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무관 196화
“강소성, 안휘성, 절강성 중 하나에 본단이 있소.”
늙은이의 눈빛은 자기 말이 절대 틀리지 않았다는 확신에 가득 차 있었다.
“셋 중에 하나?”
“그렇소.”
“본단이 거기에 있는 거 확실해?”
“확실하오. 전서응은 그곳들이 아닌 다른 방향으로 날아간 적이 없소.”
백서휘는 늙은이의 눈동자가 보여주는 떨림이나 근육의 수축, 입술의 메마른 정도를 확인했다.
진짜인지는 모르겠지만 노인은 최소한 거짓을 말하고 있지는 않았다.
“……회주가 있는 곳이 본단이라던데? 사실인가?”
“사실이오.”
“회주는 유목민처럼 떠돌아다니는 삶을 사나?”
“예전에는 그랬을지 모르나, 지금은 아니오. 한곳에 정착해 있소. 바로 조금 전에 내가 말하지 않았소. 본단은 강소성, 안휘성, 절강성에 있다고.”
“세 곳 중 한 곳에 뿌리를 내렸다는 건가?”
“그렇소.”
중원 전역을 뒤지지 않아도 된다는 점은 좋았지만 주윤문을 찾는 일이 어렵다는 건 변하지 않았다.
‘정보 동맹을 빠르게 만들고 그 전력을 세 곳에 집중한다면 본단을 찾아낼 수 있을 거야. 문제는 이게 거짓이거나 잘못된 정보일 경우인데…….’
본단이 세 곳이 아닌 다른 곳에 있을 경우에는 돌이킬 방법이 존재하지 않았다.
‘어쩌지?’
주윤문이 신이 되는 꼴은 죽어도 볼 수 없었다.
백서휘는 지금이 도박수를 던져야 할 때라는 걸 직감했다.
‘일단은 새로 만들어질 정보 동맹을 믿어보자.’
어떻게 해야 할지 결정을 내린 백서휘는 다른 질문을 늙은이에게 던졌다.
“부정력에 대해 알고 있나?”
“알고 있소.”
“알고 있다니 편하게 질문하지. 회주의 목표치는 얼마고 모은 양은 얼마나 되지?”
“목표치가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오.”
“모은 양은?”
“대략적으로나마 수치화한다면 지금의 3할은 더 모아야 한다고 들었소.”
“3할?”
“승천 의식을 안정적으로 치르기 위해 필요한 최소치요.”
예상보다 더 많이 모았단 사실에 백서휘의 얼굴이 석고상처럼 딱딱해졌다.
“과거의 정보이니 아마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이 모으긴 했을 거요. 그리고 불안정적인 걸 각오한다면 의식을 치를 때 필요한 부정력의 양이 줄어들기 때문에…….”
“필요한 양이 줄어들어? 그럼 의식을 치를 때까지 얼마 남지 않았을 수도 있겠네?”
“확언하듯 말할 수는 없지만,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보오.”
“하!”
백서휘는 시간이 없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았다.
‘정보 동맹을 최대한 빨리 출범시켜야겠어.’
늙은이를 데리고 함께 밖으로 나오니 후개가 백서휘를 기다리고 있었다.
“무슨 용건으로 날 찾아온 거지?”
“화산파를 지켜준 것에 대한 감사 인사를 맹을 대신해…….”
“정말 그 용건으로 날 찾아왔나?”
백서휘는 매서운 두 눈으로 후개를 뚫어져라 바라봤다.
“……다른 용건이 있습니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빙빙 돌려 말하지는 마.”
“혼천회의 본단을 찾는 개방도 중 다수를 광풍사와 싸우는 곳으로 보냈으면 합니다.”
“왜 그래야 하지?”
“지지부진한 지금의 상황을 탈피하려면 싸울 수 있는 무인이 더 많이 필요합니다.”
“그러지 말고 광풍사는 내가 처리할 테니까 너는 북경으로 가서 최대한 빨리 정보 동맹을 만들어.”
“정보 동맹이요?”
백서휘는 하오문의 문주에게 했던 말을 후개에게도 해줬다.
“시간 없으니까 최대한 빨리 조직해서 활동 시작해야 한다.”
“시간이 그렇게 모자랍니까?”
“3할만 더 있으면 승천 의식을 치를 수 있다고 하는데, 이것도 과거의 정보라 지금은 훨씬 더 많이 모았을 거야.”
후개의 얼굴이 백지장처럼 하얗게 질렸다.
“그럼 이제 저희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겁니까?”
“하던 일을 계속하면서 회주를 찾아야지. 그리고 찾으면 온 힘을 다해서 회주를 제거하고.”
“끄응.”
“나는 이 늙은이 다시 맡기고 바로 광풍사랑 싸우러 갈 테니까, 너는 북경으로 올라가서 정보 동맹을 조직해. 그리고 정보 동맹이 조직하는 일이 끝나면 강소성과 안휘성, 절강성에 전력을 집중해서 본단을 찾고.”
“알겠습니다.”
* * *
무림맹의 무인들은 말을 타고 있는 광풍사의 무인들을 원 모양으로 둥그렇게 포위했다.
말을 타고 있는 광풍사의 무인들은 섬멸당하리란 생각이 없는지 낄낄거리며 웃고 떠들었다.
그때 원의 일부가 갈라지더니 백서휘가 천천히 걸어 나왔다.
일정 거리를 두고 멈춘 그는 무표정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순순히 항복하면 봐줄 테니 빈손으로 말에서 내린 후 무릎을 꿇고 있어라.”
광풍사를 이끄는 두목이 껄껄 웃더니 말을 앞으로 몰고 나왔다.
“이런 일이 우리에게 한두 번 있었던 줄 아느냐? 우리는 그 위기들을 모두 뚫고 끝내 살아난 역전의 용사들이다. 너희 같은 것들에겐 잡히지 않아!”
“후회할 짓을 하는구나.”
“후회? 그게 뭐냐? 난 그런 단어를 모른다.”
“어쩔 수 없지.”
백서휘는 작게 한숨을 내쉬고는 겨자씨만큼 작은 강환을 수십 개 만들어냈다.
광풍사의 두목은 그의 말과 행동에서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전원 돌격!”
광풍사의 무인들이 말을 몰아 정면을 향해 돌격하기 시작했다.
백서휘는 기다렸다는 듯 수십 발의 강환을 쏘아 보냈다.
콰콰콰콰콰쾅!
지축을 뒤흔드는 굉음과 번쩍이는 섬광에 무림맹의 무인들이 눈과 귀를 막았다.
그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충격파와 먼지구름이 그들을 덮쳤다.
무림맹의 무인들은 넘어지지 않기 위해 다리에 힘을 꽉 주었다.
잠시간의 시간이 지나고 주변이 고요해졌다.
무림맹의 무인들은 조심스럽게 눈을 떠서 앞을 바라봤다.
앞엔 커다란 구멍들이곳곳에 만들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 구멍들 위에는 조금 전까지 광풍사의 무인이었던 것이 모두 육편이 되어 흩어진 상태였다.
무림인들은 믿기지 않는다는 눈으로 백서휘와 구멍들을 번갈아 가며 봤다.
“이, 이게 인간이 만들 수 있는…….”
“백서휘 저자는 무신(武神)인가?”
“어떻게 저렇게 강할 수 있는 거지?”
백서휘는 무심한 얼굴로 자신의 천막 안에 들어갔다.
미리 싸두었던 짐을 챙긴 그가 밖으로 나오자 모용정광이 놀란 얼굴로 뛰어왔다.
“벌써 가려는 것이오?”
“시간이 없으니까.”
백서휘는 짤막하게 말하고는 북경을 향해 응룡비천신법을 펼쳤다.
쉬지 않고 달리니 북경에 도착하는 건 금방이었다.
‘정보 동맹이 만들어졌다고만 들었지 어디 모여 있는지는 못 들었네.’
지나가는 거지를 붙잡고 후개가 있는 곳을 물어봤다.
“안내해드리겠습니다.”
거지의 뒤를 따라 한참을 걸으니 커다란 장원이 나왔다.
“여기 맞아?”
“맞습니다.”
백서휘는 품에서 돈을 꺼내 거지에게 던져주었다.
“자!”
“감사합니다! 복 받으십시오!”
거지는 공손히 인사하고 원래 가려던 곳으로 갔다.
백서휘 앞에는 두 명의 위사가 서 있었다.
두 명 모두 백서휘와 비슷한 또래로 보였다.
뚜벅뚜벅 걸어가니 위사 쪽에서 먼저 얼굴을 알아보고 말을 걸었다.
“혹시 백 관주님 되십니까?”
“백 관주가 백서휘를 말하는 거면 맞아.”
“잠시만 여기서 기다려주십시오.”
둘 중 나이가 좀 더 어려 보이는 자가 장원 안으로 들어갔다.
반각 정도를 가만히 서 있으니 후개와 유소화가 헐레벌떡 밖으로 뛰어나왔다.
“드디어 오셨군요.”
“오셨어요?”
“유소화? 네가 왜 여기에 있어?”
“하오문을 이어받고 싶으면 경험을 많이 쌓으라고 스승님께서 말씀하셔서 자원했어요.”
“호남성 지부는 그럼 다른 사람이 맡게 되는 건가?”
“아마 그럴 거예요.”
금의위의 진무사와 동창의 당두도 어느새 밖으로 나와 백서휘에게 정중하게 인사했다.
뻗대지 않는 걸 보면 자신의 무력이나 황석준과의 관계를 알고 있는 게 분명했다.
“금의위 북진무사 팽서중이라고 하오.”
“만나 뵙게 돼서 영광입니다. 동창에서 당두로 있는 송우석이라고 합니다.”
“백서휘라고 한다. 과거에 있었던 일 때문에 태업을 하면 바로 목을 베어 버릴 테니까 각오하는 게 좋아.”
“……알겠소.”
“알겠습니다.”
“서로 소개는 다 끝난 것 같으니 동맹으로 일하면서 만들어낸 성과를 봤으면 하는데.”
“여기보다는 안으로 들어가서 이야기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요?”
유소화의 제안에 백서휘가 고개를 끄덕였다.
다섯 사람은 사무 작업이 이루어지는 공간으로 향했다.
사무 공간에는 각기 다른 조직의 사람들이 전서구나 인편을 통해 들어온 정보를 분류하고 분석하는 중이었다.
‘열심히 일은 하는 것 같은데…….’
지금 가장 중요한 건 ‘열심히 하는 것’보다 누가 뭐라고 해도 ‘성과를 내는 것’이었다.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성과라고 주장하고 싶은 거야?”
“아닙니다.”
“그럼?”
“성과는 바로 저기에 있습니다.”
후개가 가리킨 곳을 보니 강소성과 안휘성, 절강성이 커다랗게 그려진 지도가 있었다.
“저게 뭐지?”
“빨간색 깃발 표시는 지부가 있다고 확인된 곳, 노란색 깃발 표시는 지부가 있을 거라고 추정되는 곳, 초록색 깃발 표시는 아무것도 없는 곳을 뜻합니다.”
“빨간색 깃발 표시가 지부가 있을 거라 확인된 곳이라고?”
“예.”
“그렇다고 하기엔 너무 많은데 이게 다 지부 맞나?”
“초소형 규모의 지부도 추가한 거라서 많아 보이는 겁니다.”
그때 동창 소속으로 보이는 자가 노란색 깃발 표시를 빨간색 깃발 표시로 바꾸었다.
“거기, 이리 와봐.”
동창의 환관이 주위를 둘러보더니 자기를 가리켰다.
“저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래, 너.”
동창의 환관이 빠르게 걸어와 고개를 숙였다.
“무슨 일로 부르셨는지…….”
“조금 전에 바꾼 곳에 지부가 있는 거 확실해?”
“남만야수궁의 도움으로 1차로 의심 지역인 것을 확인했고 사람을 보내 감시해서 2차로 확인한 결과 지부가 맞다는 결론이 났습니다.”
“확인만 하는 거야?”
“무슨 의도로 말씀하시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토벌은 안 하냐고.”
“토벌은 일단 다수의 황군과 소수의 금의위, 동창, 무림맹, 사도련 고수들을 동원해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럼 저 초록색 깃발이 있는 곳은 토벌이 된 곳을 말하는 건가?”
“아예 없는 곳이거나 토벌이 다 끝난 곳에는 초록색 깃발 표시를 해놓습니다.”
“음…….”
빨간색 깃발만큼은 아니지만, 초록색 깃발로 표시된 곳이 꽤 있었다.
“지금 속도라면 본단은 근시일내에 발견하겠네?”
“그것까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좋아, 가봐.”
동창의 환관을 돌려보내고 백서휘는 네 사람 쪽으로 몸을 돌렸다.
“본단은 언제쯤 발견할 수 있을 것 같아?”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후개가 주눅 든 목소리로 말했다.
“무작정 기다리는 수밖에 없나 보네.”
“예, 지금은 그렇습니다.”
“토벌이 빨라지면 본단을 발견하는 속도도 더 빨라지겠지?”
“토벌이 끝나면 감시해야 할 전력을 다른 곳으로 돌릴 수 있으니 더 빠르게 본단을 발견할 수 있긴 할 겁니다.”
“그래? 그러면 나도 토벌을 도와야겠다.”
“괜찮으시겠습니까?”
“안 괜찮을 이유가 없지.”
“그럼 백 관주님께 규모가 큰 곳 중 일부를 맡겨도 되겠습니까?”
“얼마든지 맡겨.”
* * *
“회주님! 지부들에서 보낸 전서응이 계속 날아들고 있습니다!”
새로 군사 역할을 맡게 된 자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가부좌를 틀고 있던 주윤문이 두 눈을 뜨며 물었다.
“……서신에 적혀 있는 내용은?”
“도움을 요청하는 서신이 대다수입니다.”
“백서휘 때문인가?”
“예, 비밀 지부들이 백서휘 측에 의해 발견되고 소탕당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하하하하하!”
한참을 웃던 주윤문이 정색을 했다.
“내 꼴이 아주 우습게 됐구나.”
“……회를 탈퇴하겠다는 곳도 계속 증가하고 있습니다.”
새로 군사가 된 자는 공포로 몸을 부르르 떨면서도 할 말은 계속했다.
“그들에게 전해라. 짜인 판을 뒤집을 수 있는 방도가 존재하니 조금만 더 기다려달라고.”
“확실한 당근을 제시하지 못하면 이탈은 계속되는 걸 넘어서 가속화될 겁니다.”
“당근이든 채찍이든 네 맘대로 정해도 좋으니 시간을 끌어봐라.”
“얼마나 끌어야 합니까?”
“부정력이 차는 속도가 매번 달라져서 확실하지는 않지만 한 달 정도만 끌어줘도 좋을 것 같구나.”
“수색망이 계속 좁혀져 오고 있어서 한 달은 힘듭니다. 놈들의 수색 속도를 보면 스무날 안으로 이곳의 위치가 들키게 될 겁니다.”
“음…….”
“어차피 위치가 들키게 될 거라면 회에 속한 자들을 모두 본단으로 불러들여 공격을 대비하고, 백서휘 측의 공격이 들어오면 농성하면서 시간을 끄는 게 어떻겠습니까?”
“좋다. 지부에 있는 자들을 모두 본단으로 불러들이거라.”
“예!”
주윤문은 바닥에 그려진 문양과 알 수 없는 글자를 보며 비틀린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