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자동보상-14화 (14/248)

# 14

#14.

-수수께끼 박스

-가치 : ?

-설명 : 브론즈 1급에서 실버 1급 사이의 무작위 아이템 1종을 획득 가능한 수수께끼의 박스.

‘대체…….’

찬영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이제껏 박스는 자신의 업적 등에 비례해 나오거나 혹은 아직 경험하지 못한 로그인 캘린더에 의해 나올 줄 알았다.

‘그런데 이건……?’

그저 레드비를 잡는 것으로 이 수수께끼 박스가 나타났다는 것은 앞으로도 휴거를 잡을 때마다 박스가 나올 수도 있다는 이야기였던 것이다.

수수께끼 상자의 등장은 그간 주어졌던 보상 체계의 큰 변화를 의미했다. 그렇다면…….

‘지금 저 날아다니는 휴거들을 모두 잡으면?’

저 중에서도 분명 이 수수께끼 박스 같은 것이 나올 게 틀림없다. 가능하다면 본진이 오기 전에 이 일대, 휴거를 모두 잡으면서 가는 건 어떨까?

조금 무리일지도 모르지만 방금 전 더블 피니시의 위력이라면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이다. 거기다가 찬영은 아직 자신은 전력을 다 쏟지도 않았다.

‘……녀석들을 잡는 건 혼자서도 충분하다.’

찬영이 그런 생각을 하던 찰나 떨어져 있던 나머지 팀원들이 이규복과 함께 찬영에게 다가왔다.

“어이, 신참! 활약 잘 봤네!”

박우태가 신나서 다가왔다. 그러면서 같이 있던 오수향을 힐끗 쳐다봤다.

“응? 아가씨는 왜, 얼굴이……?”

속도 모르는 박우태의 질문에 오수향이 얼굴을 신경질적으로 옷소매로 닦은 뒤 찬영을 한 번 째려보고는 쌀쌀 맞게 자리를 떴다. 이전의 상황을 모르는 박우태는 그저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사람 참, 성질머리하고는……. 그나저나 무슨 일 있었어요?”

“아뇨.”

찬영이 고개를 젓자 박우태도 더는 오수향에게 관심을 두지 않고 찬영을 보며 활짝 웃었다. 처음부터 그의 관심은 찬영의 활약에 있었기 때문이다.

“아주, 시원시원하던데!”

손가락을 세워 총 쏘는 시늉을 하는 박우태의 눈빛엔 진짜 감탄이 서려 있었다.

사실 그도 찬영이 이렇게 잘 싸울 거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면식도 모르는 사람의 능력을 누가 알 수 있을까? 하지만 방금 찬영은 스스로의 능력을 직접 입증했고 그로 인해 인식이 바뀐 것이 사실이었다.

그러니 다른 팀원들도 전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찬영을 반기는 눈치였다. 정작 당사자인 찬영은 달라진 시선 차이에 별 감흥이 없었지만…….

“고맙습니다.”

찬영은 박우태에게 보답 인사를 건넨 뒤에 이규복에게 다가갔다.

“긴히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뭔가 제안을 할 게 있는 눈치라는 걸 깨달은 이규복이 나중에 합류하겠단 말만 남기고 다른 사람들을 먼저 출발시켰다.

둘만 남자 찬영이 다시 입을 열었다.

“팀에서 벗어나 개별 행동을 택해도 될까요?”

“갑자기요? 왜, 수향 씨랑 무슨 일이라도…….”

“아뇨, 사소한 문제가 아니라……. 본진이 오기 전에 여길…….”

찬영이 공중을 가리키며 덧붙였다.

“정리해 볼까 합니다.”

좋게 말하면 자신감, 혹은 경악할 정도의 패기, 나쁘게 말하면 오만이었다. 하지만 이규복이 평가한 찬영은 오만을 함부로 부릴 사람이 아니었다.

이유가 궁금했다.

물론 그 이유가 팀에 해가 될 경우 제안을 묵살시킬 것이고 그 묵살된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찬영을 저지선 바깥으로 내보낼 생각까지 했다.

그게 팀장이 해야 할 일이니까.

그래서 물었다.

“찬영 씨가 개별 행동을 택함으로써 얻을 이득이 뭡니까?”

“혹시 모를 변수에 대비한 퇴로 확보가 용이해집니다. 또, 목적지인 서먼 홀에 다가가는 게 한결 쉬워지실 겁니다.”

찬영의 말이 맞다. 아까만 해도 그랬다.

‘저지선까지 밀려들었던 레드비가 찬영 하나를 잡자고 몰려들었던 것만 봐도…….’

찬영이 개별 행동을 해서 휴거들의 진로를 방해하고 휘저어 준다면야 정찰 임무가 훨씬 쉬워질 것이다.

“하지만 그걸 몰라서 개별 활동을 하지 않는 게 아니죠. 팀으로 운용하는 건 죽는 확률을 줄이기 위해서입니다…….”

찬영이 뒷말을 받았다.

“네, 압니다.”

자신이 죽는다는 것을 안다고 말하는 것 치고는 표정 변화가 너무 없다. 뭔가를 믿고 있는 걸까? 혹시 이네이트의 성장을 앞둔 건가? 만약 그것만 믿고 있다면, 더욱 말려야한다.

“물론 휴거를 잡을수록 이네이트의 숙련도가 올라가긴 하겠지만 그건…….”

찬영이 대신 그의 말을 받아 이었다.

“한계가 있겠죠. 상황에 맞게 이네이트가 진화하는 것도 아니고.”

고개를 끄덕인 이규복이 찬영을 담담히 바라봤다. 눈빛을 보니 찬영은 이미 마음을 먹은 눈치였다. 더는 말릴 수 없을 것 같았다.

찬영이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저는 홍제역으로 전진하겠습니다.”

이규복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홍제역이라면 좋은 선택이다.

독립문으로 향하는 팀은 현재 남동쪽으로 향한다. 홍제역은 남서쪽이다. 잘만 휘저어도 휴거들의 혼선이 있을 것이다. 서먼 홀에서 튀어나온 휴거들의 병력이 집중되지 않는 것이다.

양동 작전인 셈.

찬영의 등을 누구도 지켜 줄 사람이 없다는 걸 감안하면 분명 합리적인 제안이었다.

“알겠습니다. 단 이 일이 제대로 먹히려면 오래 버텨 주셔야 합니다. 가능하시겠습니까?”

“해 봐야죠. 이 이상 인명 피해가 없도록. 그럼, 출발하겠습니다.”

일별을 마친 찬영은 이규복의 걱정이 고마웠다. 하지만 괜한 걱정이었다. 이네이트 하나만 믿고 있다면 그럴 법 하겠지만.

이젠 이네이트 뿐 아니라 자동으로 획득 보상이 있다. 그 보상들이 어떤 팀원도 못 해 줄 도움을 줄 것이다.

‘당장 이것부터…….’

찬영이 인벤토리 창에 들어가 있는 수수께끼 박스를 개봉했다.

-폴스의 샌들

-가치 : 620

-효과 A : 낙하 충격 70% 감소

-효과 B : ? (강화 시 개방)

‘620?’

가치를 확인한 찬영의 눈이 살짝 떨렸다.

신발이 나온 게 겨우 두 번째지만 이제껏 신어 온 초보자 부츠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가치 평가.

620이라면 현재 +1이 된 가치 450의 더블 피니시보다 훨씬 높은 가치를 가진 물건이다. 심지어 강화도 되지 않은 물건이 620이라니…….

이 정도라면 모르긴 몰라도 실버 1급 박스는 열어야 했을 것이다. 찬영은 높은 수치의 가치를 주시하며 효과 A 옆에 쓰인 글씨를 읽어 갔다.

충격 감소 70%라면 무척 효율적인 수치였다.

방금 전의 상황만 미루어 보아도 그랬다.

허공에서 떨어지는 상황이 여러 번 있을지 모르는 지금 추락 충격을 감소해 준다는 옵션은 그야말로 방어력이 올랐다는 얘기와 같았다.

한데 더 경악스러운 것은 놀라운 능력의 옵션이 겨우 A에 불과하다는 점이었다.

강화만 되면 B라는 옵션이 개방된다고 하니…….

더블 피니시뿐만 아니라 반드시 강화해야 하는 아이템이 생긴 셈이었다.

‘반드시 새로운 제작도구 완성에 힘을 기울여야겠다. 제작 도구가 없다면 더 이상의 강화는 힘드니까……!’

아이템 분석이 끝난 찬영은 지체 없이 가지고 있던 초보자 부츠를 인벤토리 창에 넣어 두고 샌들을 신었다.

붉은빛의 가죽이 감도는 샌들. 착용감도 부츠와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편안했다.

당장 달리고 싶을 정도.

찬영이 천천히 고개를 들며 멀찍이 들려오는 레드비의 날개 소리에 귀 기울였다. 각성자들에 의해 쫓기듯 밀려난 레드비들은 다시 몰려올 것이다.

“슬슬…….”

새 장비를 착용한 찬영이 몸을 숙이며 눈을 빛냈다.

타탁, 타탁, 타탁.

세 걸음쯤 달리기 시작했을까?

육상 선수들의 탄력 있는 출발 도약처럼, 찬영의 몸이 물을 만난 물고기처럼 공기를 유영했다.

처음으로 체감하는 섬뢰보.

그렇기에 찬영은 몰랐다, 섬뢰보는 결코 녹록한 이네이트가 아니라는 것을.

허리를 낮춘 찬영이 빌딩 위를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아니, 솟아오르는 게 아니었다. 빌딩 유리창 위를 달리고 있었다. 하지만 단순히 속도로만 유리창 위를 달리고 있는 게 아니었다.

더블 피니시의 에어 펌프를 활용해 첫 탄력을 받아 튀어 오르고, 증가된 근력 300%을 활용해 균형점을 찾았다.

파밧!

그 이후에는 섬뢰보를 사용했다.

섬뢰보를 일으키자 중력을 거스를 만큼 강력해진 속도가 일었다.

신기한 힘이다.

섬뢰보를 쓰겠다고 마음먹자마자 몸 안의 뭔가가 소용돌이 쳤다. 그 힘은 조용히 몸을 휘젓고 나아가 달리는 속도를 배가시켜 주었다.

타타타탁!

저 멀리 이규복의 팀도 찬영이 날아오르듯 빌딩 위를 달려 올라가는 것을 자연히 보게 됐다.

이제껏 찬영의 이네이트가 신체 강화가 아니라 사격에 관련된 기술일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들의 눈동자에 이채가 흘렀다. 팀원 중 한 사람이 말했다.

“저게 뭐야? 저 사람 이네이트는 그 강철 주먹 같은 것 아니었어요? 벽을 달리는 게 대체 강철 주먹하고 무슨 상관이 있다고…….”

이규복을 돌아보는 그의 질문.

다른 사람들의 시선도 자연히 이규복을 향했다.

그들도 궁금했던 것이다.

그만큼 지금 찬영이 보여 주는 움직임은 그들의 상식 이상의 일이었던 것이다.

그럴 법도 했다. 각성자들이 받는 이네이트는 진화한다. 하지만 그 진화엔 연관성이 있다.

예를 들어 오수향만 봐도 그렇다.

거울 마법이 이네이트인 그녀는 거울 마법과 연관 있는 성장을 획득한다.

차라리 거울을 더 오래 유지한다는 등의 진화는 몰라도 갑자기 벽을 달리는 육체 강화와는 사실상 거리가 먼 능력이다.

한데 찬영은 마치 그 불가능한 지점을 극복한 것처럼 보였다. 충격파를 일으키는 철권과 건물 위를 달리는 육체 강화는 도통 연관성이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들이 생각할 수 있는 건 단 하나.

두 개의 인에이트!

모두가 경악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들과 달리 이규복은 설령, 그가 이네이트 두 개가 있다고 한들 크게 놀랍지 않았다.

예상해서가 아니다.

이제껏 지켜봐온 찬영의 행동들이 이네이트보다 더 놀라웠기 때문이다.

괴물 같은 적응력과 변수에 마주했을 때마다 보이는 차분함, 순간적인 기지를 발휘하는 번뜩임까지.

이 모든 걸 다 얘기한들, 여기 있는 팀원들이 믿긴 할까?

‘아니, 그럴 리 없다. 그저 과장된 칭찬이라 생각하겠지.’

그래서 그 말은 잠시 접어 두는 게 나을 것이다.

“글쎄요……. 워낙 세상 혼자 사는 사람이라 그냥 그러려니 싶네요.”

그 말을 하면서도 이규복은 굳이 하지 않은 말을 가슴 깊숙이 묻어 두었다. 만약 무사히 그가 돌아온다면 이 묻어 둔 이야기를 하게 되리라.

더 이상 칭찬으로 끝날 얘기가 아닐 테니까.

* * *

쐐애액!

그사이 건물 옥상까지 뛰어 올라간 찬영은 건물 위에서 앞으로 가야할 거리를 내려다보았다.

동시에 높은 빌딩에 오르자 제대로 목격 못했던 참상이 눈앞에 깔려 있다. 저지선 바깥의 서대문구는 그야말로 지옥이었다.

이규복에게 인명 피해가 엄청나다고 말로만 들은 것과 직접 보는 게 확실히 차이가 컸던 것이다.

멀리 보이는 거리들은 완벽한 무주공산無主空山.

한때 거리를 활보했던 자동차들은 서로 부딪쳐 불이 타오르고 폭발했다.

여러 신고를 받아 출발했었던 소방서의 소방차들도 더는 움직이지 못하고 사거리 한가운데 뒤집혀 있었다.

불에 타는 자동차들만 봐도 처참한데, 거리에 즐비한 시체들은 더 끔찍했다.

아이를 지키려다 차에 깔린 부모들부터 목이 잘려나간 회사원들, 도망가지도 못하고 그 자리에서 즉사한 노인들까지.

그 모든 시신들 중에 팔다리가 제대로 붙어 있는 시신들을 보기 힘들었다. 팔다리가 붙어 있으면 머리가 잘려 나간 게 대부분이었다.

차마 눈 뜨고 보기 힘든 참상.

‘……시발.’

누군가가 죽어가는 건 이미 여러 번의 소환 속에서 제법 견뎠다고 생각했는데, 이건 상상 이상 최악이다.

찬영은 목구멍 가득 치밀어 오르는 역겨움을 꾹 누르며 고르게 숨을 쉬었다.

영웅이 되겠단 생각은 해 본 적도 없다.

희생정신 역시 태어나서 가져 본 적이 없다.

하지만…….

‘받았으면, 돌려줘야지.’

핏발 선 눈동자를 굴린 찬영이 저 멀리 날아오고 있는 레드비들을 죽일 듯 노려봤다.

‘그게 세상 이치지.’

찬영이 다시 땅을 박찼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