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4화.제5지옥은 뭐냐 (137/371)

< 제5지옥은 뭐냐 >

경찰, 경찰···. 

 보라색, 보라색······. 

 “후우!” 

 나는 심호흡을 크게 한 뒤 잠시 생각을 정리했다. 

 방에서 새어나오는 대화로 미뤄 이 여자애는 아무 것도 모른 채 약물을 복용 당했다. 란이처럼 말이다. 그리고 그것이 부작용을 일으켜서 구토 증세가 발생한 것 같다. 

 어떡하지, 어떡하지. 

 몇 년 전부터 사회분위기가 많이 냉정해졌다. 

 선의로 도움을 준다고 해도 그것이 내게 큰 불이익으로 돌아오거나, 또는 단편적으로 보이는 상황만으로 성급하게 판단했다가 사실은 그게 아니었다는 것이 밝혀져서 가해자와 피해자가 뒤집혔던 몇 몇 사례 때문에, 이런 상황에서 일단 나서지 않는 것이 관례처럼 굳

어지고 있다. 

 특히 도움을 청하는 상대가 여성에다가 술까지 마셨다면 더욱 조심하게 된다. 

 냉정해졌다기보다는 그동안 당연시 됐던 호의와 인정이 몇 몇 개념 없는 종자들 때문에 이성적인 개인주의로 바뀌는 과정이지. 

 나도 마찬가지다. 

 만약 이 여자애가 나와 관계가 없었다면, 나를 향해 경찰에 신고를 해달라고 부탁을 했어도 직원과 업소 측에 인계했을 것이다. 

 그런데 딱! 보라색! 어! 

 마지막 멤버를 찾았다는 안도감과 과연 얘는 내게 어떤 시련을 전해줄지에 대한 두려움이 동시에 찾아온다. 

 사쿠라희의 제1퇴폐지압 지옥 

 마약란교의 제2자지조아 지옥 

 딜도미오의 제3여장남장 지옥 

 미혼모유의 제4욕설음어 지옥 

 과연 제5지옥은 뭘까. 

 일단 잘 나가는 클럽 VIP룸과 최음제라는 묵직한 원투펀치가 선빵으로 들어왔다. 

 우리에게는 그 방면의 불세출인 마약난교돌 란이라는 선구자가 있지. 그 때문에 뉴타입 5호기 역시 어느 정도 난 놈일 것이라는 합리적 선입견이 들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란이 정도의 난이도냐, 아니면 묻고 떠블로 가냐의 차이인데···. 

 업키걸과 현재까지 등장한 2기 4명의 선례로 미뤄 보면, 강한 적 뒤에 더 강한 적이 나오는 드래곤볼식 파워인플레 구조로 신캐가 등장을 했다. 

 은빛이보다는 서원이가 어려웠고, 서원이보다는 스폰+아이컨택에 묶여있던 요나가 빡셌다. 네 번째로 등장한 고도비만 느그홍은 현실적으로 클리어가 불가능해 보이는 극악의 난이도였으며, 최종보스 알리야는 그냥 사람 새끼가 아니었다. 

 2기로 넘어오면 더 심하다. 아예 인외종족이 등장한다. 

 그나마 인간 난이도인 라희를 제외하면 시작부터 끝판왕 급이다. 

 3단 변신 프리더―란, 그 다음은 최종진화 셀―미오, 그리고 마인부우―지유가 나왔다. 

 그렇다면 최종 멤버인 5호는 어느 정도일까. 

 드래곤볼 극장판에 나오는 파괴의 신 비루스일까? 

 전자발찌? 트랜스젠더? 아니면 미오의 업그레이드 버전인 오리지널 여장남자? 

 과연 화룡점젖의 정체는 뭘지, 이제는 걱정을 넘어서 기대감마저 밀려온다. 

 “하으으으, 속이 너므 안 저아···.” 

 뉴5호기가 괴로워하는 가운데, 나를 안내했던 MD는 어딘가로 급히 카톡을 보내고 있는 중이었다. 

 마약이든 최음제든 골뱅이 푸시든 뭐가 됐든. 이런 큰 클럽에서는 불법인걸 알면서도 쉬쉬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그로 인해 문제가 발생했을 시 대처방법에 대한 매뉴얼도 있을 것이다. 

 강남 한복판에서 클럽을 하면서 경찰과 커넥션이 없을 리가 없겠지만, 그래도 최대한 경찰을 부르지 않고 업소 내부에서 마무리 짓기를 바라겠지. 

 VIP룸에서 일어난 일이라면 더더욱···. 

 문제는 나도 어느 정도 그 조치에 동의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보라색 아우라를 확인한 이상, 경찰을 부르기 전에 어떤 상황인지 파악하는 게 우선이었다. 

 란이의 선례를 보면 아무리 모르고 마약을 먹었다고 해도 처벌은 피할 수 없었고 이미지도 개떡이 되지 않았던가. 

 이 자리에서 최대한 조용히 해결하는 것이 내 입장에서도 좋다. 

 여자애의 몸 상태만 괜찮다면 말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게 문제였다. 

 나는 일단 안주머니에 있는 세컨폰의 녹음기능을 켰다. 동영상이 좋긴 한데 아마 MD한테 제지당해서 촬영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우욱···! 허읍!” 

 뉴5호기는 뭐라도 잡아야 했던지, 내 발목을 붙잡고 헛구역질을 했다. 입술 옆에는 거품이 묻어나왔다. 

 약물을 먹었다면 차라리 토를 하는 게 낫지 않을까? 

 “저기요, 일단 토해요.” 

 “에?” 

 그녀가 고개를 들어 나를 쳐다봤다. 

 옳지. 일단 마스크는 좋다. 

 이런 상황에서도 팀의 조합을 위해 미모 평가부터 하는 내가 너무 냉정해보이지만 어쩔 수 없었다.  VIP룸까지 불려온 거니 미모는 어느 정도 검증이 됐다는 뜻이지만, 단순히 예쁜 게 아니라 아이돌로서의 비주얼이 딱 보였다. 

 키는 160 중반?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데도 비율이 끝내준다. 

 패션은 클럽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타이트한 블랙 원피스에 앵클부츠힐. 

 헤어스타일은 검은 생머리. 

 그런데 왜 이렇게 어색해 보이지. 자신과 안 맞는 배역을 맡은 신인 배우 같다. 

 말려들어가는 혀로 계속 내게 도움을 청한다. 

 “아저띠··· 제성한데여··· 견찰 점 불러즈시면 안댈까여···.” 

 눈빛도 그렇고, 확실히 술에 취한 것과는 분위기가 달랐다. 

 그녀는 정신을 최대한 붙잡으려고 노력하면서 부들부들 떨리는 손가락으로 룸을 가리켰다. 

 “저 사람드리 음료수에 무슨 짓 한 거 가타여··· 저 술 한 방울 더 안 마셔떠여···. 

 “술 안 마셨다고요?” 

 “에··· 저 수울 못 마셔··· 뿌에에엨!” 

 키이익! 결국 바닥에 토를 해버렸다. 

 나는 잽싸게 피하면서 벽에 붙었다. 

 상황이 이 지경인데도 룸 안의 분위기는 의외로 차분했다. 

 내 쪽에서는 벽에 가려져서 목소리만 들렸는데, 처음에만 당황했을 뿐이지 이내 분위기가 여유로워졌다. 

 대화 소리로 미뤄 최소 남자 세 명. 

 놀란 두 명을 한 명이 나서서 진정시키고 있었다. 

 “괜찮겠지?” 

 “나 이런 거 처음 봤어.” 

 “야, 야, 가게에서 알아서 해줄 거니까 흥분하지 마. 뭘 초짜들처럼 쫄고 그러냐. 담당 불러서 해결하라고 하면 돼.” 

 나는 여전히 채팅 삼매경인 MD에게 말했다. 

 “저기요, 경찰은 몰라도 119는 불러야 될 거 같은데요.” 

 “아, 119요··· 예··· 잠시만요··· 일단 제가 인포 쪽에 연락을···.” 

 이 새끼 봐라. 

 방금 전까지 깍듯하게 대하더니 이제는 나를 쳐다보지도 않는다. 

 하여튼 꼭 갑질을 해야 대접을 해준다니까. 

 “야.” 

 “예? 예, 대표님.” 

 MD는 내 목소리 톤이 달라지고 나서야 나를 쳐다보며 다시 공손해졌다. 

 “나 누군지 알지?” 

 “예, 압니다.” 

 “내가 직접 119 부를까?” 

 “아··· 그게 아니라···.” 

 MD가 당황해서 웅얼거리던 그때 룸 안에서 남자 두 명이 복도로 나왔다. 

 나와 MD를 쳐다보며 안심한다. 

 “뭐야, 밖에 애들 있었네.” 

 “됐네, 그럼.” 

 나이는 둘 다 30대 이상으로 보인다. 

 아마 나도 직원으로 생각한 것 같다. 

 그 중 덩치가 있는 짧은 머리 안경남이 여자애를 가리키며 내게 말했다. 

 “야, 얘는 니네가 알아서 케어하고, 이 정도 와꾸되는 맛탱이 간 애로 한 명 더 넣어줘라. 여기 물은 괜찮네.” 

 지갑에서 수표 한 장을 꺼내 손가락 두 개에 끼워 틱 건네며 말을 잇는다. 

 “근데 너는 낯이 좀 익다? 나 어디서 본 적 있지? 아테네에서 봤냐?” 

 그제야 MD가 급하게 끼어들었다. 

 “사장님, 죄송합니다. 이 분도 VIP게스트십니다.” 

 “아, 그래? 그럼 진작 말을 하지 왜 사람을 바보로 만들어.” 

 자기가 실수를 했음에도 사과 대신 적반하장이라니. 

 아주 익숙한 냄새다. 

 초창기 알리야에게서 풍기던 부르주아 절대갑의 체취였다. 

 VIP라인에서 마주쳤으면 나도 어느 정도 급이 있다는 걸 알 텐데도 거침이 없다. 

 나는 단호하게 물었다. 

 “혹시 약 먹였어요?” 

 “하하···.” 

 덩치안경남은 나를 가소롭다는 듯 흘겨보다가 에휴, 한숨을 쉬었다. 자기가 잘못한 건 알지만 인정하기 싫을 때 회피성으로 보이는 반응이었다. 보통 아랫사람들이 팩트로 조질 때 할 말 없는 윗대가리들의 리액션이지. 

 공기가 팽팽하게 긴장된다. 

 그때 그의 친구가 나를 알아봤다. 

 “어? 혹시 그 분 아닌가. 걔네 누구냐, 아, 갑자기 이름이 생각이 안 나네. 아아, 맞다. 업키걸. 업키걸 매니저 맞죠?” 

 “넌 무슨 딴따라 애들 매니저까지 알고 있냐. 원래 알던 사이야?”   “아니, 유명해. TV에 같이 나왔잖아.” 

 “그래? 아, 그래서 낯이 익었나?” 

 “업키걸도 몰라?” 

 “에이씨, 업키걸 정도는 알지.” 

 그가 나를 내리깔아보며 묻는다. 

 “매니저 맞아요?” 

 “매니저였다가 지금은 대표로 있습니다.” 

 “어이고, 출세하셨네. 회사 이름이 뭐예요?” 

 “제가 대답해야 돼요?” 

 “허이씨, 까칠하네. 그럼 걔네도 지금 여기 와 있겠네? 회식?” 

 “아니, 없는데. 나 혼자 왔는데.” 

 “하하이씨···.” 

 “상관없는 얘기 그만 하시고, 이 여자한테 약 먹였냐고요. 방금 일행분이랑 대화하는 거 들어보니까 그런 거 같던데.” 

 나를 위아래로 아니꼽게 쳐다보던 그는 입 꼬리를 재수 없게 씰룩이며 내가 했던 말로 되갚았다. 

 “내가 대답해야 돼요?” 

 “경찰서에서 하시든가요.” 

 “푸후후후흐흐흐흐, 에이그··· 이씨···.” 

 말끝마다 씨, 씨 거리는 게 상당히 거슬린다. 차라리 욕을 해 새끼야. 

 근데 이거 진짜 경찰에 신고를 넣어야 되나, 하며 전화기를 만지작거리는데 마침 벨소리가 울렸다. 

 제희였다. 

 “어, 여보세요.” 

 ―오빠 어디야? 

 “나 여기 클럽 들어와서 VIP룸 쪽으로 왔어. 조금만 기다려.” 

 ―어, 나도 나왔어. 

 “아니, 나오지 말고···.” 

 “어, 오빠 여기.” 

 전화가 끊기기도 전에 복도 교차로에서 그녀가 나타났다. 

 하아, 골치 아파지네. 

 유명 연예인이 이런 사건에 휘말려서 좋을 게 없다. 

 “뭐야···?” 

 제희는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뉴5호기를 의아하게 쳐다보며 걸어왔다. 

 MD에게 조심스럽게 묻는다. 

 “무슨 일이에요?” 

 “여기 게스트분이 많이 취하신 것 같습니다. 지금 이쪽 담당자 호출했으니까 바로 조치 취해드릴 겁니다.” 

 앞선 상황을 목격한 MD로서는 나를 1초라도 빨리 이 자리에서 분리하고 싶을 것이다. 제희가 왔던 쪽으로 손을 뻗으며 나와 그녀를 떼어내려 한다. 

 “가시죠.” 

 “대표님, 가요.” 

 제희도 존칭을 쓰며 나를 재촉했다. 

 그녀 입장에서는 내가 만취한 여자를 보고 정의감에 불타서 끼어들었다고 생각하는 눈치였다. 연예계 짬이 얼만데, 딱 봐도 구설수가 될 만한 사건이라는 걸 알아차린 것이다. 

 “아···.” 

 시원하게 구토를 했던 뉴5호기는 정신이 조금 드는지 벽을 짚고 스스로 일어나려고 하고 있었다. 

 자기를 버리고 가지 말라는 듯, 보라색 아우라가 울렁울렁 요동친다. 

 걱정하지 마. 어차피 버리고 갈 생각도 없으니까. 

 막다른 골목에 몰린 나는 순간적인 기지를 발휘했다. 

 “얘 우리 연습생이야.” 

 “어머···.” 

 장내의 분위기가 싹 바뀌었다. 

 남자들은 이제야 내가 끼어든 명분을 알았다는 듯 살짝 위축됐다. 

 누구보다 당황한 건 자리를 뜨려고 하던 MD였다. 허겁지겁 문자를 보낸다. 

 그리고 또 당황한 사람이 있었으니, 뉴5호기였다. 

 초점이 맞지 않는 눈을 애써 부릅떠서 나와 제희를 확인하고는 “허어!”하고 가성으로 소리를 질렀다. 그러고는 바들바들 떨리는 다리로 꾸역꾸역 자세를 잡고 폴더 인사를 한다. 

 “뮤노 대펴님, 제희 선배님··· 안녕하십니까!” 

 얘 뭐야. 

 제희를 선배님이라고 칭하는 걸 보니 연예인인 거 같은데? 

 “이런 올치 모탄 모슙 보여드려서 제성함니다. 아이긋!”  “어어!” 

 중심을 잃고 앞으로 고꾸라지려는 녀석을 내가 붙잡았다. 

 팔 안쪽 물렁살과 호리호리한 허리를 휘감았는데 녀석의 프로필창이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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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칭호/이름 : 연습생 정규율 

 ―생년월일 : 1997년 2월5일 

 ―신장/몸무게 : 166cm/50kg 

 ―혈액형 : B 

 ―소속 : 어반드림 엔터테인먼트 

 ―추천 분야 : 걸그룹 

 ―연습생 10년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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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반드림 연습생이었구나. 

 아이돌 기획사는 아니고 드라마, 예능 제작사이다. 아이돌 파트를 신설했다가 재정악화로 1년 만에 철수한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97년생이면 24살. 

 적지 않은 나이에 연습생 기간은 무려 10년. 

 완전 고인물이다. 

 어김없이 내게 똥을 건네는구나. 

 비주얼이 이렇게나 훌륭한데 아직 데뷔를 못한 걸 보면 재능이 진짜 1도 없거나 인성, 사생활에 큰 하자가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뜻. 

 “어?” 

 녀석의 얼굴을 정면에서 확인한 제희의 눈살이 가늘어졌다. 

 엄한 목소리로 꾸짖듯 말한다. 

 “정규율. 너 여기서 뭐해. 화장 때문에 못 알아봤네.”

< 제5지옥은 뭐냐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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