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2화
강기찬이 간절히 빌었다.
“제발… 버그에 대해서 자세히 가르쳐 주면 안 될까?”
나가로가 되물었다.
“내가 왜? 왜 가르쳐 줘야 하지?”
“가르쳐주고 싶지 않아?”
“…….”
나가로는 정곡이 찔렸다는 듯, 잠시 침묵했다.
이에 강기찬이 더 찔러버렸다.
“어차피 난 죽은 목숨이잖아.”
나가로가 쪼갰다.
“그래… 넌 죽은 목숨이지. 이제야 사태 파악이 되나?”
지금까지는 강기찬이 다소 담담한 기색이라 싱거웠었다.
반면 지금은 흡족할 만큼 울상이 되어있었다. 시작부터 비굴한 게 아니라 이제와서 현실을 직시하고 비굴해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래서 더욱 쾌감이 있었고.
“나도 하나 묻자, 넌 왜 12시가 될 때까지 날 공격하지 않았지?”
“우리가 만난 지 5분 됐어. 그리고 네가 호기심 자극해서 시간 끌었잖아.”
“그렇긴 하지… 그래도 시간이 얼마 안 남았으니까, 좀 서두르는 기색이라도 있었어야 하는데, 그마저도 없었잖아?”
“에휴, 시계가 고장 나서 시간을 잘 못 봤어, 11시 55분 아니라 10시 55분으로 되어있더라고. 아직 시간 여유가 있는 줄 알았지. 1시간 이상이나…….”
당연히 거짓말이었다.
그렇다고 시계를 보여달라 하고 확인하진 않을 터. 부드럽게 넘어가지 싶었다. 그리고 그랬다.
“그래? 고작 그런 이유로? 참, 멍청하구먼. 유저가 시간 관리에 그리 둔해서야, 네가 정말 만렙이라면 단지 그 이유로 죽는 거다. 알겠나?”
“…… 그러니까 가르쳐 줘. 그 버그는 어떻게 하면 쓸 수 있는 건지…….”
“뭘 그렇게 알고 싶어 하는 건지?”
“대단하잖아, 시차 버그는 초창기에 다들 시도해보려 했지만, 게임사에서 막았던 거니까.”
대단하다는 표현이 통한 걸까? 나가로의 입가가 찰나의 순간 씰룩이는 걸 포착했다.
‘표정 관리하느라 애쓰는군, 자신이 압도적으로 유리해진 지금도 냉정한 척하느라 고생이 많아.’
강기찬이 잘못 본 게 아니었다. 나가로는 마음이 기운 듯싶었다.
“죽기 전 마지막 소원이다, 이건가?”
시차 버그에 대해서 가르쳐줄 기세다.
이 흐름을 이어가기로 했다.
“그래, 적어도 죽기 전에 궁금한 거 하나 정도는 풀고 갈 수 있잖아?”
“불쌍하긴 하니까, 내 특별히 가르쳐주도록 하지.”
“고맙다.”
나가로가 시차 버그에 대해서 공개했다.
“시차 버그에 알게 된 건 우연이었지.”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 보통 비행기 안에서는 로그아웃하잖아?”
“그렇지.”
유저들은 로그인 가능 시간을 아낀다.
비행기 안에서는 로그인할 필요가 없기에 로그아웃해놓는다.
하루 12시간밖에 로그인 못 하는데, 그 아까운 시간을 굳이 비행기에서 낭비하고 싶지는 않았기에. 어차피 필요할 때 곧바로 로그인할 수 있고, 무엇보다 유저협회 소속 유저들이 배치되어 있다. 혹시 모를 분란을 대비하고자. 완전한 무방비 상태는 아니란 말씀.
그런데,
“국경을 넘을 때, 로그인되어 있으면 돼.”
나가로는 로그인 중이어야 한단다.
역시 접근 방식부터가 남달랐다.
“그게 다냐?”
너무 간단하다.
비행기에서 로그인한 상태로 국경을 넘으면 시차 버그를 쓸 수 있다?
그런 조건을 충족한 유저가 없을까?
누군가 얻어걸리기 충분한 조건이다. 그러는 유저의 수가 한두 명이 아닐 터. 지금까지 안 밝혀진 게 이상한 것이다.
고로, 저 조건이 다가 아닐 거라 보았다.
나가로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당연히 조건이 더 있지.”
“뭔데?”
“로그인한 상태에서 하루에 국경을 두 번 넘어서야 한다.”
“그래?”
로그인한 상태에서 하루에 국경을 두 번 넘어서는 것.
그래야 시차 버그를 쓸 수 있단다.
‘확실히 저 정도 조건이라면 아직 발견되지 않을 만하네.’
시차 버그 사용조건이 까다롭다.
국경을 한 번 넘을 때도 로그인한 상태로 있는 유저는 거의 없다. 로그아웃하는 걸 깜빡하는 게 아닌 다음에야.
전부 비행기 탈 때, 그 즉시 로그아웃해두기에.
하물며 로그인한 상태에서 하루에 국경을 두 번 넘는다?
그날‘로그인 가능 시간’을 통째로 날리는 격이다.
미친 짓인 것.
그랬기에 물을 수밖에 없었다.
“이 정보…, 너만 아는 거지?”
버그는 아는 유저가 많으면 많을수록 수명이 짧아진다.
한 번 쓰고 말면 모를까, 쓰면 또 쓰고 싶은 법이고, 그러다 보면 결국엔 게임사에 들키기 마련이다.
그렇게 사라지는 게 버그의 운명.
그런데도 안 들키고 있는 버그가 있다?
많이 써봐야 두세 번 썼을 것이다.
“그렇지.”
“네 경험이냐?”
“그래.”
나가로가 시인했다.
역시 경험담이었던 것.
강기찬이 물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누가 시켜도 못 할 짓이다.
또한, 우연히 얻어걸릴 수도 없다.
버그 발동 조건은 작정하고 실행에 옮겨야 하는 거기에.
나가로가 대답했다.
“비행기에서도 불안해서 로그아웃 못 하겠더군.”
“그러면 로그인 가능 시간을 날리는 건데도?”
“그래.”
사람마다 가치관이 다르다.
하지만,
‘로그인 가능 시간을 포기하고 심리적인 안정감을 선택하는 놈이 있을 줄이야.’
나가로의 경우는 아주 드물 것이다. 최상위 랭커로 갈수록 시간이 더 귀해지기에.
“… 로그인해둔 상태가 낫지. 안전하잖아?”
“…….”
“물론 기내에 유저 협회 경비원도 있고, 내 부하들도 있지만, 내가 좀… 남을 못 믿는 성격이거든. 그래서 비행기처럼 가장 안전한 공간마저 불안해. 그러다가 알게 된 거다. 물론 처음부터 알았던 건 아니고, 꽤 오래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되었고, 확신하게 되었지.”
역시 우연히 얻어걸린 게 아니었다. 히든피스처럼 친절히 알려주는 게 아니었기에.
스스로 버그인 것을 알아차려야 하는 상황.
그걸 알아가는 과정도 순탄치 않다.
1. 외국에서‘로그인 금지 시간’에‘강제 로그아웃’이 안 되어 여전히 유저라는 걸 알기.
2. 이 현상이 우연이 아니라 버그인 것을 인지하기.
3. 그 원인이 무엇인지까지 찾아내기.
이 과정을 밟아야지만, 비로소 버그를 손에 넣었다고 할 수 있었다.
아니면 우연이라 치부하며 넘어갈 수도 있다.
찾아낸 게 용한 것.
‘버그 중에선 알아차리기가 하늘의 별 따기 급이네…….’
나가로의 심각한 불안감 증세가 역으로 복이 된 격.
강기찬은 나가로의 성격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 정도로 불안해서 잠은 어떻게 자냐?”
“다 방법이 있지.”
“…….”
“그래서 될 수 있으면 해외 원정은 안 가려 한다.”
“그래, 이해한다…….”
어쨌거나 강기찬은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
“… 덕분에 공짜로 버그를 얻었네. 회귀하고 잘 써줄게.”
“응? 무슨 소리지?”
나가로는 의아해했다.
강기찬이 한 말 중에 이상한 게 있었기에.
“회귀?”
“왜?”
“회귀? 시간을 되돌리는 걸 말하나? 과거로 돌아가는……?”
“그렇지.”
“그래… 좋겠구나.”
시간 회귀?
개소리다.
그거야 혼자만의 망상이라 치부하고 넘어가면 그만이었다.
죽기 직전인데 정신이 안 나가면 그게 이상할 터.
충분히 이해할 대목이었다.
반면,
“잘 써준다고……? 그게 무슨 소리지?”
이건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물론, 버그 발동 조건을 알려준 건 맞다.
하지만, 그걸 들어봤자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곧 죽을 목숨이지 않나.
본인이 가장 잘 알 텐데.
‘잘 써준다는 표현을 쓰다니…….’
마치 이번에 죽지 않고 살아서 잘 써준다는 뉘앙스를 풍기지 않나.
때마침 강기찬이 설명해주었다.
“말 그대로야, 앞으로 잘 써준다고…….”
나가로가 정색했다.
“… 넌 곧 죽을 거다.”
“안 죽으면 되잖아.”
“뭐?”
“죽여봐.”
강기찬의 도발에 기꺼이 응수해주기로 했다.
“그래. 어차피 지금 죽이려던 참이었다.”
버그 발동 조건을 알려주기 위해 죽이지 않았을 뿐.
버그 발동 조건을 알려주었기에 죽여야만 했다.
‘그래도 알려주니까, 속이 다 후련하네.’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는 거랑 누군가에겐 말한 거랑은 천지 차이였다.
나가로가 검을 빼들었다.
그리고 강기찬의 면전으로 신속히 이동했다.
“?”
일순, 강기찬의 표정을 보았다.
너무 초연했다.
죽음 따윈 두렵지 않아서?
아니다.
죽지 않을 거라는 확신.
그것이 묻어나왔다.
‘어째서?’
역설적이게도 나가로는 죽일 수 있다는 확신을 갖고 있었다. 서로가 상반되게 믿음을 가지고 있으니, 누가 그릇된 것일까?
하나, 의문은 뒤로 미루기로 했다.
결과를 보고 생각해도 늦지 않을 거라서.
쉬-이이익!
검을 강기찬의 복부에 찔러넣었다.
그리고 빼낸 뒤, 사선으로 내리 베었다. 어깨에서 좌측 허리까지. 그런 다음 칼을 거두어들였다.
여기까지 걸린 시간이 1초 남짓.
직후, 강기찬의 안색을 살폈다.
‘어떠냐…….’
아무리 죽음에 초연했다 한들, 막상 죽을 때가 되면 얼굴이 일그러지기 마련이다. 그러한, 천천히 죽어가는 모습을 감상하려고 했다.
그런데,
강기찬의 몸 위에 뜨는 문자열이……?
-1, Miss- -2, Miss! -1, Miss!!!
“!”
Miss라고? 기껏해야 데미지 2라고!
이 정도면 공격이 먹히지 않은 거다!
“…….”
그러고 보니, 강기찬의 얼굴이고 몸, 어디에도 상흔이 남지 않았다.
멀쩡했다.
방금 공격이 환각이었나 싶을 정도로.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분명 속으로 말한 거다.
한데,
“어떻게 이럴 수가 있나 싶지?”
마치 속내를 읽기라도 하듯, 강기찬이 똑같은 대사를 읊었다. 이에, 노려보았다. 무언가를 안다는 표정과 말투.
‘애초에 이렇게 될 줄 알았다는 듯이…….’
강기찬이 말했다.
“이렇게 될 줄 알았지.”
“뭐냐?”
“나 만렙이라니까, 그리고 내 스탯, 물리 방어력에 다 분배했어.”
“아니, 그걸 말하는 게 아니야!”
강기찬이 만렙이라서 공격이 안 통한다?
스탯을 물리 방어력에 다 분배했다?
무슨 개소리인지도 몰랐다.
그리고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강기찬이 만렙이고, 물리 방어력이고 나발이고, 이젠 나가로의 공격이 통해야 했다. 왜냐하면, 지금 시각은 12시 15분이니까. ‘로그인 금지 시간’이란 말씀.
즉, 나가로는 유저이고 강기찬은 일반인이다.
그런데, 나가로의 공격이 강기찬에게 안 통한다?
말이 안 되는 현상인 것이다.
‘무언가 잘못되었어, 근데 대체 뭐가 잘못된 거지?’
잘못된 게 있다.
한데 뭐가 잘못된 건지 알 수 없으니 속이 터질 것만 같았다.
그렇게 머릿속이 하얗게 물들어갈 때쯤.
강기찬이 읊조렸다.
“나와라.”
펑!
강기찬의 곁에 무언가가 나타났다.
거대한 생명체.
“… 저, 저건…….”
나가로는 저것의 정체를 알았다.
아니, 유저라면 모를 수가 없다.
“가… 가고일?!”
익룡같이 생긴 몬스터.
가고일이었다.
“뭐… 뭔…….”
여전히 사태 파악이 안 되었다.
왜… 강기찬의 곁에 가고일이 나타난 걸까?
강기찬이 가고일을 소개했다.
“내 권속이다.”
“…권속? 스, 스킬을 쓴 거냐?”
“그래.”
“넌 암살…….”
“…자가 아니냐고? 이거 현기현한테도 말한 건데, 요새는 직업 하나 가지고는 살기 팍팍하잖아? 적어도 투잡은 뛰어야지. 그래서 네크로맨서도 구했어.”
“네크로맨서?”
“어.”
“…….”
강기찬이 네크로맨서?
출시되지 않은 직업 아닌가?
아니, 그 전에 암살자라면서?!
정말 직업이 두 개라고?
총체적 난국이었다.
그렇지만, 믿지 않을 수도 없었다.
암살자인 것도 확실했고.
눈앞에서 버젓이 가고일을 불러내기도 했으니…….
이중직업인 건 인정할 수밖에.
하지만, 하나는 부정하고팠다.
‘네크로맨서는 아닐 수도 있다! 몬스터를 권속으로 부리는 직업은 몇 있잖아! 몬스터를 불러낸 것만으로는 네크로맨서라고 볼 수는 없다!’
강기찬의 두 번째 직업은 네크로맨서가 아닐 것이다.
아니, 네크로맨서가 문제가 아니었다.
무슨 직업이든 간에, 몬스터를 불러냈다는 것은? 스킬을 썼다는 의미, 즉 유저라는 소리다. ‘로그인 금지 시간’에 말이다.
“… 강기찬, 너… 강제 로그아웃을 안 당한 거냐?”
“어, 보시다시피, 지금도 유저지.”
괜한 질문이었다. 일반인 신분으로 가고일을 불러낼 수는 없으니까.
나가로는 충격을 받았다.
‘로그인 금지 시간에 ‘강제 로그아웃’을 당하지 않을 수 있다니.’
물론 자신도 로그인 금지 시간에 유저지만.
그건 오직 자신만의 특권이어야 했다.
그게 깨졌으니 맨정신을 유지하는 건 어려웠다.
‘… 어, 어떻게 유저로서 남아있을 수 있단 말인가? 나처럼 시차 버그를 지닌 게 아닌 다음에야……!’
‘시차 버그만이 이 시간에 유저로 있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아니었던 건가…….’
아무래도 그렇지 싶었다.
세상은 넓었다.
이때까지의 자신은 우물 안 개구리였던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