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5
끝이자 시작 (4)
-서강준, 지금 어딘지 알아요?
“어디에 있습니까?”
-클럽에 룸 잡았어요.
“아······.”
그 뒷말은 서로 하지 않아도 됐다.
도욱은 최성준 기자와 간단히 통화를 마친 후, 포털사이트를 확인했다.
서준의 이름으로 검색을 해보았지만 주원대 입학비리 기사에 언급된 S와 자신들은 관련이 없다는 둥의 반박기사 외에는 새로 올라온 기사는 없었다.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서준의 학교폭력에 관한 고발은 내버려둘 모양인 듯싶었다.
사실이든 아니든 간에 원래대로라면 편지를 작성한 이에게 명예훼손으로 고소를 하겠다고 난리를 쳤어야 할 아라 엔터테인먼트였다.
그게 원래 아라 엔터의 방식이었다. 적반하장으로 더 당당하게 굴면 찬반양론으로 분열돼 매듭지어지지 않은 채 사그라지는 법이었다. 시간이 지나면 매듭 풀린 논란은 더 쉽게 사라졌다.
‘그렇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고소한다고도 못 하겠지······. 믿어줄 사람들이 있어야 그런 쇼도 먹히는 법이니까······.’
물론 밝혀지기 전까지 서강준의 입장을 들어 보아야 한다는 팬들의 의견도 만만치 않았지만, 대중의 화살은 이미 서강준에게 겨누어진 상태였다.
조금만 삐끗해도 바로 화살이 날아가 서강준에게 치명상을 입힐 수 있었다.
‘현재로써는 가만히 있는 게 최선의 방법일 거다. 잡음을 낼수록 불리해지는 건 서강준 쪽이니까. 심지어 저 폭행 사실이 진실인 이상.’
도욱은 생각하며 복도를 지나 다시 멤버들이 있는 룸 손잡이를 잡아 열었다.
***
“부르셨어요.”
서중원 본부장의 사무실로 들어선 서강준은 제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잠시 눈을 감고 싶을 만큼 아찔해졌다.
서중원 본부장의 손에는 골프채가 쥐어져 있었다. 서강준이 무어라 더 말을 잇기도 전에 노한 서중원 본부장의 골프채가 서강준을 향해 휘둘러졌다.
“악―!”
정강이를 얻어맞은 서강준이 ‘악’ 소리와 함께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진한 고통이 발끝에서부터 머리 위로 올라왔다.
무너진 서강준 위로 다시 한 번 골프채가 날아들었다.
서강준은 본능적으로 팔을 들어 날아오는 골프채를 막았다.
“으윽!”
이번에는 어깨 쪽이 화끈거렸다. 참기 힘든 고통이었다. 서강준은 입술을 악물었다.
“하악······.”
오랜만에 맛보는 고통에 숨소리가 저절로 거칠어졌다.
그러나 팔을 걷어 부친 서중원 본부장은 숨소리 하나 흐트러짐 없었다. 골프공 두 개를 멀리 날리려다 실패했다는 듯, 영 못마땅한 표정을 짓고 있을 뿐이었다.
어린 시절 서강준은 집안에서 뛰어놀다 거실의 화병을 깬 적이 있었다.
술을 마시고 돌아온 서중원 본부장은 서강준이 한동안 뛰어다닐 수 없을 정도로 서강준의 종아리를 분질러 놓았다.
꼭 잘못했을 때만이 아니었다. 시도 때도 없이 주먹을 날리는 서중원 본부장의 손버릇은 단순히 손버릇이라는 말로 표현 될 것이 아니었다.
엄연한 가정 폭력이었다. 서강준은 물론이고 부인까지도 때때로 손찌검을 하며 한 집안의 가장이 아닌 무뢰배와 같은 모습을 보이곤 했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이 가정을 위해 바깥에서 얼마나 고생을 하고 있으며, 다른 이들의 개노릇을 하고 있는지 매일같이 떠들어댔다. 그런 자신에게 부인과 자식이 감사해하며 살기를 종용했다.
그런 아버지에게 눌려 서강준은 집안에선 숨도 제대로 쉴 수 없었다.
그러나 바깥에 나가면 달랐다. 바깥에서는 서강준이 주인공이고, 무뢰배가 될 수 있었다. 그렇게 해도 괜찮았다.
집안에서 당한 폭력과 억압은 서강준에게 바깥에서 멋대로 굴 정당성을 부여했다. 아버지를 참아낸 대가로, 아버지를 등에 업고 권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
가정에서는 폭력범인 주제에 바깥에 나가면 다정한 이처럼 구는 아버지를 서강준은 흉내 냈다.
하다 보니 아버지가 왜 그러는지 이해가 됐다. 약한 것을 밟을 때의 쾌감이란 그야말로 짜릿했다. 아무리 밟아도 꿈틀거리지조차 못했다. 모두 나약했다. 나약한 것들은 밟혀야 마땅했다.
그러나 이는 모두 서강준이 자신의 입장에서 생각한 자기변명에 불과했다.
같은 상황에 놓인다고 모두 똑같은 선택을 하는 건 아니다. 그저 서강준이 그런 인간이었던 것뿐이다.
바닥에 쓰러진 채 고통을 참고 있는 서강준을 보며 서중원 본부장이 물었다.
마음 같아선 더 하고 싶은데, 서강준의 직업을 고려해 두 대에서 멈춘 서중원 본부장이었다.
“설명해 봐라.”
“뭐를······.”
“뭐를?! 내가 말하지 않았냐. 뭔 짓을 하고 다녀도 되지만 들킬 일은 시작부터 하지 말라고!”
서강준은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어찌 됐든 드러난 바로는 서강준은 아무런 사고도 친 적이 없었다. 그럼에도 진짜인지 아닌지는 묻지도 않고 골프채부터 휘두르는 아버지였다.
“부정입학은 어떻게 하실 건데요. 들어가지도 않아도 되는 대학은 괜히 들어가서······.”
원망 어린 시선으로 자신을 노려보는 아들에 서중원 본부장이 기가 차다는 듯 헛바람을 뱉었다.
“강도욱 밀어내고 싶다고 한 건 네놈이었지! 그리고 그건 진짜 부정입학도 아니니 금방 해결될 문제였다. 네가 폭력 건만 안 터졌어도.”
“고소해요. 어차피 증거 없습니다.”
“고소? 쉽게 말하는구나. 그랬다가 증거라도 나오면! 승소는 하겠지만 괜한 자충수가 되기 십상이다.”
“그럼······.”
서강준이 불안한 눈빛으로 서중원 본부장을 보았다.
여태까지 이렇게 자신의 자리가 위태로웠던 적은 없었다. 위태로울 거라 생각했던 적도 없었다.
서중원 본부장의 아들이자, 상품인 서강준에게 작은 문제라도 생길라 치면 서중원 본부장의 수족들이 나서 뒷처리를 해주었다. 그래서 갑자기 찾아온 위기가 서강준을 미치게 만들었다.
당연히 가질 수 있었던 1등의 자리를 케이케이와 강도욱에게 밀려 갖지 못했을 때조차도 분했지만, 언젠가 강도욱을 고꾸라뜨리고 자신이 그 자리에 갈 자신이 있었다.
촬영까지 해두었던 드라마 주연 자리에서 내쫓기자 원래부터 빈껍데기에 가까웠던 자신은 사라지고, 서강준은 나체로 시내 한복판에 선 기분이었다.
“일단은 어디 얼굴 들이밀 생각도 하지 말고 자숙하는 척해라.”
“제가 왜요! 제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애를 팬 건 사실일 거 아냐?”
“증거가 없다고요! 증거가 없으면 없는 일이죠 그건!”
서강준의 말에 서중원 본부장이 기가 막히다는 표정을 지었다. 동시에 고개를 저었다. 자신이 가르친 방식 그대로였다.
“진짜 없는 거 확실하지? 몸 사리고 있다 보면 금방 또 잊을 거다. 개돼지 같은 대중들은.”
“언제까지요?”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성가신 자식!”
“아버지! 제 일이라구요! 좀 더 나서서!”
“네 애비기도 하지만 난 여기 본부장이기도 하다.”
서강준의 눈이 바람 앞의 촛불처럼 흔들렸다.
“아버지 설마······.”
역시 제 아들이었다. 자신의 생각을 누구보다 빠르게 읽고 있었다. 서중원 본부장이 비릿한 표정을 지었다.
“아직은 아니다.”
“설마 아니죠······. 아니죠, 아버지!”
서강준이 발악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어나다가
“아직은 아니라고 하지 않냐! 그러니까 정리될 때까지 더 사고치지 말고 숙소에 처박혀서 숨만 쉬고 있어!”
서중원 본부장이 소리쳤다. 아직은 아니라는 말은 언젠가 그렇게 될 수도 있다는 말이었다.
‘버림받는다.’
서강준이 천천히 고개를 내저었다.
“이게 애들 소꿉장난도 아닌데 모든 건 가치에 따라서 선택된다. 아들이라고 해서 다를 건 없다.”
“아버지!”
“나가 봐라.”
서강준은 더는 말을 하지 않았다. 더 말해봤자 서중원 본부장의 심기만 더 거스를 뿐이었다.
아들이라고 해서 다를 건 없다고 말하지만, 실은 아들이기 때문에 서강준은 더 쉽게 버려질 수 있는 카드였다.
아들이기 때문에 더 전폭적인 지원을 해줬던 만큼, 아들이기 때문에 비난의 화살이 서중원 본부장에게도 쉽게 날아올 수 있었다.
서중원 본부장은 언제든 ‘꼬리를 자를’ 준비를 하는 사람이었다.
“맨투맨도 생각만큼 벌이가 안 되고······. 쯧.”
서강준이 나간 문을 보고 서중원 본부장이 혀를 찼다. 반반하게 생겨 키워주면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될 줄 알았더니 그것만도 아니라 골치가 아팠다. 투자한 게 있는 만큼 그도 어떻게든 수습할 수 있는 데까진 해야 했다.
서강준이 아버지인 자신만 믿고 날뛰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과 좀 더 자신의 말을 고분고분 하게 듣는 소속 연예인을 만들고자 하는 마음으로 으름장을 놓았지만, 서중원 본부장도 나름대로 수를 내고 있었다.
‘보자······.’
서중원 본부장은 어떤 수로 이 일을 빠져나갈지 고민했다.
***
그러나 서중원 본부장이 잘못 생각한 게 있었다.
서강준은 애초에 서중원 본부장이라는 뒷배가 없으면 살아가지 못하는 인물이었다. 결국엔 아버지에게 버림받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서강준을 뿌리부터 흔들었다.
그러한 흔들림을 감당할 능력이 서강준에게는 당연히 없었다.
집안 내부에서 위축된 자아를 외부에서 폭력을 휘두르는 것으로 풀어대던 서강준이었다.
서강준은 아라 엔터테인먼트의 사옥을 빠져 나와 그 길로 자주 가는 클럽으로 향했다. 서강준을 따라 붙던 몇몇 사생팬들이 클럽으로 향하는 서강준을 보며 수군댔다.
“야, 준이 저래도 되는 거야?”
“그러게. 기사에는 당분간 활동 접고 쉴 거라고 내더니 쉰다는 게 이거지 뭐.”
“드라마 까여서 상심이 심한가 봐. 여자도 숙소로만 부르더니. 사람 때린 건 진짜야?”
“같은 고등학교 애들은 준이 누구 때리는 거 본 적은 없다던데. 그 자필 편지가 가짜겠지. 쟤가 한 성격 하는 건 사실이지만. 설마 그렇게까지 팼을까?”
“하긴. 그런 짓하고 티비에 나올 만큼 간 커 보이진 않는데. 아 속상한 건 알겠는데 이럴 때 술을 마시고 그러냐.”
“그러게. 쟤도 가끔 보면 생각 없는 것 같아. 이미지 메이킹 잘돼서 그렇지.”
“하긴 멤버들한테도 가끔 막하잖아. 욕도 하던데.”
“방송에서는 감쪽같이 속이면서.”
“맞아.”
수군대다가도 사생들은 그런 서준이 자신들만 아는 ‘서준’ 이라는 생각에 금세 걱정보단 낄낄거리기 바빴다.
그사이 클럽으로 들어간 서강준은 룸을 잡고 고등학교 때 같이 모여 놀던 친구들을 불러 모았다.
아라 엔터테인먼트에 정식 연습생으로 들어간 이후에는 연락도 잘 하지 않던 놈들이었다.
연예인의 부름에 친구들이 득달같이 달려왔다. 그중에는 최성준 기자의 동생을 함께 괴롭힌 이들이 섞여 있었다.
“씨X, 그 새끼는 왜 이제 와서 지X하고 자빠졌어!”
서강준은 오랜만에 시원하게 욕을 발설하며 흥청망청 알코올에 빠져 들었다. 골프채에 정강이를 얻어맞으며 나사 하나가 아예 풀려버린 듯했다.
인터넷에 계속해서 올라오는 자신에 관한 욕설도 견디기 힘들었다. 이렇게 모욕을 당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아, 그때가 좋았다. 그 새끼 오줌 질질 싸던 거 보면 진짜 웃겨 죽었는데!”
“그러니까~!”
“아, 씨X! 더러운 얘기 마라. 술맛 떨어진다! 그 X새. 연필도 못 쥐게 손을 아작을 냈어야 하는 건데.”
서강준이 말하며 침을 모아 바닥에 뱉었다.
“근데 넌 어떻게 연락 딱 끊고 사냐.”
“그래서 다시 불렀잖아. 너네 옛날 얘기 입 밖으로 내면 어떻게 되는지 알지?”
“알지, 알지. 우린 절대 안 그러지. 이거 네가 다 쏘는 거지? 양주 더 시켜도 되냐?”
“맘대로 해.”
서강준이 비틀거리며 손을 내젓자 친구라는 이들이 환호를 지르며 웨이터를 불렀다.
그리고 잠시 후.
웨이터가 바닥에 내팽개쳐졌다. 서강준의 심기를 거슬렀다는 이유였다. 서강준이 휘두른 주먹에 얼굴을 맞은 웨이터의 입가에서 피가 터져 나왔다.
서강준이 웨이터의 복부를 발로 찰 때였다. 발을 움직일 때마다 정강이 부근이 아려왔다.
문이 열리며 사람들이 소리를 질렀다. 몰래 다가가 문을 열어 룸 안의 상황이 바깥에 보이게 한 건 몰래 상황을 주시하던 최성준 기자였다.
폭력 피해자의 가족으로서 더는 웨이터가 폭력을 당하고 있는 장면을 지켜볼 수 없기도 했다.
최성준 기자는 인파속에 몸을 숨긴 채 사진을 찍었다. 꼭 최 기자가 찍지 않더라도 이미 너무 많은 사람들의 눈이 서강준을 향하고 있었다.
“뭐야······.”
“서준······ 서준 아냐?”
“지금 누구 때리고 있는 거야?”
“헐······.”
“고등학교 때도 누구 때렸다고 하지 않았어?”
“경찰, 경찰 불러야지!”
“잠시 만요! 잠시만 비켜주세요!”
깜짝 놀란 클럽 매니저가 인파를 뚫고 달려오고 있었다. 프라이빗 룸의 문이 왜 활짝 열려있는지 모를 일이었다.
아무튼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서강준은 자신을 짐승 보듯 하는 사람들의 시선에 박힌 채 멈춰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