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보니 슈퍼스타-40화 (40/225)

# 40

Thanks to. (1)

***

오후 8시, 영등포 타임스퀘어.

케이케이의 첫 공개 팬 사인회가 열렸다.

당첨 인원은 100명이었다. 그러나 사방이 뚫린 공간이라 사인은 직접 받지 못하더라도 사인하는 케이케이 멤버들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때문에 당첨 인원의 다섯 배 정도가 되는 인원이 타임스퀘어로 몰려들었다.

게다가 장소가 쇼핑몰이어서 쇼핑을 나왔던 사람들도 케이케이의 사인회라는 소식에 관심을 갖고 층마다 계단을 빙 두른 채 아래를 내려다봤다.

팬 사인회 십 분여 전에 도착한 케이케이는 주차장에서 나갈 채비를 했다. 마지막으로 의상과 머리를 가다듬었다.

오백호는 벌써 열 번째 주의사항에 대해 염불 외듯 케이케이 멤버들의 귓가에 외고 있었다.

-곤란한 질문은 무리하게 답변 말고 넘길 것.

-개인 선물은 받는 즉시 뒤편의 스태프에게 전달할 것.

-손을 잡아주는 정도 외의 스킨십 절대 금지.

.

.

등등 조심해야 할 것들이 수십여 가지였다. 그냥 모든 행동거지를 조심하라는 뜻이라서 멤버들은 알겠다는 답만 수십 번했다.

오백호의 걱정이 산더미인 것에는 여러 이유가 있었다.

우선은 멤버들의 나이가 너무 어렸다. 아직 성인이 되지 않은 멤버가 절반이었다.

또 성인인 멤버가 있다고 해도 첫 팬사인회는 긴장도 많이 되고, 그만큼 흥분도 돼서 말이나 행동에서 실수가 나오기 마련이었다.

멤버들이 성숙한 편이라 다행이긴 했지만, 공개적인 사인회라 조금만 잘못해도 여기저기서 말 나오기가 쉬웠다.

게다가 몬스터 때와는 팬 대응에 있어 케이케이가 추구하는 방향이 전혀 달랐다.

팬 친화적 마케팅으로 다른 아이돌과 차별화를 두고 있었기 때문에, 다른 팬 사인회에서는 금지될 만한 것들이 모두 허용된 상태였다.

원래라면 손을 잡는 스킨십까지도 절대 안 된다고 팬들에게 공지가 나갔을 테지만, 케이케이 팬 사인회 공지에는 ‘과한 스킨십’ 정도로 공지가 나간 상태였다.

또 개인 선물, 개인 질문 금지 관련 사항도 기본 팬 사인회 공지에서 삭제된 상태였다.

“별문제가 없어야 할 텐데······.”

오백호가 중얼거렸다. 오늘은 조수석에 타 있던 도욱이 뒷좌석을 살폈다. 다른 멤버들은 함께 탄 코디에게 머리를 맡기고 손질하느라 정신이 없어 보였다.

“백호 형.”

조용히 자신을 부르는 도욱에 오백호가 눈치껏 왜 그러냐고 낮게 물었다.

“그 특히 지훈이한테 오는 팬들······.”

“아······. 그래, 알았다.”

고개를 끄덕이는 오백호와 도욱이 시선을 주고받았다.

도욱은 오백호가 이미 그 사실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 오백호 실장도 석지훈의 문제를 모르지 않겠지.’

도욱은 뒷좌석의 석지훈을 보았다. 평소 표정 변화가 거의 없기도 했지만, 안형서와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보통 때와 다를 바 없어 보였다.

석지훈 역시 오히려 조금 들뜬 것 같았다. 자신에게 접촉을 해 오는 팬에 대한 거부감은 있겠지만, 팬 자체에 대한 거부감은 아니라서 다행이었다.

아아아아아아악!

어떡해, 어떡해. 이쪽! 이쪽!

와, 케이케이다! 저거 케이케이 맞아?

도욱아아아―!!! 여기 봐 줘!

찰칵, 찰칵, 찰칵.

케이케이의 등장에 팬 사인회 장소인 타임스퀘어가 혼란의 도가니가 되었다.

후문에서부터 중앙의 팬 사인회 무대로 들어오는 길까지 가드라인을 쳐 놓았음에도 팬들이 서로 라인을 뛰어넘을 듯 밀어댔다.

경호원들은 팬들이 넘어오지 못하게 팬들을 뒤로 물렸지만, 자꾸만 팬들은 앞으로 서로를 밀어내며 라인에 바짝 다가섰다.

멤버들은 오백호를 따라 걸음을 빠르게 했다.

그 모습을 DSLR 카메라를 든 팬들이 쫓아오며 찍어내는 소리도 들렸다. 셔터 소리가 사정없이 멤버들을 바짝 따라 붙었다.

커다란 쇼핑몰을 울리는 팬들의 환호와 셔터 소리 등에 케이케이 멤버들은 정신이 나갈 것만 같았다.

무대 위에서 듣는 함성과는 또 달랐다. 지난 번 팬들을 모아놓고 했던 미니 팬미팅 때와도 차원이 다른 수준이었다. 너무 가까웠고, 컸다.

마련된 팬 사인회 자리는 계단 두어 개면 올라올 수 있는 정도의 높이의 단상 위였다. 멤버들은 각자의 지정된 자리에 앉았다.

앞에 앉은 팬들은 부여받은 자신의 번호표를 손에 꼭 쥐고 있었다.

팬 사인회를 맡아 진행하는 이는 팬-마케팅팀 도라희였다. 미리 와서 번호표를 나눠주고, 팬 사인회장을 정리하고 있던 도라희가 도착한 멤버들에게 생수를 나눠주었다.

“감사합니다.”

“오 실장님한테 들었겠지만, 최대한 행동 조심해주세요.”

“네.”

정윤기가 대표로 대답했다. 정윤기도 얼떨떨한 표정이었다. 뒤 돌아 도라희와 이야기를 하고 있는 편이 편했다. 앞쪽을 보면 너무 수많은 눈들이 자신을 향해 있었다.

수십 대에 달하는 대형 카메라도 부담스러웠다. 일거수일투족이 카메라에 담기고 있었다.

“익숙해져야 해요! 이제 시작이에요.”

그런 정윤기와 멤버들을 눈치챈 도라희가 격려했다.

물론 입장한 지 얼마 안 돼 곧장 적응하고, 익숙해진 멤버도 있긴 했다.

안형서였다.

쏟아지는 관심에 화답하듯 안형서는 손을 흔들며 한 명, 한 명 자신을 부르는 팬들을 향해 인사를 했다. 윙크를 날리고, 손가락으로 하트를 만들어 날리는 등 갖가지 방식으로 팬들의 눈을 사로잡았다.

안형서가 윙크를 날릴 때마다 앞줄에 앉아 있는 팬들에게선 꺄악거리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렇게 팬 사인회가 시작됐다.

사인회의 모습은 가지각색이었다. 멤버들을 본 반응도 팬마다 달랐고, 팬들에게 대처하는 멤버들의 대응도 달랐다.

“으······ 으으······. 윤기 오빠아······.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이름이?”

“저······, 정소민이요······.”

“아, 소민이? 이름 예쁘네요.”

교복을 입은 소녀 팬에게 정윤기가 말하자 소녀 팬의 얼굴이 잘 익은 사과처럼 빨갛게 익었다.

처음 굳어 있던 표정과 달리 막상 팬을 만나자 정윤기의 사인회 태도는 완벽에 가까워져 있었다. 무뚝뚝한 듯 보이지만 다정한 정윤기의 대응에 정윤기의 팬이 아니었던 팬들까지도 사귀고 싶다거나 멋있다거나 하면서 사심을 키워갔다.

단상 위로 올라와 팬들이 처음 만나는 멤버가 정윤기였다.

안형서는 자신의 차례가 빌 때면 앞에서 대기하는 팬들에게 계속 말을 걸며 한시도 쉬지 않고 팬들에게 팬 서비스를 해줬다.

또 자신의 앞에 선 팬에게는 누구보다 다정다감하게 말도 걸어주고, 장난도 치며 친근하게 굴었다. 확실히 친화력이 남다른 데가 있었다.

“어, 저 찍어주시는 분? 맞죠!”

“헐, 형서야! 나 알아?”

“당근당근! 지난번 미니 팬미팅 때도 왔잖아요.”

“맞아! 헐. 나 ‘형서랜드’야. 혹시 사진 본 적 있어?”

“와, 형서랜드?! 당연히 알죠!”

페이스노트를 가장 많이 이용하며 팬들이 보내는 댓글이나 메시지들을 빠짐없이 챙기는 안형서가 자신의 가장 큰 팬페이지를 모를 리 없었다. 사실 몰랐어도 알았다고 대답했을 안형서였다.

안형서는 대답하며 손으로 글씨를 가리고 P.S를 적었다.

“다음에 또 와주실 거죠?”

“으응 또 와야지. 근데 이번에 아르바이트한 월급 다 털어서······.”

이번 케이케이 팬 사인회는 일명 ‘줄세우기’ 방식으로 당첨자를 뽑았다. 영등포 사인회의 경우 영등포 음반 매장에서 많이 산 순서대로 줄을 세워 100명까지를 뽑은 것이다.

당첨자들이 산 평균 앨범 수량은 40여 장이었다.

공개되지는 않았지만, 인터넷 상에서 이번 팬 사인회를 위해 앨범을 샀다는 팬들 중 가장 많이 산 팬이 100장을 산 중국 팬이었다. 가장 적게 산 팬이 35장. 그 아래로는 모두 떨어졌다고 보면 됐다.

팬들끼리 눈치를 보며 커트라인을 점치고는 했기 때문에 그에 따르면 40장이 안정권이었다. 형서랜드를 운영하는 안형서의 팬도 앨범 40장, 그러니까 대략 60만 원의 돈을 내고 안형서와의 짧은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이었다.

아무리 인기가 많다지만, 신인인데 벌써 이 정도였다. 앞으로는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을 터였다.

“아······. 그럼 나중에 와요.”

“응. 꼭 올게. 나 저기 중앙에 앉아 있으니까 이따가 봐주면 안 돼?”

“당근당근! 볼게요. 그쪽.”

짧은 시간에 백 명에게 모두 사인을 해주었기 때문에 한 명당 주어진 시간은 한정되어 있었다. 이야기가 길어지자 뒤쪽에 서 있던 도라희가 팬에게 눈치를 줬다.

못내 아쉬워하며 형서랜드 운영자는 옆자리로 넘어갔다.

너무 비싸기 때문에 다음 팬 사인회에는 응모하지 못할 것 같다고 생각한 그녀였지만, 자리로 돌아와 안형서가 쓴 P.S를 보자마자 마음이 흔들렸다.

‘항상 예쁘게 찍어주셔서 감사해요~! 사진 짱!’ 하는 멘트와 함께 하트가 다섯 개나 그려져 있었다.

감동할 새도 없이 카메라를 들어 안형서의 모습을 찍으려 하자, 안형서가 귀신같이 알고는 그녀의 카메라를 향해 브이를 날리곤, 정확히 ‘아이컨택’을 해주었다. 그녀는 입술을 깨물며 자신의 신용카드 한도를 떠올렸다.

안형서의 옆, 가운데에 앉은 도욱은 그런 안형서를 보며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아이돌 멤버로선 저런 것도 다 재능이다.’

실력만큼이나 얼굴도, 끼도 중요한 곳이 아이돌 판이었다. 안형서처럼은 못 하겠지만, 그에 상응하는 수준까진 해 보려고 도욱도 노력 중이었다.

사실 도욱으로선 크게 노력할 일도 없긴 했다. 도욱의 앞에 서면 팬들은 초근접 거리에서 처음으로 맞닥뜨린 도욱의 얼굴에 넋이 나가버렸기 때문이었다. 팬들이 도욱의 얼굴을 마주하면 준비해 온 대화 내용도 다 잊어버리기 때문에 매번 5초 정도 정적이 돌았다.

“안녕하세요.”

덕분에 도욱은 계속해서 먼저 인사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역효과였다. 도욱의 감미로운 목소리를 들은 팬은 더 긴장해버리는 것이다. 도욱은 팬이 내민 앨범에서 자신이 사인해야 할 부분을 찾아 사인을 했다.

“도욱 군······. 정말 좋아합니다.”

회사를 마치고 헐레벌떡 사인회 장으로 온 30대 초반의 직장 여성이었다. 그녀는 스스로도 이렇게까지 얼어버릴 줄은 몰랐기 때문에 당황한 채였다.

“감사합니다.”

답하며 도욱이 팬을 향해 미소를 지었다. 그린 듯이 상냥한 미소에 팬은 손을 떨며 도욱과 악수를 청했다.

떨지 말라고 속삭이며 손을 잡아주는 도욱 때문에 팬은 자신의 심장 뛰는 소리를 귀로 듣고 있었다.

박태형의 경우에는 박태형이 팬보다 더 떨고 있었다.

“태형아, 너~어무 귀엽다! 춤도 너~어무 잘 추고! 태형이가 우주에서 제일 멋져요!”

박태형을 좋아하는 대부분의 박태형 팬들이 그런 박태형을 귀여워하는 팬이었기 때문에 팬들은 박태형을 ‘우쭈쭈’ 해주느라 정신 없었다.

쏟아지는 칭찬 세례에 박태형이 사인을 하며 감사 인사만 백번을 했다.

김원은 팬들이 써온 포스트잇 질문에 성심성의껏 답변해주었다. 개인당 주어진 시간이 짧았기 때문에 포스트잇에 적어오는 팬들의 질문은 대체로 객관식이거나 짤막하게 답할 수 있는 내용이었다.

‘가장 의지가 되는 멤버는?’

팬들은 아무래도 케이케이 멤버들 간의 관계성에 대해서 알고 싶어 했다. 때문에 이런 내용의 질문들이 많았고, 김원은 정윤기와 도욱의 이름을 써 넣었다.

외국 팬들도 많았는데 김원은 아주 초보적인 회화 수준이었어도 5개 국어를 할 줄 알았기 때문에 외국 팬들과 가장 잘 소통 중이었다.

맨 끝자리, 마지막 멤버가 석지훈이었다. 석지훈의 뒤 내려가는 계단 쪽으로 멤버들을 지키고 서 있었다. 혹시나 모를 상황에 대비한 자리 배치였다.

그러나 기우에 불과했던 것인지 석지훈에게 별다른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개인 팬 성향이 강해 자신의 멤버가 아닌 석지훈에게 그냥 사인만 받고 별 인사 없이 내려간 팬이 있긴 했지만, 그건 다른 멤버들도 마찬가지로 겪는 일이었다.

도욱과 마찬가지로 팬들 역시 석지훈의 커다란 눈망울만 보면 할 말도 잘 생각나지 않는지 잘생겼다는 말만 반복했다.

석지훈은 그런 자신의 팬들에게 나름대로 멘트도 적어주고, 질문에 답도 해주면서 착실하게 팬서비스를 해주었다. 다만, 팬들의 악수 요청에는 조금 머뭇거리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 정도였다.

***

문제는 팬 사인회 다음 날 수면 위로 올라왔다.

한 대형 커뮤니티에 속속들이 올라오는 글들을 모니터하며 도욱은 미간을 좁혔다.

‘역시 이대로 두어선 안 되겠다. 일이 더 커지기 전에 수습해야겠어.’

도욱은 생각했다. 어제 팬 사인회 여파로 피곤에 절어 세상모르고 잠들었던 석지훈이 마침 침실 밖으로 나오고 있었다.

“형 벌써 깼어요?”

“어, 지훈아. 이리로 잠깐 와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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