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3화
나가로가 신경질 내며 물었다.
“… 너… 애초에 알고 있었구나! 너 역시 자정이 되어서도 강제 로그아웃 안 당한다는 걸……!”
“그래 알고 있었지.”
일전에 보였던 강기찬의 표정과 태도.
너무도 태연자약하지 않았나.
이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자정이 되어도 유저로서 있을 수 있기에 그랬던 것.
마침, 강기찬도 이에 대해 생각 중이었다.
‘나도 강제 로그아웃 안 당한 건 아니지. 강제 로그아웃 당하기는 했지.’
강기찬은 명백히 강제 로그아웃 당했다.
그런데도 일반인이 되지 않은 것은, 단, 하나의 계정만 강제 로그아웃 당했을 뿐, 또 다른 계정은 여전히 로그인 중이어서다.
계정이 하나가 아니라 둘, 그것도 동시 로그인 중이었다.
암살자 계정이 강제 로그아웃 당했을 뿐.
네크로맨서 계정은 여전히 로그인 중이었다.
이 차이점 때문에.
암살자 계정은‘본서버’계정.
네크로맨서 계정은‘테스트서버’계정.
테스트서버는‘로그인 금지 시간’ 따위 없으니까.
그 덕에 겉보기에는 강제 로그아웃을 전혀 당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 것이다.
게다가 스탯 & 프리스탯포인트를 몽땅 물리 방어력에 분배했으니, 데미지가 크게 떠봐야 2, 그 외에는 죄다 Miss가 뜨는 게 다반사일 수밖에.
‘급소를 공격당했다면 모를까, 다른 부위는 사실상 방어력 무한이지. 물론, 급소를 공격당했어도 피하거나 막았겠지만…….’
나가로는 급소를 노리지 않았다.
방심해서가 아니다.
굳이 그럴 필요까진 없어서.
어차피 강기찬이 일반인인 줄 알았고, 그랬다면 어느 부위를 가격해도 즉사시킬 수 있기에.
다만, 강기찬이 일반인이 아니었을 뿐.
물론, 이에 대해서 구구절절 설명하진 않을 거다. 나가로는 죽을 때까지 호기심을 떨치지 못할 것이었다.
‘상관없지.’
강기찬으로서는 그편이 더 흥미진진했다.
한편, 나가로가 혀로 입술을 핥았다.
“하! 결국… 내가 나서야 하는가?”
“무슨 소리야? 아까는 안 나서려고 했냐?”
“내가 유저고 네가 일반인이었다면 한 방에 끝났을 일이었다. 근데 네가 유저인 바람에 일이 꼬였어. 나는 승률 100%가 아닌 싸움에는 나서지 않거든. 그런데 이제는 나서야 하지 않나…….”
“그래? 승률 100%일 때만 나선다라… 나랑은 정반대네.”
“그런가?”
“나는 승률이 낮은 싸움일수록 더 나서고 싶어 하거든.”
나가로는 강기찬을 미친놈 보듯 보았다. 애써 욕을 하지 않고선 비꼬았다.
“그런데 어쩌나… 네가 승률이 많이 높아졌구나.”
“그렇게 되었네…….”
강기찬이 보통 승률이 높아진 게 아니다.
강기찬의 레벨은 9,999.
나가로의 레벨은 9,900.
99레벨 차는 큰 편이었다.
강기찬이 압도적으로 유리해진 것.
다른 유저도 그럴 지인데, 승률 100%만 고집하던 나가로에게는 더더욱 큰 격차로 느껴지는 수밖에.
강기찬이 말했다.
“근데, 나는 승률이 높은 것도 좋아. 승률이 낮은 싸움을 좋아하는 것도, 결국에는 승리할 걸 전제로, 자신이 있으니까, 거든.”
“…….”
나가로는 강기찬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곧 전투에 돌입할 터.
그에 대한 가상 시뮬레이션을 돌리는 게 우선이었다.
그렇지만,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는 않았다.
‘불행 중 다행인 점은, 그나마 99레벨 차라서 공격이 통한다는 점이구먼…….’
100레벨 차가 나는 순간 공격이 일절 안 통하지 않나. 그것보다는 낫다는 사실에 위안을 삼기로 했다.
‘그렇다 한들, 데미지가 2가 고작이긴 하지만…….’
희망을 품었다 한들 절망이 더 큰 것 또한 현실이었다.
급소를 노리는 것 외에는 승산이 없었다.
아니, 승산을 따질 것도 없었다. 최후의 발악인 것이다. 강기찬이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급소를 노출하지 않을 테니까.
실질적으로는 어떠한 가망이 없는 셈.
“끝내자.”
강기찬이 명령했다.
가고일이 날개를 펼치고선 허공으로 솟구쳐 올랐다. 급강하하면서 전방으로 훅- 쏘아졌다.
그것만으로도 나가로의 동공이 흔들리기엔 충분했다.
저 속도……!
도대체 레벨 몇짜리 가고일이란 말인가!
직후, 나가로는 결심했다.
‘도망가자…….’
도망치려 했다.
‘다음을 기약해야 한다.’
지금은 너무 불리했다.
패배할 확률이 99.9%다.
뻔히 결말이 그려지는데 곧이곧대로 따라갈 수는 없는 노릇. 괜한 오기를 부리기보다는 훗날을 기약하고 물러서는 게 현명한 판단이리라.
다행히 도주에는 자신 있었다. 그의 직업인 사무라이는 신속한 기동력을 보장해주니까.
날아오는 가고일을 등지고선 내달리기 시작했다.
곧바로 이동 계열 스킬을 발동시켰다… 아?
“…… 어!”
저도 모르게 탄성을 내질렀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예기치 못한 현상이 발생했기에.
‘왜, 왜 안 돼?’
이동 계열 스킬을 썼는데 써지지 않았다.
‘이런 적은 없었는데……?’
렉은 걸릴지언정 써지지 않은 적은 없었다.
아니, 안 써지면 왜 안 써지는지 알려주었었다.
마력이 부족하면 마력이 부족하다고.
쿨타임이 멀었으면 쿨타임이 멀었다고.
그러한 알림이 떠야 마땅했다.
그런데 그런 것들은 하나도 안 뜬다?
단지 스킬만 안 써진다?
믿기지 않았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지?’
오류인 것 같았다.
하필, 이 시기에……!
달리면서 계속 스킬을 시도해보았으나 감감무소식이었다.
그때였다.
훅!
가고일이 빠르게 다가왔다.
발톱으로 나가로의 어깨를 짚고선 내리눌렀다.
콰당!
나가로가 앞으로 고꾸라뜨렸다.
그 위를 짓밟아 제압했다.
“아윽-!”
역시, 이동 계열 스킬 없이 비행 몬스터의 추격을 따돌리는 건 무리였다. 그렇게 제압당해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아무리 애를 써봐도 떨쳐내고 일어서는 건 불가능했다.
그런 그의 곁으로 그림자라 드리워졌다. 누군가의 발목이 보였는데 누군지 안 봐도 훤했다. 그 이름을 불렀다.
“… 강기찬!”
“왜 안 되는지 신기하지?”
“뭐?”
“스킬을 썼는데 안 써진 것 같은데? 내 말이 틀렸어?”
강기찬의 말에 나가로는 놀랐다.
‘내 상태를 안다고?’
맞다. 하지만 맞는다고 시인하기도 그랬다.
이내, 강기찬이 알만하지 싶었다.
도망치는 주제에 스킬도 안 쓰고 뛰기만 했으니.
“어?”
나가로는 문득, 허전함을 느꼈다.
시선은 제 손으로 가있고.
그렇게 보게 되었다.
‘내 장갑!’
착용 중이던 장갑이 없다?
‘언제부터……?’
벗지도 않았을뿐더러 벗겨질 일도 없다. 자연스레 시선이 손목과 팔로 옮겨갔는데,
‘이, 이것도?!’
… 평상복이었다. 이제야 착용감도 달라졌음을 느꼈다. 입고 있던 갑옷도 벗겨져 있는 것. 허리춤에 차고 있던 검까지……!
착용했던 무기와 장비가 죄다 사라진 것.
이 현상이 뜻하는 바는 하나다.
일반인이 되었다는 것.
강제 로그아웃이었다.
‘그래서 스킬도 쓰지 못했던 거구나…….’
퍼즐 조각이 하나씩 맞춰져 갔지만, 가장 큰 조각이 보이지 않았다.
이렇게 된 까닭 말이다.
‘잠깐……!’
돌이켜 보니 윤곽이 잡혔다.
‘달려오면서 무언가 알림창이 떴었던 것 같기도 한데…….’
워낙 다급했던지라 채 몰랐다. 알림창이 떴었던 것 같았다. 알림창 기록 목록을 열어봄과 동시에 강기찬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제 조치가 취해졌나 보네.”
“조치?”
“응, 버그 신고했거든.”
“버그 신고를 했다고?”
“그래, 시차 버그…….”
맞지 싶었다.
시야에 맺힌 알림창은 운영자한테서 온 것이었으니…….
< 부정행위 조치 안내 >
[안녕하세요, GM자쟈입니다.]
[귀하의 부정행위가 신고 접수가 있었던바, 면밀한 조사 끝에 버그 사용 정황이 확인되었습니다. 운영정책에 따라 현 계정의 영구정지가 취해졌음을 알려드립니다.]
“! 여, 영구정지? 무슨 말도 안 되는…….”
나가로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반면, 강기찬의 얼굴에 화색이 돋았다.
“아이쿠야! 영구정지 당하셨어요?”
비꼬는 말투가 진하게 묻어나왔다.
형식적인 물음이었다.
진작 알고 있었기에.
“당연히 영구정지 당했겠지, 내가 신고했으니까.”
그랬다.
강기찬이 GM자쟈에게 신고했다.
여기, 나가로라는 유저가 버그 썼다고.
“… 왜 신고했지?”
“왜 신고했냐니?”
“그러면 너도 못 쓰지 않나?”
나가로는 생각했다.
자신이 강기찬이었다면 버그 신고 안 했을 거라고.
어차피 자신은 죽은 목숨이나 다를 바 없다.
자신을 죽인 다음에 시차 버그를 쓰면 될 일 아닌가?
그런데 제 스스로 그 방법을 차단했다.
“도대체 왜?”
설마 정의를 위해서? 자신의 이익을 포기한 걸까? 속내는 모르나 드러난 결과만 보아선 그렇다고 볼 수 있었다.
아니, 솔직히 그거 외에는 이유를 못 찾겠다.
새삼 강기찬에 대한 평가가 달라지는 순간이었다.
뒤의 강기찬의 말만 아니었다면.
“내가 못 쓰다니? 아닌데? 나는 쓸 수 있는데?”
강기찬이 시차 버그를 쓸 수 있다고 단언했다.
이에, 나가로는 어이가 없었다.
강기찬이 헛소리하는 거로 치부했다.
‘시차 버그를 쓸 수 있긴 뭘 쓸 수 있어?!’
이미 운영진에게 신고가 접수되고 조치가 취해진 뒤일 터. 시차 버그도 막아버리는 중일 거다.
한데 무슨 수로 시차 버그를 쓸 수 있다는 걸까? 망상에 빠진 걸까?
강기찬이 해명했다.
“… 회귀하고 쓴다니깐…….”
회귀하고 난 뒤에는 시차 버그 발동 조건은 남아있지만, 아무도 모르는 상태가 될 터. 혹시 모르니 회귀하고 나서 나가로는 입막음을 해버리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하…….”
나가로는 이에 대해서 이해를 하지 못하니 다르게 받아들일 수밖에.
“그놈의 회귀…….”
강기찬이 미쳐도 단단히 미쳤다고 보았다.
“진짜라니깐?”
“그래… 진짜라면 나도 회귀하고 싶다…….”
하긴, 강기찬이 미친 걸 걱정할 때가 아니었다. 누가 누굴 걱정하나, 당장 죽을 내 걱정이나 해야지…….
죽을 때가 되니 괜히 후회가 밀려왔다.
‘… 도대체 어디서부터 일이 잘못된 거지?’
되짚어보니 금세 답이 나왔다.
강기찬에게 시차 버그에 대해서 알려준 것부터 잘못되었다. 그로 인해 버그를 자백한 꼴이 되었고 신고당해 영구정지, 일반인이 되어 일말의 도주 가능성까지 스스로 없앤 꼴이니까.
‘… 단지 누군가에게는 비밀을 토로하고 싶었을 뿐인데. 아니, 내가 잘못한 게 아니야!강기찬이 너무 특별한 거지!’
누가 알았겠나, ‘로그인 금지 시간’에 강제 로그아웃 안 당하는 법이 또 있을 줄.
그것도 많고 많은 유저 중에서 하필 강기찬이 알고 있을 줄.
그러니 자연스레 드는 의구심.
“너… 너도! 너도 버그를 썼지!”
“응? 아닌데? 버그 아니야. 테스트서버 계정이라서 그래.”
“테? 테뭐?”
나가로는 강기찬의 말을 무시했다.
“버그가 아니라니,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버그가 아닌데도 버그와 똑같은 효과를 낼 수 없을 터.
강기찬도 버그를 썼을 것이다.
그제야 의문 하나가 해소되었다.
버그 신고해서 못 쓰지 않느냐 했을 떄, 강기찬은 쓸 수 있다고 하지 않았나.
‘나와는 다른 버그를 사용 중이었던 거야……!’
거기까지 이르니 마음이 조급해졌다.
‘시, 신고해야 한다!’
죽을 때 죽더라도 신고는 하고 죽고자 했다.
그게 강기찬에게 할 수 있는 마지막 반격이 될 테니.
자신의 버그를 막았으니 강기찬의 버그도 막아야 하지 않겠나.
그렇게 조심스레 스마트폰을 꺼냈다.
일반인이라 허공에 인터넷 창 못 띄우니까.
직접 스마트폰을 통해 신고해야 했다.
물론, 신고할 수 없을 것이다.
강기찬이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그러게 두지 않을 테니.
‘내가 강기찬하고 처지가 바뀌다니.’
버그에 대해 안심하고 말할 수 있었던 것도, 자정이 지나 강기찬이 일반인이 된 줄 알고 그랬다. 일반인이 신고하려면 반드시 스마트폰을 꺼내야 하고, 그걸 제지할 수 있었기에.
그런데 어느새 처지가 뒤바뀌었다.
역으로 자신이 스마트폰을 꺼내고 신고까지는 못 할 테니까. 그래도 최후의 발악이라도 해보고자 하는 거고.
그런데,
‘어?’
강기찬이 제지를 안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