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7
맹공격 (2)
***
“와! 나 입 냄새.”
“제발 가까이 오지 마요! 형!”
강남의 한 스튜디오 촬영장.
케이케이 멤버들은 치킨 광고 촬영을 위해 한자리에 모였다. 오랜만에 여섯 명이서 함께하는 공식스케줄이었다.
개인 컷 촬영을 먼저하고, 그다음에 단체 촬영을 할 예정이었다.
막 개인 촬영을 끝낸 안형서가 대기 중이던 석지훈과 티격태격했다.
멤버마다 촬영하는 치킨의 종류가 달랐다.
도욱이 후라이드 치킨, 정윤기가 양념치킨, 김원이 매운맛 치킨, 박태형이 간장치킨, 석지훈이 치즈갈릭치킨을 맡았다.
안형서가 맡은 치킨이 파닭이었다.
“나 괜히 파닭 좋아한다고 했나 봐.”
“마······ 맛 없어요, 형?”
박태형이 관계자들이 들을까 조용히 물었다.
“맛은 있는데. 입 냄새가 너무 나. 하아아아―!”
“윽.”
마음 착한 박태형조차 뒤로 물러서게 만드는 입냄새였다.
“김원 씨 촬영 들어갈게요!”
스태프에 부름에 머리 손질을 마친 김원이 호들갑을 떨며 일어섰다.
“오 마이 갓, 어떡해! 너무 매울 것 같아. 나 매운 거 못 먹는데! 와이!”
매운 음식에 약한 김원이 매운맛 치킨을 맡게된 건 그저 이미지 때문이었다.
김원이 몇 번 나간 예능 프로그램에서 호쾌한 이미지를 보여주었기 때문에 광고주 측에서는 김원이 매운맛 치킨과 잘 어울린다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허엉, 잘해여.”
코디에게 치약 묻힌 칫솔을 건네 받은 안형서가 이를 닦느라 우물거리며 김원을 응원했다.
이미 연기자라서 그런지 먹는 것도 잘한다는 칭찬을 받으며 촬영을 마친 도욱은 소파에 앉아서 단체 촬영을 기다렸다.
마지막 촬영인 정윤기도 대기실 한쪽 소파에 앉아 있었다.
“···윤기야, 정윤기!”
정윤기의 머리 손질 차례였는데 이어폰을 꽂은 채 집중한 정윤기는 코디가 여러 번 불렀음에도 답하지 않았다.
결국 코앞에까지 가 정윤기를 부르자 그제야 정신을 차린 정윤기가 이어폰을 귀에서 뺐다.
“아, 불렀어요?”
“사람 소리도 안 들릴 정도로 노래를 들으면 어떡해! 너 그러다 귀 나간다. 으이구, 얼른 자리에 앉아. 네 차례야.”
코디가 잔소리를 늘어놓으며 정윤기를 재촉했다.
정윤기가 제 짐을 정리하고 거울 앞에 가 앉았다. 도욱은 그런 정윤기를 보며 조금 안타까워졌다.
어제가 쇼미더허니 첫 방송이었다.
스케줄이 맞은 덕분에 케이케이 멤버들과 함께 도욱은 방송을 함께 모니터링 할 수 있었다.
정윤기의 방송 분량은 1분도 되지 않는 짧은 시간이었다.
쇼미더허니 제작진 측은 정윤기를 이슈를 끌어낼 인물로 생각한 모양이었다. 계속해서 정윤기가 랩하는 모습을 보여줄 듯, 보여주지 않을 듯한 편집으로 케이케이 멤버들조차 애가 탔다.
정윤기도 어떤 식으로 편집되는지까진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결국엔 심사위원이 정윤기에게 랩을 해보라는 식으로 ‘Get it!’하고 외치고, 정윤기가 손짓하며 랩을 시작한 순간에 다음 주 예고 화면으로 넘어갔다.
“저게 악마의 편집!”
김원이 방송을 보곤 머리를 쥐어뜯으며 괴로워했다.
“저런 건 악마의 편집은 아니지만······. 어떻게 저기서 끊냐.”
안형서도 고개를 저었다. 다음 주를 볼 수밖에 없는 편집이었다.
예고편에서 심사위원들은 극찬을 하기도, 혹평을 내리기도 했다. 어떤 게 정윤기에 대한 평가인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물론 좋은 평가를 받았다는 걸 정윤기에게 들어 다 알고 있는데도 궁금한 기분이었다.
쇼미더허니 제작진으로선 어쨌든 옳은 선택을 한 셈이었다.
인터넷 사이트들이 쇼미더허니에 대한 이야기로 들끓었다. 정윤기의 랩이 엉망일 것이다와 잘할 것이다가 팽팽하게 대립하며 정윤기의 실력에 대한 갑론을박이 이루어졌다.
학생 래퍼 때의 실력을 생각하며 응원하는 이들도 많았지만, 평소 랩의 레파토리도 부족한 아이돌 그룹 래퍼가 뭘 할 수 있겠냐는 근거 없는 비난도 많았다.
어차피 다음 주부터 본격적으로 보여지게 될 정윤기의 랩 실력을 보면 나오지 않을 비난들이었다.
그러나 괜한 욕을 일주일간 들어야 하는 게 정윤기로선 억울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게다가 힙합이라는 장르의 특성상 힙합 팬들이 쓰는 댓글들에는 수위 높은 욕설도 많았다.
그렇지만 정윤기를 힘들게 하는 건 아직 아무것도 듣지 못한 네티즌들의 반응이 아니었다. 매 회차마다 거세지는 경쟁을 이겨내야 한다는 부담감이었다.
짧게 자른 머리에 일회용 염색 스프레이로 정윤기가 머리를 칠했다. 밝은 금발머리가 제법 잘 어울렸다.
“형. 요즘 피곤하죠.”
정윤기에게 도욱이 묻자, 정윤기가 새삼 별소리를 다한다는 듯 헛웃음을 쳤다.
“내 니한테 들을 말은 아니지 싶다, 마.”
“저야, 뭐. 나오는 대본만 잘 연기하면 되지만, 형은 직접 가사도 써야되잖아요.”
도욱의 말에 정윤기가 고개를 저으면서도 말했다.
“학생 래퍼 때랑은 경쟁자들 실력이 차원이 다르긴 하대.”
때문에 정윤기는 긍정적인 자극을 받고 있었다. 스트레스도 상당했지만, 철이 제련과정을 거치듯 정윤기도 성장 중이었다.
“그나저나 니는 연기는 할 만하나.”
“네, 뭐.”
“연기 잘한다고 소문 났다더라.”
“네?”
“쇼미더허니 연출자들도 어떻게 아는지 안다던데. 방송가, 특히 케이블 쪽에는 소문 쫙 퍼졌다더라.”
촬영장에 거의 갇혀있다시피한 도욱은 금시초문이었다.
어쨌든 좋은 쪽으로 소문이 나면 다행인 일이었다.
“우리 둘 촬영 끝나면 곧바로 앨범 작업 들어가얄긴데. 피곤해서 살겄나, 마.”
정윤기가 앓는 소리를 하며 소파에 늘어지듯이 앉았다.
말은 그렇게 해도 잘해낼 정윤기를 알아서 도욱은 정윤기에 대해서는 더는 걱정하지 않았다.
처음 만난 정윤기는 사실 이 정도 의지를 가진 인물은 아니었다. 하지만 자리가 사람을 만드는 모양이었다.
케이케이가 인기를 얻게 되고, 자신의 역할도 많아지면서 리더로서 책임감을 강하게 느끼고 있었다.
정윤기까지 촬영이 끝난 후, 단체 촬영이 시작되었다.
모두 평범한 상자처럼 보이지만, 이후 CG 처리가 될 상자를 보며 빛이 난다는 듯 놀라워하는 표정을 지으면 되는 촬영이었다.
오바스럽게 입에 주먹을 집어 넣는 안형서부터 어색한 표정으로 애써 놀란 얼굴을 하는 박태형까지. 함께 모여 촬영을 하자 각양각색 멤버들의 매력이 한번에 드러났다.
“마지막으로 스냅 촬영 가겠습니다!”
스태프가 외치자 안형서가 신난다는 듯 물었다.
“이 사진이, 그, 치킨 상자에 새겨지는 건가요?”
치킨 광고가 들어왔을 때 안형서가 가장 신나했던 부분이 바로 그 부분이었다. 이제 전국 어디에서든 ‘즐겁네 치킨’을 시키면 그 상자에 자신들의 얼굴이 박혀있는 것이었다.
“아하하, 네 맞아요!”
안형서의 질문에 ‘즐겁네 치킨’ 광고 담당자가 답해주었다.
오늘 촬영 현장을 모니터링 하며 담당자는 다른 아이돌이 아닌 케이케이를 광고 모델로 쓴 것은 역시 잘한 선택이었다고 생각중이었다.
단가가 다른 아이돌보다는 조금 비쌌다. 몸값이 계속해서 오르고 있는 시기라 단발 6개월짜리 모델로 하루 촬영하는 데 1억에 가까운 모델료가 들었다. 게다가 영업 이익에 따른 인센티브도 추가 지급되기로 한 계약이었다.
그러나 말 그대로 ‘돈 값’을 했다. 멤버들 모두 적극적으로 촬영에 임해주고 있었다. 팬들을 위한 이벤트용으로 부탁한 싸인이나 셀카 등도 싫은 내색 하나 없이 해주었다.
물론 돈을 받고 하는 일이니 당연하기도 했지만, 그 당연한 일들을 할 때에도 추가되는 사항이라며 거드름을 피우는 이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판매가 많아져 케이케이와 다시 한 번 계약 연장을 해, 광고 촬영하기를 바라며 담당자는 사진을 찍는 케이케이를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
광고 촬영이 끝나고 돌아온 도욱은 반나절 정도지만, 심신을 달랠 시간을 가졌다.
그것도 잠시였다.
도욱은 ‘준비하라 1999’ 촬영장에서 떠올렸던 생각을 끄집어냈다.
스태프의 벨소리였던 유명 샹송. 그 음을 듣자 자연스럽게 프랑스가 떠올랐다. 그러고는 곧 프랑스 출신 작곡가들을 떠올릴 수 있었다.
‘아! 그 작곡가가 프랑스 출신이었던가?!’
도욱의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간 건 그러한 생각이었다.
영미 출신 작곡가들이 팝 시장에서 가장 강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은 맞았다.
그러나 이쯤 되는 시기에 유러피안들의 감각적이고 세련된 음악 세계가 하나의 또다른 주류를 만들어낸다.
올해 가을은 그 시작점이 되는 해였다.
그 영향은 한국가요계에도 퍼지게 되어 유럽 출신 작곡가들의 곡이 대거 한국 가요계, 특히 언제나 최신을 추구하는 아이돌 음악에도 많이 쓰이게 된다.
한 아이돌 그룹 또한 유럽 출신, 그중에서도 프랑스 출신 작곡가의 곡을 받아 활동하면서 해당 곡은 큰 인기를 얻게 된다.
‘물론 그 이후에는 더는 히트곡을 내지 못해 잊히지만······. 그 곡만은 남을 정도로 인기가 있었다.’
도욱은 앨범제작팀 심준 팀장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심 팀장님 퇴근하셨나요?]
지금은 저녁 아홉 시였다.
힛 엔터테인먼트의 공식적인 출퇴근 시간은 열 시부터 일곱 시였다. 그러나 매니지먼트 업계 특성상 정시 출퇴근이 가능할 리가 없었다.
한두 시간씩의 야근은 기본이었고, 팀에 따라서는 주말 반납도 잦았다.
그나마 심 팀장 정도의 직급이 되면, 늦게까지 일한 뒤 다음 날 오후에 출근을 하는 등 탄력적인 업무가 가능했다.
용감한외동과 함께 작업할 때도 심 팀장은 열두 시가 넘도록 작업실을 지키며 함께 의논을 하곤 했었다.
메시지를 보낸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심준 팀장에게 전화가 왔다.
“네, 여보세요.”
-퇴근 아직 안 했는데, 무슨 일이야?
“여쭤볼 게 있어서요. 일 많으십니까?”
-일이야 항상 많지. 너 촬영 끝나기 전에 어느 정도 곡 골라놔야 같이 의논해서 수록곡 정리하고 하잖아.
심준 팀장의 목소리에 피곤이 가득했다. 피곤한 건 어쩔 수 없어도, 늘 열정 넘치는 인물이라 도욱은 심준 팀장과 함께 일하게 된 것을 행운이라 여겼다.
“그럼 혹시 곡 서칭 작업하고 계셨던 거예요?”
-어어, 그래. 물어볼 게 뭔데? 급한 거야?
“다른 게 아니라. 혹시 유럽 쪽에서 온 곡은 없나요? 없으면 그쪽 사이트나 인맥 통해서 알아보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
-유럽? 유럽은 갑자기 왜?
“요즘 그쪽 곡들이 괜찮다는 것 같아서요.”
심준 팀장은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 듯 키보드 소리와 마우스를 딸각이는 소리가 연달아 들려왔다.
-그렇단 말이야? 역시 어려서 그런가? 스무살 못 따라잡겠다!
심준 팀장이 돌려서 도욱을 칭찬했다. 도욱은 애매한 웃음을 지었다.
“특히 프랑스 쪽······.”
-아, 안 그래도 후보곡으로 모아놓은 곡 중에 신선하다 싶은 게 있었는데, 이게 유럽 출신 작곡가네. 이름이 이게 뭐야 불어인지 독어인지.
“곡이 있어요?”
-어. 근데 너무 신선한 것 같기도 하고. 너 지금은 바쁠 테니까 나중에 들려주려고 했는데, 지금 들어볼래?
“네! 보내주세요. 그 곡들. 그리고 유럽 출신 작곡가 곡들 괜찮다 싶으면 추려주세요.”
-그래, 너가 괜찮다고 하니 그쪽 출신 작곡가들 알아 볼게.
“감사합니다, 팀장님. 그리고······.”
-응?
“얼른 퇴근하시라고요.”
도욱은 기획사 직원 시절을 문득 떠올리며 말했다. 그때 도욱도 하루가 멀다 하고 야근을 해야만 했었다. 물론 심준 팀장의 경우 도욱과는 다른 경우였지만.
심준 팀장이 기분 좋게 웃었다. 소속 연예인과 앨범 작업을 한 지 한두 해가 아니었지만, 도욱은 어린 나이에도 정말로 특별히 배려심 깊은 연예인 중 하나였다.
다짜고짜 연락해오지 않고, 상대의 상황부터 메시지로 물어오는······. 어쩌면 당연한 예의를 지키지 않는 연예인들이 대다수였기 때문이었다.
-알았어. 안 그래도 퇴근하려고 했다. 너한테 이 파일만 보내고 퇴근하마.
“네.”
곧바로 도욱의 메일 앱에 알림이 떴다.
심준 팀장에게서 도착한 메일이었다. 메일에 첨부된 파일을 다운받아 들은 도욱의 눈이 커다래졌다.
‘이 곡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