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알파만 다니는 특수 학교에 다닌 나와 다르게 수혁인 일반 학교에 다녔다.
여전히 페로몬을 폴폴 흘리고 다니는 수혁이가 아무리 오메가와 베타만 있는 학교더라도 괜찮을지 신경이 곤두섰지만 내색할 수는 없었다.
다행히도 수혁인 학교가 끝나면 늘 집에 와서 내 과외가 끝나길 기다리는 순종적인 동생이었다.
내가 스물, 수혁이가 열아홉일 때 일이었다.
대학에 입학 후 정신없이 보내다가 오랜만에 별채에 갔을 때 날 기다리던 건 수혁이가 아니라 엄마였다.
제일 먼저 느낀 감정은 짜증이었다.
‘일주일 동안은 여기 오면 안 돼.’
이어서 엄마의 입에서 나온 말에 든 생각은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릴 하는 거야? 였지만 그래봤자 좋을 게 없다는 생각에 공손한 척 물었다.
‘…왜요?’
‘수혁이가 아파.’
모습을 보이지 않는 수혁이 걱정됐다.
얼마나 많이 아프기에 오면 안 된다고 하는 걸까.
그제야 수혁이가 날 기다리지 않은 게 처음이라는 걸 깨달았다.
수혁인 비가 오는 날에도 우산을 쓰고 정원에서 날 기다렸다. 그래서 정원에서 기다리지 말고 별채에 있으면 내가 오겠다고 약속 아닌 약속까지 했었다.
‘그래도 얼굴이라도 보면 안 돼요? 나 오랜만에 온 건데.’
‘안 돼.’
걱정되면서도 엄마의 표정이 너무 심각해서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일주일이 칠 년 같이 느껴져서 참지 못하고 오 일째 되던 날, 미리 훔쳐 놓은 별채 열쇠로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수혁이 방에는 이전에도 몇 번 놀러 갔기 때문에 위치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복숭아 통조림이랑 아이스크림, 수혁이가 보고 싶다고 했던 책을 바리바리 싸들고 방문을 열었을 때는 방안 전체 달콤한 냄새가 풍겼다.
수혁인 침대에 누워서 곤히 잠들어 있었는데 안색이 좋은 편은 아니었다. 그땐 이미 수혁이 키가 나보다 반 뼘 정도 커져 있었기 때문에 내려다보는 건 오랜만이었다.
손바닥으로 뺨을 쓸어보자 수혁이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고 이내 선명한 검은 눈동자가 드러났다.
‘형….’
꿈이라도 꾸는 것 같은 몽롱한 목소리였다.
‘많이 아파?’
‘아냐, 이제 괜찮아.’
수혁이가 몸을 일으키며 배시시 웃었다. 건드리면 망가질 것 같은 웃음이어서 뺨에 대고 있던 손을 얼른 치웠다.
‘어디가 아팠던 거야?’
‘발정기래.’
담담하게 쏟아낸 말에 심장이 튀어 오를 것처럼 뛰었다.
성교육뿐만 아니라 가정교사한테도 수 없이 들었다.
알파는 발정기의 오메가 곁에 있으면 위험하다.
오메가가 뿜어내는 페로몬에 저항하지 못하고 교접을 시도할 수 있다. 그리고 그건 강씨 집안에서는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나 역시 그게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막연하게, 언젠가는 알파 여자와 결혼하게 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몸이 굳었다.
‘지금은, 괜찮―’
수혁이의 말을 더 듣지 못하고 챙겨 왔던 것을 내팽개치고는 도망치듯이 방을 뛰쳐나왔다.
그때 처음으로 수혁이의 페로몬을 제대로 인식했다.
수혁이한테 풍기는 그 달달한 냄새의 정체는 진짜 페로몬이었다. 알파인 나를 유혹하기 위해 오메가가 뿌리는 페로몬.
그렇게 생각하자 견딜 수가 없었다. 냄새가 나를 쫓아오는 것 같았다. 오메가의 페로몬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발기할 것 같아서, 그게 동생이건 아니건 상관없어질 것 같아서 두려웠다.
그 뒤로 한 달 동안 별채에 가지 않았다.
별채에 갇혀 있는 것이나 다름없는 수혁이는 내가 가지 않으면 만날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렇게 도망쳤으니 수혁이가 상처받았을 것이다.
만나서 사과를 해야 하는데, 선뜻 용기가 나지 않았다.
며칠을 더 고민하고 망설이다 계속 이러고 있을 수는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힘겹게 발을 움직였다.
다행히도 다시 만나러 갔을 때 수혁이는 아무렇지도 않게 웃었다.
‘이제 안 오는 줄 알았어, 형.’
‘…아냐, 좀 바빴어.’
‘그래, 다행이다.’
내가 이 착한 애한테 무슨 짓을 한 건가 싶은 기분이 들어 가벼운 죄책감을 느꼈다.
‘뭐 하고 있었어?’
수혁이 책상에는 도면처럼 생긴 것들이 많이 늘어져 있었다.
‘건축 공부, 대학은 그쪽으로 입학할까 싶어서.’
‘…대학?’
오메가가 대학을 가도 괜찮은 건가? 중고등학교는 알파와 마주 칠이 없었으니 괜찮았을지 몰라도 대학은 아닐 거 같은데, 수혁인 페로몬 조절도 잘 못 하는데 입학이 되긴 할까? 지금도 향수를 뿌린 것처럼 이렇게 냄새가 나는데.
향수 뿌린 거라고 거짓말하면 못할 것도 없나? 아니, 그러다 냄새 맡고 알파가 발정이라도 하면―.
‘어, 형은 경영학이지? 역시 회사를 물려받으려나.’
머릿속에 망상이 뻗어나가려는 순간 수혁이가 물었다.
‘어, 아마도 그렇겠지.’
‘결혼도 하고?’
‘어, 그거야, 뭐―’
분명 당연하게 여기고 있었을 일이었는데 어쩐지 선뜻 대답이 안 나왔다.
눈알을 크게 굴려 책상 위에 있는 도면을 봤다.
이층집 도면이었는데 1층에는 방이 없이 거실, 욕실, 주방이 널찍하게 차지하고 있었고, 2층에는 침실과 드레스룸, 서재가 있는 구조였다. 창문이 많아서 어디에 있어도 햇살이 들어올 것 같은 집이었다.
심플했지만 건축을 모르는 내가 보기에도 실용적으로 느껴졌다. 크기만 한 이 집보다는 훨씬 나았다.
‘형.’
‘응?’
다시 시선을 돌리자 수혁이가 팔을 뻗어 내 뺨을 부드럽게 감싸 쥐었다.
‘나는 형만 있으면 돼.’
‘어?’
수혁이가 날 좋아한다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형제 사이에 이런 말을 하는 건 좀 이상한 게 아닐까 싶어 멍청한 소리를 내고 말았다.
‘엄마가 그랬어, 형이 희생해서 내가 여기 있는 거라고.’
‘그런, 말이 어디 있어.’
조금도 이해가 되지 않는 말이었다.
‘그러니까 형.’
‘…응.’
‘나 싫어하면 안 돼.’
훌쩍 자란 수혁이 진지하게 하는 말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제대로 이해도 못 했으면서.
‘나는 너 안 싫어해.’
아무 생각 없이 말을 뱉었다.
‘미워해도 안 돼.’
‘네가 무슨 짓을 해도 안 미워해.’
그 순간 수혁인 세상 누구보다 예쁘게 웃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