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보니 슈퍼스타-39화 (39/225)

# 39

Sensation (3)

“선배를 보고서도 인사 안 해?”

도욱은 잠자코 짝다리를 짚고 껄렁거리는 자세를 한 둘을 보았다.

인기도 실력도 없는 아이돌 가수의 최후라는 주제로 사진을 찍으면 담배를 들고 야비한 눈빛을 빛내는 두 사람의 사진을 찍어야 할 것만 같았다. 그만큼 한심해 보였다.

“죄송합니다. 미처 몰라 뵀습니다.”

“뭐···? 몰라?! 넌 눈에 뵈는 게 없냐?”

“야, 내버려 둬.”

소리가 커질 것 같자 다른 하나가 주변의 눈치를 보며 말리는 시늉을 했다.

나름의 선후배 관계가 있는 가요계라지만, 도욱은 눈앞의 두 사람에게까지 예의를 차릴 필요는 느끼지 못했다.

인기나 실력의 문제가 아니었다. 됨됨이의 문제였다.

그때 도욱을 찾던 오백호가 도욱을 불렀다.

“도욱아!”

오백호 실장의 등장에 두 사람이 주춤거리며 우선은 물러섰다.

“여기서 뭐 하고 있어?!”

“아, 김우연 선생님께 인사드리러 왔는데 자리에 안 계시네요.”

도욱이 일부러 ‘김우연 선생님’을 또박또박 조금 더 큰 목소리로 발음했다.

그제야 시비를 걸던 두 사람은 도욱이 자신들을 무시하고 지나친 이유가 김우연 때문이란 걸 눈치챘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오히려 더 짜증난다는 듯 표정을 구겼다.

“그래? 인사는 나중에 하고 일단 대기실 가서 옷 갈아입자. 근데······ 얘기 중이었어?”

오백호의 질문에 도욱이 곁눈질로 두 사람을 살폈다.

오백호의 체격과 분위기에 두 사람은 이미 기를 펴지 못하고 있었다. 전형적으로 강한 사람 앞에서 약해지는 인물들이었다. 도욱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가요, 형.”

“그래.”

도욱을 데리고 복도를 나서던 오백호가 몇 발자국 가지 않아 뒤를 돌아보았다.

“여기 금연구역인 거 안 보입니까?”

“무, 무슨 상관······.”

무슨 상관이냐 반박하려던 두 사람은 오백호가 인상을 구기자 입을 다물고 물러섰다.

이후에 도욱은 차례가 되어 무대를 준비하는 김우연을 발견할 수 있었지만, 무대를 앞둔 김우연은 지나치게 예민한 상태였다. 괜히 그의 무대 준비를 망치고 싶지 않아서 도욱은 굳이 인사를 하러 가지는 않았다.

그런 김우연을 보고 있자니 함께 1위 후보에 오른 만큼 부끄럽지 않게, 조금 더 열심히 무대를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을 뿐이었다.

***

무대 순서는 컴백 무대를 갖는 케이케이가 먼저, 이후가 2주 연속 음원 차트 역주행의 기적을 세운 김우연이었다.

여전히 인생가요의 마스코트로서 활약하고 있는 설레임이 힘찬 목소리로 둘의 무대를 소개했다.

케이케이의 무대는 리허설때보다 훨씬 더 완벽했다.

첫 곡은 사전 녹화했던 ‘Something’이었다. 색을 많이 사용한 가볍고 스포티한 옷차림으로 무대를 꾸미는 케이케이의 모습이 방송에 나갔다. 데뷔 때보다 훨씬 더 표정을 자유자재로 쓰며 카메라에 대한 이해도도 높아진 모습이었다.

사전 녹화에는 이백여 명의 케이케이 팬들이 동원됐다. 이백여 명의 대인원이 케이케이의 로고가 그려진 응원도구를 일제히 흔들며 케이케이의 모습에 열광했다. 반짝거리는 푸른 물결마저 하나처럼 표현됐다.

그리고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Very Sorry’의 무대.

음원도 음원이지만, 뮤직비디오의 퍼포먼스를 보고 사로잡힌 이들이 워낙 많았다. 또 김우연의 1위 등극으로 이전보다 넓은 스펙트럼의 대중들이 인생가요를 시청 중이었다. 수많은 가요 팬들이 케이케이의 무대가 어떨지 시선을 모으고 있었다.

‘이 무대, 팬들을 끌어 모을 기회이기도 하다.’

조명이 켜지고, 전주가 흘러나오길 기다리며 도욱은 생각했다. 곧 작곡 작업을 시작했을 때부터 몇 개월간 수없이 반복해서 들었던 ‘Very Sorry’의 전주가 공기를 가르고 흘렀다.

꺄아아아아아―!

케이케이이이이이―!

관객석에서 케이케이를 향한 함성이 크게 울렸다. 함성과 함께 탁, 조명이 켜지며 케이케이 멤버들을 비췄다. 수트를 입고 대열을 갖춰 선 여섯 명의 모습이 한 화면에 잡혔다.

그 순간의 전율을 온몸으로 느끼며 케이케이 멤버들은 몸을 움직였다.

생방송을 보고 있는 이들이 쓰는 스트리밍 사이트 댓글창은 케이케이에 대한 이야기로 터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미쳤다! 미쳤어어어어어어엉엉엉엉엉ㅠㅠㅠㅠㅠㅠ

-지금 무대하는 애들 누구?

-케이케이!!!

-나 오늘부터 키링^^ 케이케이랑 1일^^

-방금 지나간 귀여운 애 이름 아는 사람 빨강머리

-내 남친 이름 궁금하구나~? 박태형이야~

-철컹철컹

-입덕 뽐뿌 장난 아니야;;; 군무 대박..

-얘네 신호등이냐? 머리색 난리 났네

-강..도..욱..ㅠㅠㅠㅠ (인생 마지막 말)

-신인인데 무대 진짜 잘한다. 무대 잘하는 것만큼 중요한 게 없는데...

케이케이를 어마어마한 스타의 자리에 올릴 ‘Very Sorry’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1위 발표만이 남은 순간.

김우연이 무대를 마치고, 엠씨들부터 시작해 오늘 인생가요에 출연한 전출연진이 무대 1위 발표 무대 위로 올랐다.

그중에는 대기실 앞 복도에서 마주쳤던 두 사람도 있었다. 두 사람과 그들의 팀원들은 카메라도 잘 오지 않는 구석 자리에 위치했다. 가장 앞줄로 가기 위해 걸어가던 도욱과 눈이 마주쳤지만, 두 사람은 이내 고개를 돌려 버렸다.

남자 엠씨와 설레임을 가운데에 두고 김우연과 케이케이 멤버들이 양옆에 일렬로 섰다. 케이케이 멤버들은 상기된 표정으로 점수가 나오고 있는 VCR을 봤다. 그런 케이케이 멤버들의 얼굴이 화면에 잡혔다.

반면 김우연은 덤덤한 표정이었다. 무대를 마친 터라 예민해져 있던 신경도 많이 누그러진 상태였다.

김우연도 무명이 길었던 사람이다. 요즘 같은 때에 2주나 1위를 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할 줄 알았다.

“그럼 이번 주 1위의 영광을 누릴 가수는 누가 될지······!”

“1위는······, 1위는·········!”

점수가 화면에 잡혔다. 방송 점수도, 음원 점수도 김우연이 더 높았다.

“1위는― 케이케이!”

효과음과 함께 꽃가루가 터지며 케이케이의 얼굴이 잡힌 화면 위로 ‘1위’라는 자막이 떠올랐다.

설레임이 케이케이의 리더인 정윤기에게 꽃다발과 함께 트로피를 전달했다. 데뷔한 지 3개월밖에 되지 않았는데 벌써 여러 번 받은 트로피였다.

멤버 여섯 명이 모두 모여서 얼싸 안고 짧게나마 눈빛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화면에는 여섯 명의 등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케이케이의 팀워크를 알 수 있는 시간이었다.

정윤기가 수상 소감을 말하기 위해 마이크를 다잡았다.

사실 정윤기는 컴백 전 이런저런 걱정을 했었다. 데뷔 앨범이 잘됐기 때문에 정규 1집 앨범은 더 잘돼야 한다는 부담감도 있었다. 곡이 나오고 준비를 하면서 잘될 거라는 자신감이 있긴 했지만, 이렇게 모든 게 완벽한 데도 안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도 따랐다.

또 노력하는 멤버들, 특히 앨범 참여도 많이 하고 누구보다 노력하는 도욱을 보면서 리더로서 어떠한 책임감도 느꼈던 게 사실이었다.

정윤기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걱정도 많았던 게 사실인데······. 컴백주 1위라는 영광을 주신 팬 여러분, 키링! 감사합니다!”

팬들의 이름이 불리자 관객석이 또 한 번 술렁였다. 케이케이를 연호하는 팬들의 목소리가 우렁찼다.

정윤기가 수상 소감을 마치고, 엠씨들이 마무리 멘트를 했다.

오늘의 1위곡인 ‘Very Sorry’의 전주가 다시 한 번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가수들이 무대 아래로 내려가며 케이케이에게 축하 인사를 전했다. 다들 감격에 젖은 채 정신없이 인사를 받으며 고개를 숙였다.

그때. 무대 위를 보던 스태프들이 의외의 광경을 보고 수군거렸다. 관객석도 마찬가지였다.

“둘이······ 뭐야? 카메라 무대 왼쪽 줌해서 잡아요!”

현 피디의 지시에 3번 카메라가 찍고 있는 화면으로 TV 화면이 넘어갔다.

그곳에는 김우연과 도욱, 둘이 이야기를 주고받는 모습이 있었다.

“강도욱. 축하한다!”

여기 저기 동료 가수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는 케이케이의 멤버들, 도욱의 앞에 다가와 김우연이 축하 인사를 건넸다.

도욱이 김우연의 인사를 받고서 허리를 깊숙이 숙였다. 그런 도욱의 어깨를 김우연이 미소 지으며 두드렸다.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인 도욱과 함께 1위 후보에 올랐다는 사실이 김우연으로서도 뜻 깊었다.

도욱이 노래에 얼마나 진지한 태도를 갖고 있고, 실력이 어떤지, 실력을 키우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는지 등에 대한 건 김우연도 잘 알고 있었다. 방송 전 도착한 도욱의 메시지는 그런 김우연의 생각을 다시금 확인시켜주었다.

함께 1위에 오르다니 영광이라는 어쩌면 뻔한 내용의 메시지. 다른 누군가 보내왔다면 가식이라고 여겼을지도 모를 내용이었지만, 다른 누군가가 아닌 도욱이었기 때문에 김우연은 내용 그대로 메시지를 받아들였다.

또 자신의 무대 전에 펼쳐진 케이케이의 무대를 보고 김우연은 ‘자랑스럽다’는 감정까지 느끼게 되었다.

‘잘될 줄은 알았지만, 언제나 그렇듯 늘 상상 이상이군.’

그러나 김우연은 그런 감상은 입 밖으로 내뱉지 않았다. 이제 와서 그런 말을 해봐야 생색내기밖에 안 됐다. 그런 말은 잘되기 전에 해줬어야 할 말이었다.

지금은 그저 축하한다는 말 한마디면 될 것 같았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도욱은 어깨를 두드려주는 김우연의 손에서 김우연의 제자를 향한 애정을 느꼈다.

김우연은 아카데미의 보컬 선생일 뿐이었고, 도욱이 찾아가 수강료를 지불하고 스승과 제자의 관계를 맺게 된 것이긴 했다.

그러나 좋은 노래를 부르고 싶다는 강한 의지를 가진 도욱을 알아본 김우연이 학원 수강생을 가르치는 것 이상의 공을 들여 자신을 가르쳤다는 걸 도욱은 알았다. 하드한 트레이닝의 연속이었지만, 덕분에 어디 내놔도 부끄럽지 않은 보컬 실력을 가질 수 있었다.

또 투덜대면서도 김우연은 도욱을 위해 여러모로 힘써 주었다. 용수철을 찾아낸 것도 김우연의 덕분이었고, 김우연은 의도치 않았지만 덕분에 김숨과도 인연이 생겼다.

그리고 무엇보다, ‘꿈이었으면’의 가수였다. 도욱이 감격하며 김우연을 끌어안았다.

“이놈이 징그럽게!”

역시나 말로는 내키지 않는 것처럼 했으나, 이내 못 이기는 척 김우연도 도욱을 꽉 끌어안았다. 두 사람의 짧고 강렬한 포옹은 생방송을 타고 흘렀다.

***

아이돌에 대해 거침없는 비판을 일삼던 김우연이었다.

그런 그가 함께 1위 후보에 올랐던, 경쟁 팀이었던 케이케이의 멤버 강도욱에게 먼저 다가가 인사를 건네고 훈훈한 분위기로 포옹까지 했다.

컴백 동시 1위라는 돌풍을 일으킨 케이케이의 멤버, 김우연이라는 괴팍한 성격의 보컬리스트의 조합에 사람들의 궁금증과 관심이 몰렸다.

기사가 난 건 삼 일 정도 흐른 후였다.

<‘옛 가수왕’ 김우연, 케이케이 강도욱은 실력 있는 애제자!······ 특별한 사연 밝혀>

무명 시절 밥벌이를 하기 위해 보컬 선생을 했었던 일과 함께 강도욱은 그 시절에 가르친 학생이라는 사실을 김우연은 ‘옛 가수왕’ 프로그램 인터뷰에서 밝혔다.

대선배의 노래를 평가할 때도 ‘잘하신다. 훌륭하신 분이다.’ 정도로 필요한 말만 하는 김우연이었다.

그런 그가 뿌듯한 얼굴로 ‘얼굴, 실력, 노력 어느 것 하나 빠지지 않는 친구다.’ 하고 인터뷰하는 모습에 사람들은 도욱에 대해 또 한 번 큰 호감을 갖게 되었다.

멤버들 전원은 차에 탄 채 영등포에 있는 타임스퀘어로 이동 중이었다.

“도욱이 네가 따로 다니던 보컬 학원 선생님이 김우연 선배님이라니 신기하다, 마.”

정윤기가 옛 가수왕 인터뷰를 휴대폰으로 보며 말했다. 오백호 정도만이 그 사실을 알고 있었고, 멤버들도 몰랐던 사실이었다.

숨겼다기보단 굳이 얘기할 필요가 없다고 느껴서였다.

“그러게. 나중에 나도 인사시켜줘~ 노래 진짜 너무 짱이시라고 인사할래!”

안형서의 말에 도욱이 기회가 되면 그렇게 하자고 머리를 긁적이며 답했다.

케이케이가 다른 점수가 김우연보다 조금씩 낮았는데도 인생가요에서 1위를 할 수 있었던 건 다른 게 아니었다. 낮은 비율이 책정됐음에도 음반 점수가 월등히 높았기 때문이었다.

코어 팬덤의 중요성이 다시금 입증된 셈이었다.

지난번보다 인기가 늘어난 게 게 사실이었지만, 앨범 판매가 엄청나게 많았던 데에는 다른 이유도 존재했다.

그 늘어난 인기를 이용하기 위해 회사에서 짠 전략이었다. 서울 전역에서의 팬 사인회를 여는 것으로 앨범 판매량을 늘린 것이다. 팬 사인회에 당첨되기 위해 팬들은 한 명당 어마어마한 앨범을 사들였다.

그리고 오늘은 문제의 첫 팬 사인회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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