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01화 〉101화 슬레이브 배틀 (101/107)



〈 101화 〉101화 슬레이브 배틀

“이라유님!”

두 번째 시합도 무난하게 듀크와 로라가 정리하고 대기실로 복귀할 때였다.

대기실로 향하는 복도에 어떤 여자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가,  얼굴을 보자마자 내 이름을 부른 뒤 부끄러워하며 고개를 푹 숙여 버렸고, 내게 빈 종이를 내밀었다.

“패, 패, 패, 팬이에요. 싸, 싸, 싸인 좀 해주세요....”

나는 얼이 빠진 얼굴을 하고 그녀의 정수리를 바라봤다.

물론 내 옆에 있는 듀크와 로라, 블룸도 똑같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번의 시합동안 나는 아무 것도 한  없는데?

“내 팬이라고?”

“네, 네!”

“어이 꼬마, 사람을 착각한  아니야?”

단 두 번만의 시합만으로 엄청난 양의 팬을 늘린 듀크가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이, 이, 이, 이, 이라유님 패, 팬 맞아요.”

정확하게  이름을 말한다. 하지만 집히는 게 없다. 혹시 아이돌 이라유의 팬인 건가?

그게 가장 가능성이 높았다.

“에, 에, SSS급 챔피언 이라유님, 꼭 한 번 만나보고 싶었습니다.”

어?

그걸 기억하는 사람이 있어?

나는 의외의 곳에서 그걸 기억하는 사람을 만나서 굉장히 당황스러웠다.

그런데 그 누구보다 볼만한 얼굴이  건 바로 로라였다. 그녀는 당황과 분노와 불신과 황당이 모두 뒤섞인 듯한 일그러진 얼굴을 하고 움찔움찔거리고 있었다.

“SSS급 챔피언이라니? 그게 무슨 말이야?”

블룸이 내게 물었다.

“아....오래 전에 투기장에서 SSS급 챔피언 자리에 올랐던 적이 있었거든요. 오래된 일이라 기억하는 사람이 없을  알았는데 신기하네요.”

그러자 고개를 숙이고 있던 여자가 번쩍 고개를 치켜들며 소리를 질렀다.

“기억하는 사람이 없다뇨! 투기장의 전설 이라유님을 모르는 사람이 어딨습니까! 데려 오세요! 제가 박살을 내버리겠습니다!”

야, 왜 이리 오버하냐....

그녀는 씩씩거리다가, 흠칫 놀라며 다시 부끄러워했다.

“저, 저, 저, 싸인 좀....”

그리고는 다시 내게 종이와 펜을 내밀었다.

이런 일은 또 처음이다.

어쨌거나 팬이라는데 기분은 좋았다. 나는 그녀에게서 종이를 받은 뒤 대충 내 이름을 휘갈겨 썼다. 싸인을 해본 적이 있어야지....

“이름이?”

내가 묻자, 그녀가 황송하다는 듯이 대답했다.

“아, 현 SSS급 챔피언 미소미입니다.”

와우, 대단하잖아. 이렇게 부끄러움이 많은 여자애가 챔피언이라니.

"SSS급 챔피언이라니 대단하네.“

내 사인 아래 ‘SSS급 챔피언 미소미에게’라는 문구를 적으며 말했다. 그러자 그녀가 천만에라는 표정으로 손사래를 쳤다.

“아, 아, 아니요! 이라유님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죠!”

그리고 그녀가 쑥스러운 듯한 표정으로 자기 콘솔을 꺼냈다.

“저, 기왕이면 사, 사, 사, 사진도....”

“그래 뭐....그 정도야.”

그러자 그녀가  옆에 찰싹 달라붙어서 셀카를 찍었다. 그녀가 사진을 찍으려고 화면을 잡는 동안, 브라에 젖꼭지와 피어싱이 두드러진 게 훤히 다 보였다.

 여자는 그런 게 전혀 신경 쓰이지 않은 걸까.

아니면 그것조차 한때 전설이었던 여자의 자유로움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걸까.

“가, 가, 가, 가, 감사합니다!”

그리고 머리가 땅에 닿을 듯이 꾸벅 인사한  도망치듯 사라져 버렸다.

“....왜 그러세요?”

나는 멍하게 서서 내 얼굴만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는 나머지 세 명에게 물었다.


“이야....정말 대단한데....어쩐지 격이 다르다 했지.”

대기실로 돌아온 뒤 듀크가 내게 감탄했다. 블룸도 얼굴에서 웃음을 숨기질 못하고 있었다.

“근데 마스터, 우리 결정 잘못한  아니야?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평범하게 민첩형 딜러로 키웠어야 했던 거 아냐?”

듀크가 아쉽다는 듯이 말했고, 블룸도 이제야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아쉬워하는 듯했다.

“걱정 마세요 주인님, 실망시켜드리지 않을 거예요.”

내가 시무룩해 있는 블룸에게 달라붙어서 사타구니를 손으로 살살 쓰다듬었다.

그때 로라가  손목을 홱 낚아채서 대기실 밖으로 끌고 나왔다.

그녀는 여자 화장실 안으로 들어온 뒤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하고는 문을 잠가 버렸고, 나는 갑작스런 일에 파르르 떨기 시작했다.

“후우.....”

로라가 깊이 한숨을 푹  뒤, 갑자기 내 앞에 무릎을 꿇고 넙죽 절을 했다.

“왜, 왜 이러세요?”

내가 당황하자, 그 상태로 로라가 사죄를 했다.

“죄송합니다....진짜 이라유님인 줄 몰라보고 무례하게 굴었습니다.”

 또  이러냐.....

“정말 단순한 창녀가 이라유님을 사칭하는  알았습니다....진짜 이라유님인  알았으면 이러지 않았을 겁니다...제발 용서해 주세요....”

그녀가 흑흑거리며 울기 시작했다.

마음 같아서는 뒤통수를 콱 밟아주고 싶었지만, 이미 대회도 시작했고, 절까지 하면서 사죄하는 여자를 그렇게 대할 수가 없었다.

나는 그녀를 억지로 일으켜 세운 다음, 왜 갑자기 이렇게 태도를 바꿨는지 물었다.

“아....그게, 사실 저는 강한 여자에 대한 동경을 가지고 있어요....그래서 SSS급 챔피언 이라유님도 알고 있었습니다....그런데 사칭인 줄 알았어요....”

그러니까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 나였는데, 웬 이름이 똑같은 여자가 와서 걸레짓만 하니까 화가 났다?

.....으음....납득하기 싫지만, 납득이 됐다. 씨발. 내 꼴이 보통 추한  아니라야 말이지....

“제발....사죄할 기회를 주세요....”

겨우 일으켜 세워놨더니 다시 풀썩 주저앉으며 내 다리를 붙잡고 늘어졌다.

“요, 용서할게! 그러니까 이제 좀 놔!”

“아, 안돼요, 저를 밟으세요, 제가 했던 것처럼 저한테 해주세요.”

그리고 그녀가 내 발 아래 억지로 자기 머리를 들이 밀었다.

“그, 그만해!”

“흑흑....죄송합니다....”

후우....

씨발.....이렇게까지 울면서 비는데 어떻게 복수하냐....

“그럼 그냥 내일 밥이나 사. 비싼 걸로.”

그러자 그녀가 얼굴을 들고 빵끗 웃었다.

아이고 눈물 콧물 엉망이구만.

“네! 도시에서 가장 비싼 곳으로 모실게요!”

“그래. 그럼 이제 나가서 쉬어도 되지?”

“네! 제가 내일 아침 숙소로 찾아뵙겠습니다!”

아....

날 좋아하는 것들은 왜  이렇게 오버하지.

그래도 누군가가 이렇게까지 좋아해준다는  싫지는 않았고, 어쩐지 입꼬리가 올라가며 피실피실 웃음이 새어 나왔다.


“우리 옷부터 사러 가요.”

두 번째 시합이 끝나고 조정기간이 이틀 주어졌다. 마스터는 훈련하는 것도 좋지만 한숨 돌리는 것도 중요하다며 로라와 나의 훈련을 빼주었다.

로라가 아침 일찍  숙소로 찾아오더니, 내 비키니 꼴을 보고는 옷부터 사자고 말했다.

그녀와 같이 있는 동안에는 몸을 좀 가려도 괜찮을 거 같았다. 그리고 마음에 들면 인벤토리에 넣어놨다가 나중에 입어도 되고 말이다.

“자요, 일단은 이거 입으세요.”

그녀가 자신의 옷을 내게 건넸다. 평범한 속옷 한 벌과 캐주얼한 박스티, 청바지로 이루어진 평범한 옷들이었다.

“고마워.”

얼마 만에 몸을 제대로 가려보는 건지, 능력치가 바닥으로 떨어졌지만 몸을 가리고 있다는 대에서 오는 안정감이 나를 편안하게 했다.

번화가로 나간 우리는 거리를 걸으며 사람들이나 상점들을 구경하다가 옷가게가 모여 있는 곳으로 갔다.

“흐음....”

마찬가지로 캐주얼한 여성복들이 있는 매장에 들어와서는, 로라가 내 몸에 이런 저런 옷을 대보며 옷을 고르고 있었다.

미간을 찌푸리며 심사숙고했지만 마음에 드는 옷을 쉽사리 찾을 수가 없는 것 같았다.

“아....역시 가슴이....”

그녀가 한숨을 푹 쉬었다.

가슴이 너무 커서 뭘 입든 다 야하게 보인다는 말이겠지. 그녀는 노출을 싫어하는지 항상 노출이 전혀 없는 옷만 골라서 입었었다.

결국 그녀는 자신의 취향을 얼마간 포기한 뒤, 노란색 슬림 티셔츠와 청바지를 가져왔다.

여기에 오기 전 제대로 된 속옷도 사왔기 때문에 몸에  붙는 옷이더라도 피어싱이 드러날 걱정은 없었다.

내가 시착을 하고 나오자 그녀가 꽤나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가죽 재킷을 건넸다.

그녀가 시키는 대로 입고 거울 앞에 서니  매력적인 모양새가 나왔다. 내가 봐도 반할 정도였다.

“다른 것도 사러 가요!”

내가 꽤 만족스러운 얼굴로  몸을 이리저리 돌려보고 있자, 그녀도 뿌듯했는지 이것저것 사주려고 했다.

결국 몇 시간동안이나 온갖 옷가게를 돌아다니며 사교회 컨셉의 섹시한 드레스도 사고, 청순한 느낌의 원피스 스타일의 한 벌도 샀다.

내가 그런 걸 입을 일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마치 절친이라도  것처럼 로라와 함께 돌아다니며 수다를 떨고, 이런 저런 옷을 입어보는 것 자체가 매우 즐거웠다.

“하아....지쳤다.....”

카페에 들어와서 앉자마자 로라가 축 늘어져 버렸다.

“히야....그래도 라유님 몸매가 좋아서 무슨 옷이든 다 어울리네요. 사주는 보람이 있는 몸이에요.”

나는 가슴이 크기도 하지만 키도 여자 평균키보다 약간 컸기 때문에 쫙쫙 뻗은 몸이 옷발을  받았다.

“그런데 왜 그런 걸 달고 있는 건지 물어봐도 될까요?”

그녀는 내 몸에 달린 피어싱을 굉장히 불편해 했다. 강한 여자를 동경한다고 했었지. 노예의 증표처럼 보이는 이 피어싱을 가리기 위해 속옷부터 사서 입혔다.

뭐 노예의 증표도 맞긴 하지.

“어쩌다 보니 좆같은 놈을 만나서, 인생 최악의 여행을 하는 중이지.”

나는 커피를 빨며  일 아니라는 투로 대답했다.

“제가 떼어 버려도 될까요?”

“못 뗄 걸. 그렇게 만들어놨어.”

“....라유님이 서버 최강인  알았는데....”

그녀가 실망한 것처럼 시무룩해졌다.

사실 SSS급 챔피언으로 올랐을 때도 서버 최강은 아니었다. 투기장에 관심이 없는 강자들도 많았으니까.

하지만 투기장 챔피언이라고 하면 서버 최강으로 착각을 하게 마련이다.

물론 마신화까지 진행된 지금은 서버 최강이 맞을 것이다. 문제는 내가 아무리 강해도 범해지는 걸 막기가 힘들다는 대에 있다는 거지.

“최강까지는 아니었지, 그리고 그게 중요한  아니더라구.”

그녀가 흐음...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내가 무슨 말을 하든 진지하게 들어줬고, 반박하기보다는 내 말을 깊이 새겨두려는 듯이 경청했다.

“제가 뭐 도와드릴 건 없을까요?”

 집까지 데려다주면 좋겠지만, 그녀가 해줄 수 있는 건 없다.

어차피 단거리 열차를 타고 이동해야하고, 그녀와 동행한다는 건, 나를 노리는 사람들에게 장난감을 하나 더 안겨주는 꼴에 불과하니까.

그리고 이제 거의 다 왔다. 다음 도시가 끝이다. 하나만 더 지나면 집에 도착할 수 있다.

“딱히 생각나는  없는데. 내일 훈련이나 좀 도와주든가.”

“네! 당연하죠!”

그녀가 눈을 번뜩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우리는 각자의 소파에 축 늘어져서 선선한 카페 공기 속에서 몸을 쉬었다.

오랫동안 우리는 조용히 있었다. 그래도 초조하지도 않고 불안하지도 않았다.

이 평온한 감각을 듬뿍 즐긴 뒤 숙소로 돌아왔다.


“이라유님! 훈련  시간이에요!”

다음날 아침 일찍 내 방에 로라가 찾아왔다.

“벌써?”

“조금이라도 일찍 시작해야 조금이라도 더 많이 성장하죠!”

“그래 알았어.”

나는 원래  비키니를 입으려다가, 그녀와 함께 샀던 속옷과, 그녀에게 선물 받았던 캐주얼복을 입고 그녀를 뒤따랐다.

“어....음....이게  뭐지?”

나는 훈련장에 쫘악 깔려 있는 물건들을 보고 당황해서 그녀에게 물었다.

“라유님을 위해 전 재산을 털어서 샀어요!”

“.....왜?”

“이게 라유님 훈련 방법 아닌가요?”

그녀가 당연하다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바닥에는 각종 구속구들과 딜도들, 채찍 등등 엄청난 양의 조교 도구들이 늘어져 있었다.

“최선을 다 할게요!”

로라가 눈을 반짝이며  쳐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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