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9
맹공격 (4)
권 이사는 너무 늦어져서도 안 되겠지만, 너무 급히 중국에 진출할 필요 없다고 생각했었다.
시장성은 충분하지만 일본과 달리 아직 확실한 케이스가 없는 상태였다. 무턱대고 중국 시장에 뛰어들 수만은 없는 상황이었다. 본토에 대한 철저한 시장조사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태화그룹 쪽에서 투자금을 댄 이상 유통망을 뚫는 데도 도움을 주지 않겠습니까?”
“흐음······.”
“물론 그런 기대만으로 무작정 중국 진출을 하려고 앨범을 제작하자는 건 아닙니다.”
“그러면?”
권 이사가 눈을 빛내며 물었다. 도욱의 식견은 늘 권 이사의 기대 이상이었다. 기대치가 낮은 것도 아니었다.
“일단 자국 언어로 노래를 녹음하고 뮤직비디오를 제작해 놓으면, 중국의 K-POP을 좋아하는 이들이 알아서 찾아서 들을 겁니다.”
지금은 인터넷이라는 유통망이 있는 시대였다.
그 어느 유통망보다 빠르고,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길이었다. 당장에 수익으로는 연결되지 않아도 인터넷에서의 반응과 인기는 빠른 시일 내에 수익으로 직결된다.
도욱은 그 점을 분명히 인지하고 있었다.
“하긴 한국어로만 해놔도 알아서들 많이 들으니······.”
심준 팀장이 도욱의 말에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가요?”
권흥조 이사가 되물었다.
“예. 이사님께서도 아시겠지만, 케이케이 앨범판매량 중 일부, 아니 상당량은 해외에서 이뤄진 거기도 하니까요.”
“네. 중국에서 보따리상들이 사가기도 하고, 팬들이 공동구매를 하기도 합니다.”
심준 팀장의 말에 도욱이 덧붙였다.
“그런데 중국어 버전이면 더 많은 중국인들에게 어필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겠죠.”
도욱의 말을 권 이사가 이었다.
권 이사도 K-POP을 좋아하는 중국 팬들이 얼마나 두꺼운 팬층을 형성하고 있는지는 알고 있었다. 대륙 내부로 진출하는 게 어려웠을 뿐이다.
“그럼 일단 첫 단계라고 생각하고 손익을 분석해 보도록 하죠. 기획팀에도 전략을 짜 보라고 지시를 할 테니.”
권 이사의 말에 도욱이 끄덕였다. 잠시 놓았던 포크를 다시 들어 썰어 놓은 스테이크를 집어 먹으려던 심준 팀장이 허허로운 웃음을 지었다.
“이거, 음식이 다 식어버렸는걸요.”
열띤 토론을 벌이는 동안, 세 사람의 접시에 놓인 스테이크가 어느덧 식어 있었다.
***
음원차트는 <해와 달의 연인> OST와 쇼미더허니 음원이 각축전을 벌이고 있는 상태였다. 정윤기의 곡은 쇼미더허니가 발매한 음원들 중에서도 굉장히 상위의 음원 순위를 기록했다.
정윤기의 인기도 상당해졌다.
랩 실력을 인정받는 동시에 정윤기의 사투리와 덤덤한 성격에 중독됐다는 여성 팬들도 많았다.
젖살이 조금 남아 있어 볼이 퉁퉁했던 학생 래퍼 때와 달리 케이케이 활동을 위해 살을 빼 얄쌍해진 얼굴이 인기에 큰 영향을 끼치기도 했다.
게다가 원래 케이케이의 정윤기 팬이었던 이들은 이때다 싶어 신나게 인터넷에 ‘정윤기 영업’을 했다.
커뮤니티 사이트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정윤기의 일대기와 성장 과정을 읊는 ‘영업글’이 올라왔다.
지겹다는 댓글도 종종 달렸지만, 똑같은 걸 올려도 계속해서 반응이 좋았다.
쇼미더허니의 인기의 선봉에 선 만큼 정윤기는 대세의 반열에 올라 있었다.
“힙합피플에서도 윤기 브라더 결승 못 간 거 아쉽다구 하네!”
김원이 ‘힙합피플’에 올라온 게시글을 보며 말했다.
‘힙합피플’은 힙합을 주 장르로 듣는 이들이 모여 있는 사이트였다. 반쯤 전문가인 사람들이 모여 있는 탓인지 랩에 대한 평가와 비판이 아주 거침없이 이뤄지는 곳이기도 했다.
특히 아이돌 그룹의 래퍼들에 대해서는 래퍼 취급도 안 해주고, 논의도 하지 않는 곳이었다.
처음 쇼미더허니에 정윤기의 출연소식이 전해졌을 때도 아무리 학생 래퍼 출신이라지만, 아이돌은 아이돌일 뿐이라며 정윤기가 랩을 엉망으로 할 것이라 점쳤었다.
그러나 결과는 달랐다.
“힙합피플에서도 인정한 래퍼라니. 대단한데?”
“그만 띄워줘라, 마!”
안형서가 과장된 어투로 대단하다고 하자 정윤기가 손사래를 쳤다.
그러면서도 기분이 영 나빠 보이진 않았다.
애당초 목표는 생방송 무대였다. 생방송 무대 진출은 물론이고 4강까지 진출했으니 정윤기로서는 목표를 다한 셈이었다.
정윤기는 제법 겸손한 어투로 말했다.
“전에는 4등이었는데, 이번엔 3등했으니까. 나아진 거겠지.”
“시즌2도 한다며! 거기 나가서 2등하자!”
“그러면 시즌3 나가면 1등 하는 거예요, 형?”
안형서와 석지훈이 차례로 깐죽대자 정윤기는 주먹이 운다는 듯한 포즈를 취했다.
어쨌든 정윤기가 쇼미더허니에 나간 것은 개인적으로든 팀적으로든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 건 확실했다.
도욱이 얘기를 주고 받는 멤버들을 보며 웃었다. 그러나 도욱 답지 않게 웃음이 조금 경직되어 있었다.
“도욱이는 이제 나가나?”
“네.”
“우리랑 같이 보면 좋을 텐데.”
정윤기의 말에 대답하자 안형서가 아쉬워했다.
“그러게······.”
박태형도 아쉬움을 표했다. 때마침 도욱의 휴대폰이 울렸다. 도욱을 데리러 온 오백호 실장이었다.
“지금 바로 내려갈게요.”
전화를 끊은 도욱이 멤버들에게 인사했다. 거실에 모여 있는 멤버들이 손을 흔들며 도욱을 배웅했다.
오늘은 다름 아닌 ‘준비하라 1999’의 첫 방송일이었다.
때문에 멤버들도 도욱의 첫 출연 드라마를 함께 시청하려 연습도 뒤로 미루고 모인 것이었다.
물론 정윤기가 쇼미더허니 방송을 했을 때도 모였던 멤버들이었지만, 도욱은 새삼 모니터링과 응원을 해주겠다고 팔을 걷어 부치고 나선 멤버들이 고마웠다.
그런 멤버들과 함께 첫 방송 시청을 하지 못하고, 방송국 건물로 향하는 발걸음에는 아쉬움이 있었다.
도욱이 오백호 실장과 함께 TBN 방송국으로 향하는 것은 사전제작을 하면서 친분이 두터워진 연출진들과 출연진들이 다함께 모여 첫 방송 모니터링을 하기로 했기 때문이었다.
“많이 떨리지?”
“하······. 네.”
“오, 진짜 떨려? 너 떠는 모습 오랜만에 보는 것 같다.”
조수석에 앉은 도욱을 살피며 오백호 실장이 말했다. 도욱은 무릎 위에 주먹을 놓고 쥐었다 피었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떠는 모습이 오랜만이라는 오백호 실장의 말은 사실이었다.
도욱도 물론 무대를 설 때마다 긴장이 되기도 하고, 늘 떨리는 마음이었다. 그러나 데뷔 무대와 컴백 무대들을 거치면서 어느 정도 평정심을 유지하는 데는 나름 도가 튼 상태였다.
그러나 연기는 원래의 꿈도 아니었고, 정말이지 도전이었다.
“잘했다며. 신 PD가 네 칭찬을 침이 마르게 하더라.”
오백호가 도욱의 긴장을 풀어주려 말했다.
사실 신 PD의 칭찬이라면 도욱도 오늘 아침에도 들었던 것이었다.
사전제작이었던 ‘준비하라 1999’의 녹화는 몇 주 전에 끝나 있었다. 촬영이 끝나고 방송 날짜가 다가오는 동안 도욱은 케이케이 멤버들과 착실히 정규 2집 앨범을 준비했다.
후편집 기간 동안 신 PD는 종종 연락해 ‘우리 주연 배우 연기가 최고라서 편집을 보는 데도 피곤하지 않다는 둥’ 하는 이야기를 했었다.
오늘 아침에도 마찬가지였다. 녹화는 끝났지만 드라마는 이제 시작이니 잘해보자는 이야기였다.
물론 이러한 신 PD의 계속된 공세는 자신이 연출하는 다음 프로그램에 도욱을 또 한 번 섭외하기 위한 포섭활동의 일부였다.
***
TBN 방송국 지하주차장.
“먼저 올라가. 나 차 주차하고 갈 테니까.”
“네. 올라가 있을게요.”
먼저 올라가 있기로 한 도욱은 미니벤에서 내려 로비와 연결된 주차장 통로로 향했다.
엘리베이터 앞에는 이미 다른 출연자와 그의 매니저가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었다. 먼저 도욱을 발견한 출연자 쪽이 도욱에게 쾌활한 목소리로 인사했다.
“어, 도욱 씨!”
아라 엔터테인먼트 소속 연예인인 주민아였다.
전 출연진들이 한 가족 같은 분위기인 ‘준비하라 1999’팀이었다. 방송가에 이미 분위기가 좋다고 소문이 나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도욱은 촬영을 하면서도 주민아에게만은 마음을 열기가 힘들었다. 적당히 발랄한 성격으로 스태프들이나 동료 배우들을 잘 챙기는 성격임에도 그랬다. 서중원 본부장과 함께 있던 모습이 첫 인상이어서인지도 몰랐다.
‘······너무 선입견을 가져선 안 돼.’
도욱은 다른 이들에게와 마찬가지로 그린 듯한 미소를 지으며 주민아에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잘 지내셨어요?”
“네. 오늘 정말 기대돼요! 1화에는 제 분량이 많지는 않지만~!”
“하하.”
도욱은 답을 피하며 일부러 어색하게 웃었다. 불편하다는 티를 내지 않으면 이런 식의 대화가 계속될 것 같았다.
가끔 드는 이런 위화감들이 도욱이 주민아에게 거리감을 느끼게 되는 원인일지도 몰랐다.
“도욱 씨는 신 PD님도 예뻐하시구 부러워요~!”
일대일로 대화를 안 해봐서 몰랐는데, 대화를 해보니 더욱 확실해졌다.
민아 씨도 모두들 좋아하지 않냐는 말로 애써 도욱이 대화를 이었다. 그때 마침 주민아 매니저의 휴대폰이 울렸다. 이름을 확인한 매니저가 주민아에게 넘겼다.
촬영장에서도 다른 출연진보다 높은 빈도로 휴대폰 통화하는 장면이 목격되던 주민아였다. 도욱은 내심 주민아에게 애인이 있는 것 같다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해 왔었다.
간드러지는 목소리로 주민아가 전화를 받았다.
“본부장님?! 네에, 저 민아요. 네, 방송국 지금 도착 했어요~!”
본부장이라는 말에 도욱의 눈매가 날카로워졌다.
‘서중원 본부장인가?’
이런 날 소속 연예인인 주민아에게 전화를 건 것이 이상한 일도 아니긴 했다.
땡―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가 도착했다. 주민아는 통화를 하느라 정신이 없어 보였다. 대신 매니저가 눈짓하며 말했다.
“저희는 다음 엘리베이터 타고 올라가겠습니다. 먼저 올라 가십쇼.”
“네, 그럼.”
닫히는 엘리베이터 문 사이로 주민아가 눈웃음을 치며 웃는 모습이 보였다. 그 순간 도욱은 어쩐지 께름칙한 느낌을 받았다.
‘아냐, 지금은 확실하지도 않은 느낌에 시간을 뺏길 때가······.’
도욱은 생각하며 엘리베이터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다시 한 번 점검했다.
주요 출연진들과 연출진들이 모인 TBN 영상실, 정각 열 시가 되자 ‘준비하라 1999’의 첫방이 시작되었다.
어두운 공간 속, 도욱의 눈이 반짝반짝하게 빛나고 있었다. 긴장감에 도욱은 침을 한 번 삼켰다.
조금 번잡했던 주변도 첫 장면이 시작되자 이후부터는 급속도로 집중하기 시작했다. 주변이 고요했다.
민기 : (잠에서 깬 듯) 왜. 무슨 일인데.
동환 : (다급하게) 네가 지금 잘 때냐? 옆반 난리 났다!
민기 : (무심한) 옆반이 왜.
동환 : 연주, 네 불알친구가,
민기 : 왜 또 누구 오빠 따라간다고 담이라도 넘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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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기 : 연주야, 나.
연주 : 뭔데! 꼭 지금 말해야 되냐? 나 급한데!
민기 : 뭐가 그렇게 급한데.
연주 : 넌 뭐를 그렇게 오늘 말해야 하는데.
민기 : 내가 너······.
신발끈 묶고 있던 연주, 고개를 들고 민기와 시선 마주치며 엔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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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장면부터 마지막 장면까지, 60분의 긴 시간이 6분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대본 속 대사들은 통통 튀었고, 캐릭터는 생생했다. 젊은 세대와 중장년층을 아우를 만큼 이야기도 풍부했다.
중간 중간 적절하게 들어간 90년대의 노래들도 장면과 기가 막히게 맞아 떨어졌다.
배우들은 자신들이 연기한 드라마인데도 마치 시청자처럼 빠져들어 재미있게 드라마를 시청했다.
도욱의 연기는 그 안에서 완벽하게 녹아 들어갔다. 김민기, 그 자체였다.
“이거······. 대박나겠는데요?”
엔딩곡이 흘러나오는 조용한 영상실, 스태프 중 한 명의 중얼거림이 모두의 귀에 꽂혔다. 동의할 수밖에 없는 사실이었다.
***
1화가 나간 후, ‘준비하라 1999’의 반응은 그야말로 대폭발이었다.
1화 시청률은 TBN 방송사치고 훌륭한 편이었다. 그러나 1화에 빠진 시청자들이 입소문을 내면서 2화는 정말로 ‘대박’ 시청률이 나왔다. 회차가 거듭될수록 매번 신기록이었다.
완벽한 캐릭터를 만들어 낸 도욱에 대한 칭찬 기사가 쏟아졌다.
‘동생 삼고 싶다, 오빠 삼고 싶다, 아들 삼고 싶다.’
다양한 연령대가 시청하는 드라마가 된 만큼 도욱에 대한 칭찬도 각양각색이었다. 연령을 불문하고 도욱이 연기하는 김민기의 매력에 빠진 것만은 분명했다.
TBN 쪽에서 발 빠르게 발매한 OST도 대박 행진이었다. 종영 후 점점 하락세였던 ‘해와 달의 연인’ OST는 음원차트에서 사라지고 그 자리를 ‘준비하라 1999’가 옛 명곡을 리메이크한 곡들이 차지했다.
덩달아 서태준의 곡을 리메이크 했던 케이케이의 ‘친구에게’까지 인기였다.
쇼미너허니에서 발매한 정윤기의 곡도 차트 밖으로 벗어나지 않고 좋은 성적을 유지하고 있었으니 음원차트는 케이케이 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끝없는 강도욱의 승승장구, 케이케이 이달 말 컴백!>
<케이케이 정규 2집 앨범 발매 임박! 대세 이어가나...>
<준비하라 케이케이! 이번엔 다시 가수 강도욱!>
그 기세를 이을 생각으로 계획한 앨범 발매였다. 케이케이의 정규 2집 ‘Howl’의 발매가 삼 일 앞으로 다가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