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4화
나가로는 가고일에게 짓밟혀 엎드린 자세였다.
그랬기에 강기찬을 볼 수는 없었다.
강기찬 저 뒤에 서 있었기에.
그렇지만, 의아했다.
자신이 스마트폰을 꺼내는 걸 보았을 터.
왜 제지를 안 할까?
아니, 그 부분은 놓쳤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이후는 놓칠 수 없다.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얼굴 앞에 가져가는 거다.
간단한 동작이지만, 상황이 상황이지 않나.
그것까지 못 보았을 리가?
강기찬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가 궁금했다.
그렇다고 돌아볼 수도, 물어볼 수도 없다.
답답한 가운데, 하나의 가능성이 떠올랐다.
‘어쩌면… 딴청 피우고 있을 수도 있다…….’
마침 말을 안 걸고 있지 않나.
누군가와 귓속말을 하거나 채팅, 혹은 다른 걸 보느라 자신에게 미처 신경을 쓰지 못 하는 것일지도 몰랐다.
설령 그 순간이 찰나라 할지라도…….
‘잘하면… 신고할 수도 있겠는데?’
천재일우의 기회가 온 것일 수도.
이미 손가락은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대강의 내용을 작성한 후, 신고 버튼을 눌렀다.
그러고선 자연히 시선이 간 데가…
[운영시간 : 09:00 ~ 18:00]
[점심시간 : 12:00 ~ 13:00]
[주말 & 공휴일 휴무]
“!”
… 운영시간이었다.
새삼 잊고 있었다.
‘지금 운영자는 퇴근하고 없잖아?’
자정이 훌쩍 넘은 시각이었다.
지금 신고 넣어봤자 조치가 취해질 리가 없다.
아침에 출근하고 난 뒤에야 접수된 걸 확인하겠지.
게다가 조치가 취해지는 건 그보다 한참 뒤일 테고.
그러고 보니 의문이 들었다.
‘어째서? 강기찬의 신고는…….’
물론, 지금도 신고는 넣을 수 있다.
그러나 운영자가 그걸 확인하고 처리하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래서 마음에 걸리는 거다.
‘강기찬의 신고는 어떻게 즉각 처리되었던 거지?’
너무 자연스럽게 진행되어서 잊었었다.
강기찬이 신고했을 때도 자정이 지난 뒤였다. 운영시간이 아니었던 것. 그런데도 신고 접수는 물론이거니와 즉각 처리되었다.
‘운영자가 야근하고 있었나?’
업무시간이 아닌데도 일을 하는 것일까? 그러다가 우연히 강기찬의 신고를 보고선 처리한 걸까?
별의별 추측이 난무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이해가 가지 않는 게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일 처리가 빨라도 너무 빨라.’
그도 문의나 신고를 한두 번 해본 게 아니었다. 단 한 번도 이렇게 빨리 일 처리를 끝낸 적이 없었다.
보통, 평일 오전에 문의하면 답변은 빨라야 오후 5시쯤이었다.
하물며 야근하고 있는데 평소보다 더 빨리 신고를 처리해준다?
물론, 이번에는 즉각 처리되어야 할 만큼 심각하고 중대한 사안이긴 했다. 그런 만큼 예외적으로 그런 걸까? 그게 아니면 대체 뭘까?
‘운영자가 바뀐 게 아니고서야…….’
어쨌든 주어진 정보만 보면, 퇴근하지 않고 일하는 중이었다.
비록 그 때문에 일반인이 되어 도망도 못 치고 죽게 생겼지만, 그나마 강기찬의 버그를 신고한 결과를 곧바로 확인하고 죽을 수는 있게 되었…
‘아니지, 잠깐만!’
그의 눈이 번뜩였다.
‘안 죽을 수도 있겠는데?’
희망이 생겼다. 어쩌면 생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나와 똑같은 버그였으니까, 강기찬도 영구정지 정도는 먹을 수 있을 건데?’
강기찬도 자신과 같은 버그를 쓴 거 아닌가?
그렇다면 영구정지를 당할 터.
강기찬도 일반인이 될 것이다.
둘 다, 일반인이다?
해볼 만하다.
‘죽다 살아나는 게 이런 기분이구나!’
승패를 떠나 생존율이 비약적으로 상승할 것.
‘미친……! 마냥 죽으라는 법은 없구나! 역시 대일본제국 만세!’
일단 신고는 넣어둔 상태.
그리고 운영자가 재깍 확인하고 처리해줄 가능성도 컸다.
강기찬도 그러지 않았나.
그렇게 되면 조만간 강기찬도 영구정지를 당하고 일반인이 될 터.
‘빨리… 빨리 확인해라 운영자 새끼야!’
부디 운영자가 자신의 신고도 바로 확인하고 즉각 처리해주길 바랄 뿐이었다.
그때였다.
“신고 접수되었다네.”
“그거 정말 다행이어-어어엉, 응? 뭐라고?”
강기찬의 목소리가 들렸고 나가로는 반사적으로 대답하다가 혀가 꼬였다.
“… 무, 무슨 소리지?”
나가로는 당혹스러웠다.
도대체 강기찬이 어떻게 안 걸까? 자신이 신고했는지.
애초에 보고 있었던 걸까?
알고 있었음에도 모른 척하다가 이제야 말하는 걸까?
뭐가 되었든…….
‘일단은 잡아떼야 한다!’
신고했음을 시인하는 순간 죽음이었다.
아직은 아니지 않나.
강기찬은 유저이고 자신은 일반인이었다.
조금만 더 기다리면 둘 다 일반인이 될 수 있는데, 그 전에 죽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에, 강기찬이 중얼거렸다.
“나도 버그 썼다고 신고 넣었다며?”
이쯤 되면 확신이 찬 거다.
나가로도 더 잡아떼지는 않았다. 시간을 벌려면 이 흐름이라도 이어가는 수밖에.
“어, 어떻게 알았지?”
당연히 스마트폰을 엿보았을 가능성밖에 없었다.
그런데,
“답변 보내줬대.”
강기찬은 엉뚱한 소리를 했다.
“답변?”
“어, 확인해 봐.”
나가로는 찝찝했다.
자신의 신고를 눈치챈 거야 그럴 수 있다.
한데, 운영자가 답변한 건 어떻게 알았단 말인가?
그것도 신고 접수자보다 더 빨리?
단순히 때려 맞췄다고 하기엔 금방 들통날 거짓말이다.
그리고 어투가 좀 거슬렸다.
마치 운영자한테 직접 전해 들었다는 것처럼 들렸다.
그게 말이 되나? 운영자가 왜 유저의 신고 기록을 강기찬에게 알려준단 말인가?!
‘운영자랑 친구라도 되는 게 아닌 다음에야…….’
헛소리긴 하지만, 굳이 진지하게 접근해보아도 강기찬이 운영자랑 친구일 리가 없다.
운영자가 어디 보통 운영자란 말인가. 그런데 친구가 다리 못 고쳐서 10년 동안 폐인 생활하는데, 안 고쳐주는 것도 웃기고 이제와서 고쳐주었다는 것도 희한한 일일 터.
당사자에게 물어보는 게 직방이긴 한데, 그걸 어떻게 아느냐는 물음이 차마 나오지 않았다. 대신, 확인해보았다. 강기찬의 말이 맞는지.
‘어.’
정말 운영자의 답장이 도착했다.
< 부정행위 신고 조치 안내 >
[안녕하세요, GM자쟈입니다.]
[귀하의 부정행위 신고를 자세히 검토한바, 강기찬님은 버그 사용 정황이 확인되지 않았음을 알려드립니다.]
“뭐, 뭐지? 아니라고?”
나가로가 당황해하자,
“아니라지? 나 버그 쓴 거…….”
강기찬이 화답해주었다.
“거봐, 아니라니까.”
“아니, 넌 썼어! 이건 사기야, 너 운영자랑 짜고 친 거지?”
“뭔 소리야? 짜고 치다니?”
“이건 있을 수 없다고! 그럼 뭔데? 버그가 아니면 네가 지금 유저인 이유가 뭐냐고?!”
나가로가 패악질을 부리니 강기찬이 한숨을 내쉬었다.
“또 말해줘야 하나, 이거 테스트서버 계정이라서 그렇다니까. 강제 로그아웃 안 당한 이유가 그거라고.”
“…….”
해명을 들으려 했더니 더 어려운 설명을 해주는 거로 들렸던 걸까? 나가로는 이를 갈며 바닥에 이마를 받았다. 그러고선 꿈쩍도 안 했다.
비로소 체념한 것이다.
‘강기찬이 버그를 쓴 게 아니라니, 그럼 나는 이대로 죽겠구나…….’
마지막 희망이 산산이 조각나버렸다.
성공적인 신고로 강기찬도 영구정지 먹이고 자신과 똑같이 일반인으로서 남게 해 인생을 망가뜨리려고 했다. 그리고 자신은 살아서 나가는 것까지…….
그 모든 게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강기찬이 말했다.
“의문 하나는 해소하게 해줄게.”
“?”
“자정이 지났는데 운영자가 어떻게 일 처리를 해주었는지 궁금했지? 그것도 평소보다 빠르게…….”
“…….”
나가로가 무언의 긍정을 표했다. 그럴 줄 알고 강기찬이 뒤이어 말했다.
“내가 운영자하고 귓속말하는 사이라서 그래. 그래서 이 시간에도 신고 접수가 되었고 빨리 처리되었던 거지. 어때? 이제 좀 의문이 해소되었어?”
의문이 해소되었냐고?
그랬다.
하지만, 하나의 의문을 해소하니 또 다른 의문이 생겼다.
‘어떻게 운영자하고 귓속말하는 사이가 되었던 건지?’
다만, 이건 속으로만 묻기로 했다.
직접 물을 법도 했지만, 어차피 곧 죽을 거기도 한데 구질구질하게 묻기도 그랬고…….
무엇보다 이것에 대해서 답변을 들으면 왠지 또 다른 의문이 생길 것 같아서, 그게 반복될 것만 같아서.
강기찬에게 궁금한 게 너무 많아서.
애초에 시작하지 않기로 했다.
침묵이 몇 초간 지속하였고,
강기찬이 입을 열었다.
“너도 날 죽이려고 했지? 그럼 나도 널 죽여줄게… 가 아니고 난 널 살려준다. 그게 더 비참하겠지?”
나가로는 저 말에 소름이 돋았다.
살려준다는 데 왜 불안할까?
이미 답을 알고 있었다.
살아도 사는 게 아닐 테니까.
다시는 유저로 돌아갈 수 없게 되었으니.
과거의 부와 명예, 권력, 찬란했던 추억들… 다 묻어두어야 할 테니.
‘다시 그따위로 살라고?’
그는 동네 양아치에 지나지 않았었다.
단지 레전드스토리를 열심히 했다는 이유만으로 이 자리까지 올라온 거나 다를 바 없었다.
도로 동네 양아치로 돌아가라니?
청천벽력같은 소식이었다.
“차라리 죽여라!”
죽는 게 낫다.
아니, 반드시 죽어야 했다.
살아서 무슨 꼴을 보라고?
살아오면서 원수도 많이 졌다.
전부 다 힘으로 내리눌러서 괜찮았지만…….
이제는 곤란했다.
자신이 영구정지되어 일반인으로 살아야 한다는 소식이 그들의 귀에 들어간다면?
평생 쫓기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그런 비참한 삶은 상상도 하기 싫었다.
그러나,
“안 죽인다니까, 원래 죽일 마음 없었는데, 하물며 네가 죽길 바라는데 어떻게 죽여? 누구 좋아하라고?”
강기찬은 나가로의 죽음을 허락하지 않았다.
나가로는 속으로 비웃었다.
‘멍청한 새끼, 네가 허락하든 말든, 그건 상관없다. 내 죽음은 내가 정한다! 죽을 자유도 없애려고? 지랄하지 마라!’
입속의 독약을 깨물려고 했다.
그때였다.
무언가 갑자기 입안으로 들어왔다.
“어억- 어어엉억!”
나가로는 뜻을 알 수 없는 비명을 질렀다.
강기찬의 손이 입에 들어온 것이다.
숙!
강기찬이 나가로의 입안을 막 들쑤시더니 손을 빼냈다. 그의 손에는 독약이 쥐어져 있었다.
“이… 이런!”
나가로가 자결 못 하게 한 것.
강기찬이 독약을 흔들어 보였다.
“이 독약으로 뒤지려고 했지? 한 번 당해봐서 말이야… 너 때문에 또 화타님을 부를 수는 없잖아? 혹여나 딴 방법으로 죽을 생각하지 말고, 어차피 살아날 거…….”
강기찬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일단, 네 계정부터 가져야겠다.”
“뭐?”
나가로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내 계정을 가져가다니?”
그 어떤 유저한테도 그런 소리를 들어본 적 없었다.
아니, 꼭 자신이 아니더라도 유저끼리 그딴 소리를 어찌한단 말인가? 아무리 갑이라고 해도…….
하나 강기찬은 아주 자연스럽게 말했다. 한 번 해본 솜씨가 아니라는 듯이.
이번에도 역시나 궁금증이 생겼다.
이번에는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제와서 내 계정이 무슨 의미가 있지?”
영구정지 당한 계정이다.
아이디, 비밀번호 알아봤자 로그인조차 할 수 없는 것.
그런 계정을 가져가서 뭐 하려고? 무슨 의미가 있을까?
퍽!
강기찬이 나가로의 뒤통수를 후려갈겼다.
“아, 새끼. 왜 이렇게 말이 많아? 나 진짜 질문 싫어하는데… 기레기 생각나게……. 인마! 그래도 한 대 맞았으니까 특별히 알려줄게.”
한숨을 쉬더니 답변을 해주었다.
“… 회귀하고 나서 써야 하니까.”
나가로의 계정, 지금 못 쓰는 거지 과거로 돌아가면 쓸 수 있지 않은가? 그래서 알려고 한 것이었다.
물론, 과거로 돌아가면 레벨이 다운될 터. 다시 작금의 위치로 성장할 때까진 기다려야 할 테지만. 그거야 그냥 시간이 해결해줄 문제이니. 미래의 급등주를 기다리는 투자자의 마음을 지니면 될 터.
강기찬이 말했다.
“또 궁금한 거 있으면 말해. 뒤통수 한 대에 하나 답변해줄 테니까, 말해 봐.”
“어, 없다. 그러니까 때리지 마라…….”
나가로는 방금 맞아 얼얼한 뒤통수를 어루만지며 생각했다.
‘아, 나도 회귀 마렵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