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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자동보상-15화 (15/248)

# 15

#15.

한 번이 어렵지, 두 번은 쉽다.

더 이상 고공에서 싸우는 것은 찬영에게 어떤 두려움도 심어 줄 수 없었다.

타닥.

순식간에 옥상 난간을 밟고 허공을 향해 뛰어오른 찬영이 추락하는 몸을 비틀었다. 중력을 거스르니 온몸의 근력들이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견딜 만하다.

몸을 바로 잡으며 땅을 향해 다시 조준.

펑! 펑!

순식간에 두 번의 충격파를 뱉어 내자 찬영의 몸이 허공을 향해 일직선으로 뻗어져 올라갔다. 더블 피니시의 파괴력이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몸에 가해지는 반발력 또한 거세진다.

전보다 더욱 빠르고 매서운 속도로 하늘을 향해 솟아오른 찬영이 흩날리는 머리칼 사이로 눈을 돌렸다.

‘……저기 있다!’

팀원들과 떨어져 처음 만난 레드비.

동시에 레드비 역시 소음을 내며 날아오기 시작했다.

쐐애애액!

하늘을 가로지르던 찬영이 잠시 체공한 채 더블 피니시를 겨누었다.

한결 익숙해진 더블 피니시의 조준.

확실히 쏘면 쏠수록 녀석을 길들이는 것 같다.

솨아아!

펑!

또다시 쏘아진 더블 피니시가 날아오는 레드비의 날개를 뚫어 버렸다.

키에엑!

괴성을 내며 격추된 레드비.

한 놈이 땅바닥에 추락하자 다른 놈들이 고개를 쳐들었다.

그러자 레드비가 몰려들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찬영이 보는 허공에 레드비로 가득해졌다.

오히려 반갑다. 흩어져서 덤비는 것보단 모여들면 모여들수록 더블 피니시의 관통력이 더 배가된다.

지체 없이 뻗어진 빛줄기가 날아오는 레드비 다섯 마리를 일거에 그어 버렸다.

콰콰!

레드비들이 단숨에 추락했다.

-레드비의 이빨을 획득하였습니다.

-레드비의 곁눈을 획득하였습니다.

-레드비 껍데기로 만든 철제 갑옷을 획득하였습니다.

-레드비의……

레드비를 잡고 얻는 아이템 보상들이 미친 듯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게 뭔지 알아 볼 여유는 없다.

쏘고, 또 쏘고, 또 쏴댔다.

얼핏 극광의 광선이 채찍처럼 주위를 뒤덮은 것 같다.

허공을 수놓았던 레드비들의 거침없던 날갯짓은 추락하는 걸 막아 보려 발악하는 날갯짓이 되어 버렸다.

키에엑!

포식자로 군림하던 놈들에게 더블 피니시의 포성이 새로운 포식자의 등장을 알린 것이다.

레드비들이 아까보다 더 짙은 적의를 보였다. 하지만 적의는 찬영 역시 마찬가지였다.

적의와 적의가 허공을 수놓았다.

떼를 지어 다가오는 레드비들은 찬영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찬영에게 오던 중에 일차적으로 더블 피니시의 충격파에 추락하고, 살아남은 녀석들은 충격파의 궤적으로 휘몰아치는 진공 소용돌이에 휘말려 저들끼리 부딪쳐 떨어졌다.

이 순간, 찬영은 하늘을 제압했다.

-레드비 학살 업적 달성으로 인해 더블 피니시 +1 의 관통력 10%가 3시간 동안 일시적으로 상승하였습니다.

새로운 추가 효과, 일종의 버프가 보상으로 획득된 것이다.

좀 더 자세히 살펴보고 싶었다.

갑자기 나타난 불청객만 아니었다면…….

키에에엑!

일반적인 레드비의 울음소리와 다른, 위압적인 울음소리였다. 고개 돌린 찬영의 앞으로 찬영의 몸통만 한 촉수가 날아왔다.

쐐액!

날아온 촉수를 본 찬영은 잠시 허공에 붕, 떠 있는 그 몇 초 사이 더블 피니시에서 빠르게 칼을 뽑아냈다.

철컥!

더블 피니시의 숨겨진 칼날이 모습을 드러냈다.

더블 피니시는 매끈한 사중 칼날이었지만 +1의 업그레이드 때문인지 이젠 팔중 칼날이 되었다.

본래 있던 두 개의 칼 아래, 또 다른 두 개의 칼이 겹치듯 튀어나온 것이다.

네 개의 칼.

날은 팔중.

그야말로 찌르는 순간 어마어마한 출혈을 일으킬 수 있을 것 같았다.

‘해 보면 알겠지.’

찬영이 붕 뜬 채로 균형을 잡았다.

그새 경험이 쌓인 것인지 허공에서 균형 잡기가 이전보다 훨씬 쉬웠다. 발끝의 힘을 주고 허리를 튕긴다. 중력의 힘을 거스르기 위해 두 무릎을 굽혔다 펴며 탄력을 일으켰다.

‘이크!’

빠르게 어깨를 스쳐간 촉수를 쳐다봤다.

등을 노린 대가로 더블 피니시 팔중 날이 촉수를 내리그었다.

촤악!

키에에엑!

피를 빠는 촉수 중 하나가 잘리자 놈이 다시 촉수를 거두려 했다.

찬영이 그냥 둘 리 없었다.

철컥.

펑!

다시 에어펌프를 활용해 체공 시간을 늘리며 또 다시 칼날을 휘둘렀다.

서걱.

두 번째 휘두른 칼날에 놀란 놈이 갑자기 허공 위로 솟구쳐 날았다.

찬영이 놈을 쫓기 위해 에어 펌프를 다시 가동했다.

펑!

허공을 가르며 솟아오른 두 개의 빛줄기.

하지만 높이 솟구치면 솟구칠수록 귀가 멀어지고 서서히 어지럼증이 몰려왔다.

아니, 이미 진작에 왔어야 할 고산병 증상.

하나 찬영의 정신력이 이를 꾹 누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대로 포기하면…….

‘놈을 놓친다.’

찬영은 솟구치면서 흐릿한 눈으로 놈을 응시했다.

전투하느라 못 봤던 녀석의 이름과 등급이 보였다.

-★★★★★ LEADER 전투형 여왕 레드비

별 다섯 개. 상대해 본 휴거 중에 제일 높은 등급을 가진 녀석.

일전에 보았던 별주부보다 한 등급 높은 녀석이다.

역시 남다른 녀석이 맞았다.

위압적인 울음과 공격력 그리고 훨씬 굵은 촉수만 해도……!

그렇다면, 더더욱 뒤를 보인 놈을 놓칠 수 없다.

‘차분히 호흡하자.’

후. 후…….

그간의 위험을 감수하며 쌓은 경험들이 찬영의 숨소리에 녹아들었다. 흐릿하던 시야 사이로 날아가는 녀석의 날개가 들어왔다.

물론 정확히 보이지는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정확함보다는 동물적 직감에 의존해야만 한다.

펑!

기어코 더블 피니시의 위력적인 공기 충격파가 중력을 이겨내고 뻗어 나갔다.

아무리 놈들의 날갯짓이 자동차보다 빠르다 하여도 바람을 탄 충격파보다 빠르진 않다.

매섭게 쏘아진 극광의 광선이 하늘의 구름을 뚫었다.

키에에엑!

마침내 놈의 커다란 날개를 꿰뚫었다. 일반 레드비보다 세 겹의 날개를 더 가진 두 배는 큰 녀석이 한 쪽 날개가 무너지자, 그 큰 몸을 버티지 못하고 다시 고꾸라지듯 허공을 휘저었다.

하지만 추락하는 녀석을 찬영 또한 보지 못했다.

누가 귀를 칼로 찢어 내는 것 같은 통증이 덮친 탓이다.

너무 아파, 제대로 균형을 잡을 수 없었다.

집중력이 흐트러지자 추락하는 건 당연했다.

쐐애애액!

어마어마한 속도로 떨어지는 몸과 함께 저 멀리 지상이 내다 보였다.

그리고 가까이에 바동거리며 떨어져가는 여왕 레드비가 보였다.

그 순간, 한쪽 날개들로 균형을 잡으려는 여왕 레드비의 겹눈이 떨어지는 찬영을 감지했다.

끝도 없는 적의가 맺힌 여왕.

여왕에게 찬영은 번식을 저지한 최악의 상대.

전투형 여왕의 날갯짓이 추락하는 찬영을 쫓기 시작했다.

쐐액!

찬영은 떨어지면서 팔을 들려고 애썼다.

하지만 팔을 드는 게 마치 1톤짜리 쇳덩이를 드는 기분.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어느새 두 눈의 혈관이 부풀어 오를 정도로 핏발 선 찬영의 눈동자에서 피가 뚝뚝 흐르고 있었다.

공중에서 신체의 한계점 이상을 끌어 올린 탓이다.

‘하지만…….’

철컥.

이대로 끝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통증을 이겨내야 살 수 있다.

살고자 하는 일념이 통증을 억눌러 갔다.

끝도 없는 한계를 넘어서는 건 죽음에 대한 두려움.

고통을 극복하며 지상을 향해 계속해서 더블 피니시를 연달아 쏘았다.

펑! 펑! 펑!

속도가 점차 줄어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떨어지는 속도가 너무 빨라 이대로라면 찬영은 곤두박질쳐 그대로 죽을 것이 뻔했다. 속도를 줄이기 시작한 타이밍이 너무 늦어 버린 것이다.

쐐애애액!

그 순간 거대한 몸통이 떨어지는 찬영과 부딪쳐 왔다.

‘커헉……!’

여왕 레드비가 찬영을 촉수로 낚아채려다가 균형을 잃은 것이다.

덕분에 추락하던 찬영의 몸이 레드비의 몸통을 거세게 부딪치고 또 부딪친 뒤 더블 피니시에 관통되어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 날개 사이에 끼어 버렸다.

그 와중에도 여왕 레드비의 반대편 날갯짓은 계속되었다.

그새 찬영은 안간힘을 다해 실눈을 뜨고 휘몰아치는 바람을 맞았다.

제대로 눈을 뜰 수 없을 정도의 풍압이었다.

하지만 아까보다는 훨씬 나았다.

어지러워 제대로 설 수조차 없었지만 날개에 몸통이 끼어 버린 탓에 굳이 균형을 잡지 않아도 됐다.

그저 이제부터는…….

‘놈의 날갯짓에 의지한다.’

놈도 추락하기 싫은 건 마찬가지, 최대한 충격을 받지 않으려 발버둥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날개 하나를 잃어버린 놈이다.

안정적으로 착지할 수는 없으리라.

그러니 땅과 부딪칠 때 튕겨 나가지 않게 준비해야 한다. 충격 즉시 튕겨 나가면 어디든 꺾여 버릴 것 같았다. 잡고 움켜쥘 게 필요하다.

철컥.

찬영은 그 생각과 함께 껍데기로 덮여 있는 놈의 몸통을 노려보았다.

하지만 지금 칼날을 박아 넣어 버릴 순 없다.

칼날을 넣으면 놈이 고통에 휩싸여 제대로 된 날갯짓을 하지 못한다. 놈이 있는 열심히 추락 속도를 줄여 주고 난 뒤에 칼을 찔러 넣어야 한다.

그러자면…….

‘반드시 놈이 땅에 부딪칠 때 찔러야만 해!’

찬영은 눈을 똑바로 떴다.

만약 너무 일찍 찔러 넣으면 놈이 받을 추락 충격이 자신에게도 미칠 테고, 너무 늦게 찔러 넣어도 추락하는 즉시 놈의 몸통에서 자신이 튕겨 나갈 것이다.

‘적당히!’

이 세상 제일 맞추기 어려운 ‘적당히’라는 단어가 이 짧은 시간 동안 절실히 필요했다.

언제 해야 할까?

‘지금? 아니…… 지금?’

머릿속에서 언제 타이밍을 잡아야 할지 복잡했다.

놈의 눈으로 지상을 보는 게 아니라 날개 사이에 껴 있으니 땅이 어느 정도 가까워졌는지 확인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찬영은 눈을 감고 떨어질 때의 느낌을 되새겼다.

놈의 몸통과 부딪치던 그 시점의 공중 높이, 그리고 놈의 날개에 낀 채 추락하던 시간까지 모두 머릿속에서 동물적 직감을 기반으로 시뮬레이션을 돌렸다.

결과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직감은 말하고 있었다.

‘여기에서!’

어떤 여파가 미칠지 모르지만 적어도 스스로 한 선택이다.

아무 후회도 없다.

진인사대천명.

혼신을 다 했으니 하늘에 따를 뿐.

이젠 결과가 좋게 나오길 기대하는 수밖에……!

푸욱!

찬영의 칼날이 기어코 여왕 레드비의 몸통을 꿰뚫었다.

* * *

콰콰쾅!

엄청난 굉음과 함께 레드비 여왕의 몸통이 땅에 처박혔다.

그 직후 찬영은 몸이 붕 뜬 느낌을 받았다.

시간이 가는지.

혹은 죽었는지 살았는지조차 인지할 수 없었다.

다만 새로운 풍경이 펼쳐질 뿐.

이곳은 폐허 위.

저 멀리 생전 처음 보는 휴거들이 도심을 휘젓고 하늘과 땅이 모두 서먼 홀로 가득했다.

‘세상의 종말이 이런 모습일까?’

반 토막 난 고층 빌딩들은 더 이상 제 몫을 하지 못하고 마치 역사 속에 잊힌 오래된 허름한 성같이 느껴졌다.

빌딩 숲을 한참 올려다보던 찬영의 시선이 앞에 나 있는 대로변으로 향했다. 도로 역시 죽어가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장담컨대 이곳이 지옥도다.

더 이상 푸른 빛 한 점 없는 붉은빛 하늘이 되어 버린 세상.

그 하늘엔 거대한 서먼 홀이 블랙홀처럼 세상 모든 공기를 빨아들일 것처럼 회오리치고 있었다.

수없이 밀려나오는 휴거들…….

찬영은 마른침만 삼켰다. 이런 무기력감은 처음이다.

‘말도, 말도 안 돼.’

‘결국, 다 죽어 버렸다고?’

그 순간.

누군가 찬영의 발목을 확 끌어당겼다.

깜짝 놀라 본능적으로 발을 떼려 했지만 그러기엔 발목을 잡아당기는 힘이 너무 억셌다. 도저히 빠져나올 수가 없었다.

‘대체, 무슨!’

그때 자동차 아래 깔린 시신이 고개를 확 쳐들더니 찬영을 보며 입을 열었다.

-사명이야말로 그대의 운명……. 사명을 찾아라. 사명이……. 또 다른 시작……. 시작하라. 시작해야 한다……. 그대는…….

무슨 소리인지 전혀 이해되지 않는 얘기를 떠들어 대던 시신이 다시 고개를 푹, 숙여 갔다.

‘……사명을 찾으라고?’

시신이 했던 이야기를 되짚으며 중얼거리자 갑자기 찬영의 머리가 지끈거리며 찌릿한 이명이 몰려왔다.

지잉.

그리고 찬영이 보던 모든 것들이 커다란 거울이 산산조각 나듯 하나둘씩 균열이 나기 시작했다.

세상이 와르르 무너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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