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5
LAST CHANCE (1)
SVS 가요대상 신인상 수상자는 케이케이였다.
도욱이 자리에서 일어나 무대 위로 향하기 시작하자 얼이 빠져 있던 다른 멤버들도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기 시작했다.
귀가 멍멍할 정도로 커다란 함성이 무대 위의 케이케이에게로 향했다.
수상 도우미들이 올라와 설레임에게 트로피를 전했다. 설레임이 앞에 선 정윤기에게 트로피를 건넸다.
정윤기가 떨리는 손으로 트로피를 꽉 쥐었다. 첫 1위를 했을 때만큼, 아니 그때보다 훨씬 더 정윤기의 손바닥이 땀으로 축축했다.
첫 1위 트로피를 건넸던 것도 설레임이었다. 케이케이 멤버들과 눈이 마주치자 설레임이 활짝 웃어 보였다.
“아······.”
시상을 마친 설레임이 무대 아래로 내려가고, 스탠드 마이크 앞에 정윤기가 섰다.
정윤기는 곧바로 말을 시작하지 못하고 탄식부터 내뱉었다.
정윤기의 양옆에 일렬로 늘어선 케이케이 멤버들은 모두 감격에 젖어 있었다.
신인상, 후보에 올랐을 때만 해도 어쩌면 자신들의 성적으로는 당연한 결과라고도 생각한 부분도 있었다.
그러나 세상에 ‘당연한 결과’는 없었다.
인터넷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신인상 후보인 맨투맨과 케이케이를 비교하는 기사가 떴다. 신인상 후보가 뜨고, 투표에서 케이케이가 밀리던 때에 나온 기사는 전부 맨투맨 쪽 입장에서 써진 기사들이었다.
물론 아라 엔터 쪽에서 뿌린 기사라고 하더라도, 그런 기사들을 볼 때면 케이케이 멤버들도 마음이 흔들렸다.
결과를 점쳐 볼 수 있는 것들 중 눈으로 보이는 건 투표뿐이라 투표에서 계속해서 밀리던 시점에는 신인상을 받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너무 기대도 말고, 실망도 말자.”
후보에 오른 것만으로도 영광이라고 말하면서도, 신경 안 쓴다고 하면서도 밤마다 개인 아이디로 투표를 하고 있는 석지훈이나 안형서를 보면서 정윤기가 자주 한 말이었다.
그때에는 신인상을 정말 못 받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던 정윤기였다.
그러나 케이케이의 투표율이 다시 오르고, 유성전자의 모델이 되면서 기사가 나는 등 역시 올해 최고의 신인은 케이케이라는 말이 돌자 정윤기도 사람인지라 다시 기대를 가졌던 것도 사실이었다.
멤버들 대부분의 마음 상태도 그랬다.
받을 수 있을 것 같다가도 없을 것 같고, 그렇지만 정말로 받고 싶고······.
열심히 한 멤버들로선 어찌 보면 필연적으로 갖게 될 수밖에 없는 욕망이었다.
그 안에서 후보에 올랐던 날부터 시상식 당일인 오늘에 이르기까지. 심적으로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모두 불안감에 시달렸다.
무대 위에서 바라 본 관객석이 푸르게 반짝거리고 있었다. 도욱은 멍하니 그 불빛들을 보았다.
기쁨이라고도 슬픔이라고도 할 수 없는 너무나도 이상한 감각이 온몸을 스치고 지나갔다. 기묘했다. 시간의 흐름이 느려진 듯했다.
어떤 한 고개를 넘어간 듯한 감각에 도욱은 지금 이 무대 위에 서 있는 것 자체에 대한 부담감을 느꼈다.
‘두 번째 삶이란……. 정말로 이상한 기분이다.’
신인상 수상자가 되어 관객석을 바라보게 되자 멤버들은 데뷔 전의 마음고생도, 데뷔 이후의 걱정과 불안, 오늘까지의 긴장감도 모두 깨끗이 씻겨나가는 기분을 느꼈다.
“정말 감사합니다. 우선 저희 신인상 받게 해주신 키링분들, 사랑합니다.”
정윤기가 팬클럽명을 부르자 함성이 잠시 다시 커졌다 사그라졌다.
“같이 연습생 때부터 지금까지 고생해 온 멤버들도 너무 고맙고······.”
말하며 정윤기가 옆에 있는 멤버들을 둘러보았다. VCR 화면에 잡힌 안형서의 눈이 그렁그렁해져 있었다. 다른 멤버들의 표정도, 말을 하고 있는 정윤기의 표정조차도 별다를 바 없었다.
모두 격한 기쁨에 차오르는 눈물을 참으려 약간씩 표정이 일그러졌다.
“······저희 옆에서 항상 챙겨주신 백호 형, 라희 누나, 코디 누나들, 루카스 형, 윤태 쌤, 그리고 저희에게 좋은 곡 주신 용감한외동 피디님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힛 엔터테인먼트 심준 팀장님, 임성안 팀장님, 조애니 팀장님, 권흥조 이사님, 부사장님, 사장님. 저희 이렇게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
정윤기가 눈물을 삼키는 사이 왼쪽 옆에 서 있던 김원이 고개를 내밀고 소리 질렀다.
“Key Ring! Thank you so much! I love you all!”
오른쪽 옆에 서 있던 안형서가 정식으로 마이크를 건네받았다.
“아, 아.”
마이크 테스트를 하듯 안형서가 소리를 반복했다. 관객석에서 “울지 마!, 울지 마!” 하며 안형서를 연호했다.
“저도 키링 너무 감사하고요. 이렇게 신인상 받을 줄, 데뷔할 때만 해도 꿈에도 몰랐는데······ 어흑······, 다 멤버들 덕분이고. 멤버들 낳아 주신 부모님께도 감사드립니다. 어, 엄마, 아빠 사랑해요!”
부모님이라는 말이 버튼이 되어 애써 눈물을 참고 있던 멤버들의 눈가가 촉촉하게 젖어들었다.
도욱도 자신의 부모님을 떠올렸다.
이제 도욱이 떠올려야 하는 부모님은 모두 넷이었다. 김보명의 부모님과 강도욱이라는 신체의 부모님이 있었다. 보명의 영혼이 도욱의 신체에 있는 한 모두 생각해야 할 부모님들이었다.
도욱의 차례까지 수상 소감 기회가 주어졌다.
한 발짝, 한 발짝. 천천히 걸음을 옮긴 도욱이 마이크 정면 앞에 섰다. 카메라를 향하는 도욱의 모습을 화면이 클로즈업했다.
“······.”
도욱의 까만 눈동자는 호수와 같았다.
“감사합니다, 여러분.”
그 순간이었다. 호수에 잔물결이 일었다. 주르륵, 눈물 한 줄기가 도욱의 눈가에서 흘러내렸다.
마침 도욱의 얼굴이 클로즈업 돼 있던 터라 눈물자국까지 선명하게 화면을 통해 전국으로 중계되었다.
늘 든든하게만 보였던 도욱의 눈물에 팬들은 물론이고 멤버들조차 동요했다. 함성과 알 수 없는 정적이 뒤섞였다.
미래는 바뀌고 있었다.
MC들이 멘트로 무대 위를 정리했다.
케이케이는 무대 아래로 내려가자마자 여운을 느낄 새도 없이 대기실로 향해야 했다. 다다음 무대가 곧바로 케이케이의 무대였다.
대기실로 가자 오백호 실장을 비롯한 스태프들이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멤버들이 자신들을 반기는 스태프들을 향해 인사했다. 인사도 잠깐이었다.
“일단 얼른 옷 갈아입고, 무대 준비하자!”
오백호의 말에 대기실이 더욱 분주해졌다.
무대 위에서는 맨투맨이 무대를 서고 있었다. 다음 무대가 케이케이였다.
메이크업을 수정한 케이케이 멤버들은 언제 울었냐는 듯 말끔한 상태였다.
“보여주자.”
가만히 준비하던 도욱이 멤버들을 향해 말했다. 도욱이 하는 말뜻을 모두 이해한 멤버들이 눈빛을 교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보답이든, 무엇이든 무대로 보여준다. 그것이 케이케이 멤버들이 한마음으로 가지고 있는 생각이었고, 케이케이가 그룹의 가치관이었다.
-나 지금 뭐 보고 있는 거지?
-☆케☆이☆케☆이☆신☆인☆상☆축☆하☆케☆이☆케☆이☆신☆인☆상☆축☆하
-대박이다!
-준비 많이 했네~ 역시 신인상 받을 만하다!~~
-아까 강도욱 우는 얼굴 뇌 주름에 끼인 듯...
-심장 박살 날 뻔
-지금 단체로 공중회전??? 진짜???
-미쳤다!!!!
-헐 쟤가 박태형?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나요...?
-☆케☆이☆케☆이☆신☆인☆상☆축☆하
케이케이의 무대가 시작되자 이전부터 뜨거웠던 가요대상 인터넷 생중계 댓글창이 터질 듯했다. 빠른 속도로 계속해서 새로운 댓글이 올라왔다.
수상소감에서 도욱이 흘린 눈물의 여파가 가시지도 않은 상태였다.
케이케이가 준비한 ‘Sorry but I Love You + Very Sorry Remix.ver’ 무대는 라이브 무대가 아닌 만큼 화려한 안무가 준비되어 있었다.
그 정점이 ‘Sorry but I Love You’에서 ‘Very Sorry’로 넘어가기 전 간주 구간에 있는 단체 제자리 공중회전이었다.
멤버들이 동시에 가볍게 뛰어 올라 회전을 돌았다. 날쌘 몸놀림에 관객석에서 환호가 터졌다. 대기석에 앉은 참여 가수들의 리액션도 상당했다.
박태형이 몸을 아끼지 않고 빠르게 3회전 턴을 도는 동안 멤버들이 대형을 갖췄다. 그 사이 노래는 ‘Very Sorry’로 넘어갔다.
중독적인 사운드와 함께 후렴구가 반복되기 시작하자 현장의 사람들이 하나가 된 듯 ‘Very Sorry’의 노래를 합창했다.
멤버들은 그 순간의 환희를 만끽하며 몸을 움직였다.
어느새 포털 사이트의 메인 화면에는 도욱이 눈물 흘리는 모습이 클로즈업 된 캡쳐 화면이 <케이케이, 신인상 수상>이라는 캡션과 함께 떠 있었다.
그리고 실시간 검색어는 케이케이, 강도욱, 박태형 등 케이케이 관련 단어들로 도배되었다.
케이케이의 기쁨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케이케이는 퍼포먼스상에 K-POP STAR상까지 공동수상하며 신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3관왕의 자리에 올랐다.
퍼포먼스상을 수상할 때에는 박태형과 막내인 석지훈이 수상 소감을 했다. K-POP STAR상을 받을 때에는 김원이 나서 간단히 준비해온 영어, 일본어, 중국어로 수상소감을 유창하게 해냈다.
시상식이 끝날 무렵에는 세 개의 트로피가 케이케이의 대기석 테이블 위에 올라와 있었다.
오늘 시상식의 대상은 누구나 예상했듯 사방신화였다. 사방신화는 백만 장에 가까운 앨범 판매량을 보이며 명실상부 최고 아이돌 스타의 위엄을 과시했다.
맨투맨은 케이케이와 K-POP STAR상을 공동수상하고, 고양시에서 후원하는 ‘최고양’상을 받으며 2관왕에 올랐지만, 케이케이에게 밀렸다는 인상을 지우기 힘들었다.
***
시상식을 모두 마치고 케이케이는 뒤풀이 겸 회식을 위해 회사 근처의 식당으로 향했다.
케이케이의 신인상은 회사 전체의 큰 경사거리였다. 때문에 오늘 자리에는 잠깐 들러 격려만 하고 가는 정도였지만, 힛 엔터테인먼트의 부사장과 사장까지 직접 자리에 참석하기로 돼 있었다.
멤버들은 대표들이 온다는 사실보다도 현재로선 고기를 마음껏 먹을 수 있다는 것과 내일 하루 정도는 휴식을 취할 수 있다는 사실에 더 들떠 있었다.
회식 자리로 향하는 길. 그러한 들뜸도 잠시, 멤버들 중 몇은 기절하듯 잠들었다.
그렇게까지 격한 무대를 리허설까지 합하면 세 번 넘게 해냈으니 지치는 게 당연했다.
그러나 기절한 듯 잠을 자면서도 정윤기와 박태형은 트로피를 가슴에 꼭 품은 채였다. 김원 역시 코까지 고는 중이었다.
“많이 피곤했나 봐요.”
석지훈이 옆에 앉아 창밖을 보고 있는 도욱에게 말을 걸었다.
“그러게···.”
도욱이 멤버들을 바라보며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자다 일어나서 밥이 넘어 갈라나 모르겠네.”
“고기라면 벌떡 일어나서 먹을 거예요!”
오백호가 가볍게 던진 걱정에 안형서가 씩씩하게 답했다.
안형서는 조수석에 앉아 팬카페에 글을 올리는 중이었다. 케이케이의 팬카페는 축제 분위기였다. 인터넷 투표 등을 하며 누구보다 애썼을 팬들이었다.
“그나저나 사장님이 큰 선물 준비하셨다더라.”
“선물? 뭔데요, 뭔데!”
오백호가 던진 떡밥을 문 안형서가 채근했다. 오백호가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회식 자리에 도착해서야 케이케이 멤버들은 선물의 정체를 알게 되었다.
그건 바로 숙소 이전이었다. 케이케이는 지금보다 훨씬 큰 평수의 숙소로 이사를 가게 됐다.
***
정신없이 몰아닥치는 시상식 스케줄들을 소화하는 사이 해가 바뀌었다.
케이케이는 총 3개의 신인상을 받으며 작년 최고의 신인 자리를 당당히 차지했다. 특히나 도욱은 SVS 가요대상 수상자 소감 당시 눈물을 흘리던 장면으로 화제를 모았다.
깎아놓은 조각처럼 잘생긴 도욱의 진심 어린 눈물 한 줄기가 사람들의 마음을 울렸던 것이다.
‘강도욱 눈물 닦아줄 두루마리 휴지가 되고 싶다’는 의미에서 비활동기인 신년에도 ‘도욱마리 휴지’로 불리는 도욱의 팬들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었다.
그런 가운데 잠실의 한 체육관은 설 특집 예능 프로그램 현장으로 바뀌어 있었다.
체육관에는 현재 이름을 알리고 있는 수많은 아이돌 그룹 및 솔로 가수들이 남녀 구분 없이 참가자로 이름표를 달고 있었다.
또 그 아이돌들의 팬들이 새벽부터 대기하며 각 팀을 응원했다.
도욱은 몸을 풀며 멀리뛰기를 준비 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