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4
푸른 하늘 (4)
***
앨범 티저가 공개되던 날.
‘푸른 하늘’이라는 제목에도 사람들이 지문제의 ‘푸른 하늘’을 떠올리지 못했던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케이케이 멤버들이 흰색 실크 셔츠를 무릎이 찢어진 청스키니 진에 넣어 입은 모습은 세련됨 그 자체였다.
게다가 앨범 재킷 디자인도 영어 폰트를 활용해 아주 감각적인 타이포 디자인을 삽입했기 때문에 옛날 곡을 리메이크한 앨범이라고는 생각하기 힘들었다.
그렇기 때문에 MC의 소개와 함께 케이케이의 무대가 시작되었을 때, 무대를 지켜보던 이들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
“리메이크?”
“지문제? 지문제가 누구야?”
심지어 케이케이의 팬으로 객석에 앉아있던 어린 팬들 중 일부는 MC가 ‘지문제’의 곡을 리메이크했다고 소개했을 때 지문제가 누군지 모르는 팬들도 있었다.
그러나 무대가 시작된 후에는 누구의 곡을 리메이크 했는지는 중요한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계속해서 노래를 흥얼거리게 될 만큼, 노래가 너무 좋았다.
지문제의 ‘푸른 하늘’을 이미 알고 있고, 좋아하던 중년층들은 케이케이의 ‘푸른 하늘’을 듣고는 다른 아이돌 노래를 들었을 때와는 달리 처음부터 아주 큰 만족감을 느꼈다.
“명곡은 명곡이야. 지금 와서 들어도 좋구만.”
“그러게 말이에요. 어떻게 푸른 하늘을 리메이크할 생각을 했지? 용기가 대단하네.”
“용기? 무슨 용기?”
“그렇잖아요. 그냥도 명곡인데 까딱하면 욕먹기 십상이죠.”
“하긴. 그래도 이렇게 들어도 좋은데? 내가 케이케이 노래도 따라부를 수 있고 젊어지는 기분이야 아주!”
무대 뒤에서 다음 무대 세트를 들고 대기하던 스태프들의 대화였다.
무대에서는 케이케이가 커다란 무대를 휘젓고 있었따.
세련된 옷차림을 한 채 푸른 하늘에 자신의 사랑을 목 놓아 외치는 가사의 노래를 부르는 케이케이의 모습은 청춘, 그 자체였다.
꽃이 피기 시작한 쾌청한 3월 날씨에도 무척이나 어울리는 곡이었다.
하늘에게 고백해― 사랑한다고!
이 푸른 하늘을 너에게도 보여주고 싶어―
너에게 고백해―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하는 가사가 반복될 때마다 케이케이를 응원하는 팬들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거기에 1절 후렴구를 맡은 도욱이 ‘너에게 고백’한다는 가사를 부르며 정면을 향해 손가락 총을 쏘자 객석에서는 거의 쓰러지는 듯한 소리가 났다.
TV로 무대를 보고 있던 팬들도 클로즈업된 도욱의 얼굴에 마치 현장에 있는 듯 ‘꺄악’ 하는 소리를 내지를 수밖에 없었다.
안형서는 신나서 날아다니고 있었다. 안형서의 주특기인 윙크를 마음껏 할 수 있는 무대였다. 여기저기 윙크를 발사하며 라이브였음에도 불구하고 아주 편안한 듯한 모습으로 고음 파트를 소화해냈다.
무대 경험이 많아진 케이케이였다. 경험에서 나오는 여유로움이 케이케이의 무대를 더욱 완벽하게 만들고 있었다.
도욱이 재편곡한 ‘푸른 하늘’ 곡에는 기승전결이 확실했다. 하나의 뮤지컬을 보는 듯 노래 속에도 감정이 시작되고 절정에 이르고, 끝에 이르는 느낌이 확실하게 살아 있었다.
김원이 영어 랩으로 마지막 부분을 멋들어지게 장식했다.
그렇게 케이케이의 한층 성숙해진 정규 3집 앨범 컴백 무대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
무대가 시작된 시각이 되어서야 케이케이가 지문제의 ‘푸른 하늘’을 리메이크 했다는 소식이 포함된 기사가 쏟아져 나왔다.
‘돌아온 K.K 방송’의 방송 내용과 소감 등이 한창 기사로 나올 때였다. ‘돌아온 K.K 방송’에서 보여준 멤버들 간의 의리와 진솔한 모습들, 컴백을 준비하는 모습 등이 기사로 나오면서 팬이 아닌 이들도 케이케이에게 어떤 호감을 느끼고 있을 때였다.
곧바로 케이케이의 컴백 무대와 앨범에 대한 기사가 쏟아져 나오자, 이전 기사를 읽고 있던 이들의 클릭이 유도됐다.
저녁 시간 내내 연예면 기사에는 케이케이가 이름을 올리고 있는 셈이었다.
힛 엔터테인먼트 쪽에서는 일부러 3집 앨범에 대한 어떠한 정보도 내보내지 않은 채였다. 홍보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였다.
앨범 관련 홍보 기사에는 앨범 기획의도부터 시작해 나이 어린 도욱이 지문제의 푸른 하늘을 선택하게 된 이유부터 지문제와 연락을 주고받은 일까지 상세히 나와 있었다.
미리 준비해두었던 지문제의 소감도 포함되어 있었다.
지문제가 “케이케이는 저도 요즘 즐겨듣는 가수 중 하나다. 작사 작곡까지 멤버가 하는 줄은 몰랐는데 이번에 알게 됐다. 내가 특별히 아끼는 곡인 푸른 하늘을 어린 친구가 기억해주고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어떤 식으로 재해석될지 기대가 많다. 여러 번 대화를 해보고, 보내준 음악을 들어본 결과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고 말한 소감이었다.
실제로 지문제는 연락뿐 아니라 도욱을 만나보고 함께 작업해보고 싶다는 얘기까지 해 왔었다.
유선 및 메일상의 대화였을 뿐인데도 도욱은 지문제의 호감을 샀던 것이다. 아무래도 도욱의 음악이 지문제에게도 큰 영감을 준 것이 분명했다.
무대가 끝난 후, 곧바로 음원과 뮤직비디오가 공개되었다.
뮤직비디오는 도로를 드라이브하며 멤버들이 ‘푸른 하늘’을 부르는 모습을 담아낸 것이었다. 뮤직비디오만 봐도 가슴까지 뻥 뚫릴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러한 느낌을 살리려고 여러 하늘을 화면에 잡아내느라 옥상 위, 도로 위, 바닷가 등지에서 뮤직비디오 촬영이 이루어졌었다. 촬영 당시에는 지금보다 추운 날씨였기 때문에 멤버들은 꽤나 고생해야 했다.
카메라가 꺼지면 추워서 덜덜 떨면서도, 카메라가 켜지면 시원한 바람을 느끼는 듯한 연기를 곧잘 해낸 멤버들이었다.
-서태준에 지문제까지ㄷㄷ
-문제형님두 인정한 케이케이ㅠㅠ
-강도욱...사기캐다 레알
-아까 몰카한 거 영상 보니까 다들 착해보이던데 잘되길 화이팅!
-이번에도 대박나겠네ㅋ
-푸른 하늘 올해 대박 예감이다! 듣기만 해도 신남ㅋㅋㅋㅋ
-우리 딸 애가 좋아하는 케이케이~ 이번엔 엄마도 좋아할 거라고 들려줬는데 정말이네요~
-실크 부들부들해 보이네. 비싸겠지.
-지훈이 애기 피부가 저 실크보다 더 부들부들해 보임
-오늘 컴백무대도 꼭 봐주세요ㅠㅠ 무대로 보면 더 좋음ㅠㅠ
-뮤비도 대박인데 다들 표정 연기가 늘었어ㅋㅋㅋㅋ
-김원 영어랩 간지다
-중간에 윙크하는 귀여운 애 누구예요?
-안형서요! 형서 많이 예뻐해주세요(찡긋)☆
-애 키우는 60년생 애 엄만데요 푸른 하늘이 이렇게 좋은 노래인 줄 새삼 다시 알았네요 옛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는 것 같기도 하고 고마워요
-지문제 원곡도 들어야지 오랜만에 지문제 노래 들어야겠음
-케이케이 국민 가수될 날 내일인 듯
-ㄴㄴ오늘
도욱은 반응들을 살펴보며 미소 지었다.
도욱은 여태까지 내왔던 어느 앨범을 낼 때보다 앨범이 잘 될 거라는 흔들림 없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이번 ‘푸른 하늘’이 완성되었을 때, 도욱 스스로가 듣기에도 너무나 좋았기 때문이었다.
지금까지 나름대로 여러 곡을 만들어왔지만 이렇게 만족스러웠던 적은 처음이었다. 누군가에게 솔직한 심정을 말하면 거만하다고 수도 있겠지만, 좋은 게 사실이었다.
심혈을 기울인 보람이 있었다.
‘결국엔 노래다. 노래가 무언가를 뛰어 넘을 만큼 좋아버리면, 다른 것들은 별로 중요치 않은 게 된다.’
거기에 케이케이에게는 멤버들 개인의 능력 또한 있었다. 회사의 기획력도 준비되어 있었다. 성공할 수밖에 없는 멤버들이었다.
이번 ‘푸른 하늘’의 경우에는 원곡의 힘이 컸다.
‘리메이크가 아니어도 이 정도 곡을 쓸 수 있어야겠지······.’
그러나 반드시 곡을 자신이 써야 하는 것도 아니었다. 좋은 곡을 쓰는 작곡가가 있다면, 그 곡을 받아오는 것도 좋았다. 어쨌든 도욱도 가수였기 때문이었다.
현재로썬 케이케이의 색깔을 가장 잘 아는 게 도욱이었고, 직접 작사, 작곡, 프로듀싱하는 게 더 큰 홍보 효과까지 누리고 있으니 좋은 일이었다.
도욱은 이런 저런 생각에 잠기며 잠시 피곤한 눈을 감았다.
어제 컴백 무대 후, 이런 저런 반응들을 살펴보느라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한 상태였다.
오늘은 KVS의 음악 방송이 있는 날이었다.
“형서 형. 형 얼마나 윙크 많이 했는지 팬들이 형 윙크 몇 번했는지 세고 있어요.”
“어? 진짜? 셀 수가 있대?”
“네. 형 개인 직캠 보면서 셌다는데요. 그러니까 윙크 좀 그만······.”
“오, 봐봐. 열두 번? 열두 번밖에 안 했단 말이야?! 오늘은 스무 번 공약 간다!”
뒷좌석에 탄 석지훈과 안형서가 휴대폰으로 팬들의 페이스노트 계정을 보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오늘 무대에서는 윙크를 스무 번 하겠다는 안형서에, 윙크 좀 그만하라고 말하려던 석지훈은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마, 스무 번을 한다고? 아예 눈을 감고 있지 그래.”
“그러니까요.”
정윤기의 핀잔에 석지훈이 동조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안형서는 신나서 케이케이 페이스노트 계정에 오늘 무대에서는 윙크 스무 번을 할 테니 기대해달라는 메시지를 남기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 어느덧 구철민이 운전한 벤은 KVS 본관 앞에 도착해 있었다.
조수석에 타 있던 오백호 실장이 주변을 살피곤 외쳤다.
“도착했다! 조심해서 내려라. 오늘은 팬들 더 많은 것 같으니까.”
“넵!”
KVS는 공영 방송이어서인지 다른 방송국에 비해 개방성이 있었다. 누구든 본관 입구 정도까지는 들어갈 수 있었다.
때문에 음악방송이 있는 날이면, 주차장에서 입구까지 들어가는 길목을 팬들이 거의 점거하다시피 하고, 진을 친 채 가수들을 기다리곤 했다.
케이케이의 컴백주인 오늘은 거의 최다 인원이 케이케이의 ‘출근길’을 보려고 대기를 하고 있었다.
멤버들은 제발 머리카락을 잡아 뜯는 팬만은 없기를 바라며 빠르게 벤에서 내렸다.
처음으로 벤에서 박태형이 내리는 순간을 시점으로 정신없이 멤버들을 부르는 소리와 카메라 셔터 소리로 입구가 혼란스러워졌다.
***
KVS 음악방송 리허설을 마친 후, 케이케이 멤버들은 팬들이 보내 준 서포트 도시락으로 점심을 해결하고는 사전녹화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 케이케이의 컴백 무대를 사전 녹화로 진행될 예정이었다. 사전 녹화에는 케이케이의 팬들만 사백여 명이 들어오게 됐다.
앉아서 꾸벅꾸벅 조는 멤버들 사이를 빠져 나와 도욱은 화장실에 다녀오던 차였다.
“어? 강도욱 씨!”
다시 대기실로 향하던 도욱은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돌아보았다.
방송국 내에 있는 관계자용 카페에서 부르는 소리였다.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나 도욱에게로 허겁지겁 향해왔다.
전혀 모르는 얼굴의 중년 남성이었다. 차림새로 보나 인상이나 말투로 보나 KVS 관계자인 것만은 분명해 보였다.
‘PD인가? 누구지······.’
누구인지 몰라 멀뚱하게 선 도욱을 향해 중년남성이 과한 친근함을 표현해왔다.
“아이고, 반갑습니다. 케이케이 강도욱 씨 맞죠?”
“예. 맞는데······.”
“나는 여기서 일하는 사람인데.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나랑 사진 한 번만 찍어주쇼.”
“아······.”
“우리 딸이 워낙 팬이라서 그래요.”
원래라면 사진은 거절하는 게 맞았지만, 방송사에서 일하는 사람인지라 괜히 거절했다가는 말이 나올 수도 있었다.
다행이 메이크업도 하고 있었던 터라 사진 찍는 게 어렵진 않았다.
“내가 딸 때문에 체면도 없이 부탁하는 건데 좀 들어줘~”
도욱이 약간 머뭇거리자 남자가 은근히 압박해왔다. 도욱은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알겠다고 하곤 남자의 옆에서 웃으며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었다.
“그럼······.”
“그래요. 고마워~! 우리 딸한테 자랑할게!”
남자가 인사를 하며 반대편으로 사라졌다. 너무 편하게 대하는 듯해 약간의 불편함이 있었지만, 크게 어려운 일도 아니었어서 도욱 또한 예의를 다하곤 돌아섰다.
그때 카페에서 다른 중년 남성, 이번엔 익숙한 얼굴의 남성이 일어나 통화를 하며 도욱의 옆을 지나갔다.
‘저 사람은······!’
“아, 그니까. 부장님은 그렇게 하자는데. 젊은 피가 필요하다니까. 모르겠어. 지금도 나쁘진 않아서. ······시청률 떨어지긴 하는데. 잘못했다간 괜히 분위기만 흐릴 수도 있고. 신중해야지.”
도욱은 남자가 가는 방향으로 함께 걸으며 통화 내용을 들을 수 있었다.
‘설마 지금······.’
들려오는 통화 내용을 파악한 도욱의 눈이 반짝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