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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미친개라 곤란하다-41화 (4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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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나칠 만큼 뻔뻔한 남자는 당당하게도 지껄였다.

“변태라서 좋을 날이 올걸?”

…내가 듣기에는 마냥 기막힌 소리였다. 저게 무슨 오징어가 하품하는 소리야!

“그게 무슨 소리예요! 변태는 싫어!”

“왜 싫지?”

카림이 천연덕스럽게 되물었다. 이어서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듯, 그를 감싸고 있던 공기가 부드럽게 진동했다.

“아직 경험해보지 않은 일이잖아? 겪어보지도 않고 어떻게 좋다 싫다를 말할 수가 있어.”

“경험이고 뭐고, 굳이 경험 안 해 봐도 이 정도는 알아요! 세상에 변태를 좋다고 하는 사람이 어디 있다고!”

“글쎄. 네가 좋다고 하겠지?”

뻔뻔한 대꾸에 할 말을 상실한 나는 입을 떡 벌렸다.

아니, 분명히 싫다고 온몸으로 표현했잖아! 세상 모든 사람이 변태가 좋다고 해도 나만은 아닐 거라고 온몸으로 피력했잖아!

아, 베개가 있으면 좋으련만. 이 염치없는 남자를 사정없이 후려치게!

뭐라고 반박할 말을 찾지 못한 나는 입술만 부들부들 떨었다. 그런 내게 이 남자의 영문 모를 한마디가 툭, 무심하게도 이어졌다.

“있지, 남편에게는 아내를 즐겁게 해 줘야 할 의무가 있거든.”

입술을 비죽 내민 나는 자연스럽게 툴툴거렸다.

“……즐겁게 하기는 무슨. 맨날 괴롭히면서.”

“어라? 너도 즐기면서 딴소리는.”

“뭐, 뭐예요?”

순간 머릿속에 있는 무언가가 툭 소리를 내며 끊어졌다. 자연스레 언성이 한 옥타브 높아졌다.

“누가 괴롭힘당하는 걸 즐긴다고 그래요! 내, 내, 내가 당신 같은 변태인 줄 알아?”

반응을 하지 않아야 한다는 걸 머리로는 알지만서도. 이 남자의 태도에서는 도저히 나를 가만히 두지 않는 무언가가 있었다.

나쁜 놈이 소리 내어 웃음을 터뜨렸다.

“툭 치면 저 멀리 굴러갔다가 아득바득 기어 와서 한마디 얹는 걸 보면 그래.”

“씨잉……! 그런 게 즐겁게 해주는 거면 안 해줘도 되거든요?”

“즐겁게 안 해줄 거면 결혼을 왜 해? 혼자 살고 말지.”

카림은 결단코, 단 한 마디도 져주지 않았다. 아니, 지금 이런 귀엽고 깜찍한 아내한테 너무한 거 아니십니까?

그의 단단한 양팔 안에서 꿈지럭대던 나는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빈약한 반박을 남겼다.

“……우리 아직 결혼식 안 올렸어요.”

“그게 무슨 상관이야. 법적으로는 부부가 맞는데.”

“제 안에서는 억울하단 말이에요! 결혼식도 못 했는데 자고 일어나니 유부녀라는 게 지금 말이 되는 상황이냐고요!”

소녀의 아름다운 꿈과 환상을 이해 못 한 남자의 대꾸는 참으로 무심했다.

“결혼식에 뭐, 로망이라도 있었어?”

“당연하죠!”

동상이몽이라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게 아닐까. 이 점에서만큼은 진심으로 억울했던 내 눈시울이 핑 감돈 건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내가 꿈꾸던 건 누구나 다 하는 소박한 것들이었다. 나비처럼 살랑거리며 연회 자리를 날아다니다가 멋진 기사님을 만나고, 언니처럼 즐겁게 연애하다가 아름다운 오월의 신부가 되는 거!

적어도 말리카께서 카림의 생일 연회에 가 보라고 할 때까지만 해도 가능한 일일 줄로만 알았다. 와, 그게 고작 네 달 전이라니.

“그런데 이렇게 살다가 그냥 코 꿰일 거 같아서 얼마나 서러운지 알아요? 이혼도 안 돼, 평생 딱 한 번뿐일 결혼식도 물 건너가……. 난 도대체 할 수 있는 게 뭐예요?”

“흠…… 그래, 결혼식이라고.”

카림은 드물게 내 말을 진지하게도 곱씹었다. 곧 날 달래는 듯, 차분한 한마디가 이어졌다.

“그건 생각을 좀 해 보자.”

“그리고!”

한 가지 더, 나는 본전도 찾지 못할 말을 내뱉었다.

“죽이는 것도 즐거운 게 아니에요! 난 무병장수가 꿈이란 말이에요!”

“아닐 텐데.”

날 놀려먹을 건수를 잡은 이 남자는 당연하게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아마 날 내려다보고 있던 입꼬리가 사악하게 씨익 말려 올라갔을 것이다.

…이젠 보지 않아도 표정이 상상이 된다니. 이 남자에게 길들여져 가고 있는 것만 같다.

“경험해보면 다를걸?”

“죽음을 어떻게 경험해봐요. 유체 이탈이라도 하란 거예요?”

그 말이 그 말이 아닌 걸 알지만 양보할 수가 없었다. 내 필사적인 모른 척에 카림은 나른하게도 대꾸했다.

“글쎄, 어때.”

“뭐가 어때요예요?”

“이번 기회에 한번 경험해보는 건.”

느른한 목소리가 귓가에 얽혔다. 그 색스러움에 등줄기가 서늘한 이유는 왜 때문이었을까.

…정말 이대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와작와작 집어삼켜질 것만 같아서, 나는 필사적으로 카림의 품을 벗어났다. 거미줄같이 날 칭칭 얽은 손길을 겨우 벗어난 나는 아무것도 모른 척, 여전히 자리에 앉아 있는 그를 향해 마구 삿대질을 했다.

“서서서성희롱하지 말라고 했어요, 안 했어요?”

“어라.”

혹시나는 역시나, 얄미운 남자의 눈초리가 사악하게도 휘었다.

“늘 말하지만 그렇게 알아듣는 네가…….”

“나 바보 아니에요! 물론 무지한 건 맞지만…… 저, 적어도 당신 그 말이 어떤 함의인지는 알아듣는다고요!”

사실 언니가 말해주지 않았다면 지금도 못 알아들었을 것이다. 카림의 입술에서 피식, 하고 바람 빠지는 소리가 들렸다.

“아쉽네. 바보인 줄 알았는데.”

우, 우씨!

……이 남자에게 놀림받지 않으려면 반응을 하지 않아야 한다는 걸 머리로는 알았다. 그런데 도통 무시하고 너는 짖어라~ 로 일관할 수가 없는 이유는 왜일까.

카림의 말대로 괴롭힘당하는 걸 즐기는 것도 아니고. 으으으, 왜 대화를 하다 보면 카림에게 자꾸 휘말리게 되는 거지? 아니, 이걸 대화라고 할 수가 있는 건가?

양 뺨을 부풀린 나는 얄미운 남자를 노려보았다.

“……솔직히 말해요.”

나쁜 놈의 표현에 따르면 저 멀리 굴러갔다가 아득바득 기어 되돌아온 나는 두 주먹을 꾹 움켜쥐었다. 물론 연극의 주인공처럼 복수를 다짐하지는 못했지만.

“당신 나 놀려먹는 재미로 살지? 앙?”

“허.”

카림이 작은 헛웃음을 머금었다. 묘한 기시감이 느껴지는 어조였다.

“그걸 이제 알았나.”

…또다시 입을 떡 벌릴 발언이다. 그날처럼 정신머리가 반쯤 가출한 나는 입에서 나오는 대로 중얼거렸다.

“우리 만난 지 겨우 세 달 됐거든요? 나 만나기 전에는 대체 무슨 재미로 살았어요?”

“글쎄.”

그놈의 글쎄 타령은! 저게 교묘하게 답을 회피하려고 하는 입버릇이라는 걸 이제야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입버릇과 다르게 나를 훑어보는 카림의 시선은 제법 차분했다. 비에 젖은, 여전히 젖어가고 있던 그의 모습이 묘하게 어색하다고 생각했다.

어울리지 않게 낮게 가라앉은 눈빛. 비 때문인지 평소보다 파리해 보이는 양 뺨. 카림의 입술이 비틀렸다. 날 놀려먹을 때와 다른, 진중한 목소리가 들렸다.

“프리드린.”

“왜요!”

“네 덕에 이제야 살아 있는 것 같다면.”

나지막하게 들려오는, 날 놀려먹는 것이 아닌 소리에 순간 고개를 바짝 들어 올렸다. 시선과 시선이 맞부딪쳤다. 카림은 호수처럼 깊은 눈 안에 나를 오롯이 가두었다.

“네가 날 살아 숨 쉬게 하고, 네 덕에 세상을 살아간다는 감각이 이제야 뭔지 알 거 같다면.”

…정말 어울리지 않게도 진중하게 반짝이는 눈빛이, 내게는 한없이 생소하게만 다가왔다. 내 눈앞에 있는 남자가 내가 아는 사람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네가 느껴지지 않았던 과거가 이제 상상이 가지 않는다면. 네가 곁에 없는 나는 더 이상 오롯한 나로 존재할 수 없다는 걸 여실히도 느끼고 있다면. 넌 그렇게 날 나로서 살게 하는 유일무이한 존재라면.”

고백으로밖에 들리지 않는 말은 그렇게 이어졌다.

“넌 어떻게 할래?”

“…….”

내게 답을 구하는 말에 나는 망연자실하게 그를 바라만 보았다.

…지금 이 남자가 어울리지 않는 짓을 하지만. 내가 알던 사람 같지 않지만.

그렇기 때문에 회색빛 빗속에 홀로 앉아 있는 남자가 눈부시게 느껴졌다면, 이 순간의 내가 미친 걸까.

추적추적 비가 쏟아졌다. 먹구름으로 뒤덮인 사위는 평소보다 더 어두웠다. 그런데도 비 내음으로 물든 세상에서 오직 이 남자만이, 흡사 태양처럼 그 자리에서 밝게 빛나고 있었다.

사실 모르는 게 바보였다.

이 남자가 나를 대하는 태도. 눈빛. 말씨. 순간의 공기와 찰나의 진중함까지.

아무리 날 놀려먹는 데에 초점을 둔다고 하지만, 그것에 내가 순간적으로 발끈하긴 하지만 순간순간의 감정까지 느껴지지 않는 건 아니었다. 그가 느끼는 즐거움보다 더욱 크게 차지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밤이 지나면 태양이 떠오르는 것처럼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드는 생각 하나.

‘이 남자에게 넘어가면 안 된다, 안 된다, 안 된다, 된다, 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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