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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인 일 아침, 엊그제 서로를 헐뜯었던 식구들이 다시 모였다.
보기 싫은 얼굴들이 많이 보였지만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불 속으로 들어가는 할아버지 관을 봤을 때 난 실신할 것처럼 울었다.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괴롭고 또 괴로워서 숨도 못 쉴 것 같았다.
기절할 것처럼 울고 또 울다가 눈을 떴을 땐 큰형이 운전하는 차 뒷좌석에서 작은형한테 기댄 상태였다.
납골당에서도 너무 울어서 거의 기억이 안 났다.
차창으로 들이치는 햇살이 화사했다. 빌어먹게도 날씨는 여전히 맑아서, 내 우는 얼굴을 숨길 수도 없다.
“…형들은, 왜 안 울어?”
형들도 할아버지랑 꽤 친했다. 무엇보다 부모를 대신해서 우리를 길러주신 분인데 속상하지 않을 리가 없지 않나.
“영원히 곁에 계실 수 없다는 건 알고 있던 거잖아.”
큰형이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도 슬프잖아.”
“그렇다고, 계속 울고 있을 수도 없지.”
작은형이 높낮이 없는 어조로 대꾸했다.
이해할 수 없다. 나는 아직 슬픔을 표현하는 방법은 눈물밖에는 모르겠다.
이제 집에 돌아가면 할아버지가 없을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심장이 콕콕 쑤셔서 옆에 있는 작은형 손을 꼭 잡고 눈을 감았다.
“형들은 어디 가면 안 돼.”
잠꼬대와 비슷한 말을 중얼거리고 눈을 감자 마른 눈물을 닦아주는 손길이 느껴졌다. 달콤하고 시원한 향이 맴도는 손끝에 기분이 좋아 잠이 쏟아졌다.
울어서 지친 것인지 아니면 오랜만에 형이 둘 다 있어서 오는 안도감 때문인지 그대로 정신없이 잠에 빠져 들었다.
물속에 잠겨 있던 몸을 확 잡아당기는 것 같은 느낌에 눈을 번쩍 떴을 때는 내 방이었다.
몇 시간이나 잔 거야.
손바닥으로 이마를 눌러 보고 커튼을 걷어보자 장례식 내내 맑았던 날이 거짓말인 것처럼 추적추적 비가 내리고 있었다.
이른 새벽이 주는 싸늘함을 느끼곤 카디건을 걸친 채 방 밖으로 나와 주방으로 향했다.
낡은 나무 바닥은 밟으면 소리가 날 것 같은데 슬리퍼를 신고 걸으면 아무 소리도 안 났다.
안 굴러가는 머리를 굴렸다.
오늘 강의가 뭐더라, 대학은 내가 사는 곳에서 멀지 않은 곳이다. 원서를 쓸 때 큰형은 무조건 집에서 가까운 곳을 추천했다.
자취는 절대 안 되고 너무 먼 거리 통학도 안 된다고 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난 머리가 그렇게 좋은 편이 아니어서 서울에 갈 성적도 안 됐다.
무난하게 집 근처 대학 사진학과에 입학했다. 전국에 몇 없는 사진학과여서 떨어질까 봐 걱정했는데 정말 다행히도 합격했다.
만약 떨어지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난감했을 것이다. 재수해서 갈 정도의 대학이 아니었기 때문에 더 그랬다.
그렇다고 큰형 말을 어기고 작은형처럼 집을 나가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그래서, 또 나갈 거야?”
아직 이른 아침인데 들린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발바닥에 힘을 주고 움직임을 멈췄다.
미닫이문 안쪽에서 형들이 대화하는 소리에 귀를 바짝 세웠다.
“같이 있는 건, 좀 그래. 자신도 없고.”
“언제 갈 거야?”
“발인 끝났으니까, 모레 갈까 싶은데.”
“할아버지 돌아가신 지 아직 일주일도 안 됐어, 지훈이 오랜만에 봤잖아.”
“누가 몰라?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마. 형이 제일 잘 알잖아.”
“그래, 알지. 아니까 하는 말이야, 이제 그럴 필요가 있어?”
“겨우 반나절 좀 넘게 같이 있었는데도 미치겠어, 지훈이 약 제대로 먹는 거 맞아?”
손에서 식은땀이 흘러나왔다.
“제대로 먹어, 검사도 꼬박꼬박 받고 있고.”
“그냥 걸어만 다녀도 오메간 거 다 알겠던데.”
발아래가 요란하게 흔들려서 눈을 꾹 감았다. 알고는 있었지만 역시 작은형은 오메가를 싫어하는 게 분명하다.
“냄새가 너무 심해서 옆에 있을 수가 없어.”
숨을 쉬면 문밖에 내가 있다는 걸 바로 알아차릴 것 같아서 손바닥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나는 모르는데, 진짜 잘 모르겠는데 작은형은 나한테서 나는 냄새를 맡고, 그 냄새 때문에 내 옆에 있을 수가 없다고 한다.
넘어지지 않기 위해 무릎에 단단히 힘을 주고 빠르게 움직여 내 방으로 향했다.
문을 닫고 침대 위로 풀썩 쓰러지듯 누웠다.
작은형이 집을 나간 건 3년 전, 그건 내가 처음으로 히트가 온 해였다.
초등학교에 다닐 때 형질 검사를 받아서 내가 오메가라는 건 알고 있었다.
첫 형질 검사결과가 나왔을 때, 형들은 물론이고 할아버지도 당황해서 학교 검사 결과를 믿지 못하고 시내에 있는 큰 병원에서 재검사까지 받았다.
할아버지는 걱정이 가득 담긴 눈을 했고, 형들은 불안한 눈을 했다. 괜찮다고 했지만 세 사람의 표정은 전혀 괜찮아 보이지 않았다.
그때의 시선이 압박으로 작용해서 하루도 빠지지 않고 약을 먹었고, 형질 검사 이후 발정기가 한 번도 찾아오지 않았다.
다행이라고, 약만 먹으면 아무 문제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빌어먹을 오메가.
그것도 하필이면 우성이라니, 이왕 우성으로 태어날 거면 형들처럼 알파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니, 차라리 베타였다면 훨씬 편했을지도 모른다.
영원히 오지 않길 바랐던 발정기는 갑자기 찾아왔다.
집에 혼자 있었고 온몸에 열이 들끓었다. 뭐가 뭔지도 알 수 없어서 침대 시트만 긁어대고 있는데 방문이 벌컥 열렸고, 들어온 건 작은형이었다.
‘김지훈…!’
놀라서 내 이름을 부른 형은 선뜻 방에 들어오지 못하다가 내 몸을 이불로 감으려 했다.
병원에 가려고 하는 걸 머리로는 알았지만 몸이 제대로 말을 안 들었다. 작은형을 자꾸 끌어안으면서 몸을 비비려 했고 형은 날 밀어냈다.
그렇게 한참 둘이서 실랑이하는데 큰형이 왔다. 돌아가는 상황을 한눈에 파악한 큰형은 작은형을 다른 방에 밀어 넣고 나한테 주사를 놓은 다음 내 몸을 짐처럼 번쩍 들고 병원으로 향했다.
정신을 차려 눈을 떴을 땐 병원이었고, 옆에 앉아 있는 형들 입술에는 피딱지가 앉아 있었다. 참기 위해 입술을 하도 씹어서 생긴 상처라는 건 아무리 멍청해도 알 수밖에 없었다.
한순간에 몰아닥친 발정기에 정신을 못 차리고 내가 형들한테 매달렸다.
어떻게든 해달라고, 뭐든 좋으니까 해달라고.
뚜렷하게 말하지 않았지만 그건 형들한테 섹스하자고 한 거나 진배없었다.
의사는 줄곧 먹던 약에 내성이 생겨서 갑자기 발정기가 온 것 같으니 약을 바꾸자고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그러겠다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 일이 있고 일주일 정도 지난 다음에 작은형이 집에서 나갔다. 큰형은 전과 다름없이 대하는 듯했지만 묘한 거리감이 생겼다.
형도 나가고 싶은데 못 나간 게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수도 없이 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할아버지와 보내는 시간이 길어졌다. 형들이 싫어서도 아니고, 미워서도 아니고 본능적으로 붙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었다.
집을 나가긴 했어도 작은형도 날 싫어하는 건 아닐 거라고 막연하게 생각했었는데 지금 대화로 추측해보면 작은형은 아무래도, 날 싫어하는 것 같다.
오메가가 싫어서, 오메가인 나도 싫은 게 분명하다.
장례식이 바로 어제 끝난 건 불행 중 다행이었다.
아침에 찔끔찔끔 흘린 눈물의 원인을 장례식 탓으로 할 수 있으니까. 그게 아니었다면 분명 왜 울었냐며 꼬치꼬치 물었을 형들이다.
“왜, 입맛이 없어?”
“어.”
이 또한 다행이다. 할아버지 때문에 입맛이 없는 줄 알아서 그런 것인지 큰형은 더 권하지 않았다.
“그래도 한 조각 더 먹지?”
작은형이 부드러운 프렌치토스트가 담긴 접시를 내 앞으로 밀었다. 큰형이 만든 것으로 내가 좋아하는 아침 메뉴 중 하나였다.
“됐어.”
싫은데 꾹 참고 이런 행동도 하는 건가, 아니면 동생이니까 어쩔 수 없이 이 정도는 해 주는 건가.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아침 식탁 맞은편에 앉아 있는 형들이 오늘따라 나보다 훨씬 어른처럼 느껴졌다.
그래봤자 스물셋, 스물여섯인데 왜 이런 기분이 드는 걸까.
뭐, 나보다 나이가 많으니까 어쩔 수 없다고 하면 할 말은 없지만, 이건 단순히 나이 차이 때문이 아니라―.
뻗어나가던 생각을 멈추고 컵에 따라 놓은 우유를 마셨다.
심리적 거리감이다.
형들은 알파고 나는 오메가고, 그런 단순한 차이도 있지만 형들이 나한테만 뭔가 비밀로 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
이른 아침부터 둘이서만 나에 관한 이야기를 속닥거리고, 집에서 나간다는 말도 나한테는 안 하고.
“오늘 학교 갈 거야?”
“왜?”
내가 생각해도 딱딱하고 예리한 목소리가 새어 나갔다. 큰형한테 그럴 필요는 없는데.
“아니, 하루 정도 더 쉬어도 될 거 같아서, 아직 정리할 것도 있으니까.”
“형은?”
고개만 끄덕이고 작은형에게 물었다.
“난 집에 있을 거야.”
“난 학교 갔다가 올게.”
혼자 짜증내고 답답해할 게 아니라 뭔가 방법을 찾는 게 좋을 것 같다. 짜증 내봤자 어디까지나 나만 손해다.
“할아버지 유품 정리하고 있을 테니까, 끝나면 바로 와.”
“알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