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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향기로운 구원자 (29)화 (29/84)

@29

창피함에 고개를 돌린 해나는 빠르게 핑곗거리를 찾았다.

“피, 핀 꽂은 게 웃겨서 그런 거거든요!”

그 말에 눈을 떠 거울을 본 인우가 어금니를 꽉 물고 실장을 보며 말했다.

“이런 흉물은 언제 꽂아 놨습니까.”

“이마 메이크업하느라요, 지금 빼 드릴게요.”

마침 메이크업을 끝낸 인우가 일어났다.

실장의 손이 핀으로 향하기도 전에 제 손으로 핀을 빼 버린 인우는 그 핀을 해나에게 건넸다.

“못 볼 꼴을 보였네요.”

배시시 웃으며 핀을 받아 든 해나가 실장에게 건넸다.

실장이 핀으로 해나의 앞머리를 고정시켰다.

“그렇게 해 놓으니 꼭 깻잎 한 장을 붙인 것 같네.”

“아까 인우 씨도 깻잎 한 장 붙였었거든요!”

유치한 두 사람의 말싸움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실장이 작게 웃었다.

해나가 메이크업을 하는 동안 헤어팀이 인우의 스타일링을 도왔다.

깔끔하게 넘긴 포마드 스타일에 턱시도까지 입혀 놓으니 꼭 모델 같은 모습에 스태프들이 환호를 보냈다.

메이크업과 헤어를 동시에 진행한 해나도 스타일링을 마치고 감은 눈을 떴다.

실장이 거울 속 해나의 모습을 바라보며 박수를 쳤다.

“민얼굴도 예뻤지만 지금 너무 예뻐요.”

“감사합니다. 실장님이 프로라서 그렇죠.”

칭찬에 부끄러운 해나는 실장에게 공을 돌렸다.

탈의실로 가 드레스로 환복하고 스튜디오로 나온 해나를 본 스태프들이 방금 전보다 더 크게 환호했다.

“여신 아니에요?!”

“너무 예뻐요, 신부님.”

올해 들을 칭찬을 오늘 다 듣는구나.

부끄러움에 몸 둘 바를 모르는 해나가 쭈뼛쭈뼛 인우의 곁으로 다가갔다.

“안녕하세요, 촬영 들어갈게요.”

촬영을 할 작가까지 스튜디오로 나왔다.

이로써 제일 큰 걱정거리였던 웨딩 촬영이 시작됐다.

“신부님, 조금만 더 붙어 주시고요. 신랑님 밝게 웃어 주세요.”

여기서 어떻게 더 붙으라는 거야.

도대체 여기서 어떻게 더 밝게 웃으라는 거야.

뚝딱이가 된 두 사람은 세상 어색하게 웃으며 카메라를 바라봤다.

“아이 참, 신랑 신부님! 누가 보면 오늘 처음 본 사이인 줄 알겠어요!”

보다 못한 작가가 두 사람의 앞으로 다가가 섰다.

해나의 팔을 잡아 인우의 팔짱에 끼운 작가가 두 사람의 바깥쪽 어깨를 잡고 둘을 바짝 붙였다.

처음으로 이렇게 가까이 서 보는 두 사람의 얼굴에 웃음기가 싹 가셨다.

돌아가 카메라를 잡은 작가가 이것저것 표정을 주문했다.

“자, 돈다발이 있는 겁니다.”

“귀여운 강아지가 있다고 생각하고.”

“통장에 백 억이 들어왔다!”

이것저것 재밌는 상황을 던지며 긴장을 푸는데도 도무지 자연스러운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한숨을 한번 내쉰 작가가 제 마지막 패를 꺼내 보였다.

“하…. 신부님, 신랑 이름 외치면서 ‘개새끼’ 해 보세요.”

“네…?”

“빨리요. 하나, 둘….”

갑작스러운 요구에 당황한 해나가 어쩔 줄 모르다 결국 눈을 질끈 감고 질렀다.

“주, 주인우 개새끼…!”

잔뜩 떨리는 목소리로 질러 버린 어색한 욕에 스튜디오 전체가 웃음바다가 되었다.

해나는 시원하게 욕을 해서 긴장이 풀리고, 인우는 그런 해나가 황당하면서도 귀여워 자연스레 웃음이 나왔다.

그 뒤로 순탄하게 촬영이 이어졌다.

작가가 요구하는 자세와 표정을 더 이상 뚝딱이지 않고 자연스럽게 해냈다.

“자, 두 분 마주 서 주시고 제일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서로를 바라봐 주세요.”

작가의 요구에 또다시 뚝딱대며 몸을 돌린 두 사람이 마주 섰다.

키가 큰 인우 탓에 해나는 인우를 올려다보고, 인우는 해나를 내려다봤다.

저를 바라보는 인우의 얼굴에 해나는 정말이지 딱 기절이라도 하고 싶었다.

원래도 잘생긴 건 알았지만, 이 모습으로 이렇게 가까이 서 있으니 심장이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그런 해나를 바라보는 인우도 미칠 것만 같았다.

울망울망한 눈망울로 자신을 올려다보는 해나가 너무 예뻐 당장이라도 입을 맞추고 싶었다.

“좋습니다, 좋아요! 오케이!”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는 건 쉬웠다.

따로 꾸며 내지 않아도 나오는 눈빛에 금방 베스트 샷을 뽑아 냈다.

한숨을 내쉬고 바로 고개를 돌리려는데, 청천벽력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신랑, 신부님! 뽀뽀 한번 해 주세요.”

맙소사, 뽀뽀라니.

두 사람이 제일 걱정하던 일이었다.

순간 해나가 계약을 깨러 인우를 찾아갔던 그날의 입맞춤이 떠올랐다.

그 일이 아직까지도 미안한 인우가 한 걸음 뒤로 물러섰을 때였다.

쪼옥.

비장하게 고개를 든 해나가 인우의 옷깃을 움켜쥐고 발꿈치를 들었다.

눈을 질끈 감은 해나가 인우의 입술에 제 입술을 살포시 부딪쳤다.

갑작스레 부딪쳐 온 해나의 입술에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뜬 인우는 눈을 감은 해나를 내려다보다 자신도 눈을 감았다.

맞댄 입술로 느껴지는 온기와 인우의 옷깃을 잡은 해나의 손의 떨림에 인우는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찰칵, 찰칵. 셔터 소리가 간신히 심장 소리를 덮었다.

숨조차 멈춘 채로 입을 맞대고 있던 두 사람이 작가의 외침에 입술을 떼어 냈다.

“나이스! 좋아요! 전부 다 베스트 컷으로 써도 손색이 없어요!”

떨어진 입술이 아쉬워 엄지손가락으로 제 아랫입술을 훑던 인우가 해나를 바라봤다.

부끄러움에 발끝만 보고 있는 해나가 미치도록 사랑스러웠다.

해나가 먼저 입술을 부딪쳐 올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었다.

저 종잡을 수 없는 여자는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 거야.

연신 제 입술을 만지던 인우는 아직도 느껴지는 여운에 작게 더운 숨을 뱉었다.

‘미쳤어.’

창피함인가? 아니면 부끄러움? 아니면… 설렘?

도무지 알 수 없는 감정에 발끝만 바라보고 있던 해나가 스스로를 자책했다.

어차피 해야 할 일이면 빨리 하고 빨리 끝내고 싶었다.

너도 한번 당해 봐라 하는 약간의 복수심도 있었다.

그리고 확인해 보고 싶었다.

그날의 입맞춤과 오늘의 입맞춤이 얼마나 다를지.

그날의 입맞춤은 한참 동안 입술을 벅벅 문지를 만큼 싫었는데, 오늘의 입맞춤은 달랐다.

말캉하고 부드럽고 따뜻하고….

“이 정도면 될 것 같네요! 수고하셨습니다!”

작가가 만족한 웃음으로 말했다.

“좋았어.”

“네?”

아뿔싸.

속으로 생각하던 말이 입 밖으로 나와 버렸다.

당황한 작가의 물음에 해나는 황급히 변명을 해 왔다.

“그, 오늘 촬영, 촬영이 좋았다고요. 수고하셨어요, 작가님!”

얼굴이 발갛게 달아오른 해나가 탈의실을 향해 뛰었다.

입을 뗀 순간부터 끈질기게 해나를 보고 있던 인우가 성큼성큼 해나를 뒤쫓았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고 탈의실 앞에 서 해나를 기다리던 인우를 못 보고 허둥지둥 나온 해나가 인우의 가슴팍에 부딪쳤다.

“괜찮습니까?”

“저, 저 먼저 가 볼게요! 오늘은 안 데려다주셔도 돼요!”

인우를 쳐다도 보지 못하고 대답한 해나는 인우가 잡기도 전에 빠르게 스튜디오를 나갔다.

전광석화 같은 해나의 동작에 얼이 빠진 인우가 허탈하게 닫힌 문을 바라봤다.

“자기가 먼저 해 놓고…. 이렇게 내뺀다 이거지?”

어깨를 한번 으쓱한 인우는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으며 여유롭게 탈의실로 들어갔다.

여유로운 인우와는 달리 혹시라도 인우가 따라올까 나오자마자 택시를 잡아탄 해나가 뒷좌석에서 중얼거렸다.

“갑자기 그 말이 왜 밖으로 나온 거야, 정말.”

좋았어, 라니. 좋았어, 라니!!!

다시 생각해도 얼굴이 벌게지는 해나가 시트에 등을 기대며 한탄했다.

“망했어…. 근데 어떡해, 진짜 좋았단 말이야….”

***

“좋은 아침.”

웨딩 촬영 후로 인우와 이렇다 할 연락이 없었다.

싱숭생숭한 마음을 억누르고 출근한 해나가 애써 기분 좋은 톤을으로 직원들에게 인사했다.

섣불리 평소처럼 인사하지 못하고 쭈뼛대는 직원들을 보며 한숨을 내쉰 해나가 물었다.

“왜 이래요, 다들?”

유독 해나를 잘 따라다니며 애교를 부리던 막내 아영이 조심스레 말했다.

“그…. 이제 한주 그룹 일원이 되시는데, 저희가 어떻게 불러야 할지도 모르겠고….”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다른 직원들을 본 해나가 손뼉을 한번 크게 치며 말했다.

“내가 누구랑 결혼을 하든! 누구의 며느리가 됐든! 그게 무슨 상관이에요? 회사에서 전 그냥 여러분들과 똑같은 직원입니다. 예전처럼 편하게 대해 주시면 되지, 뭘 그렇게 불편해해요!”

“그래도 그렇지, 이제 사모님이신데….”

“사모님은 무슨! 게다가 제 남편은 우리 회사에서 일하지도 않는걸요. 자꾸 그러면 청첩장 다시 회수해 갑니다! 소문에 그 결혼식장 코스 요리가 아주 훌륭하다던데….”

“그건 안 돼요, 팀장님!”

풀리지 않는 경직된 분위기에 해나가 장난스레 코스 요리를 들먹이며 협박하자 아영이 울상을 지으며 외쳤다.

그 모습에 직원들의 웃음이 터지고 분위기가 평소처럼 풀리기 시작했다.

“자, 이제 평소처럼 일합시다!”

해나의 말에 직원들이 하나둘 웃으며 자리에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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