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보니 슈퍼스타-41화 (41/225)

# 41

Thanks to. (2)

도욱은 페이스노트와 케이케이의 팬 카페 등에 올라온 어제의 팬 사인회 후기들을 대부분 읽었다.

처음인 데다 공개 팬 사인회라 관심을 가진 팬들이 정말로 많았다. 그만큼 많은 수의 후기들이 올라와 있었고 너무 좋았다는 반응이 주를 이루었다.

‘너무 멀어서 보지 못했다, 질서가 엉망이었던 것 같다.’ 등의 글들도 올라와 있었지만, 케이케이 자체의 문제는 아니었다.

대체로는 ‘이렇게 잘해주는 아이돌 처음 봤다, 전부 최고였다, 질문에도 다 대답해주고 심지어 손도 잡아줬다, 다음번에도 꼭 가야겠다, 돈 쓴 게 안 아까웠다.’ 등의 글들이었다.

멤버들과 어떤 대화를 나눴으며, 각 멤버들이 어떤 분위기였는지에 대한 서술, 외모와 성격에 대한 찬양 등 상세한 후기들도 넘쳐났다.

팬 친화적인 마케팅의 일환이었던 팬 사인회에서의 친근한 대응들이 정확히 먹혀 들어간 셈이었다.

그러한 분위기는 케이케이의 팬페이지에 한정된 것이 아니었다. 대형 커뮤니티의 아이돌 관련 카테고리에도 케이케이의 이야기로 도배될 만큼 많은 후기가 올라와 있었다.

반응도 상당했다. 이 정도 대응의 팬 사인회라면 돈 써서 가볼 만할 것 같다는 얘기가 많았다.

케이케이에게 가벼운 관심 정도만 가지고 있던 이들도 올라온 후기와 사진, 영상 등을 보며 ‘영업당했다’고 울부짖었다.

물론 대형 커뮤니티이다 보니 다른 아이돌의 팬들도 회원의 상당수를 차지했다. 때문에 케이케이의 글이 계속해서 올라오고, 분위기가 쏠리자 케이케이를 견제하는 듯한 발언을 하는 이들도 있었다.

‘케이케이 아직 신인 듣보 아님?’ 같은 어그로를 끌거나 ‘케이케이 괜찮은지 난 잘 모르겠던데.’ 하는 식으로 은근하게 깎아내리는 등의 글이었다.

그러나 그 정도의 글이나 댓글은 금세 묻혀버렸다.

문제는 그러는 와중에 종종 나오는 석지훈과 관련된 이야기였다.

커뮤니티에 올라오는 글들은 팬 카페와는 다른 분위기의 글이었다. 팬 카페에서는 석지훈 역시 다른 멤버들과 마찬가지로 칭찬하는 글이 대부분이었다.

누나 팬들은 누나 팬들대로 석지훈의 스무 살이 기대된다며 난리였고, 석지훈 또래의 팬들은 무뚝뚝하지만 자신에게만은 잘해줄 것 같은 남자친구의 이미지로 석지훈을 소비했다.

조금 부정적인 반응이라고 해봤자 ‘지훈이는 낯을 가리는 것 같더라’ 정도였다. 그마저도 낯을 가려서 더 귀여운 것 같다는 석지훈 극성팬들의 댓글들만 달렸다.

석지훈이 눈을 비비며 도욱의 곁으로 다가왔다.

“무슨 일이에요?”

“어······. 이런 글들이 계속 올라오는 것 같아.”

도욱이 모니터를 보며 말했다. 석지훈이 도욱의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커뮤니티 검색창에 석지훈의 이름을 검색했다. 그러자 석지훈과 관련된 글이 주르륵 목록에 떴다.

[제목 : 그런데 석지훈...]

[제목 : 석지훈 말이야]

[제목 : 케이케이 석지훈이 아역 걔야?]

다섯 개 중 한 개의 꼴로 이런 식의 제목이 있었다. 눌러 보면 어김없이 석지훈에 대한 부정적인 글이었다.

[제목 : 케이케이 석지훈이 아역 걔야?

팬 사인회 사진 보는데 어디서 봤다 싶었어

연기하고 싶은데 소속사에서 아이돌 시켰나?

맨날 얼굴 썩어 있는 듯]

-연기를 더 하고 싶은 듯

-가수하기 싫으면 관두지ㅋ

-그룹 활동 이제 시작한 애한테 뭐라는 거야?

-사진 보면 잘만 웃고 있는데?

-나 아는 지인이 석지훈 친척인데 석지훈 아이돌 안 하고 싶다고 해서 소속사랑도 문제 있다던데?

-헐 나중에 탈퇴하는 거 아님?

[제목 : 석지훈 말이야

아이돌 안 하고 싶다는 얘기 돌아서 하는 말인데

예전에 팬하고 뭐 문제 있지 않았음?]

-팬 뿌리치고 다닌다던데ㅎㅎ;;;

-팬하고 싸웠던 듯? 어리다 어려...

-아직 어려서 철이 없나 보네

-18ㅋㅋ 옛날이면 장가갔을 나이

-연생 때 사생이 지훈이 뺨 때렸다는 얘기 있어. 잘 모르면서 루머 생성 ㄴㄴ

[제목 : 그런데 석지훈...

나 케이케이 팬이지만 석지훈은

꺼림칙할 때가 있는 게 사실임=_=

팬한테도 벽을 친달까? 어제 팬싸에서도 그렇고

역시 아이돌판에서 빨리 발 빼고 싶은가봄ㅋ]

-팬 코스프레 X

-느낌 가지고 소설 쓰지 말자..

-아 나도 팬 된 지 얼마 안 됐는데 이런 거 느낀 적 있어

-나도22222

-사실 나도...33333

연기를 하고 싶어서 케이케이 그룹 생활에 만족하지 못한다. 그래서 다른 멤버들과 달리 팬들에게 적극적으로 대응을 안 해주는 것 같다는 등의 이야기가 공공연하게 사실처럼 퍼지고 있었다.

“음······.”

가만히 글을 읽어 보던 석지훈이 조금 찌푸렸다. 그러나 이내 무심한 표정으로 돌아와 있었다.

본인에게 안 좋은 글들을 대놓고 보여줘도 되는지 도욱도 고민했다. 그러나 석지훈이라고 모니터를 안 하는 것도 아닐 테고, 또 상황을 직시해야 해결할 힘도 나오는 법이었다.

석지훈이 마우스를 움직여 다른 커뮤니티 사이트로 들어갔다. 보고 있던 대형 커뮤니티보다는 조금 더 마이너한 성향의 사이트로 아이돌 팬들이 주로 모여 있는 곳이었고, 거침없는 발언들이 오가는 곳이었다.

사이트에 들어간 후 석지훈이 검색창에 검색어를 입력했다.

“이렇게 쳐야 제대로 나와요.”

석지훈이 검색한 것은 ‘돌지훈’. 석지훈을 비하하며 부르는 별명이었다.

돌지훈으로 검색하자 아까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이 원색적인 비난이 가득한 글들이 떴다. 욕설도 상당했고, 케이케이에서 탈퇴하는 게 낫겠다는 얘기도 많았다.

‘역시 모르고 있지 않았구나.’

도욱은 글들을 보며 표정을 더욱 굳혔다.

이제 열여덟이 된 석지훈에게 가혹한 글들이 많았다. 게다가 케이케이로 데뷔한 지는 3개월이었다. 그동안 석지훈은 별다른 잘못도 저지르지 않았다.

물론 연습생 때 당한 트라우마로 팬들에게 마음의 문을 전부 열지 못한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팬이라고 하면 기겁해서 뒤로 물러나는 정도도 아니었다. 갑작스럽게 자신을 만지려 드는 팬에 대해서만 신경이 곤두서는 것뿐이었다.

이렇게까지 비난받을 게 아니라는 생각에 도욱은 자신의 일처럼 억울해졌다.

“억울하지 않아?”

연기를 하고 싶어서 조금 더 쉬운 길인 아이돌을 선택하는 이들도 있는 건 사실이었다. 그러나 석지훈은 연기를 하고 싶은 데 아이돌을 억지로 하고 있는 게 아니었다.

연기를 하고 싶었다면 그대로도 충분히 할 수 있었다.

석지훈은 연기도 좋았지만, 무대 위에서 그 순간에 빠져 노래하고 춤추는 가수가 되고 싶었다. 가수가 되려고 오디션을 보고 힛 엔터테인먼트에 제 발로 들어왔다. 괜히 아이돌 이미지만 씌워져 나중에 연기를 못 하게 되면 어쩔 거냐는 엄마의 반대도 무릅 써야만 했다.

힛 엔터에 들어와 데뷔를 위해 노래와 춤 실력을 갈고 닦았다. 힘들었지만, 자신이 선택한 길이었기 때문에 충분히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던 석지훈이다.

그런 석지훈을 도욱도 알았다. 함께 데뷔를 준비하고, 연습하고, 생활하면서 말없이 묵묵히 제 할 일을 해 온 석지훈이었다. 도리어 막내로서 자신의 몫을 꿋꿋이 해낸 편이었다.

“어쩌겠어요. 제가 이런 말이 나올 만하게 행동한 탓이겠죠.”

“지훈아.”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해봤자 일만 더 커질 거예요. 믿지도 않을 거고. 오 실장님도 아마 그냥 두는 게 나을 거라고 할 겁니다.”

담담한 어투에 도욱은 더욱 안타까워졌다.

석지훈은 확실히 연예계 바닥에 대해 잘 파악하고 있었다. 석지훈의 말이 모두 맞았다. 기획사 홍보팀으로 일할 때에도 그렇게 일해 왔었다.

소속 연예인들에 대한 악플과 루머에 대해서 일단은 일절 언급하지 않고 지켜보는 식이었다. 괜히 해당 연예인이 관련 루머를 언급했다가는 몰랐던 사람들마저 알게 되는 부작용만 낳았다.

지켜보다 잠잠해지거나 물질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바가 있어 사라지면 큰 행운이었다. 이도 저도 할 수 없어 물밑에 도는 루머 정도는 감수하고 살아야 하는 게 연예인이었다.

그러다 루머가 심해지고, 도를 지나친 욕설이 수천, 수만 개씩 온 뉴스 기사 댓글에 도배가 되면 그제야 회사 차원에서 악플러에 대한 고소가 가능해졌다. 그 전까지는 뾰족한 수가 없는 게 사실이었다.

“그렇지만 이대로 둘 수만은 없어.”

도욱은 사이트를 계속해서 눈으로 살피며 어떠한 특징들을 찾아냈다.

눈에 띄는 아이디들이 몇 개 있었고, 그 아이디들이 쓴 글 내용이 대부분 일치했다. 석지훈이 손버릇이 안 좋고, 팬을 벌레보듯 한다는 얘기였다.

‘일전에 숙소 앞에서 기다리던 학생들이거나···, 아니. 글쓴이가 누가 됐든 악의적인 건 사실이다. 가만히 있으면 다른 팬들에게까지 지훈이에 대한 이미지가 안 좋아질 뿐이다.’

도욱의 명확한 어조에 석지훈은 회의적으로 고개를 저었다.

“방법이······.”

담담하게 말하고 있는 석지훈이었지만, 석지훈이라고 해서 자신의 진심이나 사실과는 상관없이 도는 이야기들에 그저 괜찮을 수만도 없었다. 다만, 방법이 없을 것 같으니 애써 마음을 다잡은 것이었다.

“이런 말 안 나오게 제가 더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죠. 더 많이 노력해야겠지만······.”

도욱은 석지훈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래, 그런 진심. 적어도 그 진심은 전해 봐야지.”

***

어느 정도 예상된 일이긴 했지만, 도욱 스스로도 믿을 수 없을 만큼 케이케이의 정규 1집 앨범 Sensation의 타이틀곡 ‘Very Sorry’의 인기는 어마어마했다.

케이블 방송국은 물론이고, 공중파 방송까지 모든 방송사 음악 방송의 1위 트로피를 쓸어 모았다. 음원 차트에서는 김우연의 노래와 엎치락뒤치락 하기를 반복하며 1, 2위 자리를 번갈아했다.

골목마다 가게마다 ‘Very Sorry’의 노래가 나오지 않는 곳이 없었다.

방송계에서만 알아주는 특급 신인 정도가 아니었다. 대중들도 빠짐없이 케이케이의 ‘Very Sorry’에 열광했다.

덕분에 케이케이는 ‘국민 사과돌’이라는 칭호를 얻었다.

온갖 예능과 드라마의 미안해하는 장면에서는 ‘Very Sorry’가 흘러나왔다. 후렴구의 중독적인 사운드와 안무 덕분에 사람들의 머릿속에 확실하게 각인될 수밖에 없는 부분이었다.

한 달 여도 되지 않아 여그룹이 준비해두었던 후크 송을 가지고 나오며 인기를 얻자, 케이케이가 후크 송의 시대를 열었다는 평가까지 나오는 중이었다.

게다가 마이튜브를 통해 ‘Very Sorry’의 뮤직비디오가 해외에서도 유명세를 타면서 ‘Very Sorry’의 노래나 춤을 커버하는 외국인들도 생겨났다.

언젠가부터 시작된 K-POP 열풍의 선두주자들을 바짝 뒤쫓는 그룹이 된 셈이었다.

언어의 장벽 때문에 외국인들은 퍼포먼스 위주의 그룹을 선호했는데 케이케이가 그에 걸맞은 그룹이기도 했고, 노래 자체에 연속적으로 쉬운 영어인 ‘Sorry’가 반복되기 때문에 영어권이든 비영어권이든 따라 부르는 데도 큰 어려움이 없었던 게 좋은 셀링 포인트가 됐다.

그렇게 전국을 넘어 세계에도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을 때, 케이케이 멤버들은 첫 해외 스케줄을 떠나게 됐다.

오사카에서 열리는 <한일 문화교류축제>에 초대된 것이다.

“아오, 떨려. 도욱아 이거 너만 알아라. 나 사실 비행기 처음 타거든?”

김포공항 국제선 탑승장.

사진을 찍는 팬들에게 멋있게 보이기 위해 괜히 휴대폰을 보는 척하든가,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척하며 멤버들은 여권 심사를 받으러 이동했다. 앞선 오백호가 자꾸만 몰려드는 팬들을 물렸다.

도욱의 옆에 선 정윤기가 팬들을 향해선 한껏 멋진 미소를 지어 보이며 도욱에게 속삭였다. 그 말에 도욱은 헛웃음을 짓고 말았다.

“알아요.”

“마, 안다고?”

“얼마 전에 여권 발급받으러 구청 다녀왔잖아요.”

“아······. 백호 형이 말했구나.”

오백호를 원망하며 정윤기가 꿍얼댔다.

정윤기가 개인 스케줄을 간다고 그래서 무슨 일인가 했던 멤버들이었다. 오백호가 ‘윤기 데리고 여권 만들러 구청 갔다 올 테니 연습들 하고 있어라’라고 하지 않았다면, 정말 학생래퍼 같은 개인 스케줄인 줄 알았을 것이다.

아무튼 첫 해외스케줄에 긴장이 되기는 비행기를 처음 타지 않는 다른 멤버들도 마찬가지였다.

발급받은 표를 가지고 심사를 마친 후, 시간에 맞춰 멤버들이 비행기 좌석에 앉았다.

도욱의 양옆으로는 정윤기와 석지훈이 앉았다. 왼편에 앉아 노래를 들으려는지 이어폰을 휴대폰에 연결하는 석지훈에게 도욱이 물었다.

“연습은 많이 했어?”

“네. 하긴 했는데···. 괜찮을지 모르겠어요.”

“괜찮을 거야. 이따 밤에 호텔 방에서 녹음하자.”

석지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도욱은 석지훈과 함께 자체적으로 노래를 녹음하려고 2주 정도 연습을 했다. 석지훈도 도울 뿐 아니라 도욱 자신에게도 좋은 기회를 만들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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