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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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

끔찍하다. 모든 게 끔찍했다. 마치 수녀원에서나 먹을 법한 수프와 빵, 말라비틀어진 채소, 아름다움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옷. 시녀도 이런 옷은 입지 않을 것 같았다.

‘차라리 커튼을 뜯어 옷을 만드는 게 훨씬 낫겠네.’

거기에 연금된 상태이기에 밖으로 나갈 수 없다. 가끔 기분 전환 겸 밖을 내다봐도 보이는 거라곤 방치되어 엉망이 된 정원이 전부였다.

“어떻게,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가 있어!”

루카스를 제대로 키우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데, 고작해야 계집애 하나 죽이려 들었다고 낳아 준 어머니에게 이런 대접이라니.

케일라는 속이 뒤틀어짐을 느꼈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저택의 몇 되지 않는 사용인은 전부 감시인이라 케일라가 무얼 하든 그 이야기가 매튜에게 들어갔다. 그래도 아직 어린 기사라서 설득해 보려 한 적도 있지만, 먹히지 않았다.

돌아 버릴 것만 같았다. 그런데 그 상황에서 매튜가 통보하듯 말했다.

“그믐달의 밤을 아십니까?”

“내가 알면?”

“누구누구를 암살해 달라고 했는지 알려 주십시오. 그 전까지 식단은 좀 더 간소화될 것입니다.”

“뭐?”

“연금 기간도 늘어나겠죠.”

“지금 네가 누굴 협박하는지 알고 있는 거냐!”

케일라는 흥분해서 큰소리를 냈다.

“그리고 케일라 님의 충실한 시녀분도 다른 곳에 보내기로 했습니다.”

“말도 안 돼!”

“됩니다.”

“걔가 또 날 배신했다고?”

“그게 왜 배신입니까? 그녀는 주인이 뉘우치고 행복해지길 원하며 떠났습니다.”

하는 말 하나하나가 얄밉다. 케일라는 손에 잡히는 대로 물건을 집어 던졌다. 품위와는 거리가 먼 행동이었지만, 지금은 그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꺼져! 내 입에서 정보가 나오는 일은 없을 거다!”

케일라는 길길이 날뛰었다. 그렇게 해서 매튜를 방에서 쫓아낸 그녀였지만, 뒤가 좋게 끝나진 않았다.

충실한 시녀는 사라지고, 주변에는 감시인들만 가득 찼다. 거기에 먹는 것마저 제대로 된 게 아니다 보니 점점 지쳐 가기 시작했다.

귀족가의 딸로 태어나 지금까지 언제 이런 대접을 받아 보았을까. 결국 케일라는 꺾였다.

“암살 대상을 알려 주지. 대신 흰 빵과 스테이크를 줘.”

“매일은 어렵습니다.”

“그럼 주에 다섯 번.”

“두 번 드리겠습니다.”

매튜가 조금도 물러나지 않았기에 케일라는 이를 갈면서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아델과 레이나.”

“아델 님은 이유를 알겠지만, 레이나 님은 어째서입니까?”

“거기까진 말해 줄 수 없지.”

케일라의 눈이 음험하게 빛났다. 매튜는 그를 보고 참으로 징그럽다고 생각했다. 저런 사람이 프레데릭가의 가주 대리를 했었다니. 그게 얼마나 끔찍한 일이었는지를 깨달았다.

* * *

루카스는 새까만 옷을 입고 마스크를 코까지 올려 썼다. 그런 뒤에 장갑을 끼고, 대기하고 있던 키슈에게서 검을 받아 들었다.

“소식은 들어 왔나?”

“네, 대상은 아델 님과 레이나 님이라고 합니다.”

“그렇군.”

“레이나 님을 노린 이유는 아무래도 패트릭가와 관련된 것 같습니다. 로드린 백작가는 그분을 가문의 일원으로 들이려 했었는데, 서로 의견이 맞지 않았던 걸까요?”

“그럴 수도 있지. 어머니는 뭐든 깔끔하게 처리하는 걸 좋아하시는 분이라서.”

패트릭가의 멸문을 끝까지 지켜본 레이나를 탐탁지 않아 했을 것이다.

“그보다 그믐달의 밤 지부는?”

“본부를 알아냈습니다. 그런데 정말 혼자 들어가실 겁니까?”

“기사들은 외부를 막는 것만으로도 충분해. 오히려 안쪽에 사람이 많으면 방해된다.”

“알겠습니다. 그럼 그렇게 전해 두겠습니다.”

모든 준비를 마친 루카스는 밤같이 새카만 말 위에 올라탔다. 그리고 그와 비슷한 복장을 한 기사 몇이 그 뒤를 따랐다.

* * *

수도의 뒤편, 미로같이 얽힌 골목길에 위치한 작은 주점 하나. 바에 기대 술을 마시던 남자 하나가 얼굴을 찡그렸다.

“불안한데.”

“뭐가?”

“내가 감 좋은 건 알고 있지? 그런데 방금 가슴이 찌리릿 했단 말이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단 거다.”

“뭐라는지 모르겠군. 그냥 술이나 마셔. 안 그래도 최근 나가는 임무마다 실패해서 본부 분위기도 개판인데. 술이라도 마셔서 기분 전환을 해야지.”

맞은편에 있던 남자는 그리 말하며 술잔을 기울였다.

“불안하다, 불안해.”

“그 말은 좀 그만하고! 슬슬 짜증 나려고 하네.”

“아니, 하지만 말이야.”

처음에 말을 꺼낸 남자가 변명하듯 입을 열었지만, 말이 이어지진 않았다. 누군가 밖에서 문을 두드렸기 때문이었다.

본부를 술집으로 위장한 탓에 가끔 헤매다 들어오는 손님이 있기도 했다. 그럴 때면 들여서 술을 잔뜩 마시게 하고, 가진 걸 모두 털고 나서 죽여 버렸다. 이번도 그런 손님인 걸까?

두 번째 남자가 슬며시 몸을 일으켜 문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막 문을 열려는 순간, 배에 따끔한 통증이 느껴졌다.

“어?”

아래를 내려다보니 문을 통과한 검 하나가 그의 배를 찌르고 있었다.

“어? 어?”

두 번째 남자는 소리만 내다가 뒤로 쓰러졌다. 이어 커다란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그 사이로 모습을 드러낸 이는 밤과 똑같이 새까만 사람 하나였다.

“그믐달의 밤.”

그 말에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던 사람들이 쓱 몸을 일으켰다. 방금까지 취해 있었다고는 믿지 못할 정도로 멀쩡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손에 무기를 들고 있었는데, 그 상태로 침입자에게 달려들었다.

하나가 목을 찔러 들어가면 다른 하나가 다리를 노렸다. 미리 훈련하기라도 한 듯 합이 잘 맞는 공격이었으나, 제대로 들어간 건 하나도 없었다.

밤과 같은 남자는 모든 걸 막아내고 그들의 목을 베어 냈다. 그래도 살 속에 뼈가 있을진대 부드러운 흰 빵을 썰듯 쉽게 썰어 냈다.

첫 번째 남자는 그 모습을 잠시 지켜보다가 카운터 뒤로 몸을 날렸다. 혼자라도 도망칠 셈이었지만, 밤은 그가 도망치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다.

“그윽.”

다리를 베여 쓰러진 남자는 고통에 신음하며 앞으로 기어 나갔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등을 짓누르는 묵직한 무게에 멈춰 서고 말았다.

“남은 인원수.”

어차피 죽을 건데 그걸 말해 줄까 보냐. 남자는 입을 꽉 다물었으나, 이어지는 행동에 기겁할 수밖에 없었다. 검날이 손가락으로 향하고 있었다.

“편하게 죽고 싶으면 말해.”

망설임은 잠시였다.

“안에 열두 명쯤 더 있습니다.”

“지부는?”

“몇 군데 더 있긴 하지만, 그쪽에는 실력자가 거의 없습니다.”

“말해.”

남자는 떨리는 목소리로 지부의 이름을 댔다. 그 모든 게 끝나고 나서야 남자는 평온을 얻었다.

“키슈.”

“네, 루카스 님.”

어느새 뒤따라 들어와 정리를 하고 있던 키슈가 답했다.

“방금 지부명을 들었지? 가까운 곳부터 차례로 돈다.”

“먼 곳은 따로 사람을 보낼까요?”

“그렇게 하도록 하지.”

“알겠습니다. 빠르게 처리하겠습니다.”

그렇게 루카스는 키슈, 기사들과 함께 몇 군데의 지부에 더 들렀다. 그리고 들르는 곳마다 내부의 사람을 전부 처리했다.

그렇게 쉴 틈 없이 달려 지부를 전부 처리하고 나니 며칠이 지났다.

처리하는 과정에서 다른 지부의 존재도 알아냈지만, 먼 곳은 키슈의 제안대로 다른 기사들을 보냈다. 하나같이 신뢰할 수 있는 실력을 지닌 자들이었다.

그렇게 그믐달의 밤은 며칠 만에 맥이 끊겼다.

“애초에 루카스 님이 계신데 다시 일으켜 세운 게 어리석은 일이었지요.”

키슈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러자 피를 전부 씻어 내고 나온 루카스가 머리를 털며 말했다.

“아델은?”

“무사하십니다. 도미니크가의 기사단도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지 않습니까? 습격당하는 와중에 거기 신경 쓸 틈은 없었겠지요.”

“그럼 다른 쪽은?”

“레이나 양도 잘 지내고 계십니다. 최근엔 서기관과 함께 그동안 있었던 일을 순서대로 정리하고 계십니다. 아무래도 어렸던 레온 님보다는 아시는 게 더 많으니까요.”

“그래.”

모든 일이 수월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암살 단체는 처리했고, 브뤼노 백작가와 프랑크 후작가의 뒤는 열심히 캐내고 있다. 그쪽에서도 나름 감춘다고 감춘 모양이었지만, 세상에 영원한 비밀은 없다.

‘이번 일만 끝나면.’

제대로 일이 마무리되기만 하면, 아델에게 청혼할 예정이었다. 그렇기에 마음이 조급해졌다. 그사이에 아델이 다른 이에게 시선을 보내진 않을까, 초조해졌다.

“보러 가고 싶군.”

“네?”

“아무것도 아니다.”

루카스는 키슈를 내보내고 의자에 몸을 기댔다.

‘가장 가까운 귀족 회의가 언제더라.’

귀족 회의는 보통 한 달에 한 번, 월초에 열린다. 이제 막 월초가 지났으니 다음 귀족 회의는 좀 더 기다려야 했다.

‘그 전까지 최대한 증거를 끌어모은다.’

루카스는 그렇게 생각했다.

* * *

그로부터 며칠 뒤, 프랑크 후작가에 남자 셋이 모였다.

“곤란하군, 곤란해.”

창백한 얼굴에 어깨까지 오는 밀빛 곱슬머리를 가진 남자가 중얼거렸다. 그는 프랑크 후작가의 가주였다.

“그러게 진작 처리하자니까, 욕심에 눈이 멀어서는.”

알리가 투덜거리자 그 말을 듣고 있던 브뤼노 백작이 그의 편을 들었다.

“그러게 말입니다. 괜히 레이나를 살려 두니까 일이 이 지경이 된 것 아닙니까!”

둘이 그렇게 나오니 로드린 백작으로서는 입이 백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죄송합니다.”

“죄송하다고 해서 일이 해결됩니까?”

“맞습니다!”

“얼마 전의 소식은 들으신 거겠지요?”

“암살 단체가 사라진 이야기 말이군요.”

그는 로드린 백작도 아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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