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보니 슈퍼스타-78화 (78/225)

# 78

맹공격 (3)

도욱이 생각했던 바로 그 느낌의 곡이었다.

“설마······.”

도욱은 흥분을 감추지 못하며 작곡가의 이름을 확인했다.

Yarol. 도욱은 기억을 되짚었다. 확실하진 않지만 한국에서 히트를 친 아이돌 그룹의 노래의 작곡자도 이와 비슷한 이름이었다.

당시 히트를 친 후 음악 전문 잡지에서 작곡가가 인터뷰를 진행한 적도 있었다.

‘프랑스로 유학 온 한국인 친구를 사귀면서 한국 문화에 관심이 많아졌다. 한국 사람들, 한국 음식, 모든 게 에너제틱하고 흥미 넘쳤다. 작곡가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K-POP 음악에도 관심을 갖게 됐고, 한국 가수와 작업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도 프랑스를 기반으로 영국 등지에서 신예 아티스트로서 작곡과 작사를 해오던 Yarol이었다.

‘되는 대로 한국의 유명 기획사들에 곡을 보냈다.’

도욱은 그때의 인터뷰의 대체적인 내용들을 기억했다.

원래도 Yarol이 힛 엔터에 곡을 보냈었는데 그때에는 채택이 되지 않은 것일 수도 있었다. 혹은 케이케이가 지금만큼의 인기가 없었던 때였으므로 Yarol이 힛 엔터에는 보내지 않았었을 가능성도 있었다.

어찌됐든 중요한 것은 이번에는 Yarol이 힛 엔터테인먼트에 곡을 보냈다는 것이고, 심준 팀장이, 또 도욱이 놓치지 않고 그의 곡을 들었다는 것이었다.

반복 재생 시켜놓은 곡은 저절로 머리를 까딱이고 싶어질 정도로 흥겨웠다. 리듬이 가벼운 듯하면서도 묵직한 베이스음이 무게를 잡아 주었다.

멜로디라인도 상당히 무게감이 있었다.

도욱은 곧바로 심준 팀장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팀장님 제가 찾던 곡이에요. 이 노래로 꼭 앨범 만들고 싶습니다.]

도욱은 다음 앨범에 대한 기대감으로 부풀어 올랐다. 다음 앨범은 수록곡도 많은 정규 앨범이었다.

심준 팀장이 찾아낸 작곡가들과도 협업하겠지만, 기본적으로 도욱은 자신이 작곡한 곡들을 수록곡으로 넣을 예정이었다.

도욱의 곡들과 Yarol의 곡이라면, 잘 어우러져 좋은 앨범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었다.

***

심준 팀장이 Yarol 측과 이야기를 진행하며, 스케줄 및 조건 등을 조율하는 동안 도욱이 주로 머무르는 곳은 ‘준비하라 1999’의 촬영장이었다.

추가로 대한예술종합학교 수업이 시작되어 도욱은 거의 완벽하게 연기자로서의 삶을 살아내는 중이었다.

물론 중간중간 시간이 빌 때면 빠짐없이 곡 작업에 매진하고 있기도 했다.

오늘 도욱은 화가 난 여자주인공, 한연주를 뒤쫓아서 돌려 세운 뒤 키스를 시도하는 씬을 찍었다.

한연주가 뒤로 물러나면서 키스에 성공하진 않았지만 입술과 입술이 닿을 듯 말 듯한 게 포인트였다.

한연주를 짝사랑하는 김민기의 애절한 마음과 친구라고만 생각했던 김민기의 그러한 행동 때문에 당황하는 한연주가 오늘 촬영의 주된 내용이었다.

도욱은 촬영을 하는 동안 최대한 김민기의 마음이 되어 살려고 노력했다. 사실 보명이던 시절에 연애 한 번 제대로 해본 적 없던 도욱이었다.

이성을 김민기 역처럼 좋아한 적도 없었다. 부정적인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 있었다. 그렇지만 서툴게 누군가를 좋아하고, 다가가려고 하는 모습은 도욱으로서도 절절하게 공감하는 감정이었다.

덕분에 한연주를 바라보는 김민기, 도욱의 표정은 그 누구보다 애절했다.

커트를 외치는 신윤호 PD의 표정이 밝았다.

씬 하나를 끝내고 도욱은 다음 씬 촬영을 위해 세트장 한편에서 대기중이었다. 대기 시간이 꽤 길어질 것 같아 도욱은 수업 과제를 준비했다.

“도욱이- 뭘 그렇게 보고 있어?”

같이 대기중이던 박동휘가 도욱에게 말을 걸어왔다.

도욱보다 먼저 대기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어지간히 심심한 얼굴이었다.

“···과제가 있어서요.”

“과제? 아. 봐봐, 무슨 과제야?”

도욱이 노트에 정리해둔 과제 내용을 박동휘에게 건넸다.

“몸으로 동물 표현? 이거 설마 이철 교수님 수업?”

“네, 맞아요.”

“이 교수님 엄청 빡세지. 아휴, 동물은 정했어?”

아는 체를 하며 박동휘가 고개를 저었다. 도욱이 아직 못 정했다고 하자 사자나 호랑이, 개는 너무 흔하니까 곤충 쪽을 생각해 보는 게 좋겠다고 했다.

“선배님은 뭐 하셨어요?”

“나? 나 뭐했더라. 거미였나.”

“거, ···거미.”

거미를 어떻게 표현했다는 것인지 이해하기 힘들었지만, 그런 점에서 박동휘가 대단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어쨌든 촬영장에 대한예술종합학교를 이미 좋은 성적으로 졸업한 선배들이 있어서 도욱은 이렇게 종종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촬영이 계속되면서 함께 호흡을 맞추고, 시간을 보내는 일이 많다 보니 자연스럽게 동료 연기자를 넘어 절친한 이웃 형제 같은 느낌이 돼 있었다.

도욱의 곧은 성품도 성품이거니와 도욱이 사람을 가리지도 않았기 때문에 모두가 호감을 가지고 다가왔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친해질 수 있었다.

“그리고 아까 씬에서 말야.”

“네. 보셨어요?”

“엉. 지나가다 봤는데 그 연주 잡을 때, 어깨 이렇게 잡는 것보다, 이쪽으로 이렇게 하는 게 화면에 보이는 게 나을걸?”

“아······.”

박동휘가 도욱의 어깨를 잡는 것으로 시범을 보였다.

도욱은 박동휘의 말을 단번에 이해했다. 앵글상 박동휘가 잡은 자세가 훨씬 좋아보였다. 이미 끝난 컷트라 아쉬워 하는 도욱에 박동휘가 웃으며 말했다.

“배워가는 거지. 다음 번에는 그렇게 해.”

“네.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래그래, 감사하라고. 그나저나 다음 작품은 뭐 들어가? 정한 거 있어?”

박동휘가 도욱의 차기작을 물어왔다.

“아직······ 생각해 둔 게 없어서.”

이번 작품을 끝낸 뒤, 도욱의 머릿속에는 다음 앨범에 대한 생각뿐이었다. 아마 ‘준비하라 1999’가 끝나고 난 뒤에 여러 제의가 들어오겠지만, 도욱은 기다릴 생각이었다.

지금의 김민기 역할은 자신의 이미지와도 이미 잘 맞아서 무리없이 해내고 있었다. 그러나 연기를 하면 할수록 부족함을 느꼈다.

조금 더 공부해서 내년에 작품을 제대로 하나 더 하면 좋을 것 같았다.

“다음 작품도 같이 하면 좋을 텐데 말이야···.”

“그러게요. 저도 선배님이랑 하면 좋겠습니다”

“진심이지?”

“그럼요!”

그때 구철민이 양손 가득 아이스크림 봉지를 들고 나타났다. 연출진들부터 시작해서 아이스크림을 나눠주기 시작했다.

“도욱 군이 쏘는 거야?”

“예! 그렇습니다.”

스태프들의 물음에 구철민이 답했다.

“주연배우! 잘 먹을게!”

“잘 먹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여기저기 도욱에게 인사가 쏟아졌다. 박동휘도 아이스크림 껍질을 까서 입에 물며 도욱을 향해 윙크했다.

슬슬 등 뒤로 땀이 흐르는 날씨였다. 촬영도 막바지에 이르러 있었다.

***

도욱은 심준 팀장과 본격적인 앨범 준비를 위해 여러 차례 대화를 나누었다.

앨범제작팀에서는 도욱이 제시한 컨셉을 중심으로 구체적인 앨범 컨셉과 활동 전략 등을 구축했다.

팬-마케팅팀에서도 적극적으로 활동 전략을 세우는 데 함께했다.

교복을 입었지만, 단단한 청년의 모습을 한 케이케이가 전체적인 컨셉이었다. 말하자면 ‘교복입은 짐승남’이었다.

오백호 부장을 통해 몸을 조금 더 다부지게 키워야 한다는 이야기에 멤버들은 울상을 지었다. 컴백 전 한 달 정도는 닭가슴살에 단백질 쉐이크로 매일을 보내야 할 것 같은 슬픈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컨셉이 정해졌을 때, 도욱은 심준과 조애니 팀장에게 새로운 제안을 하나 했다.

도욱의 제안을 들은 심 팀장과 조 팀장은 잠시 멍하니 도욱을 볼 수밖에 없었다.

특히 단순한 팬-마케팅팀 팀장이 아니라 곧 기획 이사가 될 조애니 팀장이 더 놀랐다. 권흥조 제작이사와 함께 힛 엔터테인먼트의 미래에 대해 늘 논하던 내용 중 하나를 도욱이 제안해온 것이었다.

도욱은 권흥조 제작이사와 따로 이번 앨범 제작과 관련해 얘기를 나누기 위해 저녁 식사 자리를 가졌다.

심준 팀장도 함께였다.

“도욱 군, 촬영은 잘 돼가고 있나요?”

“예. 거의 끝나갑니다.”

“방영이 곧이죠?”

도욱이 답하며 끄덕였다. 권흥조 이사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사실 나보다도 도욱 군이 바빠서······. 일 얘기는 촬영 끝나고 하려고 했지.”

“그러면 늦어질 수도 있으니까요.”

권 이사는 도욱의 눈을 볼 때면 그 속에 타오르는 불꽃이 있는 듯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순히 젊기 때문에 있는 열정과 혈기는 아니었다. 그런 것이었다면, 어느 정도 성공을 이루었을 때 꺼져버렸거나 주변에 피해를 끼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도욱의 불꽃은 언제나 그 속에서 타오를 뿐으로, 바깥으로 드러낼 때에는 언제나 신중하고 진중했다.

주문한 스테이크가 세 사람의 앞에 도착했다.

“그래서 앨범 준비는 어떻게 되어가고 있다고요?”

스테이크를 썰어 먹으며 몇입 먹었을 때 권 이사가 물었다.

심준 팀장이 물을 한 모금 마시고, 아직 서면보고가 이루어지지 않은 앨범 제작 상황들을 보고 했다.

권 이사가 궁금해할 것은 타이틀 곡일 것이므로 타이틀 곡에 대한 설명이 주를 이루었다.

대략적인 컨셉을 설명하자 권 이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는 뜻이었다.

컨펌 걱정은 안 해도 되겠다는 생각에 심준 팀장은 속으로 즐거워했다.

“그런데 도욱 군이 앨범을 두 가지 버전으로 만들어 보자고 해서요.”

“두 가지 버전?”

“네.”

권 이사의 물음에 도욱이 답했다.

일본에 정식으로 앨범을 낼 때부터 생각해오던 것이었다. 현재로선 대부분의 가수들이 일본 진출을 목표로 삼고 있었다.

일단은 일본 음반 시장이 우리나라보다 컸다. 게다가 일본 팬들의 소비 패턴도 한국 가수들의 입장에선 충분한 돈이 되었다.

그러나 일본 음반 시장이 크다는 건 그만큼 일본 내 가수들의 입지 또한 탄탄하다는 뜻이었다. 한국 가수들이 어느 정도의 성공을 거둘 수는 있었지만, 그 파이는 한정적이었다.

도욱은 이제 중국을 겨냥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중국에서도 이미 ‘한류’는 시작됐다. 그러나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중국 팬들이 한국 가수들을 좋아해 찾는다는 생각 때문인지, 일본과 달리 중국에 정식으로 진출하려는 가수는 많지 않았다.

중국은 커다란 대륙이었다. 게다가 얼마 안 가 중국은 미국과 대립할 만큼 경제적으로 성장한다. 이미 중국은 놀라운 성장세를 보이고 있었다.

그러한 시장을 놓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오히려 한 발 빠르게 공격적으로 진출해야 한다는 생각이 도욱에게는 확고하게 있었다.

“중국어 버전 앨범을 만들었으면 합니다.”

때마침 힛 엔터테인먼트에서 중국 자본인 태화그룹의 투자금을 유치한 상황이었다.

도욱은 그 소식을 듣고, 단순한 투자금 유치가 아닌 중국 내에서의 활동을 권흥조 제작이사도 염두에 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었다.

도욱의 말에 권 이사가 조애니 팀장과 마찬가지로 조금 놀란 표정을 지었다.

“조 팀장이 보통 일이 아니라고 귀뜸을 해주긴 했지만, 정말 놀랍군요. 도욱 군.”

권 이사가 쥐고 있던 포크와 나이프를 내려놓았다.

“중국 진출은 우리도 생각하고는 있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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