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2화 〉92화 혁명군
내가 감시자 교도관을 죽이고 창고장을 고문하는 동안 페넬로페가 잡혀 있던 육변기들을 모두 풀어줬다.
오래 잡혀 있다 보니 제대로 걸을 수 없는 사람도 있었지만, 두 번 다시 없을 탈출 기회를 잡기 위해 서로 부축해주며 어떻게든 움직였다.
“어서 안내 해.”
나는 창고장이 의심받지 않도록 충분히 잔인하게 고문을 해준 다음, 그를 질질 끌어서 그의 방의로 이끌었다.
그가 나에게 열쇠 하나를 줬고, 벽에 숨겨져 있던 열쇠 구멍을 알려줬다. 거기에 열쇠를 넣고 돌리자, 돌 벽이 열리면서 지난 번 내가 지나갔던 통로가 나왔다.
“라유님, 옷 입으셔야죠.”
페넬로페가 자기 옷을 챙겨 입은 뒤 말했다.
나는 잠시 고민한 뒤, 입지 않기로 했다.
좆 같지만 알몸일 때 가장 강하고, 이 많은 인질을 모두 보호하면서 전투를 하기 위해서는 알몸일 필요가 있었다.
“....정말로....인간 육변기는 아니죠?”
이쯤 되자 페넬로페가 진심으로 나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하아....이젠 나도 모르겠다.”
나는 한숨을 푸욱 쉰 뒤, 창고장을 죽여줬다.
내가 가장 앞장서서 나갔고, 페넬로페가 뒤에서 인질들을 보호하며 따라왔다.
그리고 금방 닫혀 있는 문에 도착했다. 이 문만 열면 밖으로 나가게 된다.
하지만 문제는 그곳이 어딘지를 모른다는 것이었다.
여길 나가서 어느 쪽으로 가야 탈출할 수 있는지를 모르는데, 지금 나가는 게 맞을까?
“라유님?”
내가 멈춰있자 페넬로페가 날 불렀다.
씨발, 일단 나가보지 뭐.
나는 에라 모르겠다 문을 열었고, 강렬한 햇빛과 함께 시원한 바람이 쏟아졌다.
그리고
큰 트럭이 짐칸 문을 연 채로 대기하고 있었다.
“라, 라유님. 옷은 어쩌시고....”
운전석에서 이쪽을 바라보고 있던 사우스가, 내 알몸을 보더니 홱 고개를 돌리며 당황했다.
아, 생각보다 엄청난 자식들이잖아.
“빨리 타!”
나는 인질들에게 소리 질러서 빨리 타게 했다. 페넬로페는 사우스의 옆 조수석에 앉았고, 나는 트럭 문을 닫은 뒤 짐칸 위에 올라탔다.
노역장 곳곳이 반군에게 공격당해서 전투가 일어나고 폭발이 일어나고 있는 게 보였다. 그리고 아울이 말했던 것처럼 죄수로 잡혀 있던 사람들이 사방으로 흩어지며 도망치는 게 보였다.
그는 내가 전부 해결해야 할 것처럼 말했었지만, 막상 작전이 시작되니 내가 할 게 별로 없었다.
“후퇴! 전부 후퇴한다!”
인질을 실은 트럭이 무난하게 아수라장을 뚫고 나가는 걸 확인한 부대장이 병사들에게 소리쳤다.
“라유님은 계속 트럭의 호위를 부탁합니다!”
내가 트럭에서 내리려고 하자 부대장이 제지했다.
과연 트럭이 시내를 달리는 도중에도 도시군의 공격을 당했다. 사방에서 저격이 날아들고, 대전차 미사일까지 날아들어 내가 없었으면 살아 돌아갈 수 없을 거 같은 공격이 쏟아졌다.
하지만 그 정도야 내게는 문제가 아니었다. 간단하게 장도로 모두 쳐내며 트럭을 지켜낼 수 있었다.
직접 검을 들고 육탄전으로 달려드는 자식들도 있었지만, 차라리 그 자식들은 베어버릴 수 있어서 처리하기 수월했다.
한참을 그렇게 달려서 반군 지역에 도착할 수 있었고, 그제서야 나도 옷을 입을 수가 있었다. 그리고 사우스가 목에 차고 있던 목걸이를 풀어줬다. 그냥 노역장에서 쓰는 걸 흉내 냈을 뿐 아무 의미 없는 물건이었다.
“히야....대단한데.”
트럭이 도착한 보호 벙커에는 다른 수용소에서도 인질들을 싣고 온 트럭들이 늘어서 있었고, 인질들이 보호받으며 쉬고 있었다.
꼴을 보니 절반 정도는 우리가 있던 곳처럼 여자들을 육노예로 쓰고 있었던 것 같고, 절반 정도는 평범한 생활을 한 것 같았다.
평범하게 살아왔던 사람들 중에는 아마 현재 체제에 순응하고 있던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방금까지 육변기로 사용되고 있던 사람들을 눈으로 봤으니 현실을 알아차렸을 것이다.
그것이 그들의 표정으로 드러나고 있었다.
“수고하셨습니다.”
어느새 아울이 내 옆으로 다가와 있었다.
“이 자식! 사창가는 안 보낸다더니!”
나도 모르게 그의 멱살을 잡아채 버렸다. 차라리 사창가가 나았겠다.
“그리고 굳이 내가 그곳으로 가야 했던 이유가 있어? 별로 어려울 게 없었는데?”
그렇다. 내가 한 거라고는 얼간이 교도관 한 명 죽이고 창고장을 고문하는 게 전부였으니, 페넬로페 혼자서도 가능했을 것이다.
“자, 잠시만요. 이것 좀....”
그가 켁켁거려서 어쩔 수 없이 멱살을 놔줬다.
“불안 요소가 하나 있습니다. 토르라는 빌어먹게 강한 자식이 하나 있는데, 그 자식 위치가 딱 고정돼 있질 않습니다. 사창가 몇 곳과 라유님께서 계시던 노역장을 돌아다니는 놈입니다. 라유님께서 해야 하는 일은 그 자식을 상대하는 일입니다. 곧 어디 있는지 파악이 되겠군요.”
아니나 다를까, 병사 한 명이 급하게 아울에게 연락을 걸었다.
“사령관님! 찾았습니다! 이 자식 사창가가 아니라 4번 구역 학교에 있었습니다!”
“뭐? 거기는 방어가 약하다고 해서 병력이 얼마 안 갔잖아. 그 자식이 왜 거기 가 있어?”
아울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그렇지, 사창가나 돌아다니던 놈이 학교에 가 있는 건 좀 이상하지.
“일단 작전이 끝난 부대들을 전부 그쪽으로 지원 보내고 있지만 역부족입니다. 침투조는 구출한 인질들과 함께 창고에 숨어서 방어를 하고 있지만 탈출은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라유님!”
아울이 다급한 얼굴로 날 바라봤다.
“그래 알았어. 운전이나 해.”
나는 태연하게 빈 트럭을 향해 걸어갔다.
몇 개의 부대가 달라붙어도 감당이 안 될 정도로 강한 녀석이란 말이지.
조수석에 앉은 뒤 나는 혀로 음탕하게 입술을 핥았다.
하아....빌어먹게 강한 자식이라.....빌어먹게 강한 자지.....
하아....
나도 모르게 내 가슴을 손으로 주무르고 있었고, 보지가 잔뜩 젖어오기 시작했다.
“저도 따라갈래요.”
사우스는 운전을 해야 하니까 그렇다고 쳐도, 페넬로페까지 따라오겠다고 했다.
“구출된 인질 중에 남동생이 없었어요, 어쩌면 그 학교에 있을지도 몰라요.”
이미 학교들은 대부분 작전이 끝나 있었다. 아무래도 상대가 학생들이다보니 경비가 약한 탓도 있었다.
학교 중에서는 앞으로 두세 곳 정도만 남아 있었는데, 어쩌면 그녀의 말대로 지금 가는 곳에 동생이 있을지도 몰랐다.
나는 특별히 제지하지 않았다. 사우스와 페넬로페 모두 리스폰을 반군 기지로 재설정 해놓은 상태였기 때문에 여차 하면 죽게 놔둬도 문제없을 것이다.
“그 자식 정보 좀 줘.”
내가 페넬로페에게 말했다.
그는 처형자 클래스였고 대충 나와 비슷한 레벨의 실력자로 보인다고 했다. 매우 파괴적인 성격의 소유자였고, 도시군의 상급 관리직을 맡고 있긴 했지만 도시군에서도 컨트롤이 안 되는 골칫덩어리라고 했다.
그래서 그 불타는 욕망을 사창가에서 푸는 건가.
만약 그게 모두 나에게 쏟아진다면, 나는 견딜 수 있을까.
다시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고 보지가 뜨거워지는 게 느껴졌다.
착!
나는 내 뺨을 손바닥으로 때렸다.
하아...정신 차려라. 잡히면 안 돼. 이번 작전만 끝내고 이 도시도 탈출하는 거야.
하지만 자꾸 그가 나를 제압할 수 있을 정도로 강했으면 좋겠다는 기대가 솟아올랐다.
작전 지역인 학교에 도착했을 때 이미 우리보다 먼저 도착한 다른 지원군들이 학교를 포위하고 있었다.
사실상 학교를 완전 제압했고, 작전도 거의 성공한 것이나 다름없었지만, 정작 중요한 인질들이 창고에 갇힌 채로 못 나오고 있었다.
“하하! 더 강한 자식은 없어?”
인질들이 갇혀 있는 창고 쪽으로 가자, 그 앞에 피투성이가 된 채로 대검을 들고 서 있는 남자가 있었다. 엄청난 근육질을 가진 그 남자는 오래전 투기장에서 만났던 마이크 성애자놈을 떠오르게 했다.
처형자 클래스 놈들은 성격이나 생긴 거나 다 똑같은 놈들인가.
지금 눈앞에 있는 토르라는 놈도 혼자서 충분히 창고를 박살내 버릴 실력이 있어 보였지만, 어쩐지 반군을 데리고 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반군들을 조롱하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면서 도발하는 그의 주변에는 무기력하게 죽은 시신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그의 몸에 있는 피는 모두 그 시신들의 것으로 보였다.
“저 자식에 대한 정보 있어?”
나는 이번 작전 지휘관에게 물었다. 이번에도 처형자와 버서커의 듀얼클래스이거나 이런 식이면 곤란하기 때문에, 미리 알아두고 싶었다.
아무래도 요주의 인물이다보니 생각보다 많은 정보들을 얻을 수 있었고, 가장 중요한 것, 처형자 단일 클래스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러면 별로 문제가 없지.
“작전은 따로 없어?”
“일단 저 자식을 처리하기만 하면 모든 게 해결이 되지만, 그게 안 되면 아무것도 못 합니다.”
지휘관이 좌절하면서 대답했다.
단순명료해서 좋아.
저 놈을 쓰러뜨리기만 하면 된단 말이지.
나는 사우스와 페넬로페를 창고 안으로 보내기 위해 동반한 채로 트럭을 토르에게 몰았다. 정정당당하게 싸워줘야 할 이유는 없지.
“엥? 저건 또 뭐야!”
토르가 우리 트럭을 발견하고 거대한 대검을 휘둘러 트럭을 박살내 버렸다.
그 전에 재빠르게 사우스와 페넬로페가 탈출해서 창고 안으로 들어갔고, 내가 사내 앞을 막아섰다.
“뭐야? 창녀를 부른 적은 없는데.”
<선풍>
나는 그의 말에 대꾸하지 않고 다짜고짜 검기부터 날렸다. 고렙 처형자를 상대로는 큰 기술을 사용할 수 없다는 걸 예전에 배웠다.
“하찮아! 하찮아! 더 강한 녀석은 없는 건가!”
역시나 그는 별로 피해를 입지 않았고 잔뜩 흥분해서 내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동작이 너무 컸기 때문에 간단하게 피하고 반격을 집어넣을 수 있었다.
아니 사실 간단하게 피하지는 못했다.
<의복 거부> 기질 때문에 능력치가 낮아져 있다 보니 아슬아슬하게 피할 수 있었고, 내가 넣은 반격도 그다지 큰 피해를 입히지 못하는 거 같았다.
“어어? 이 년 봐라?”
그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까지 만났던 반군은 단칼에 분쇄해 버렸을 것이고, 그가 아는 여자는 사창가에밖에 없을 테니, 매우 복잡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삭! 삭!
하지만 쉬지 않고 연속으로 공격을 넣었고, 대부분 그의 몸에 박아 넣을 수 있었다.
“이익! 따갑잖아 이 암캐년아!”
그는 몸을 사리지 않고 내게 공격을 해왔는데, 아슬아슬하게 간신히 피해낼 수 있었다.
쾅!
그러나 역시 다 피할 수가 없었고, 그의 공격을 검으로 받아낸 뒤 한참을 밀려나 버렸다.
좆 됐네....피하는 건 벅찬데 막으면 무기가 박살날 거 같고 내 공격도 안 통한다니.
하아....
“야, 너 뭐하냐. 스트립쇼 하는 거면 이따가 내 방에 와서 해.”
그가 나를 보고 비웃었다.
나는 옷을 다 벗고 알몸이 돼 버렸다.
어쩔 수 없다. 미친 년 같아도 이러지 않으면 이길 수 없는 거 같으니.
“씨발 창녀인 줄 알았더니 육변기였잖아.”
그가 내 피어싱을 보고 낄낄댔다.
“언제까지 웃을 수 있는지 볼까.”
나는 재빠르게 대시한 뒤 그의 몸을 대각선으로 크게 베었다.
아까보다 훨씬 빨라진 내 움직임에 그는 제대로 반응하지 못했고, 그대로 온 몸으로 내 칼을 받아낸 뒤 공중에 피를 뿜었다.
“커흑....윽....이 년....”
그의 눈빛이 바뀌었다. 이제 진심으로 공격해 올 것이다. 한 번 큰 공격이 들어가긴 했지만 이 정도로 기세가 꺾일 레벨이 아니다.
<태세 전환 : 패리>
<오의 천수관음>
<연계 스킬 : 신속한 반격>
이미 한 번 해봤던 것처럼, 반격으로 그의 체력을 깎아먹기로 했다. 역시나 처형자의 공격은 위력적이지만 단순해서 모두 흘려버릴 수 있었고 반격으로 상당히 체력을 깎아먹을 수 있었다.
“으윽! 빌어먹을 검사 클래스!”
그가 답답했는지 더욱 난폭해지며 공격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어어? 이 새끼 안 지쳐?
그의 공격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빨라지고, 위력적으로 변해갔다. 이제는 거의 맹수가 된 것처럼 무아지경으로 공격을 퍼부었다.
쾅!
그러는 사이 결국 <천수관음>의 지속시간이 끝나 버렸고, 일반 패리로는 그의 공격을 다 받아낼 수가 없었다.
다시 한 번 더 그의 검을 겨우 장도로 막아내면서 잔뜩 밀려났고, 그 바람에 패리 태세도 풀려 버렸다. 그나마 장도가 부러지지 않은 게 다행이라면 다행일 지경이었다.
씨발...검만 제대로 된 게 있었어도....
나는 아직도 마우스가 사준 상점용 장도를 들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토르에게 제대로 된 대미지를 입히질 못했다.
부릉!
그때, 내가 열세인 걸 확인하고 움직이는 건지, 지금이 기회라고 생각한 건지, 창고에서 인질들을 태운 트럭이 빠져 나왔다.
“저 자식들이!”
토르는 그래도 군인으로서의 역할을 잊어버리지 않았고 트럭을 향해 날아갔다.
안돼!
분명 인질들이 죽으면 안 된다고 했었지.
나는 재빨리 그를 뒤쫓았지만 한 발 늦었다.
“꺄악!”
사방에 피가 흩뿌려진다.
트럭을 향해 매섭게 떨어지는 토르의 검을 페넬로페가 뛰어들어 몸으로 막아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