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
#13.
상진대 앞.
끼익.
갈색 중형 버스가 찬영 앞에 멈춰 섰다. 승차 문이 열리고 안쪽에서 안경 쓴 이규복이 고개를 배꼼 내밀었다.
“찬영 씨, 여기예요. 타세요.”
“예.”
대답과 함께 버스에 올라탄 찬영은 우두커니 서서 앞좌석에 앉은 팀장 이규복을 제외한 나머지 팀원들을 한 눈에 볼 수 있게됐다.
각자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들은 남녀가 섞여 대략 아홉 명 정도. 휴거가 몇인지는 모르지만 평소 소환 시와 비교해 봐도 턱 없이 부족한 숫자였다. 하지만 이규복을 비롯한 V.O.는 대한민국 최초로 이네이트를 가진 각성자들의 네트워크를 만들기 시작한 회사다.
무턱대고 소수 인원을 보냈을 리 없다.
분명 이곳에 있는 이들은…….
‘경험 많은 각성자들이다.’
직감은 분명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마침 그중 인상 좋아 보이는 옆집 아저씨의 차림의 남자가 손을 흔들었다. 수염이 덥수룩한 그는 머리를 길게 길어 얼핏 산에 사는 자연인 같아 보였다.
“새로운 동료인가? 반갑네. 나, 박우태라 하네.”
다시 출발하는 버스와 함께 일어난 박우태가 찬영에게 악수를 청했다.
“예.”
악수를 받으며 대답한 찬영에게 박우태가 어깨를 토닥이며 말했다.
“긴장할 것 없네. 자네도 여기 합류한 걸 보면 일당백인 것 같은데. 아닌가?”
그때 붉고 진한 립스틱을 칠한 미녀가 찬영을 힐끗, 보며 중얼거렸다.
“어수룩해 보이는 게 몇 번 경험도 없어 보이는데, 뭘……. 팀장님, 저런 사람을 뭐 하러 합류시켰어요?”
여과 없이 툭툭 내뱉는 직설적인 태도는 찬영을 기분 상하게 하기에 충분했다. 이규복은 대답 없이 어색하게 미소 지었다.
조금 난처한 표정. 그리고 그 생각은 들어맞았다.
찬영 옆에 선 박우태가 이규복의 상황을 넌지시 전해 준 것이다.
“싸가지가 없어서 내쫓고 싶은데 이규복 팀장은 그럴 권한이 없어. 정부 측 사람이야. 그러니 너무 신경 쓰지 말게. 다들 저 여자한테 독설을 한 바가지나 들으면서 합류했거든.”
한 차례 속닥거린 박우태가 어깨를 팡팡 두드리며 자리로 돌아가자 이번엔 이규복이 슬쩍 다가왔다.
“신경 쓰지 마세요.”
찬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굳이 그리 말하지 않아도 신경 쓸 여유는 없다.
찬영이 앉을 곳을 찾으려 하자 이규복이 자기 옆을 가리켰다.
“저와 같이 앉으시죠. 브리핑 못 들으셨으니 말씀드릴 것도 있고요.”
“네.”
이규복 옆자리에 앉은 찬영은 그로부터 이번 전투에 관한 브리핑을 듣기 시작했다.
“현재 독립문 근처에 생긴 홀에서 휴거 다수가 점차 전진해오고 있어요. 그 근방, 인파는 모두 대피하긴 했지만 너무 갑작스러운 일이라 인명 피해가 상당해요.”
찬영이 물었다.
“저희가 해야 할 일은 뭐죠?”
군대 다녀온 남자라면 이런 대규모 비상 상황엔 각자 자기 임무에 맞게 움직인다는 걸 모를 리 없었다.
찬영의 물음에 이규복이 재빨리 대답했다.
“저희가 사실상 첫 번째 V.O. 파견 팀입니다. 정찰 병력이죠. 여러 정보들은 저희가 매달고 뛰는 액션 캠에 실시간으로 전송될 테고요.”
찬영은 그제야 알 수 있었다.
“그럼 현재 이 근방 휴거에 관한 정보를 수집한 후…….”
이규복이 찬영의 눈을 바라봤다.
“본진이 들어오겠죠. 본진이 들어오기 전에.”
찬영이 굳은 표정으로 덧붙였다.
“죽을 수도 있을 테고요.”
동시에 덜컹이던 버스가 끼익 소리를 내며 멈춰 섰다.
“벌써 군부대가 쳐놓은 저지선에 도착했나 보네요.”
그때였다. 이규복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버스가 덜컹이며 붕 떠오르기 시작했다. 뭔가가 버스를 들어 올리고 있었다.
“대체……?”
이어서 찬영의 귓가에 비명 소리가 울려 퍼졌다. 비명소리는 저지선을 맡고 있던 군인들이 내고 있었다. 창밖을 보자 군인들이 황급히 퇴각하는 게 보였다.
동시에 버스가 붕 떠올랐다. 차창 밖으로 보니 지상과 멀어지고 있었다.
‘대체, 어떤 휴거지?’
궁금해서 창밖을 주시하자 날개 달린 휴거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놈들의 등급과 이름까지.
-★★★ 레드비
앞날개 두 쌍, 뒷날개 두 쌍을 가진 경비행기 정도의 크기를 가진 녀석이었다. 생김새는 얼핏…….
‘모기잖아?’
하지만 생김새만 그럴 뿐 몸체는 모기보단 벌에 가까워 보였다. 퇴화한 듯 짧은 뒷다리와 달리, 앞다리는 사마귀의 앞다리처럼 크고 날카로운 칼날처럼 생겼다.
휴거를 본 열 명의 눈빛은 한결 날카로워졌다. 찬영을 면박 줬던 오수향이 앙칼지게 소리쳤다.
“시작부터 지랄이야, 지랄!”
그리고 오수향이 쇠파이프 같은 회색의 지팡이를 들었다.
그녀의 이네이트는 마법 계열. 마법 계열 중에서도 거울 마법을 사용한다. 동시에 왼 손으로 마법 발현을 위한 수인을 맺는 그녀. 푸른빛의 오망성이 왼손 앞에 그려졌다.
-미러 텔레포트
그녀가 나지막하게 중얼거리자 투명 거울이 나타났다. 거울 안으로 들어가면 다시 지상으로 돌아갈 수 있는 텔레포트 거울이었다.
수향이 쓴 마법이 무슨 마법인지 알고 있던 이규복이 외쳤다.
“저 거울로 들어가세요!”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버스 기사를 포함해 안에 있던 각성자 모두는 그녀의 거울 안으로 뛰어들었다. 그렇게 미러 텔레포트를 유지하는 오수향을 제외하고 찬영이 마지막으로 들어가려던 그때, 버스가 찌그러지는 소릴 내며 천장이 뜯겨 나갔다.
콰아악!
순식간에 천장이 드러난 버스와 함께 오수향이 휘청거렸다. 그 덕에 수인이 깨지고 마법이 해제되었다.
눈 깜짝할 새 사라진 거울. 그리고 그 거울은 하필 찬영 앞에서 차례가 끊겼다.
“악!”
오수향은 마법이 아닌 육체적인 이네이트는 없었는지 버스 의자를 붙잡고 매달렸다.
그럴수록 버스는 더욱 모로 기울었다. 마침내 절벽 끝에 매달린 형세. 설상가상 버스의 트렁크 부분까지 찢겨 날아갔다. 천장과 트렁크가 휴거들에 의해 찢겨 나간 것이다.
하지만 찬영은 당황한 기색이 없었다. 오히려 담담한 눈빛으로 앞좌석에 매달려 있었다.
힐끗 밑을 내려다보자 뒷좌석 중간에 매달린 오수향이 보인다. 다시 수인을 맺으려 하는 그녀.
하지만 버스가 공중에 들린 채 좌우로 흔들리니 계속 집중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만 믿는 건 가뿐히 포기해야 할 터. 그럼 직접…….
‘여길 빠져나간다!’
찬영은 오른손을 옆으로 뻗으며 원하던 것을 찾았다.
‘……더블 피니시.’
치익!
그간 인벤토리 창에 두었던 더블 피니시가 매끈한 자태를 드러냈다.
철컥 소리와 함께 오른손에 더블 피니시를 착용한 찬영이 매달려 있던 버스 좌석을 놓았다.
쐐애애액!
뚫려 있는 뒷좌석으로 추락하던 찬영이 뒷좌석 끝자락에 매달려 있던 오수향과 눈이 마주쳤다. 당장에라도 부딪쳐서 같이 떨어질 것 같았다.
“미친 새끼! 뒈지려면 혼자 뒤져야지!”
그녀는 찬영이 다 포기하고 자살하려는 것이라 착각했는지 이를 갈았다.
하나 찬영은 묵묵부답.
오히려 욕설을 뱉는 오수향을 낚아채듯 끌어안아 엄청난 속도로 허공으로 몸을 던졌다.
그리고 오수향을 끌어안은 채 풍압에 의해 빙글빙글 회전하는 찬영의 신체가 회색빛의 초보자 세트로 채워져 가기 시작했다.
강화 하는 재료로 쓰지 않은 방어용 장비들.
초보자 갑옷과 부츠. 충격을 대비한 최소한의 방어구였다.
찬영은 떨어지는 지상을 향해 더블 피니시를 쏘아 올렸다.
펑! 펑!
이미 여러 차례 해 본 적 있는 에어펌프의 활용성.
쏘아진 여러 번의 충격파가 추락하는 속도를 줄여주고 착지 반탄력을 최소화시켜 줄 것이다.
‘그래, 이대로라면 무사할 수 있을 거다!’
그러나 상황은 녹록치 않았다. 추락하는 두 사람을 발견한 비행 휴거들이 그들을 향해 날아든 것이다.
지이이잉!
퍼덕거리며 날아온 레드비를 보며 찬영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근력 300%는 괜한 버프가 아니다.
허공을 빙글빙글 돌고 있는 지금도 찬영의 허리는 중력의 힘을 이겨 내며 균형을 잡았다.
그리고 조준.
이어서 엔진음 같은 소리가 들렸다.
부웅. 부웅.
마치 공기를 압축하고 재압축하는 듯.
그리고 마침내 소리가 잦아들었을 때 고요한 실선이 허공을 가로질렀다. 마치 별똥별 같았다.
솨아아!
하나 부드럽게 나아간 그 선은 마치 예리한 칼날처럼 정면에 날아오던 레드비의 정수리를 꿰뚫었다.
극광極光.
그것은 한 줄기 섬전과도 같았다.
동시에 섬전이 스쳐간 레드비의 날개에 커다란 구멍이 뚫렸다.
찰나 간에 날개를 잃어버린 녀석이 바동거리자 빛이 사라진 지점에 공기 소용돌이가 휘몰아쳤다.
놈의 남은 몸통마저 그 소용돌이에 휩쓸려 표류하는 배처럼 힘없이 날아갔다.
그냥 삭제라고 해도 무방했다.
이를 본 찬영의 눈이 세차게 흔들렸다.
체감 상 이전의 파괴력보다 두 배 아니, 세 배는 뛰어오른 것 같았다. 괜히 +1이 오른 게 아닌 것이다.
서늘하게 웃은 찬영이 한 팔로 그녀를 꽉 끌어안은 채 재차 또 다른 레드비를 조준했다.
찬영을 경시했던 오수향마저 눈이 커져 갔다. 누가 추락하면서 이렇게 완벽히 적을 조준할까?
아니, 그보다…….
마법을 펼치기도 힘든 이 지랄 같은 상황에서 대체 어떻게 이런 차분함이 나오는 거지? 경험이 많아도 비행 휴거는 그녀로서도 처음이었다.
사실 조금 당황하기도 했다.
하지만 자신을 안고 있는 이 남자는 조금의 떨림도 없이 의연하다. 그녀는 그제야 이규복이 찬영을 괜히 데려온 게 아님을 여실히 자각했다.
그사이 또다시 찬영의 더블 피니시가 레드비 한 마리를 추락시켰다.
그때부턴 흡사 난사와도 같았다.
찬영은 충격파로 레드비의 날개를 보이는 족족 꺾어 버렸다.
펑! 펑! 펑!
허공에 공기의 소용돌이가 몰아칠 때마다 레드비가 한 마리씩 추락했다.
* * *
한 편 지상에선 무사히 지상에 착지한 각성자들이 저공비행하는 레드비들만 골라서 해치웠다.
하지만 어느 순간 레드비들은, 마치 다른 급한 일이 있다는 듯 공중으로 다시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처음엔 무슨 일인지 몰라 의아하던 각성자들이 하나둘씩, 공기 소용돌이를 보며 이규복 곁으로 몰려들었다.
“티, 팀장, 저게 뭐요? 저렇게 무지막지한 건 처음 보는데?”
이규복이 박우태의 물음에 빙긋 웃었다.
“저도 두 번째인데 보기만 해도 시원하네요. 아무튼 신고식 시원하게 봤다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네요.”
말을 마친 이규복은 내심 고개를 저었다.
‘상황을 늘 극적으로 만드는 재주가 있다니까……. 아니면 극적일 때 진면목이 드러나는 건가?’
이규복은 그런 생각을 하며 허공을 수놓는 공기 소용돌이에서 시선을 돌렸다.
이 싸움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 같았다.
현재 발견된 서먼 홀과의 거리는 약 4km. 본진이 올 때까지 4km 일대를 수색해야 했다. 머뭇거릴 시간 없이 서둘러야 했다.
“가시죠.”
붉은 갑주를 챙겨 입은 이규복의 눈빛이 서늘하게 식었다.
* * *
펑!
찬영이 마지막 충격파로 속도를 최소화하자, 지상과 5m쯤 남은 상태에서 마무리는 집중력을 다시 갖춘 오수향이 도맡았다.
-미러 스테어.
5m 위에서 커다란 직사각형 거울들이 불현듯 나타나 미끄럼틀이 되어 주었다. 그 덕분에 두 사람은 지상을 구르지 않고도 부드럽게 착지할 수 있었다.
타타탁.
그제야 오수향을 끌어안은 채 바닥에 착지한 찬영이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그러자 아직도 안겨 있던 오수향이 찬영의 가슴을 툭툭 쳤다.
“이, 이것 좀 놔 볼래요?”
짜증 섞인 말투.
하지만 처음 봤을 때보단 적대감이 많이 사라진 말투였다.
“네.”
찬영이 별 감흥 없는 눈빛으로 그녀에게서 시선을 돌려 허공을 쳐다봤다. 레드비를 죽인다고 죽였지만 아직 십 수 마리의 레드비가 있었다.
아니 어쩌면 계속 늘어날지도 몰랐다. 계속 전진하며 녀석들의 동태를 살펴야 했다.
그러는 동안 오수향이 찬영의 곁을 스쳐 지나며 볼멘소리를 냈다.
“빚진 거 아니에요. 충분히 빠져나갈 수 있었으니까.”
오수향은 굳이 고맙단 인사를 하고 싶진 않았다. 실제로도 스스로 벗어날 수 있었으니까. 그냥…… 좀 빚진 것 같은 기분이 껄끄러울 뿐이었다.
그러자 찬영이 피식 웃었다. 그 웃음이 괜히 거슬린 오수향이 다시 고개를 돌렸다.
“왜 웃죠?”
발끈하는 그녀를 보자 찬영은 그녀가 실력은 좋아도 여러모로 아이 같아 보였다. 제법 성격 있는 아이.
‘마음 같아선 머리가 헝클어지도록 쓰다듬고 싶었지만 그건 참아 두고…….’
지나치며 한 마디를 남겼다.
“이런 경우엔 보통 서로 괜찮은지 묻는 게 정상인 겁니다, 그래서…….”
찬영이 진심으로 물었다.
“다친 데는 없습니까?”
“당신이나 걱정해요.”
“그럼 하나 더.”
“당신이나 걱정하라니까요?”
찬영이 아랑곳 않고 그녀의 얼굴을 가리켰다.
“화장 번졌어요.”
돌아서는 찬영을 보는 오수향의 눈빛이 세차게 흔들렸다.
약간 쪽팔렸으나 견딜 만 했다.
‘흥, 그 정도야…….’
그러나 뒤이은 말에 오수향이 기어코 입술을 파르르 떨었다.
“거기 침도 범벅이고.”
찬영은 뒤에 남은 오수향을 두고 먼저 앞서 걸어 나갔다.
눈앞엔 십 수 마리의 레드비를 잡으며 획득한 아이템들에 관한 창이 겹치듯 나타나 있었다.
-레드비의 날개 근육
-레드비의 곁눈
-레드비의 입술 침
그 외 여러 아이템을 획득하였지만 찬영은 한 아이템을 발견하고는 갑자기 발걸음을 멈춰 세웠다.
‘……이건?’
잡템 사이에 예상도 못한 아이템이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