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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미친개라 곤란하다-95화 (95/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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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뭐, 뭐라고 하는 거요? 내 입에서 나온 말이 맞는 거요?

…내 의문에 답을 해줄 친절한 사람은 당연하게도, 존재하지 않았다. 이곳에는 존재하는 것은 나무와 풀 그리고 꽃뿐이다. 참 자연 친화적인 환경이다. 어허허, 빌어먹게도!

이윽고 내 의지 없이 내 몸이 움직였다.

천천히, 느긋하게, 한 발자국, 그리고 또 한 걸음.

발밑에 짓밟힌 잔디가 우짖는 것 같았다. 맨발 아래 가엾게 몸을 뉜 풀과 꽃이 한층 더 짙고 푸른 향을 풍겼다.

……무섭다.

이 기괴한 상황에 소름이 오싹 돋아야 했지만, 빼앗긴 몸뚱이는 그것마저 허락하지 않았다.

눈에는 여전히 세상이 담겼다. 코끝에는 풀 냄새가 풍기고 발 아래에 감도는 풀의 촉감이 느껴졌다. 정신마저 또렷했지만, 딱 하나 달라진 게 존재했다.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는 거.

‘이, 이, 이게 뭐야!’

이게 말로만 듣던 빙의? 엄마야, 나 귀신…… 아니, 이그드라실이 씐 거야?

내 의문에 비로소 답을 하듯, 내 입술이 천천히 움직였다. 내 것 같지 않은, 그럼에도 분명히 내 것인 목소리가 말을 전했다.

“날 원망하지 말렴.”

‘아냐, 이건 아냐! 영원토록 원망할 거니까 당장 내 몸에서 나가!’

손짓, 발짓 했지만…… 정확하게 말하면 하려고 한 게 되어버렸다. 내가 시도한 모든 것은 무위로 되돌아갔을 뿐이다.

감옥에 갇힌 것만 같았다. 아니, 누가 내 몸을 꽁꽁 묶어두었다는 표현이 옳을까? 어딘가에 갇히고, 속박당한 것처럼 답답하기만 했다.

내 발악이 느껴졌던 걸까. 내 몸이 이마를 찌푸리는 게 느껴졌다.

“반항이 심하구나. 착하지 못해.”

‘누가 할 소리를! 이게 무슨 짓이야! 당신이 그러고도 신이야? 앙?’

“난 신으로 섬겨달라고 한 적이 없대도?”

‘그래도 신 맞잖아! 동물이 동물 아니라고 박박 우기면 사람이 돼? 식물을 동물이라고 박박 우기면 걸어서 움직일 수 있냐고!’

“그 말도…… 맞긴 하구나.”

……이그드라실은 의외로 순순히 수긍했다.

“그래, 내가 아무리 부정해도 신이긴 하지. 인간에게 힘을 빼앗기고 무력해도 아스가르드에서 온 다른 존재이긴 해.”

내 고개가 위아래로 움직였다. 엄마야, 이건 정말 유쾌한 경험이 아니었다.

“하지만 네가 선택한 일이란다.”

‘내, 내가 대체 언제요!’

“난 분명히 네게 부탁했지만 거절한 건 너잖니.”

‘들어줄 수 있는 말을 해야 들어주지!’

사람을, 그것도 사랑하는 사람을 죽여달라고 하는데 누가 그 말을 들어줘!

‘그리고 혼잣말하지 마! 누가 보면 미친 사람인 줄 알 거 아냐!’

이어진 외침에 안면 근육이 또다시 멋대로 움직였다. 아마 얼이 나간 얼굴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너한테는 지금 그게…… 중요하니?”

‘다, 당연하죠! 아주 중요해요!’

안 그래도 누구 때문에 사람들이 슬금슬금 피하는데, 미쳤다고 소문나면 더 피할 거 아냐! 그런 상황은 죽었다 깨어나도 맞이하고 싶지 않단 말이야!

‘그리고 어쨌든 내 몸 돌려줘! 당장 나가란 말이야!’

내 필사적인 발악에 내 입꼬리가 부드럽게 말려 올라갔다. 나는 결단코 지을 리 없는…… 비열한 표정이 얼굴 위에 떠오른 게 느껴졌다.

내 안면 근육이 저렇게 움직일 수도 있구나.

새삼스러운 깨달음을 얻었을 때, 스르륵 움직인 손이 가슴 위에 닿았다.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지만, 심지어 부정의 의사도 표현하지 않았지만 거부하고 있다는 게 온몸으로 느껴졌다.

‘야, 이……!’

그에 당연하게도, 태어나서 단 한 번도 내뱉은 적 없던 심각한 욕이 목구멍을 비집었다. 이건 부, 불가항력이다.

‘이 삐리리야! 네가 신이냐? 신이냐고! 하비에르 말이 맞았어! 이건 악신이야! 내가 두 번 다시 이그드라실을 찾는 일이 있나 봐라! 영원히 저주할 거야!’

아니, 몸이 내 말을 들으면 일단 도움이 안 되는 광신도 놈부터 몇 대 쥐어박아 버릴 거야! 어떻게 이런 걸 신이라고 그렇게 광적으로 섬길 수가 있어!

“……제법 귀여운 욕을 하는구나.”

‘네가 지금 상황을 겪는다면 욕을 안 할 수 있을 거 같아? 앙?’

“반대로 묻고 싶구나.”

‘뭐?’

“분명 난 은혜를 베풀었다. 바라는 모든 것을 들어주었어. 그런데도 모든 것을 빼앗기고,”

이그드라실은 허망하고도 처량한 웃음을 덧그렸다.

“그리운 곳으로 돌아갈 수도 없고, 죽음마저 박탈당한 채 수천 년을 살아간다면 미치지 않고 버틸 수 있는지.”

‘…….’

물론…… 이그드라실의 사정이 이해가 가지 않는 건 아니었다. 사하크의 배신도 뼈가 아프겠지만, 그 이후에도 이 적막한 곳에서 오천 년을 살았다면 미치지 않고 버틸 재간은 없겠지.

하지만 나도 억울했다. 내가 한 일도 아닌데, 왜 책임을 내가 져야 하느냐고. 선조의 죄가 어쩌고…… 하기에는 내가 저 선조 밑에서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것도 아니잖아?

평생을 아파오다가, 겨우 나은 이후 일 년은 일만 하다가, 이제 겨우 행복의 맛을 봤는데! 그걸 깨뜨리고 싶지 않아서 발악을 하는 게 그렇게 나쁜 일이야?

“됐다. 네 이해를 바라지는 않으니까.”

이그드라실이 가볍게 코웃음을 쳤다. 천천히 눈앞이 새까매졌다. 이윽고 눈앞의 풍경이 바뀌었다.

* * *

며칠 새 익숙해진 벽이 보였다. 복잡하게 이어지는 아라베스크 무늬는 곡선의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었다.

빈틈없이 나를 끌어안고 있는 온기가 느껴졌다. 이 와중에도 가슴을 틀어쥐고 있는 단단한 손이란. 그리고 등 뒤에 맞닿아 있는 거대한 무언가.

‘어…….’

아그라스의 침실이었다.

……아마 이런 상황은 예상하지 못했던 듯, 아니면 예상을 했어도 당황스러웠던 듯 내 몸이 움찔 굳었다. 무슨 말을 내뱉어야 하는지 파악을 하지 못한 듯 입술이 여러 차례 달싹거렸다.

딱딱하게 얼어붙은 등 뒤로 들려오는 짓궂은 목소리란.

“웬일이야, 늦잠을 자고.”

“…….”

‘리, 리, 릴!’

내 부름은 릴에게 닿지 않았다. 문뜩 울고 싶어졌다.

방 안으로 햇살이 쏟아지고 있었다. 아침 햇살이라기에는 지나치게 높고 뜨거웠다. 영문은 모르겠지만, 왕실 신전에 끌려가 있던 사이 시간이 부쩍 흐른 것 같았다.

내 사정을 모를 릴은 내 몸뚱이를 조금 더 바짝 끌어당겼다. 어깨에 익숙한 숨결을 새겨 넣었다. 쪽, 쪽. 입 맞추는 소리가 외설스럽게도 울려 퍼졌다.

“어제 너무 무리했나?”

은밀하게 가라앉은 음성이었다. 무엇을 원하는지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아니, 그런 말 다른 사람 앞에서 하지 말라고!’

라고 해도 릴이 지금 상황에 대해 알 재간은 없었다. 애초에 릴에게는 나와 단둘이 있는 기분 좋고 은밀한 시간일 거 아니냐고!

‘몸아, 제발 말 좀 들어 주겠니? 응?’

다른 영혼 따위 단박에 쫓아내 버리란 말이야!

“음?”

속으로 필사의 발악을 하고 있을 때 걱정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디 아파? 몸이 굳었는데.”

그에 스르륵, 다소 부자연스럽게 구른 몸이 릴 쪽으로 돌아섰다. 비로소 눈과 눈이 마주쳤다. 나를 담은 릴은 마치 아침처럼 눈부시게 웃었다.

저절로 움직인 손이 그에게로 향했다. 손이 뺨에 닿았다. 내 온기를 느끼듯 릴이 천천히 눈을 감았다. 긴 속눈썹이 갈색으로 그을린 피부 위에 드리웠다.

‘…….’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아니, 물론 육신은 내 거지만 저런 앙큼한 행동을 하는 건 내가 아니란 말이다!

‘하지 말라고오오오!’

나는 필사적으로 비명을 질렀다. 다만 내 생각과 다르게, 번개처럼 움직인 손은 그의 목덜미를 틀어쥐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틀어쥐려고 했다.

“뭐야, 이건 또.”

나약하기 그지없는 내 육신에 비해 그는 강인했다. 릴은 날렵하게도, 자신의 목으로 맹렬하게 돌진하던 내 손목을 낚아채었다.

익숙지 않은 통증이 느껴졌다. 생경한 고통 속에서 육체가 발버둥 치는 게 느껴졌다.

그런 나를 바라보는 그의 인상이 사납게도 일그러졌다. 물빛 눈이 낮게 가라앉았다. 시리디시린 시선이 내 모습을 주르륵 훑었다.

“너 뭐냐?”

지금까지 내게는 한 번도 들려준 적이 없는 차가운 목소리였다. 그와 처음 마주한 날, 그 강도들에게 읊조릴 때와 비슷한 기세라고 하면 좋을까.

자신의 눈앞에 있는 사람을 얼마나 끔찍하게 생각하고 있는지, 온몸으로 느껴졌다. 무엇보다 릴은 그 강도들을 인간도 아닌 것이라고 한 적이 있었다.

억장이 무너져 내렸다. 지금부터, 앞으로는 내가 그 취급을 받을 것만 같아서. 그간의 달콤한 시간이 모두 허상처럼 사라질 것만 같아서.

“내 다람쥐인 줄 알았더니.”

다만 릴은 피식, 나지막한 비웃음을 머금으며 사납게도 읊조렸다.

“불사르고 싶은 물푸레나무 아냐, 이거.”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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