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보니 슈퍼스타-56화 (56/225)

# 56

LAST CHANCE (2)

1조부터 4조까지 4개의 조 중에 케이케이가 속한 팀은 3조였다. 3조는 하늘색 트레이닝복을 지급 받았다. 하늘색 트레이닝복 소매를 걷어 올리는 도욱의 옆으로 박태형이 다가왔다.

“도욱아······ 준비운동 더 해. 그래야 안 다치지.”

박태형의 말에 도욱이 알겠다고 웃으며 답했다. 그리고는 앉았다 일어났다는 서너 번 더 반복했다.

오늘 프로그램의 정식 명칭은 ‘설특집 아이돌 올림픽’.

MVS 방송국에서 야심차게 준비한 명절용 파일럿 프로그램으로 반응을 본 뒤 명절 특집 프로그램으로 굳힐 생각이었다.

‘물론 첫 방송은 뜨거운 화제를 불러 일으키며 명절 특집 예능 중 가장 확실하게 자리를 잡게 되는 프로다. 나중에야 포맷도 지겹고 문제점도 너무 많아 폐지 요청이 줄을 잇지만······.’

이번에는 팔을 길게 뻗어 반대편으로 쭉 내밀며 도욱은 생각했다. 도욱의 기다란 팔다리가 유연하게 움직이는 장면을 도욱의 팬석의 팬들은 하나도 남김없이 카메라에 담아내고 있었다.

사실 ‘아이돌 올림픽’은 참여 인원이 너무 많아 방송 출연의 의미도 희박했고, 스케줄도 하루를 통째로 비워야 하는 데다, 부상의 위험까지 있는 프로그램이었다.

갈수록 연예인들이나 기획사 쪽에서는 난색을 표했다. 종일 수당도 없이 방청객을 자처해야 하는 팬들의 반발도 상당했다.

그러나 방송국 쪽이 갑이었다. 음악 방송이나 다른 예능 프로그램들로 압박을 가해오면 별수 없이 참가해야만 하는 프로가 됐다.

또 신인을 계속해서 키워내야 하는 입장이다 보니 어떻게든 신인을 끼워 넣기라도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기도 해서 울며 겨자 먹기로 소속 연예인을 내보내기도 했다.

‘아무튼 이번만큼은 활동하기 힘든 설 연휴 기간에도 대중들에게 눈도장을 찍을 수 있는 기회임이 분명하다.’

오늘 종목 중 케이케이가 참가하는 종목은 총 5종목.

멀리뛰기, 양궁, 풋살, 계주였다.

멀리뛰기에 도욱, 100m 달리기에 정윤기와 도욱이, 계주에 석지훈을 제외한 멤버 전원, 풋살에 안형서, 박태형 그리고 양궁에 김원이 참가 예정이었다.

운동 신경이 좋은데다 평소 운동을 많이 한 도욱은 멀리뛰기, 100m 달리기, 계주. 3종목에 참가하게 됐다.

“풋살은 다른 경기장에서 하지?”

“으응······. 시간이 겹쳐서 원이 형 양궁 결승 응원 못 할 것 같아.”

김원은 안형서와 함께 팬석 앞에 가 손키스를 날리며 팬서비스 중이었다.

활은 처음 잡아본다던 김원은 놀라운 집중력과 악력을 발휘하며 몇 번의 연습 만에 9점을 맞추더니, 예선에서는 아예 10점을 맞추며 조 예선 1위로 결승에 진출한 상태였다.

중계석에 앉아 있던 MC들은 물론이고 도움을 주러 특별출연한 전직 양궁 국가대표 선수도 놀란 실력이었다.

“이쪽에서 응원하고, 형 경기 끝나면 바로 풋살팀 응원하러 갈게.”

“그래.”

그때 멀리뛰기 경기를 곧 시작하겠다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여기저기 퍼져있던 참가자들이 멀리뛰기 경기를 하는 곳으로 몰려들었다. 아침 8시부터 시작한 녹화에 지쳐 멍을 때리며 앉아 있던 석지훈과 정윤기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벌써 저녁 5시였다.

“도욱아 잘하고 와라, 마.”

정윤기가 하품을 하며 기운 빠지는 응원을 해왔다. 반면에 멀리서 달려온 안형서와 김원은 응원가까지 부를 기세였다.

멤버들의 너무 다른 온도 차이에 도욱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준비된 멀리뛰기 경기장 앞으로 갔다.

멀리뛰기는 참가 인원이 20명 정도였고, 예선 없이 곧바로 결승이었다. 그룹별로 키가 큰 멤버들이나 키가 조금 작더라도 탄성력이 좋은 멤버들이 나왔다.

멀리뛰기에 참가하게 된 걸 안 뒤로 도욱은 틈틈이 선수들의 영상도 보고, 몇 번은 트랙에서 연습을 해보기도 했었다.

도욱의 순서는 14번. 쉬는 시간에 연습해 본 결과로는 5m 정도는 가뿐하게 뛸 수 있었다. 꼭 1등을 해야 하는 건 아니지만, 이왕 하게 된 거 1등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도욱은 경기에 임했다.

도욱의 앞 순번까지의 평균 기록은 4m 후반 대였다. 그러나 최고 기록이 5m 15cm였다.

13번의 기록을 측정한 후, 도욱의 순서가 됐다. 도욱이 앞으로 나서자 경기장의 응원 소리가 확성기를 댄 듯 커졌다.

“잘생겼다아아아아!”

“강도욱 화이팅!”

유독 큰소리가 들려오는 곳으로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는 현수막 두 개가 펄럭이고 있었다.

‘얼굴 천재는 99%의 잘생김과 1%의 눈물로 만들어진다. -도욱마리 휴지단-’

‘얼굴 천재 강도욱을 응원합니다.’

도욱은 현수막 문구를 읽고는 피식 웃었다. 그리고 시작하라는 호루라기 소리와 함께 가볍게 땅에서 발을 떼었다.

전속력으로 달려간 도욱은 구름판 위에서 정확히 발을 굴렀다. 이를 악물고 있지도 않았고, 그저 평온한 표정이었다. 도욱은 그야말로 날아올랐다.

구름판을 구르는 것부터 날아올라 착지까지. 모든 자세가 교과서에 실린 사진처럼 정확했다.

착지의 순간, 숨죽이고 있던 응원석에서 함성이 터졌다. 옆에서 지켜보던 멤버들도 박수를 쳤다.

“정말 깨끗한 자세네요!”

중계석의 해설위원이 감탄하며 외쳤다.

도욱의 기록은 5m 14cm. 최고 기록에서 1cm 모자란 기록이었지만, 충분히 선방한 기록이었다. 도욱은 멤버들 중 처음으로 메달을 목에 걸게 됐다. 은메달이었다.

멀리뛰기 다음 경기가 양궁과 풋살이었다. 양궁 결승이 한창일 때, 풋살 참가자들은 바로 옆 풋살 경기장으로 향해야만 했다.

토너먼트 형식으로 이루어지는 양궁 경기는 그야말로 손에 땀을 쥐게 했다. 한 발, 한 발. 김원이 활시위를 잡아당길 때마다 그걸 보고 있는 도욱과 정윤기, 석지훈도 왠지 모를 긴장감에 휩싸였다.

부상이래봤자 별것도 없는 예능일 뿐인 올림픽이었는데도 어쩐지 경기가 시작되자 진심을 다해 임하게 되는 케이케이 멤버들이었다.

김원은 양궁 경기 우승 후보였다. 별다른 이변 없이 김원은 1, 2위전을 치르게 됐다.

“오 마이 가쉬!”

상대방은 청월기획의 남자 솔로 가수였다. 화살의 궤적을 보며 김원이 이마를 짚었다. 김원의 예상대로 그가 쏜 화살은 10점에 정확히 꽂혔다.

이로써 김원과 남자 솔로 가수의 점수 차는 고작 1점. 마지막 한 발로 갈리게 될 터였다.

체력적인 면에서는 남자 솔로 가수가 조금 우위에 있다고 볼 수 있었다.

“후우······.”

그러나 집중력에 있어서 김원은 거의 괴물이었다. 김원이 호흡을 고르고 과녁을 노려보았다.

항상 장난기 어린 표정으로 멤버들 옆에서 추임새를 넣던 김원이었다. 응원석의 팬들은 처음 보는 김원의 진지한 모습에 수군대며 실시간으로 다시 한 번 ‘입덕’했다.

“10(ten)!”

“9(nine)!”

김원이 쏜 화살은 10점에, 남자 솔로 가수가 쏜 화살은 9점에 각각 꽂혔다.

활을 내려놓은 김원이 달려와 멤버들과 얼싸 안았다.

“와, 인마 진짜 양궁 선수라도 해야 되는 거 아냐?”

크게 놀라는 법 없는 정윤기마저 법석을 떨 정도로 놀라운 실력이었다. 도욱도 경이롭다는 눈빛으로 김원을 쳐다봤다. 김원이 뒷머리를 긁적이며 너스레를 떨었다.

“지금도 안 늦었나?”

그 말에 모두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

그렇게 김원까지 금메달을 목에 걸며, 케이케이는 2개의 메달을 획득했다.

“아직 풋살팀 전반 하고 있겠다. 얼른 가자.”

정윤기가 멤버들을 이끌고 경기장 밖으로 향했다.

“벌써 메달이 두 개네요.”

“이따 백 미터랑 계주에서도 따면······. 이러다 우리가 있는 조가 우승하겠는걸?”

“제가 한 일이 없어서.”

“넌 응원했잖아, 마. 그니까 더 빡시게 응원해라.”

풋살 경기장은 주 경기장과 대기실 복도로 이어져 있었다. 참가자와 스태프 외 출입이 차단된 복도를 걸으며 정윤기와 석지훈이 대화를 나눴다.

김원은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피곤했지만, 연이은 메달 수확으로 다들 기분이 좋았다. 도욱도 어차피 참가한 프로그램이니 즐기는 편이 낫다는 생각 중이었다.

“어?······. 오 실장님?”

경기장 안 문 쪽에 선 오백호 실장을 발견한 석지훈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한창 풋살 경기가 진행돼 시끄러울 시간이었는데, 경기장 안은 비교적 조용했다. 경기 중단 상태였다.

언뜻 보이는 오백호의 표정도 심상치 않았다. 멤버들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풋살 경기장 안으로 들어가자 바로 문앞에 오백호를 비롯한 촬영 스태프들이 모여 있었다.

뒤쪽으로 바닥에 앉은 채 의료진으로부터 처치를 받고 있는 안형서와 그 옆에서 안절부절못하고 선 박태형이 보였다.

오백호는 스태프와 심각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으므로 도욱을 비롯한 멤버들은 한달음에 안형서에게로 갔다.

“형서야!”

“이게 무슨 일이야?”

경기장 안쪽으로 들어오니 확실히 분위기가 뒤숭숭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팬석에서 들려오는 안형서를 걱정하는 팬들의 웅성거림이 확연했다.

“벌써 다 끝나고 온 거야?”

“너! 괜찮아?!”

평소에는 티격태격하는 정윤기와 안형서였지만, 앉아서 다리에 얼음찜질을 하고 있는 안형서를 보자 정윤기의 표정이 확 굳었다. 동생을 걱정하는 형의 모습 그 자체였다.

다른 멤버들과 함께 도욱도 표정을 찌푸렸다.

“오, 다들 걱정해주는 얼굴 좀 감동인데~!”

“지금 농담할 때야?”

정윤기가 정색하자 안형서가 헛기침을 했다. 그러나 곧 걱정 때문에 과했다고 생각했는지 미안하다며 안형서에게 사과했다. 박태형이 대신 상황을 설명했다.

“그······ 형서 형이 공 가지고 달리다가 태클을 당했는데,”

“오 마이 갓! 태클? 누가!!!”

김원이 흥분하며 박태형의 말을 가로채자 안형서가 손을 저었다.

“아니! 태클 때 다친 게 아니라 그때 힘이 풀렸는지 이후에 넘어진 거야.”

“네······. 그건데······.”

안형서의 답에 박태형이 무언가 석연찮은 표정으로 동의했다. 옆에서 같이 뛰고 있던 박태형이 보기에 태클이 교묘하게 아킬레스건을 노리고 들어왔었다. 도욱이 차분하게 물었다.

“태클을 건 게 누군데?”

“그······ 맨투맨, 서준.”

“그냥 태클 걸 만한 상황이었어.”

종이에 손가락만 베여도 난리를 칠 것 같은 안형서였지만, 막상 다들 걱정하는 상황이 되자 의젓한 모습이었다. 안형서가 흥분한 멤버들에게 설명했다.

물론 그랬을 것이다. 다만 탓할 곳 없었던 멤버들은 서준 탓이라도 하고 싶었다.

도욱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도욱은 주변을 둘러보며 경기 중단으로 쉬고 있는 다른 참가자들 속에서 서강준을 찾았다. 때마침 이쪽을 보고 있던 서강준과 눈이 마주쳤다.

‘서강준이라면······.’

서강준은 무엇이 기분 좋은지 평소 마주쳤을 때와 달리 싱글싱글 도욱을 향해 웃어 보였다. 도욱은 등골이 서늘해졌다.

‘확실하다. 일부러 세게 태클을 건 거야.’

도욱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도욱의 예상대로 경기가 풀리지 않자 제 분을 못 이긴 서강준은 공을 몰고 가던 안형서에게 겁을 주려 악의적으로 태클을 걸었다.

경기도 경기였지만, 케이케이에게 신인상을 ‘빼앗긴’ 분풀이를 하고 싶기도 했다. 서강준은 진심으로 본래 자신의 것이어야 했던 신인상을 빼앗겼다고 생각했다.

서강준의 태클은 안형서의 다리를 교묘하게 스쳐 지나갔을 뿐, 공을 노린 정당한 태클처럼 보였다. 때문에 반칙도 아니었다.

태클에 잠시 넘어졌던 안형서는 곧장 일어났다. 그러나 끝이 스친 것만으로도 고통이 상당했다. 조금 더 달려가던 안형서는 결국 넘어져 다리를 접질리고 말았다.

당장에라도 서강준에게 달려가 주먹을 날리고 싶었으나 도욱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

‘이전의 생에서 알지 못했던 미래는 바꾸기도, 지켜내기도 힘들다. 모든 일을 다 알 수도 없으니······.’

안형서의 부상을 막지 못한 게 자신의 부족함인 것만 같아 잠시 자책하던 도욱은 고개를 저었다. 처음부터 모든 걸 바꾸거나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한 것도 아니었다. 아무리 도욱이 막으려고 해도, 서강준 개인의 악한 본성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웃고 있는 서강준을 무시하며 도욱은 고개를 돌렸다.

‘언제까지 웃을 수 있나 보자. 더는 떨어질 곳도 없는 곳까지 떨어지게 될 테니까.’

촬영 스태프와 이야기를 마친 오백호가 모여 있는 멤버들을 향해 다가 왔다. 다행히 심각한 부상은 아닌 것 같지만, 정밀검사를 받아보라는 의료진의 얘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너네끼리 잘할 수 있지? 라희 씨가 남아있긴 할 건데.”

“저희가 얼라도 아니고. 후딱 병원 데리고 가세요, 형.”

정윤기의 어깨를 두드린 오백호가 의료진과 함께 안형서를 부축해 일으켜 세웠다. 보는 이들이 술렁이며 걱정하는 소리를 냈다. 안형서는 그렇게 병원으로 향했다.

박태형은 이런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마저 경기에 임해야만 했다. 대기 선수로 있던 다른 선수가 라인 안으로 들어오며 경기가 재개됐다.

오늘 프로그램 녹화의 하이라이트, 마지막 경기는 계주였다.

조별이 아닌 팀별 경기로 진행하는 계주에서는 맨투맨과 케이케이, 신인들의 대결이라는 빅매치가 준비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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