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화 (66/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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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우려와 다르게 수혁인 정말 대학에 입학했다.

시간은 고요하게 흘렀고 내가 대학 졸업을 앞뒀을 때 엄마의 건강이 급격하게 안 좋아졌다.

집안 주치의는 다수의 자살 시도, 약물 과다복용으로 이미 몸이 많이 망가진 상태였는데 지금까지 버틴 것이 대단하다고 했다.

엄마는 자신이 낳은 오메가, 수혁이를 어떻게든 지키려고 했던 거 아닐까.

얼마 지나지 않아서 우리 집은 엄마의 장례식을 치렀다.

간소했고, 조촐했다. 만약 엄마가 수혁이를 알파로 낳았다면 훨씬 더 많은 사람이 왔을 장례식이었다.

큰할아버지는 표정의 변화가 없었고, 작은할아버지는 딸의 죽음을 조용히 슬퍼했다. 그리고 엄마 장례식 바로 다음 날, 아빠가 두 사람을 데려왔다.

처음 보는 화려한 여자, 그 화려한 여자와 아빠를 반반 섞어 놓은 외모의 소년이었다.

언뜻 보면 할아버지와도 많이 닮은 아이였는데, 수혁이를 봤을 때 알았던 것처럼 첫눈에 알 수 있었다.

그 애는 내 두 번째 동생이자 아빠가 나한테 신경을 쓰지 않았던 이유였다.

아빠는 여자를 새엄마라고 소개했다. 화려한 여자는 여성 알파 특유의 분위기가 물씬 풍겼는데 아빠는 물론이고 나한테도 별 관심을 안 보였다.

새엄마의 관심은 저가 데리고 온 아들, 강유혁한테만 쏠려 있었다.

강유혁은 스무 살의 우성 알파였다. 그토록 원하던 우성 알파가 집에 들어왔으니 기대주가 되는 건 순식간이었다.

강유혁과 나의 나이 차이는 고작 네 살, 다시 말해 우성 알파 자식을 낳아야 하는 것에 미쳐 있던 아빠는 이십 년 넘게 딴 집 살림을 하고 있었다는 말이다.

마음 같아서는 새엄마를 진작부터 데려오고 싶었을 것인데, 아마도 작은할아버지 눈치가 보여 차마 그렇게 할 수는 없었던 것이 분명했다.

고용인들 말로는 새엄마가 할머니 언니의 딸이라고도 했고, 고모할머니의 조카라고도 했다. 어느 쪽인지 모르지만 결국 강씨 집안 여자라는 말이었다.

어쩌면 아빠는 또 다른 사촌에게도 손을 댔을지도 모른다. 우성 알파를 얻기 위해서라면 뭘 못하겠나. 경험으로 안다. 원래 한 번이 어렵지, 두 번, 세 번은 일도 아니다.

그토록 바라던 우성 알파를 집에 들인 아빠의 관심이 강유혁한테 쏠리면서 난 진짜 낙동강 오리알이 됐다.

이대로 있으면 원래 내가 누렸어야 했던 것들을 다 뺏기게 생겼다 싶어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졸업하자마자 아빠의 회사인 세연전자에 취업했고, 영업부에서 성과를 내기 위해 열을 올렸다.

수혁이랑도 주말에만 봤다. 그마저도 회사 일이 바쁘면 만나러 가지 않았다.

그날은 금요일이었다.

급한 일이 없어 별채에 수혁이를 만나러 나가던 날.

‘강지혁.’

진작 잠 들었을 줄 알았던 아빠가 응접실 소파에 앉아서 날 불렀다.

아빠는 이미 50대를 훌쩍 넘었음에도 꾸준히 관리해서 건장한 체격을 갖고 있었고, 올백으로 넘긴 시원한 이마와 예리하게 빗어 놓은 콧날, 새까만 눈동자, 무엇보다 묵직하게 풍겨 나오는 페로몬에서 쉽게 거스를 수 없는 위압감을 풍기는 남자였다.

‘네.’

‘와서, 이거 봐.’

아빠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낮은 테이블 위에는 여자의 사진과 이력서 같은 종이가 같이 놓여 있었다.

심장이 철렁했다.

‘제가 몇 살인데 벌써 이런 걸, 해요.’

아무리 그래도 맞선은 너무 이르다. 아빠도 손주를 보기에는 젊은 나이 아닌가.

‘한 번에 된다는 보장이 없으니까.’

‘…네?’

‘유혁이가.’

내 이름은 매번 ‘강지혁’ 이라고 불렀으면서 우성 알파는 저렇게 다정하게 불러주는 건가?

멍청한 생각을 하는데 아빠가 계속 말을 이었다.

‘정자가 약하다고 하는구나.’

잘 만든 기계에서 결함이 발견된 것을 말하는 것처럼 느긋한 목소리였다.

다 좋은데 이게 아쉽네, 그래도 어쩔 수 없지. 같은.

도대체 우성 알파를 얼마나 계속 더 낳아서 이 이상한 핏줄을 이어나가려는 건지 나로서는 감도 안 왔다.

나도 나이를 먹으면 내 뒤를 이을 우성 알파를 원하게 되는 걸까?

‘네 정자는 우수 판정을 받았으니까 괜찮겠지.’

소름이 쫙 끼쳤다.

알파 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정자 검사는 신체검사를 받을 때 해마다 받았었다.

그 검사라는 게 얼마나 원초적이냐 하면 같은 양의 정액에 얼마나 많은 정자수가 있느냐를 확인하는 것이었다.

소변 검사를 하는 것처럼 정액을 제출해야 하는 그 검사가 너무 싫어서, 정액 양이 많다고 자랑하는 멍청한 동급생의 정액을 내곤 했었다.

그런데 아빠가 그 검사결과를 봤을 줄이야.

나한테 별 관심이 없어서 괜찮을 줄 알았는데, 번식에 대해서는 확실히 남달랐다.

멍청한 짓을 했다는 후회가 밀려왔지만 정자마저 강유혁보다 건강하지 않았으면 쫓겨났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차라리 쫓겨나는 게 나은 걸까. 저 여자는 누구의 딸일까.

사진 속 여자가 얼굴도 제대로 모르는 사촌일 가능성을 생각하자 등줄기에 소름이 쫙쫙 끼쳤다.

‘아무리 그래도―’

‘일화전기 딸이야.’

아직 이르다는 핑계를 대려는 내 말을 아빠가 막았다.

그나마 천만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사진 속 여자는 친척이 아니었다.

‘사업 번창에도 도움이 될 거다.’

두 마리의 토끼를 노리는 목소리는 무덤덤한데 섬뜩하게만 느껴졌다.

우성 알파 손주도 얻고 사업 확장도 노린다.

거래 수단은 저가 낳은 아니, 자신이 만든 알파 아들.

원래도 이해할 수 없는 사고방식이었지만 정말 이해할 수도, 믿을 수도 없었다.

‘여태 노력했잖아, 유혁이한테 다 뺏길 거냐?’

협박 같은 회유의 말이 새어 나왔다.

‘네가 우성 알파를 낳으면 네 자리는 보존하게 될 거야. 너도 네 아들에게 물려줘야지.’

들려온 끝말에 구역질이 나올 것 같아 꾹 참았다.

정작 자신이 낳은 아들은 이미 몇 십 년이나 별채에 처박아 뒀으면서 저런 말을 잘도 했다.

‘…날짜, 잡으면 말해 주세요.’

숨 막힐 것 같은 위압감에서 도망칠 방법은 대답뿐이었다. 그것도 긍정의 대답.

아빠에게서 도망치듯 빠져나와 속으로 욕을 뱉었다.

알파여도 우성이 아니면 소용없다.

나는 아마 평생 아빠를 이길 수 없을 것이다. 복수 같은 알량한 생각은 할 수도 없다. 나는 이미 이 집의 부속물이니까. 그냥 이렇게 밑천으로 사용되다 버려지겠지.

도망친다거나 벗어난다는, 그런 생각은 언감생심, 꿈도 못 꿀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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