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보니 슈퍼스타-57화 (57/225)

# 57

LAST CHANCE (3)

***

100m 달리기 결승까지 모두 마쳤다. 결승전에서 정윤기는 아깝게 4위, 도욱은 2위를 하며 케이케이는 어쨌든 은메달 하나를 더 추가했다.

새벽부터 계속되는 녹화에 참가자인 연예인뿐만 아니라 팬들도 많이 지친 상태였다. 밤늦은 시간이 되자 어린 팬들이 녹화장을 빠져 나가면서 군데군데 빈자리도 생겨났다.

더군다나 케이케이 팬들의 경우 안형서의 부상으로 분위기가 한층 더 가라앉아 있었다.

케이케이 멤버들은 100m 경기가 끝나자마자 팬석 앞으로 갔다. 커다란 박스도 함께였다. 코앞까지 다가온 케이케이에 팬들이 반응했다. 도욱이 입을 열었다.

“많이 힘드시죠?”

“아니요오오-!!!”

“형서 형 많이 다친 거 아니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네에에에에-!!!”

걱정을 덜어주는 도욱의 말에 케이케이의 팬들이 언제 가라앉아 있었냐는 듯 한목소리로 대답했다. 굉장한 하이톤에 단합력이었다. 마치 유치원 선생님과 말 잘 듣는 아이 같았다.

팬들의 대답에 도욱이 웃음을 지어 보이자 도욱의 현수막을 들고 있던 팬들이 입을 틀어막았다.

“계주만 하면 끝이니까요~! 마지막까지 다 같이 아자아자 화이팅!”

화이팅을 외친 건 다름 아닌 석지훈이었다. 무뚝뚝한 막내가 날리는 윙크에 팬들이 크게 동요했다.

나머지 멤버들도 인사를 한 후, 멤버들은 박스에서 빵을 하나씩 꺼내기 시작했다.

고생하는 팬들을 위해 무언가 해주는 게 좋겠다는 정윤기의 말에 도욱이 낸 아이디어가 바로 간식을 제공하는 것이었다. 도라희의 지휘 아래 팬 매니저들이 빠르게 간식을 팬들에게 배분했다.

멤버들이 직접 나눠준 빵을 먹고 있는 케이케이 팬들을 보며 다른 아이돌의 팬들이 수군댔다. 밤 10시. 한창 배고플 시간이었으니 부럽지 않을 수 없었다.

더 이상 녹화가 늦어져선 안 됐기에 계주 경기를 할 트랙은 빠르게 정비되었다.

첫 경기는 여자 아이돌 그룹의 대결이었다. 밀키웨이와 핑키걸스. 케이케이 멤버들은 같은 소속사이면서, 오늘 ‘아이돌 올림픽’에서도 같은 조에 속한 하늘색 트레이닝복의 밀키웨이를 응원했다.

두 번째 경기는 솔로가수들이 팀을 짜서 하는 경기였고, 마지막 세 번째 경기가 케이케이와 맨투맨의 대결이었다.

케이케이 멤버들은 가볍게 몸을 풀었다.

“형들. 미리 죄송합니다.”

운동 신경이 없어 어떤 종목에도 참가하지 않았었지만, 안형서의 부재로 계주를 뛰게 된 석지훈이 침울하게 중얼거렸다. 정윤기가 쳐져 있는 석지훈의 등을 퍽퍽 쳤다.

“최선만 다해라, 마!”

“그래, 걱정 말고.”

“맞다. 도욱이 이놈만 믿으면 된다.”

멤버들이 100m 달리기 2위를 한 도욱을 보며 부담 가득한 눈빛을 보냈다. 도욱은 웃으며 아무말 않고 옆을 봤다. 옆에서 맨투맨 멤버들도 몸을 푸는 중이었다.

다리를 쭉쭉 펴고 있던 오빈이 도욱을 발견하곤 거세게 손을 흔들었다. 도욱도 오빈과는 편하게 인사를 나눴다. 그런 오빈의 뒤쪽으로 서강준이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좋기도 하겠다. 자존심도 없는 새끼.”

오빈과 오빈 쪽으로 신경을 집중하고 있던 도욱 정도만 들을 수 있는 낮은 목소리였다. 오빈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같은 멤버에게까지 저런 태도라니 도욱은 오늘 하루 서강준에게 새삼 놀랐다. 아무래도 자신을 괴롭혔던 학생 서강준과 연예인 서강준을 자신도 모르게 조금 분리하고 있었던 것 같다.

‘진짜 자존심이 뭔지도 모르는구나.’

탕―!

시작을 알리는 신호와 함께 계주가 시작되었다. 신인상을 케이케이가 휩쓸긴 했지만, 케이케이와 맨투맨을 라이벌로 엮어 부르는 이들이 많았다.

팬들 또한 아직까지는 서로를 부단히도 의식하고 있었다. 오늘 경기장에서 난 소리 중에 가장 응원소리가 양편에서 쏟아졌다.

케이케이의 첫 멤버는 정윤기였고, 맨투맨에서는 서강준이 나섰다.

서강준은 맨투맨에서 두 번째로 달리기가 빠른 멤버였다. 100m 달리기 3위. 처음부터 격차를 벌려 놓자는 작전이었다. 서강준은 정윤기보다 한 걸음 앞서 다음 주자에게 바톤을 넘겼다.

그러나 계주에선 달리기만큼 바톤을 주고받는 호흡도 중요했다. 그런 점에선 케이케이가 맨투맨보다 훨씬 우위에 있었다. 그 순간, 케이케이 멤버들은 한 몸처럼 움직였다.

“다 진짜 빠르네······.”

입을 벌린 채 석지훈이 중얼댔다. 낯간지러워 입 밖으로 말은 안 했지만, 안형서가 부상으로 빠진 이 시점, 더 열심히 해서 우승으로 안형서를 위로하고 싶은 게 케이케이 멤버들의 심정이었다.

안형서의 빈자리를 대신한 석지훈이었기 때문에 더욱 책임감을 느꼈다.

그러나 너무 큰 실력 차이는 정신력으로도 이길 수 없는 부분이었다. 석지훈과 오빈의 차례에서 거의 비슷했던 두 팀 간의 격차가 벌어졌다. 석지훈은 거의 1/4 트랙 정도를 뒤쳐졌다.

이제 마지막 주자였다. 도욱에게 바톤을 넘기며 석지훈이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맨투맨의 마지막 주자는 키는 작았지만 날다람쥐처럼 날쌨다. 안형서가 있었다면, 비슷한 스타일이었을 듯했다. 앞서 나가는 맨투맨의 멤버를 보며 도욱을 이를 악물로 전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체력을 비축해두길 잘했어.’

도욱은 100m 개인 달리기 우승보단 계주 승리를 목표로 두었다. 안형서가 없는 상태에서 계주에서 진다면 오히려 다친 안형서의 마음이 불편할 것 같았다.

“오, 대박!”

“와- 미쳤다.”

멤버들도, 계주를 구경하던 참가자들도, 팬석도 들썩거렸다. 중계석의 MC들이 말을 잇지 못했다. 중계석에선 아무래도 케이케이가 진 것 같다는 식으로 해설을 하며 맨투맨의 우승에 대해서 말하려던 차였다.

“강도욱 선수 뭔가요, 괴물 신인이라더니 진짜 괴물 아닙니까?”

“이건 뭐. 말이 필요 없네요.”

도욱의 긴 다리가 성큼성큼 빠르게 앞 선수를 따라잡고 있었다. 길고, 빨랐다.

꽤 큰 차이였는데 단숨에 맨투맨 멤버는 따라잡혔다. 그 역시 절대 느린 게 아니었다.

도욱은 마지막 순간까지 최선을 다해 달렸다. 결승선을 뚫고, 한참 뒤쪽에서 자신을 응원하며 기다리고 있는 멤버들로 향했다. 멤버들이 달려와 도욱을 끌어안았다.

“케이케이! 케이케이 강도욱 선수가 해내내요! 승리는 케이케이의 것이 됩니다!”

“대단하네요, 정말. 이로써 케이케이의 메달은 총 4개입니다. 케이케이가 속한 3조가 압도적으로 우승하겠는데요?!”

시작선부터 도착지점까지 모든 게 눈에 보이는 대결이었다. 게다가 역전. 스포츠의 묘미가 다 담겨 있었다. 음악방송 1위를 했을 때보다 어쩐지 더 흥분 한 채 팬들의 환호 속에서 케이케이 멤버들이 도욱을 들어 올려 헹가래를 했다.

중계진들의 말대로 케이케이가 속한 3조는 케이케이 덕분에 우승을 차지했다. 단상 위에는 개인으로는 가장 많은 메달을 휩쓸어간 도욱이 섰다.

우승을 축하하는 꽃가루가 날리는 가운데 길고 긴 녹화가 끝났다.

“하루가 무슨 48시간 같아. 진짜 피곤하다.”

오랜 시간 함께해준 팬들과 인사를 나누고, 옷을 갈아입으러 대기실 쪽으로 향하며 정윤기가 말했다.

“그래도 우승하니까 기분 좋네요.”

도욱의 말에 박태형도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멤버들이 다 대기실로 들어가던 때, 맨 뒤에 있던 도욱은 혼자 화장실 쪽으로 향하는 서강준을 발견했다.

도욱은 화장실에 잠시 다녀온다고 하고 서강준 쪽으로 향했다. 한 발짝 정도 떨어진 서강준을 도욱이 불러 세웠다.

“서준.”

“······뭐?”

“선배님.”

뒤늦게 붙은 선배님에 서강준은 기가 막힌다는 표정이었다. 안 그래도 찝찝한 눈빛 때문에 도욱은 케이케이 중에서도 가장 거슬리는 인물이었다.

“앞으로 조심하라고.”

“뭔데 반말이야? 조심?”

“동갑인데 너도 반말하잖아. 그럼 나로서도 ‘선배님’만 붙이면 되는 거 아니겠어? 선배?”

평소 스태프들에게 예의가 바르다는 칭찬이 자자한 도욱이었다. 아니꼬운 것과는 별개로 맨투맨의 매니저에게까지 인사를 잘하는 도욱이라 그 정도는 서강준도 알았다.

그런 도욱이 이런 식으로 나올 줄은 몰랐다. 서강준은 어이없는 표정밖엔 지을 수가 없었다.

“얼마 올라가지도 못한 채, 오늘처럼 패배하고 추락하기만 할 거니까.”

“이 새끼가 미쳤나. 야, 이 씹······.”

그래도 막 녹화를 마쳤다는 자각은 있었는지 서강준이 욕을 하다 말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복도는 텅 비어 있었다.

“땅에 떨어질 때, 머리. 조심하라고.”

서강준은 당장이라도 주먹을 내지를 듯 손을 올렸다가 멈췄다. 개 버릇 남 못 줄 손버릇이었지만, 이전에는 할리우드 진출까지 한 인간이었다. 이 정도 참을성은 기른 모양이었다.

도욱은 서강준을 비웃어 주고는 그대로 돌아서 나왔다.

‘왜 저런 인간한테 아무 말도 못 하고 당하기만 했을까······.’

서강준이 한심한 동시에 예전의 자신에 대한 한심함도 함께였다. 그러나 미래는 확실히 달라지는 중이었다.

도욱은 걸음을 빨리했다. 더 빠르게, 더 처참하게 서강준에게 복수할 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

녹화가 모두 끝나고 돌아온 숙소에는 병원에 다녀와 제대로 깁스를 한 안형서는 침대에 누워 잠이 들어 있었다. 녹화를 하다 병원까지 다녀왔으니 고된 게 당연했다.

깁스는 다리 고정용으로 한 것일 뿐 확실히 심각한 상태는 아니었다. 일주일 정도 무리하지 않고 경과를 지켜보면 되는 정도였다.

그래도 일주일이나 거동이 불편하고, 춤 연습을 할 수 없는 건 안형서에겐 부담일 터였다. 비활동기라 정말이지 다행이었다.

도욱은 서강준에게 선전포고까지 할 생각은 없었지만, 아무 생각 없이 섣부르게 한 행동도 아니었다. 부상 자체가 서강준의 탓은 아니라지만, 안형서의 일을 그냥 넘기고 싶지도 않았다.

신인상 수상 이후 어쩔 수 없이 해이해지려는 자기 자신을 채찍질할 도구가 도욱에겐 필요했다. 서강준 성격에 가만히만 있지 않을 게 뻔했다.

‘케이케이, 그중에서도 나를 밟으려 더 난리겠지. 그러나 밟으려고 하면 할수록 밟히는 건 서강준이 될 거다.’

다음 날. 케이케이에게는 하루의 휴식이 주어졌다. 그러나 도욱은 점심을 먹은 후 곧장 회사로 향했다.

하루라도 빨리, 더 완벽하게 다음 앨범을 준비하고 싶었다. 도욱은 이제 반쯤 케이케이의 프로듀서 수준의 위치에 있었다.

앨범제작팀 심준 팀장도 용수철 피디와 거의 동일한 수준으로 케이케이 앨범 컨셉부터 곡에 대한 이야기를 도욱과 나누었다.

도욱은 우선 작업실에 있을 용수철을 찾아 타이틀곡에 대한 심도 깊은 논의를 해 볼 생각이었다.

“피디님, 안녕하세요.”

“어······. 왔어요?”

용수철은 기계 앞 의자가 아닌 작업실에 마련된 소파에 조금 늘어진 채 앉아 있었다. 게다가 표정도 밝지 못했다.

“피디님 피곤하시면 나중에 다시 올까요?”

“아, 아니에요. 작업하는 사람이 안 피곤할 때가 있나.”

용수철이 몸을 일으켜 바로 앉으며 애써 웃어 보였다. 그러나 용수철의 얼굴에 진 그늘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평소라면 용수철이 먼저 곡 이야기를 하며 의욕을 보였을 텐데, 그런 기색이 전혀 없었다. 곧바로 곡에 대해 얘기할 분위기가 아니었다.

‘무슨 걱정거리가 있는 건가? 뭐지. 용수철 피디에게 있을 만한······. 설마······.’

잠시간의 침묵 속에서 도욱이 속으로 생각하며 말을 고를 때였다. 용수철이 먼저 입을 열었다.

“음······. 회사에 말하기 전에 도욱 학생, 아니 도욱 군한테도 말을 해야 하지 싶어서 말하는 거요.”

도욱은 진지한 얼굴로 용수철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설마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아직 ‘그 일’이 벌어지기엔 이른 감이 있었다.

“케이케이 앨범 작업을 더는 못 할 것 같네요.”

언젠가 닥쳐올 미래이긴 했다. 용수철의 작곡가 데뷔가 빨라진 만큼 용수철과 케이케이의 결별도 빨라져버린 것이다.

도욱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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