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화 (3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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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형은 나랑 세 살 차이, 작은형과 큰형은 또 세 살 차이.

세 살 터울인 우리는 어렸을 때 사이가 좋았다. 그도 그럴 게 내가 태어났을 땐 이미 부모님이 없었기 때문에 형들과 할아버지가 내 부모나 마찬가지였다.

시골 마을 제일 끝 언덕을 올라가면 나오는 기와집이 우리 집이었다.

우리가 오기 전까지 할아버지는 그 큰 집에서 혼자 살았다고 했다. 예전에는 상주하는 도우미들이 있었는데 어느 순간 다 그만두게 하고 할아버진 혼자가 됐다.

그때 온 게 우리 셋이었다.

할아버지에게는 반가운 혈육이었을 거라고, 그렇게 믿고 싶다.

“그동안 어디 있었어?”

마루에 앉아 내 앞에 서 있는 작은형을 바라봤다.

“군대.”

“2년이면 전역하잖아.”

왜 집에 안 왔어? 라는 말은 차마 안 나왔다. 작은형이 집에 오지 않은 게 나 때문인 것 같아서.

“학교는?”

“뭐가 그렇게 궁금한데? 좀 보자, 컸어?”

작은형이 겨드랑이에 양팔을 끼우더니 어린애들한테 하는 것처럼 날 일으켜 세웠다.

“그대로네.”

“형이 큰 거야.”

“학교는?”

“나한테는 물어보지 말라더니.”

입술을 삐죽이며 불만을 표시하자 작은형이 내 정수리를 손바닥으로 문질렀다. 어린 날 장난을 치는 것 같아서 입가에 웃음이 삐져나왔다.

“약은, 잘 먹어?”

형 말에 턱에 힘을 준 채 고개를 끄덕였다. 작은형이 말하는 약은 페로몬 억제제였다. 분명 날 걱정하고 있다는 걸 안다.

“약 바꿔야 하는 거 아냐?”

“냄새, 나?”

“내가 좀 예민한 편이기도 하니까.”

“이제 집에 돌아올 거야?”

작은형이 대답하기 전에 큰형이 밥상을 들고 마루로 나왔다.

“아까는 그렇게 울더니 영훈이 보니까 좀 괜찮아졌어?”

“괜찮지는 않아.”

“일단 밥부터 먹어.”

“지금 먹는 건 무슨 밥이야?”

작은형이 핸드폰을 건드려 시계를 확인했다. 새벽 4시 18분. 확실히 밥 먹을 시간은 아니긴 했다.

“집에 왔으니까 먹는 밥.”

큰형의 말에 딱히 대꾸할 말이 없는지 작은형이 숟가락을 들었다.

“지훈아, 너도 일단 먹어, 먹어야 울 힘도 나온다.”

“응.”

종일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는 사실이 떠올라 큰형의 권유대로 숟가락을 들었다. 밥을 먹으면서 할아버지 영정사진이 있는 쪽을 슬쩍 쳐다봤다.

할아버지는 우리가 오랜만에 모인 걸 보고 어떤 생각을 하실까.

“아까 그건 뭐야?”

친척들이 내 앞에 내밀었던 서류의 정체를 물었다. 어렴풋이 짐작은 하고 있지만 확실히 알고 싶었다.

“네 앞으로 할아버지가 유산을 남겼어.”

역시.

할아버지는 살아 계실 때도 그런 얘길 자주 했다. 죽으면 다 내 거라고. 석훈이랑 영훈이한테도 주지 말고 다 나보고 가지라고 했다.

할아버지 재산이 얼마인지는 모른다. 그저 시골이지만 이렇게 큰 집이 있으니 가난하지는 않겠거니 할 뿐이다.

“나 부자야?”

“뭐, 가난하지는 않지.”

“그건 예전부터 그랬어.”

“네 게 아니었잖아.”

“부자 맞다는 거네.”

집 말고 또 뭐가 있을까. 잘은 몰라도 사람이 죽은 마당에 눈물 한 방울 안 나올 정도로 많을 거다.

자식들한테는 하나도 안 주고 손주한테 다 남기다니, 할아버지도 좀 너무 했다.

“좋아?”

“좋겠어?”

작은형의 질문에 뚱하게 대답했다. 집이니 돈이니 그런 것보다 아직은 할아버지가 안 계신다는 게 더 슬펐다. 믿을 수도 없고.

“형들, 근데.”

“뭐?”

“우리 아빠….”

할아버지의 혼외 자식이었냐는 질문이 선뜻 안 나왔다.

“지훈아, 할아버지는 우리 할아버지고 아빠도 우리 아빠야, 엄마도 그렇고. 우리 몸에 같은 피가 흐른다는 거, 그게 중요한 거야.”

내가 뭘 말하려는 것인지 안 것처럼 큰형이 무뚝뚝하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 단호한 목소리가 묘하게 힘을 실어줘서 피가 흐르는 심장이 단단해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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