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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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

“그렇습니다. 이미 자자하게 소문이 퍼진 마당에 당연히 알고 계시겠지만, 루카스 경이 드디어 검을 뽑았습니다. 덕분에 암살 단체는 산산이 부서졌죠. 일부는 도망쳤다고 들었지만 그게 답니다.”

“허무하게 도망친 암살자 나부랭이가 무엇을 더 할 수 있겠습니까?”

“차라리 케일라 님이 가만 계셨으면 나았을 뻔했군요. 괜히 섣불리 움직여 잠자는 맹수의 코털을 건드린 격 아닙니까?”

프랑크 후작과 브뤼노 백작은 대화하는 데 합이 무척 잘 맞았다. 평소라면 문제없었을 일이나, 지금은 달랐다. 안 그래도 추궁당하는 중인데 그 강도가 점점 세져 간다.

“이제 다음에 일어날 일은 추측 가능하겠지요?”

“보나 마나 뻔하지 않습니까?”

브뤼노 백작이 말했다.

“프레데릭가에서 케일라 님의 과거 흔적을 쥐 잡듯이 뒤지겠죠. 그리고 그걸 뒤지다 보면 저희가 연관되어 있다는 이야기가 나올 겁니다.”

“그, 그럼 어떻게 합니까?”

로드린 백작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방법은 하나입니다.”

프랑크 후작이 거만하게 말했다.

“선수 치는 것이죠.”

“무엇을 선수 친단 말입니까?”

“아직 루카스 경은 우리의 뒤에 누가 있는지 모를 겁니다.”

“당연히 그래야지요. 그분에게까지 폐를 끼친다면 큰일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러니 그 전에 우리 선에서 그를 막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건 별로 내키지 않은 일이지만, 타협하도록 하죠.”

“네?”

로드린 백작은 이야기를 따라가기 힘들었다.

“일부 재물을 돌려주고, 패트릭가를 다시 세우도록 도와줍시다. 아무리 그라도 세 개의 가문과 싸우긴 싫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어디 저 나약한 암살 단체와 같습니까?”

프랑크 후작의 말에 브뤼노가 자신의 수염을 꼬면서 말했다.

“그럼요, 그럼요. 제 기사단만 해도 참으로 훌륭하지요. 게다가 여차하면 용병을 고용하면 됩니다.”

패트릭가가 무너질 때 삼킨 것이 많아 예전과는 달리 무척이나 부유해졌다. 그걸 이용하면 어디라도 이길 수 있을 것 같았다.

“루카스 경도 잘 이야기하면 현실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우리 이야기를 듣는 게 낫다고 여기겠지요.”

“그렇습니까?”

“그렇습니다.”

그건 아닐 것 같은데. 로드린 백작은 재판정에서의 루카스를 떠올렸다. 그때 당시 그는 살벌하기 짝이 없는 표정으로 분노를 내뿜고 있었다. 레이나가 당한 부당한 일에 화가 난 것 같았다.

‘그런 사람이 쉽게 타협할까?’

로드린 백작의 답은 아니요, 였다.

“자, 그러면 로드린 백작. 타협하려면 그에 해당하는 선물이 필요하겠지요?”

“맞습니다. 될 수 있으면 큰 선물이 좋겠군요.”

프랑크 후작은 그렇다 치고 브뤼노 백작마저 저렇게 나오자 속이 끓었다. 하지만 그동안 그가 패트릭가의 남은 걸 전부 갖기 위해 레이나를 살려 뒀던 건 잘못이 맞았다.

‘설마 루카스 경이 다시 돌아올 줄 누가 알았냔 말이다!’

그것도 레이나의 동생을 제자로 삼고서 말이다. 로드린 백작은 떠밀리듯 선물을 준비했다. 예전에 패트릭가를 무너트리면서 가로챈 다이아몬드 광산이었다.

‘거긴 아직도 수익이 제법 좋은 곳인데.’

그걸 다른 사람의 손에 넘길 생각을 하니 속상했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럼 선물은 제가 준비한다 치고, 누가 루카스 경을 만나면 될까요?”

“그건 제가 가겠습니다.”

브뤼노 백작이 답했다.

“프랑크 후작님까지 움직일 필요가 있겠습니까?”

자신만만하게 말하는 모습이 제법 믿음직스러워 보인다. 상재에 밝은 프랑크 후작이나, 음모에만 그나마 머리가 돌아가는 로드린 백작과는 다르게 브뤼노 백작은 제대로 된 기사였다.

단단한 근육질의 몸에 덩치도 무척 크다. 아무리 상대가 소드마스터라고 해도 쉽게 밀릴 사람이 아니었다.

“좋은 생각입니다!”

그렇기에 프랑크 후작과 로드린 백작은 그를 기꺼워하였다.

“두고 보십시오! 애송이를 설득하는 건 어렵지 않을 겁니다!”

브뤼노 백작, 그러니까 가트 경은 자신만만하게 프레데릭가로 향했다. 하지만 입구를 지나 안으로 들어가는 것도 쉽지 않았다.

“예고 없는 방문은 받지 않습니다.”

얄밉기 짝이 없는 집사가 그리 말했다. 하지만 브뤼노도 예의는 알기에 다시 방문 요청을 넣었다. 그리고 다시 쳐들어가야 하나, 생각할 때쯤 답신이 도착했다.

* * *

“브뤼노 백작.”

루카스는 백작이 보낸 편지를 보고는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그쪽도 어지간히 몸이 달아오르는 모양이었다. 하긴 그동안 편하게 지내다 인제 와서 들춰 내는 이를 만났으니 그럴 만도 했다.

이어 그는 단정한 글씨가 쓰여진 쪽지를 바라보았다. 정체가 들켰음을 깨닫자 아델은 편하게 편지를 보내오기 시작했다. 그 때문에 둘이서 연애편지를 주고받는 게 아니냐는 오해를 받고 있긴 했지만, 외려 좋았다.

실제로 처음에는 정보만 쓰여 있었지만, 갈수록 그 외의 내용이 늘어 가기 시작했다.

오늘은 무엇을 먹었는지부터, 론슈카가 어떤지, 뭘 하고 싶은지에 대한 내용이 적혀 있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 루카스의 답장도 길어지기 시작했다.

아델의 편지에 비하면 브뤼노가 보낸 건 예의도 뭣도 없는 쓰레기에 불과했다. 그래도 한 번쯤은 만나 봐야 하기에 요청을 허락했다.

“손님이 도착했습니다.”

키슈가 점잖은 말투로 도착 소식을 알려 왔다.

“브뤼노는 로드린보다 인내심이 짧아요.”

아델이 그랬었다. 외모로 차별하면 안 되지만, 생긴 것만 봐도 그럴 것 같았다. 피부도 다른 사람들에 비해 붉은 기가 돌고, 근육질의 몸은 쓸데없이 커서 멧돼지를 연상시켰다.

적당히 기다리게 하고 만나러 갔더니,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루카스 경.”

“오랜만입니다, 가트 경.”

루카스는 느긋하게 맞은편에 앉았다. 가트는 뭔가 더 말하고 싶은 모양이었지만, 그에 대해서는 섣불리 입을 열지 않았다. 대신 신변잡기를 늘어놓았다. 못마땅한 자의 수다는 듣기 괴로울 지경이었다.

“그래서 파올레 부인이 말하길.”

“그냥 용건부터 말씀하시지요. 여긴 살롱이 아니지 않습니까?”

“흠, 그야 그렇지.”

그제야 가트는 본격적인 용건을 꺼냈다.

“이번에 로드린 백작과의 일 말입니다. 백작은 나쁜 뜻은 없었을 겁니다. 그저 레이나 양을 보호하려 했을 뿐이지요.”

“그렇습니까?”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레이나 양이 싫어하는 짓을 한 건 잘못이라 생각합니다. 지금 로드린 백작도 반성하고 있습니다.”

되는 소리를 해라. 루카스는 어처구니가 없어 저도 모르게 픽 웃음을 흘렸다.

“게다가 사실 저희 정도가 되는 귀족가끼리 서로 사이가 나쁘면 손해지 않습니까? 이번 일은 이쯤에서 묻고.”

루카스는 가트의 말을 중간에서 끊었다.

“왜 묻어야 합니까?”

“그럼 공표라도 하실 생각이십니까? 후회하실 텐데요.”

“셋의 뒤에는 황제가 있어요.”

가트의 자신만만함은 제국에서 가장 높은 자를 뒤에 두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적당히 마무리 지읍시다. 그 대가로 제가 좋은 것을 가지고 왔습니다. 패트릭가가 다시 일어나는 데 큰 도움이 될 만한 매물입니다.”

가트는 품 안에서 서류 몇 장을 꺼냈다. 그건 다른 지역에 있는 다이아몬드 광산의 권리서였다.

“괜찮지 않습니까?”

괜찮다고? 이 다이아몬드 광산은 원래 패트릭가의 것이었다. 뺏어 갔던 것 중 하나를 돌려주면서 이리 큰소리를 치다니. 어지간히 뻔뻔한 인간이구나, 싶었다.

“원하신다면 재물을 좀 더 얹어 드릴 수도 있습니다.”

“아니요, 됐습니다.”

“아, 그럼 광산만 받으시는 겁니까?”

“광산도 됐습니다.”

“네?”

“어차피 언젠가 전부 되돌려 받아야 할 패트릭가의 자산입니다. 그러니 나중에 직접 받으러 가겠습니다.”

“이거 참.”

가트가 손으로 목뒤를 쓸었다.

“답답한 분이시군요. 벌써 시간이 오래 지났습니다. 다시 저희와 싸운다고 해서 뭐가 달라지겠습니까?”

“적어도 패트릭가의 사람들은 마음이 편해지겠지요.”

“고작해야 제자한테 너무 신경을 많이 쓰시는군요.”

“저에겐 소중한 제자입니다.”

“좋습니다. 그럼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도록 하지요. 혹시라도 나중에 마음이 변하면 저를 찾아 주십시오.”

“그럴 일 없습니다.”

루카스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후회하실 겁니다.”

“후회는 그쪽이 하게 되겠지요.”

그렇게 둘의 대화는 마무리 지어졌다.

* * *

레이나와 레온은 한 저택 앞에 서 있었다. 멀쩡한 주변의 저택과는 달리, 혼자서 불에 타고 망가진 저택은 이질적이었다.

“돌아왔네.”

그를 바라보며 멍하니 중얼거리는 레온의 말에 레이나가 대답했다.

“그래, 돌아왔어.”

오랜만에 보는 저택은 깊은 곳에 잠자고 있던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분노, 슬픔, 증오. 부정적인 감정 밑에 가라앉아 있던 추억.

이곳에서 어머니는 아버지를 만나 결혼했고, 레이나와 레온을 낳았다. 둘의 어린 시절은 이곳에 묻혀 있었다.

“괜찮으십니까?”

옆에 서 있던 기사가 그런 둘을 보더니 걱정스럽게 물어 왔다.

“괜찮아요.”

레이나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안에 들어가 봐도 될까요?”

“현재 주인이 없으니 상관없을 듯합니다. 하지만 내부가 엉망이니 조심하십시오.”

“네.”

레이나와 레온은 기사 몇과 함께 정원을 지나 안으로 들어갔다.

“기억이 나네. 레온 너는 장난꾸러기였지. 그래서 계단 난간을 타고 내려와 보겠노라고 해서 다들 기겁했어.”

“어렸으니까.”

“그래, 많이 어렸지.”

레이나는 엉망이 된 홀 중앙에 서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항상 돌아오고 싶었어.’

끔찍한 기억이 있던 곳이지만, 그만큼 행복한 기억도 함께했다. 그렇기에 이곳으로 다시 돌아오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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