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8화 〉88화 혁명군
반군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꽤 군대다운 모습을 하고 있었다.
예전 마족들에게 점령당했던 도시에서는 궁지에 몰린 사람들이 억지로 만들었다보니 군대라고 부르기 민망할 정도로 엉망이었었다.
하지만 이들은 처음부터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만들었고, 자발적으로 모인 사람들이다 보니 제대로 전투직인 사람들도 많았고, 각자의 역할도 뚜렷했다.
이동하면서 그들에게 들은 정보를 바탕으로 대충 레지스탕스 정도의 규모일 거라고 생각했었으나, 도시의 구석 30%정도를 제대로 점령해서 기지로 이용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정의감 하나만으로 참가한 사람의 비중이 높다보니 서로 의사소통도 잘 되고 체계적으로 잘 움직이는 느낌이었다.
“흐음....아쉽네요.”
리더 아울이 나를 사람들에게 소개하고 싶다는 걸 극구 반대해서 겨우 말릴 수 있었다. 괜히 시선을 끌고 싶지 않다.
물론 금세 소문이 날 것이고 작전에 투입되면 내 이름이 퍼지는 걸 막을 수 없겠지만, 조금이라도 시간을 끌고 싶었다.
아울은 아쉬워했지만 강제로 날 설득하려들지는 않았다.
“판은 다 깔아놨습니다. 이라유님 같은 강자 한 명만 구하면 작전을 바로 시작할 수 있었죠.”
도시에 도착하자마자 사령관실로 가서 간단하게 브리핑을 들었다.
이들은 관리자를 제압하는 게 최종 목표였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해결해야 하는 문제가 있었다.
바로 인질들을 구출해 내는 것이었다.
아직까지는 반군 세력의 힘이 약했기 때문에 그들 도시군도 군대로 공방을 하는 수준에 그쳐 있지만, 만약 그들이 힘에 부친다고 생각하게 되면 인질들에게 무슨 짓을 할지 알 수 없기 때문이었다.
물론 지금도 몇몇 인질들은 가족이 반군에 참가해 있다는 이유만으로 학대를 당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괜찮은 수준이다. 교육과 발전 목적으로 데려온 사람들을 학대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 현재 관리자에 대해 우호적이었던 사람들도 반감을 가지게 될 수 있었기 때문에,
아직은 반군이 악역인 상태로 있어야 했고, 관리자가 도시의 보호자로서 보이고 있어야 했다.
그런데 만약 관리자가 궁지에 몰리고 오로지 전쟁의 승리만을 위해 인질들을 이용하게 된다면, 자신들의 가족을 지키기 위해 반군이 순식간에 해체돼 버릴 위험이 있다.
“그래서 인질들이 잡혀 있는 기관들을 모두 조사해놨고, 스파이들을 잠입시켜둔 상태입니다.”
그가 도시 지도를 내게 보여줬다.
상당수가 학교였고, 공장이나 노역장도 몇몇 있었다.
“사창가?”
몇몇은 사창가도 있었다.
“....네....몇몇 여자들은 사창가에 묶여 있는 걸로 확인 됐습니다.”
아울이 어두운 표정으로 대답했다.
“시민들에게 그걸 밝히면 어느 정도 동조를 얻을 수 있지 않아?”
“이미 시도해 봤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창녀와 관련된 일이라면 본인들이 믿고 싶은 대로만 믿어버린다는 것만 알게 됐죠.”
그러니까 그녀들이 억류돼 있다는 걸 믿지 않고, 시민 상당수가 창녀 본인들이 스스로 들어간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그들이 소문을 흘려도 반군의 선동으로 치부돼 버렸다는 것이다.
학교나 노역장에 대한 것도 마찬가지였다.
교육을 시켜주는데 뭐가 문제냐는 식이었고, 노역장도 범죄자들이니 신경써줄 필요가 없다는 식이었다.
몇몇 학대 증거를 내놓기도 했지만, 시민들은 현재의 생활을 지키기 위해서 전혀 믿지 않았다.
인질들을 단순히 감옥에 가둬놓지 않고 교묘하게 시민들의 비난을 피할 수 있게 만들어 놨다.
아무리 봐도 반군이 악역이 돼 있는 지금 상황에서는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어 보였다.
“이 상태로 관리자를 쫓아낸다고 쳐, 그 다음은 어떻게 할 건데? 너희들을 상대로 다시 반군이 생기지 않을까?”
“그 점에 대해서도 다 준비를 해놨습니다. 우선 인질들을 모두 해방한 뒤, 그들을 통해 관리자의 악행을 고발하고 우리 행동의 정당성을 선전할 것입니다.”
흐음....말은 그럴싸하지만, 그게 뜻대로 될까.
어차피 거기까지는 나와 상관없는 일이었기 때문에 입을 다물어버렸다.
내가 할 일은 단순했다.
인질들이 잡혀 있는 시설 중 하나에 잠입해서, 정해진 시간에 폭동을 일으켜 시설을 마비시키고 인질들을 풀어주는 것이었다.
“씨발, 설마 사창가에 들어가라는 건 아니겠지?”
그의 설명을 듣고 내가 화내며 말하자, 아울이 당황하며 변명했다.
“설마요! 남자들에게 잡히면 완전히 무력화된다는 걸 알고 있는데 거기에 보내겠습니까.”
아, 그러니까 내 몸이 소중하다는 게 아니라 단순히 전투력이 사라지기 때문이라는 거군.
“그런 몸으로 학교에 들어가라고 할 수도 없으니 강제 노역장 중 하나에 잠입해 주시면 됩니다.”
“범죄자들 사이로 들어가라고?”
내가 사창가와 큰 차이가 있냐는 투로 대답했다.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이미 잠입해 있는 스파이가 도와줄 것이고, 사우스와 페넬로페도 라유님과 동행할 겁니다.”
“뭐?”
나는 깜짝 놀라며 입구 옆에 서 있는 사우스와 페넬로페를 봤다. 그들은 이미 알고 있었는지 전혀 표정에 변화가 없었다.
“저들이 라유님 옆에 붙어서 호위해 줄 겁니다. 안심하셔도 됩니다.”
“....각오가 대단하잖아.”
“....가족이 잡혀 있습니다.”
아아, 가족, 그렇지. 나는 아울이 실제 유저일지 npc일지가 궁금했다. 나도 모르는 가족에 대한 애정을 아는 너는 사람일까 인공지능일까.
“하지만 미리 말했듯이 난 일주일만 채우고 갈 거야.”
내가 단호하게 말했다.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일주일이나 걸리지 않고 라유님께서 잠입한 뒤 이삼일정도 뒤에 인질 해방 작전이 시작될 예정입니다. 쓸데없이 시간 끌어서 잠입해 있는 요원들의 체력을 소모시키고 싶지는 않으니까요.”
나는 잠자코 머리를 굴렸다. 그의 말만 들어보면 큰 문제가 없어 보였지만, 항상 말만 들었을 때는 그럴싸하단 말이지.
끄응....
차라리 오늘 밤에라도 도망쳐 버릴까? 지금 당장이라도?
나는 머릿속으로 지금 당장 이 자식들을 죽이고 도망쳤을 때 앞으로 내가 지게 될 리스크와, 잠자코 이들을 따랐을 때 지게 될 리스크를 계산해봤다.
정의감으로 똘똘 뭉친 놈들이란 말이지.
군대까지 만들었고.
이 자식들 뒤통수를 치면 이후 이 세계에서 살아가는 게 좀 고달파질 것이고,
이들이 하는 말을 따르면 그냥 보지나 좀 따먹히는 정도일 거 같았다.
휴우....한두 번 당한 것도 아니고, 게다가 쟤들도 있으니.
나는 다시 한 번 더 사우스와 페넬로페를 돌아봤다.
페넬로페는 잘 모르겠으나, 여기까지 이동하는 동안 사우스가 보여준 태도는 믿을 만했다. 최대한 나를 배려해주려고 했고, 내 몸에 닿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분명 나에게 유혹당한 게 보였지만 필사적으로 욕망을 억누르는 게 보였다. 가끔 있는 도덕치가 높은 그런 인물이었다.
이미 이 여정을 하는 동안 적을 너무 많이 만들었다. 차라리 조금 범해질 위험이 있더라도 이들을 적으로 만들지 않는 게 좋겠다고 판단했고, 아울에게 협조하겠다고 대답했다.
“그런데 말이야, 강제 노역장은 죄수들이 있는 곳이라며? 인질이랑 일반 죄수랑 섞여 있을 텐데 어떻게 구분해?”
내가 중요한 걸 놓치지 않고 말했다.
“구분할 필요 없습니다. 풀어줄 수 있는 사람은 전부 풀어주시면 됩니다.”
“뭐? 죄수들을 도시에 그냥 풀어줄 거라고?”
“모두가 다 흉악범은 아닙니다. 관리자의 정치질로 인해 누명을 쓰고 들어가 있는 사람도 상당히 많습니다.”
“하지만 결국 모두 무고한 건 아니잖아?”
그러자 아울이 잠깐 뜸을 들인 뒤 대답했다.
“대의를 위해서는 포기해야 하는 부분도 있습니다.”
아아, 그런 부류의 인간이었구나.
하지만 나는 대꾸하지 않았다.
아울에게 대답을 한 뒤로도 고민이 끝나질 않았지만, 내게는 고민할 시간이 많지 않았다. 오늘 밤 곧바로 노역장으로 들어가야 했기 때문이었다.
“라유님, 손을 좀....”
사우스가 수갑을 들고 내게 말했다. 나와 사우스, 페넬로페는 어느 어두운 골목에 숨어 있었다. 셋 다 이미 죄수복으로 갈아입은 상태였고, 사우스와 페넬로페는 이미 손에 수갑을 찬 상태였다.
이제 내 손만 묶으면 된다.
으윽....
하지만 쉽사리 손을 내밀 수가 없었다.
그동안 수없이 묶여서 범해졌던 기억들 때문에 손이 덜덜 떨렸고, 그냥 다 때려치우고 도망가 버리고 싶었다.
수갑도 조작이 돼 있어서 스스로 풀어버릴 수 있는 가짜 수갑이었다. 그걸 알지만, 그래도 마음이 내키질 않았다.
“시간이 없습니다.”
잠자코 있던 페넬로페가 내 손을 잡아서 사우스에게 내밀었다.
철컥!
기어이 수갑이 채워지고 말았다.
그녀는 말수가 굉장히 적었다. 말수만 적은 게 아니라 웃지도 않았다. 항상 근심에 싸여 있었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꺼려했다.
그런 성격으로 잘도 이 반군에 들어와 있다고 생각했다.
“왔습니다.”
우리 세 명 옆에는 도시군 경찰로 위장한 사람이 한 명 더 있었다. 이 사람이 우리를 인도해온 척 하며 죄인 수송 차량에 우리를 태울 것이다.
물론 그 차량의 운전수도 반군의 스파이였다.
이 자식들 꽤 하잖아.
상당히 철두철미하게 준비를 해왔다는 걸 알 수가 있었다.
우리 앞에 도시군 마크가 찍혀 있는 호송 트럭이 멈춰 섰다. 그 안에는 운전자를 빼고도 선탑자 군인 한 명이 더 타고 있었는데, 그조차도 스파이였다.
“좋아, 이 사람인가?”
군인이 나를 보고 물었고, 우리를 잡고 있는 역할의 경찰이 고개를 끄덕였다.
철컹!
트럭 문이 열리자 이미 잡혀 있는 죄수가 상당수 있었다. 이들까지 모두 스파이는 아니었기 때문에 이런 번거로운 짓을 해야 했던 것이다.
그런데 죄수들은 수갑 외에도 목에 얇은 금속 목걸이를 다들 차고 있었다.
“자, 잠깐만!”
찰칵!
내가 불안한 낌새에 소리 질렀지만 이미 군인이 내 목에도 목걸이를 채워 버렸다.
옆을 보니 사우스와 페넬로페도 똑같은 목걸이를 차고 있었다.
으으.....불안하다....이래도 되는 걸까....
아마 죄수들을 통제하기 위해 모든 죄수가 장착하는 노예 목걸이에 불과할 것이고, 사우스와 페넬로페도 장착한 게 보였지만 불안한 심정을 지워 버릴 수가 없었고, 심장이 쿵쾅거리는 걸 잠재울 수가 없었다.
군인이 사우스와 페넬로페가 내 호위역이라는 걸 눈치 채고 죄수들의 자리를 다시 정리했다.
세 자리를 만들어 사우스와 페넬로페 사이에 내가 앉도록 만든 것이다.
쿵!
군인이 사우스와 뭔가를 눈빛으로 주고받는 거 같더니 문을 닫았다. 그러자 작은 전등조차 없는 트럭 안이 완전한 어둠으로 뒤덮였고, 나는 안대를 채워진 것 같은 공포에 몸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안심하세요.”
사우스가 옆에서 내 손을 꼬옥 잡아줬다.
약간이나마 진정이 되는 기분이었다.
한참을 달린 뒤에야 트럭이 멈춰 섰고, 문이 열렸다.
우리는 굴비처럼 사슬로 줄줄이 꿰어져서 군인의 뒤를 따랐다.
“얘들은 누구야?”
죄수들의 인적사항을 확인하던 검사관이 나와 사우스, 페넬로페를 보고 인상을 찡그리며 물었다.
그리고 우리를 인도해온 트럭의 선탑자, 스파이가 검사관에게 다가가서 뭔가 귓속말을 했다.
“좋아, 들어가. 그리고 이걸 받아서 안쪽에 있는 교도관에게 전달해.”
검사관이 우리 셋에게 인적사항이 적혀 있는 차트를 각각 들려줬다.
그리고 선탑자가 계속 우리를 인도했는데, 그가 내 옆으로 와서 작게 속삭였다.
“빨리 읽으십쇼.”
차트를 읽어보니 내가 아닌 엉뚱한 사람의 인적 사항이 적혀 있었다. 아마 우리 셋을 관리자 통제에 놓여 있는 인질로 둔갑시킨 듯했다.
‘에이미’
그게 내가 써야 할 이름이었다. 이 도시 어떤 무명 부호의 딸인 것으로 돼 있었다.
계속 인도돼서 마침내 도착한 곳은 감옥이었다.
교도관이 앞에서부터 한 명씩 인적을 확인 뒤 방을 배정해서 넣었고, 사우스까지 넣은 뒤였다.
“너, 얼굴 들어봐.”
교도관이 내 턱을 잡고 이리저리 돌려서 내 얼굴을 살폈다.
히잇!....
그리고 내 가슴을 움켜쥐면서 감상하기 시작했다.
“꽤 괜찮은데, 넌 이쪽으로 나와 있어.”
씨발....
사우스가 내게 불안한 눈빛을 보냈지만, 이제 그는 나를 도울 수 없었다.
일단 감옥 안으로 들어가면 사우스와는 다른 방을 쓰겠지만 페넬로페와는 같은 방을 쓸 수 있도록 조작을 해놨다고 했다.
하지만 당연하다면 당연할 변수가 생겨버린 것이다.
그리고 그 변수는 생각 이상으로 커졌다.
내 뒤에 있던 페넬로페도 열외 돼서 내 옆으로 왔기 때문이었다.
“좋아, 그럼 준비해볼까.”
죄수들을 전부 감옥 안으로 보낸 교도관이 나와 페넬로페를 보며 입맛을 다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