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보니 슈퍼스타-47화 (47/225)

# 47

랑데부(Rendez-vous) (1)

춤, 노래, 연주자와 디자이너. 각 분야에 전문성을 가진 네 명의 젊은 예술인들이 모여 만드는 프로젝트 ‘랑데부(Rendez-vous)’.

그들의 고뇌와 열정을 스토리에 녹여 유성전자의 휴대폰 아폴론을 홍보하는 광고와 뮤직비디오를 제작하는 프로젝트였다.

랑데부 프로젝트를 향한 예술 관련 종사자들이나 젊은이들의 관심은 시작부터 뜨거울 수밖에 없었다. 주목받는 신예들을 모아 놓았기 때문이었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는 속설과는 달리 실제로도 결과물로 나온 광고와 뮤직비디오의 퀄리티는 기대한 바와 같았다.

광고에 쓰였던 음악은 음원차트에 오르고, ‘광고음악대상’에서 수상하기도 했다.

랑데부 프로젝트의 취지에는 유성전자가 음악을 비롯한 예술계까지 관심을 가지고 전폭적인 지원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는 것에도 있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유성전자는 랑데부 프로젝트로 아폴론 마케팅 효과뿐 아니라 사회 공헌적 가치를 실현한다는 이미지도 수립할 수 있었다.

‘그러나 랑데부 프로젝트는 얼마 안 가 빛을 잃고 말았지······.’

랑데부 프로젝트에 삽입되었던 음악도 제법 즐겨 들었었던 도욱은 당시의 허탈함이 떠올라 씁쓸해졌다.

광고 음악이 표절로 밝혀졌기 때문이었다. 워낙 알려지지 않은 외국의 언더그라운드 밴드 가수의 곡이라 밝혀지는 데 시간이 걸렸다.

“도욱 군에게 출연 제의가 들어왔습니다.”

권 이사의 말에 모두 눈을 크게 뜨고 도욱을 보았다. 도욱은 말없이 권 이사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하루 광고 촬영을 하면 되는 수준이 아닌 프로젝트라······ 내부 논의를 하긴 했지만, 도욱 군 개인에게나, 팀, 회사에도 놓치기 힘든 기회라 받아들였습니다.”

아이돌이 주된 모델인 교복 광고와는 차원이 다른 종류의 광고였다. 유성전자 휴대폰 모델이 되는 것이었다. 톱 중의 톱만이 할 수 있다는 휴대폰 광고. 프로젝트성 광고라 메인 광고는 아니라고 해도 대단한 것에는 변함이 없었다.

작게 박수가 나왔다. 잘 됐다, 도욱아! 옆에 앉아 있던 안형서와 정윤기가 번갈아 도욱에게 축하를 보냈다.

“더 상세한 얘기는 도욱 군 따로 조애나 팀장한테 전해들으면 될 것 같아요.”

“알겠습니다.”

역시 거절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던 도욱이 여상한 어투로 답했다.

원래대로라면 인기는 보장되어 있겠지만, 표절 음악을 쓴 광고에 출연하는 것이 영광으로만 남기는 어려울 터였다.

‘기회는 기회대로 잡고, 위기 또한 기회로 만들 순간이 필요하다.’

도욱은 방법을 떠올렸다.

***

프로젝트에 관련한 논의가 유성전자와 도욱, 양측을 오고가는 동안 케이케이의 정규 1집 앨범 Sensation의 리패키지 앨범이 발매되었다.

앨범이 발매되자 ‘바람 부는 날’도 순조롭게 각 음원 사이트의 차트에 2, 3위 정도로 진입하며 좋은 성적을 보여주었다.

해는 뜨겁지만 바람이 불면 시원한 가을 날씨와 확실히 잘 어울리는 곡이라는 평이었다. 편안하게 듣기 좋은 곡이다 보니 오랫동안 좋은 성적을 유지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회사에선 하고 있었다.

컴백 무대는 음원 발표로부터 이틀 후였다. KVS의 ‘뮤직보너스’에서 케이케이는 ‘바람 부는 날’의 컴백 무대를 갖게 됐다.

2주짜리 활동이었지만, ‘Very Sorry’의 대히트 이후 처음 나온 곡이었으므로 ‘바람 부는 날’에 대한 대중과 팬들의 관심은 뜨거웠다.

거기에 라이브로 이루어지는 컴백 무대. 팬들은 케이케이의 실력을 알고 있었으므로 라이브 무대에 대한 기대감을 표하기도 했지만 동시에 마음을 졸이기도 했다. 라이브 무대라는 것이 워낙 변수가 많았고, 기본 실력과는 별개로 유독 라이브만 못하는 가수들도 존재했기 때문이었다.

기대와 걱정을 동시에 하고 있는 건 케이케이 멤버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역시 첫 무대가 제일 긴장되는 것 같아요.”

천막으로 만들어진 간이 대기실. 늘 덤덤하던 석지훈마저 긴장을 토로했다. 오백호가 그런 석지훈에게 비타민 음료를 건넸다.

한동안 라이브 연습만 필사적으로 한 멤버들이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최고의 라이브 무대를 펼치기 위해 숨을 참고 안무하기와 같은 연습까지 강행했다.

다만, 컴백 무대라는 긴장감과 첫 라이브 무대가 하필 야외특설무대라는 것이 걱정이었다. 뮤직보너스는 오늘 수원시 화성 축제 기간을 맞아 화성 행궁 야외 광장에서 생중계로 방송을 내보낸다.

“리허설 때 잘했잖아. 별문제 없을 거다.”

오백호의 격려에 멤버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메이크업을 다 받고 온 안형서가 물었다.

“이따가 불꽃놀이도 한다던데. 우리도 그거 보면 안 돼요, 형?”

“넌 차라리 앉아서 무대 걱정해.”

“형은 맨날 나한테만 뭐라고 해.”

밉지 않게 투덜대는 안형서에 오백호는 혀를 차다가 이내 웃어버렸다. 안형서 같이 긴장을 허튼소리로 승화시키는 멤버가 있는 것도 다행이었다.

특별 방송인 관계로 오늘 무대에는 평소 음악 방송에서 만나기 힘들었던 가수들도 많이 초대되었다.

케이케이 멤버들은 대기실에서 나와 ‘사랑은 누구나 한다’라는 트로트곡으로 유명한 원로가수의 무대를 지켜보며 자신들의 차례를 기다렸다.

막상 무대 시작 직전이 되자 긴장보다는 어서 무대에 올라가고 싶다는 열망이 멤버들의 마음속에 떠올랐다.

‘무대에 선 순간의 긴장감과 나를 부르는 환호······. 그 순간의 짜릿함을 지금에라도 알게 돼 너무나 다행이다.’

도욱은 화려한 조명이 수놓고 있는 무대 위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정윤기가 멤버들을 불러 모았다. 여섯 명이 손을 모으고 성공적인 무대를 해내고자 마음을 가다듬었다. 케이케이만의 구호를 외치며 손을 높이 들었다.

원로가수가 무대 아래로 내려가고, MC 멘트가 진행되는 동안 케이케이가 무대 위로 올라왔다. 케이케이의 등장에 광장에 모여 있던 이들의 함성이 터졌다. 구경 나온 동네 주민들이 반, 다른 가수의 팬들이 또 조금 있었고, 나머지는 모두 케이케이의 팬들이었다.

‘바람 부는 날’의 전주가 시작됐다.

케이케이 멤버 여섯 명은 가로 한 줄로 늘어선 채로 무대를 시작했다. 다른 멤버들보다 키가 큰 도욱과 김원이 양끝에 섰다. 도욱의 옆으로 박태형, 안형서, 석지훈, 정윤기의 순이었다.

여섯 명 모두 핸드마이크를 사용했다. 파트가 많은 정윤기와 안형서, 도욱 정도가 인이어를 착용했다.

첫 소절을 부르는 멤버가 석지훈이었다. 석지훈이 스타트를 끊고 뒤로 스텝을 밟으며 물러섰다.

‘확실히 석지훈의 실력이 늘었다.’

정확히 첫 음정을 잡고 안정적으로 자신의 파트를 소화해낸 석지훈의 목소리를 들으며 도욱은 생각했다.

다음이 안형서였다. 안형서는 가볍게 손동작을 하면서 고음으로 올라가는 부분도 무리 없이 해냈다.

안형서는 고음을 너무 쉽게 불러서 탈이었다. 어려운 고음이니만큼 조금 더 티를 내면 좋을 텐데 보고 듣는 이로 하여금 어려운 음이라는 생각을 못 하게 하는 경향이 있었다.

김원의 랩 파트가 끝나면, 여섯 명 모두가 단체로 부르는 후렴구였다. 다 같이 부르는 파트였지만 결국엔 도욱과 안형서가 메인으로 음을 내며 화음을 넣는 곳이었다.

직후에는 반주에 맞춰 박태형이 홀로 앞으로 나와 빠른 발재간을 선보이며 무대 끝에서 끝으로 움직이는 안무가 있었다.

바람이 내게 말을 걸어와―

바람 부는 날엔 너를 생각해― 생각해에―

처음과 같은 일자 대형으로 돌아와 마이크를 쥔 채 노래를 부르던 도욱의 눈썹이 미세하게 흐트러졌다. 그러나 자신의 앞 카메라에 빨간 불이 들어와 있었다.

도욱은 아무 일 없단 듯이 카메라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무대 옆에 설치된 대형 모니터에 도욱의 미소 띤 얼굴이 잡히자 귀를 찢을 듯한 함성이 크게 울렸다.

‘마이크가······ 안 나온다!’

그 순간, 안형서 또한 도욱의 상태를 알아차렸다. 도욱이 치고 나와 안형서와 화음을 맞춰야 할 ‘걸어와, 생각해’ 부분에서 아무런 목소리도 들리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함께 부르는 부분이어서 음원의 디테일한 부분까지 아는 이가 아니라면, 눈치채기 힘든 부분이었다.

문제는 다음 순간이었다. 박태형의 짧은 안무가 끝나면, 곧장 도욱의 파트였다. 마이크에 이상이 있다고 알린다 하더라도 그 안에 고쳐질지는 모를 일이었다. 안형서가 도욱의 파트를 대신해야 할지도 몰랐다.

공중에 높이 떠 있는 지미집 카메라가 움직이며 케이케이의 전체 모습을 화면에 잡아냈다.

도욱과 안형서의 눈이 마주쳤다. 무대의 반대편 끝으로 갈 준비를 하며 몸을 돌려 세우던 박태형을 도욱보다 가까이 서 있던 안형서가 불렀다.

그리고는 도욱 쪽으로 시선을 주었다. 도욱이 손을 아래로 내리고 마이크의 한쪽을 내보였다. 원래라면 푸른빛이 들어왔어야 하지만, 무선 마이크 연결이 잘못되었는지 불이 꺼졌다. 박태형은 단번에 의미를 알아차렸다. 그렇게 세 사람의 시선이 빠르게 교환됐다.

박태형은 스텝을 밟기 직전, 마치 안무인 것처럼 가볍게 마이크를 도욱 쪽으로 던졌다. 도욱 또한 농구공을 패스 받듯 박태형이 던진 마이크를 잡아챘다.

“으응? 방금 뭐야?”

“저런 안무가 있었어?”

화면에 잡힌 모습을 보며 팬들이 의아함을 감추지 못했다. 생중계를 보고 있던 팬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너무 동작들이 자연스러워서 방송 사고라는 추측보다 추가된 안무냐는 추측부터 나왔다.

오백호는 마이크에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 곧장 알았다. 다행히 뮤직보너스 스태프들도 도욱이 들고 있던 2번 마이크에 문제가 있음을 파악했다.

화려한 발재간을 선보이며 무대 위를 갈랐던 박태형은 도욱의 뒤쪽으로 돌아왔을 때, 도욱이 본래 들고 있던 마이크를 건네받았다.

보고 싶어 너를 너무―

저 멀리서 오고 있어 네가― 사랑해―

도욱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광장을 울렸다. 성량도 더 좋아져 야외 무대 음향의 열악함 같은 건 도욱에게 문제가 아닌 듯했다. 가을밤 행궁의 풍취와 너무나도 어울리는 목소리였다.

이후 박태형에게 넘긴 2번 마이크에도 제대로 불이 들어왔다.

케이케이는 더 이상의 아무런 일 없이 무대를 마쳤다.

마이크에 문제가 생기는 정도는 라이브 무대를 하다 보면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문제였다.

라이브 무대를 준비하면서 여러 가지 응급한 상황에 대해 잘 대처하고자 마음가짐을 단단히 한 덕분에 실제로도 큰 무리 없이 대처할 수 있었다.

무대에서 내려온 도욱은 안형서와 박태형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특히 박태형의 센스에 대해선 아무리 입이 마르게 칭찬해도 좋을 것 같았다.

오백호도 멤버들에게 잘하고 수고했다는 말을 아끼지 않았다.

-이제는 신인이라고 하기도 민망ㄷㄷ

-강도욱 마이크 없었어도 되지 않았을까?ㅋ 성량 하늘 뚫겠던데ㅋㅋ

-무대에 천장 없어서 다행ㅎㅎㅎㅎㅎ

-케이케이 전멤버 실력 갑,,, 인정!

-태형이 애기인줄로만 알았는데 다 컸당ㅠㅠㅠㅠㅠㅠ

팬카페와 커뮤니티에도 칭찬이 넘쳐났다. 개인에 대한 칭찬과 함께 케이케이의 팀워크에 대한 감탄도 이어졌다.

박태형이 도욱에게 마이크를 넘기고, 도욱의 파트가 끝나는 부분까지 짧은 영상으로 편집되어 여기저기 공유되었다.

멤버들은 첫 무대에 사고가 있었다 보니 남은 음악 방송 무대들은 오히려 편안한 마음으로 임할 수 있게 됐다. 어떤 일이 일어나도 괜찮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

오전 일찍 사전녹화로 ‘바람 부는 날’ 음악 방송 스케줄을 마친 도욱은 의상을 갈아입고 오백호 실장과 따로 길을 나섰다.

오늘은 경기도 광주의 한 스튜디오에서 ‘랑데부 프로젝트’ 감독과 출연자들 간의 첫 단체 미팅이 있는 날이었다.

이전까지 개인적으로 감독이나 스태프들과 미팅을 가지긴 했지만, 실제 출연진들을 만나는 건 처음이었다. 어떤 분야의 누가 참여하는지도 출연자들에겐 비밀로 부쳐졌다. 오늘 첫 만남에서 서로의 반응부터 프로젝트 영상에 담아낼 예정이었다.

스튜디오에 도착하자마자 마이크가 채워지고 카메라가 따라붙었다.

내부의 커다란 작업 공간, 그곳에는 이미 나머지 출연자들이 모두 도착한 상태였다. 도욱은 이 광고의 출연자들을 기억했다.

‘재즈피아니스트 권휼, 그래픽 디자이너 나은수······.’

원래대로라면 유성전자 측에서 도욱과 놓고 고민했다던 남자 가수가 이 자리에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없었다.

“안녕하십니까.”

도욱이 인사하며 들어오자 일제히 도욱에게로 시선이 쏠렸다. 커다란 은색 십자가 모양 귀걸이를 한 남자가 ‘케이케이?’ 하고 도욱을 알아보았다. 그리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 알죠? 맨투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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