테스트 던전이 이 정도인데, 1단계 던전은 어떻겠어?”
“어…….”
듣고 보니 그랬다! 설득력 있는 주장에 수아린은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테스트 던전에서 웨어울프가 나왔는데 1단계 던전이라고 그보다 약한 몬스터가 나오겠는가? 그럴 리가!
“거기까지 생각해서 한꺼번에 비드를 바친 건가요!?”
“아니! 그냥 이왕 갖는 거 좋은 거 갖고 싶어서 다 던졌을 뿐이야!”
“그런데 뭐가 그렇게 당당하세요!”
수아린은 제 이마를 짚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똑똑한가 싶으면 한없이 단순하게 나오니 도무지 사람 성격을 종잡을 수가 없었다.
대개 던전이라는 극한 상황에 놓이게 되면 사람의 밑바닥까지 제법 쉽게 나오는 법인데, 정시우는 타고난 신력 탓에 모든 상황을 가볍게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었고 그것은 웨어울프며 자이언트 울프가 나타나는 던전이라고 예외가 아니었다.
그 덕에 활기를 잃지 않고 긴장으로 인한 실수도 하지 않는다는 장점은 있지만, 만약 나중에 그의 힘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사태가 닥쳐온다면 그때에 가선 정말 치명적인 일이 일어나고 말 것이다.
‘이제 내 역할을 알겠어. 난 단순히 시우 오빠를 플레이어로서 교육하고 보조하는 역할이 아니라, 여차하는 상황에 이 사람의 브레이크 역할을 해야 해…….’
수아린이 그 역할만 제대로 수행할 수 있다면, 필시 정시우는 근시일 내에 각국의 최선두에 서 있는 플레이어들에게 밀리지 않는 힘을 갖게 될 것이다. 그뿐이랴? 마나와 그가 타고난 신력이 조화될 경우 세계최강마저 노려볼 수 있었다.
세계최강, 너무나 막연한 그 단어를 수아린은 제법 현실성 있게 느끼고 있었다. 정시우가 조금 전까지 보여 준 모습에서 그 편린을 절실히 읽어 낸 탓이다. 물론 직접 말해 줬다간 이 단순한 인간이 어떻게 반응할지 몰라 입을 꾹 다물고 있었지만!
“아린아.”
“네에.”
“뭔가 엄청 큰 게 나오는데.”
“무슨…… 힉!?”
정시우의 말은 사실이었다. 151개의 몬스터 비드를 바친 그 자리에 뭉쳤던 검은 빛이 점차로 구체적인 형상을 취하기 시작했는데, 좁은 제단 위로 쭉 늘어나는 그 모습이 심상치가 않았다.
“정말로 좋은 건가 보다!”
“무작정 크다고 좋은 건 아녜요. 하지만 이건…….”
제단에서 아이템이 생성되는 과정에 대해서는 그 누구보다도 수아린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경험으로 미루어 판단했을 때, 지금 생성되고 있는 아이템은 정시우의 말마따나 굉장히 훌륭한 물건일 가능성이 높았다.
모여드는 빛 무리, 빛의 농도, 감지되는 마나의 자극, 그 외의 모든 요소를 고려해 봤을 때 말이다.
“무기네?”
“무기네요. 그것도…….”
이내 빛이 사그라지고, 그 안에서 어지간한 사람의 덩치만 한 망치가 나타났다. 손잡이가 정시우의 양팔을 합한 만큼 길고, 끝에는 정시우의 주먹을 다섯 배로 부풀려 놓은 듯한 검은 금속 덩어리가 매달려 있어 위협적이었다.
“슬레지 해머(Sledge Hammer)잖아.”
정시우가 그것에 손을 가져다 대자, 아까 그의 플레이어 정보나 스킬의 설명이 나타났던 것처럼 망막 한 켠에 필기체의 문자열이 나타났다. 해머의 정보를 알려 주는 것이었다.
[흑랑의 앞발]
[랭크 ? D++]
[공격력 ? 250 ? 750]
[숙련도 ? 0/240]
[옵션 - ???]
[자이언트 블랙 울프의 앞발에 담긴 거력을 그대로 담아낸 슬레지 해머. 단단하며 강력하지만, 그만큼 무거워 다루기 힘들다.]
“오오오오, 마음에 드는데.”
망치라니, 실로 남자의 로망에 어울리지 않는가. 정시우는 아이템 설명이 떡하니 표시된 무거워 다루기 힘들다는 말을 개무시하듯 한 손으로 그것을 쥐고 허공에 휙휙 휘두르며 만족스러워했다.
“내가 아이템이니 뭐니 하는 건 몰라도 이게 굉장히 좋다는 건 알겠어. 너무 좋은데!”
“히익!”
슬레지 해머 끝에 달린 쇳덩어리가 위협적으로 공기를 가르며 내는 소리에 수아린은 기겁하여 멀찍이 물러나며 외쳤다.
“아이템의 성능을 판단하는 기준은 랭크예요!”
“랭크? D++라는데.”
“D라는 건 레벨 100에서 150 수준에서 사용할 수 있는 무구라는 뜻이고, +가 하나 붙을 때마다 희귀도가 늘어나요! 종합해 보면 시우 오빠는 최소한 레벨 150까지는 그 무기를 들고 꿀릴 일이 없다는 얘기예요! 까딱하다간 C등급 일반 무기보다도 좋죠!”
“그렇게 멀찍이서 얘기하지 말고 가까이 다가와서 얘기해 줘.”
“오빠가 그걸 더 휘두르지만 않는다면요! 지금 전 거기에 스치기만 해도 사망이거든요!?”
조금 더 휘두르고 싶었는데, 하고 어린아이 같은 말을 지껄이며 정시우는 해머를 땅에 쿵, 박아 넣었다. 그제야 간신히 안도한 수아린이 그에게 다가와 아이템의 설명을 자세히 듣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템의 옵션이 물음표로 되어 있는 건 당연해요. 그 아이템을 오래 사용하며 아이템의 숙련도를 어느 정도 올려야, 아이템의 능력을 모두 확인할 수 있게 되거든요. 혹은 감정 스킬을 사용해서 알아내는 방법도 있긴 하지만…… 오빠, 제가 아는 감정 스킬 소지 플레이어를 소개시켜 드릴까요?”
“미쳤냐.”
“역시 그렇죠?”
정시우는 지금 당장 세상에 자신을 드러낼 생각이 없었다. 그는 가뜩이나 초인적인 힘만으로도 이질적인 존재인데, 이젠 타 플레이어들과 다른 지하 플레이어라는 특징까지 지니게 된 것이다. 그런 그에게 쏟아질 관심이 호의적이기만 할까? 정말 그렇게 생각한다면 말도 안 되는 낙관이다.
자유란 힘이 없으면 지킬 수 없다. 제아무리 정시우가 자신의 힘에 자신이 있다지만 세계적인 명성을 지니고 있는 탑 플레이어들에 비하면 쳐진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고, 그렇기에 그는 꿈에도 그리던 플레이어가 됐다고 만세나 부르며 동네를 뛰어다닐 생각은 없었다.
“당분간은 조용히 움직이자, 조용히.”
“후, 그렇게 생각해 주셔서 정말 다행이에요. ……그러면 지금부터 시우 오빠가 원하는 대로 조용히 움직이는 방법에 대해 알려 드릴게요.”
그녀의 서포터로서의 소명을 다할 순간! 정시우가 조용히 듣고 있자 수아린이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첫 번째는 바로 날개를 감추는 방법이에요. 아, 오빠는 꼬리군요. 어찌 되었든 플레이어로서의 상징인 ‘키(Key)’를 감추기 위해선 그 부분에 머무르는 마나를 체내로 거두어야 해요.”
“마나…… 아, 이건가.”
플레이어로 거듭나는 순간 정시우의 몸을 개변시킨 바로 그 이질적인 기운을 말하는 것이리라!
물론 생애 처음 마나를 접한 그가 그것을 다루기란 어려운 일이었지만, 존재를 뚜렷이 의식하고 있는 만큼 몇 번의 시도 끝에 꼬리에 머무르는 마나를 자신의 몸 안으로 거두는 것이 가능했다.
“…….”
그러자 정말로 검은 도마뱀 꼬리가 스르륵, 사라져 버렸다. 너무 놀란 나머지 꼬리뼈 부근으로 마나를 되돌리자 다시 꼬리가 돋아났다.
“오, 오오. 오오오?”
“…….”
정시우가 정신 사납게 꼬리를 집어넣었다 빼냈다 하는 꼴은 딱 초딩처럼 보였지만 수아린은 그것을 지적할 정신이 없었다. 고작 그녀의 말을 들은 것만으로 쉽게 마나를 다루는 정시우를 보며 기가 막혔기 때문이다.
“시우 오빠…….”
“응?”
“아무, 아무것도 아녜요.”
그러나 다시 참았다. 대단하다, 대단하다고 속으로만 중얼거리면서, 그녀는 그저 밝게 웃을 뿐이었다.
‘기대된다.’
사랑도 공포도 아닌 견딜 수 없는 기대감에서 오는 심장의 거센 두근거림을, 어떻게든 감추었다. 물론 그녀의 마음을 모르는 정시우는 꼬리를 완벽히 감춘 후 그녀에게 이렇게 물어볼 뿐이었다.
“그래서 두 번째는 뭐야?”
“네? 아, 두 번째! 두 번째는 바로 인벤토리예요. 플레이어가 되면서 지급 받으셨죠?”
“인벤토리?”
그렇게 중얼거리자 눈앞으로 어째 게임에서 많이 본 듯한 격자 구조의 반투명한 창이 나타났다. 어설프게나마 마나를 다루게 된 정시우에겐 그 격자의 창에 마나가 감도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모든 플레이어에게 수여되는 아공간이에요. 설마 지하 플레이어에게는 지급이 되지 않는 건가 했는데, 다행이네요. 어쨌든 플레이어 소유의 물건은 모두 그 인벤토리에 넣는 것이 가능해요. 핸드폰이나 간식거리 같은 것도 상관없구요. 아, 물론 부피나 수량에 따라 인벤토리에 넣을 수 있는 양이 제한돼요.”
“이제야 좀 내가 아는 게임 같아졌는데?”
정시우는 피식 웃으며 그 인벤토리에 자신이 들고 있던 해머, 흑랑의 앞발을 가져다 대었다. 그러자 해머가 사라지며, 인벤토리의 격자 중 일부에 해머의 형상이 나타났다.
2X4, 과연 대형 병기에 어울리는 칸! 그가 다시 그 부분에 손을 가져다 대자 해머가 손에 잡혔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손만을 빼내었다. 시험 삼아 다시 인벤토리라고 중얼거리자 격자가 눈앞에서 사라졌다.
“굉장히 심플한걸.”
“그야 하늘성의 모든 것은 플레이어의 편의에 맞추어 만들어졌으니까요. 자, 이 두 가지만 기억하시면 앞으로 어딜 가서든 눈에 띄지는 않으실 거예요. 물론 마력에 민감한 다른 플레이어들이 작정하고 시우 오빠를 탐지하지만 않는다면요.”
그리고, 하고 말하며 빙그르르 돌아선 수아린이 어느덧 제단 근처에 생겨난 빛의 링을 가리켰다. 그 링은 꼭 서커스에서 호랑이가 사육사의 지시를 받아 통과하는 불꽃의 링처럼 거대했다.
“저게 뭐라고 생각하세요?”
“저 안으로 들어가면 될 것 같은데!”
“맞아요. 플레이어의 편의에 맞추어져 있다고 방금 말씀드렸죠? 하늘성의 던전 게이트와 완전히 똑같이 생겼네요. 저것을 통해 지상으로 나갈 수 있겠어요.”
“오오오오오! 질문이 하나 있는데!”
“하세요!”
선생 역할에 맛 들린 수아린에게 정시우는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이대로 웃통 벗은 채 나가면 온 동네에 노출증 환자로 소문날 것 같은데 어떻게 안 되냐?”
“아…….”
결론부터 말하면, 안 되었다.
링을 통해 지상으로 빠져나온 정시우는 누구보다 빠르게 남들과는 다르게 달려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