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무관 195화
서안에서 남쪽으로 50여 리를 달린 끝에 백서휘는 흥교사가 있는 두곡(杜曲)에 도착할 수 있었다.
‘기감을 넓혀서 혼천회의 지부가 정확히 어디 있는지를 알아내자.’
흥교사 주위를 걸으면서 기감에 집중하는데 누군가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그 누군가는 까까머리를 하고 이마엔 계인이 찍혀 있었다.
‘흥교사 소속의 승려인가 보군.’
백서휘는 무시하고 다시 걸으면서 기감에 집중하려는데 승려가 계속 말을 걸었다.
“시주, 제 말이 안 들리십니까? 일이 있어서 그런데 사찰을 떠나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일? 무슨 일?
“정기적으로 해야 하는 일입니다.”
흥교사 소속의 승려가 웃는 얼굴로 말했다.
“그 정기적으로 해야 하는 일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도울 수 있을까?”
“외부인의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일입니다.”
무척이나 의심스러웠지만, 승려가 무공을 배운 자가 아니라 확신까지는 할 수 없었다.
‘혈루단을 생각하면 무공을 익히지 않은 자도 혼천회의 일원이 될 수 있어. 어쩌면 이 승려도 이곳 지부의 일원일지 모르지.’
의심의 각을 세우고 보니 수상한 게 한둘이 아니었다.
흥교사는 향화객이 많이 찾는 곳이라 부유한 곳이긴 했다.
그렇다고 해도 승려가 비단옷을 입는다는 건 말이 되지 않았다.
‘머리 깎고 계인을 찍었다고 다 승려는 아니지.’
거기다 말을 할 때마다 승려의 입에서 주향(酒香)이 약간 묻어 나왔다.
‘술 먹다 나왔나 보군.’
자신이 계속 사찰 주위를 돌아다니니 쫓아내라는 명령을 받고 나온 가짜 승려임이 분명했다.
백서휘가 눈앞에 있는 가짜 승려를 보며 피식 웃었다.
“왜 그렇게 웃으십니까?”
“이 상황이 재밌어서 그래. 네 정체가 궁금하기도 하고.”
“정체라니요? 저는 흥교사의 승려일 뿐입니다.”
“승려면 불경에 대해 잘 알겠지? 어디 아는 불경 있으면 한번 외워보지그래.”
“장난하지 마시고 사찰을 떠나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불경 외워보라니까.”
가짜 승려는 꿀 먹은 벙어리처럼 굴었다.
“못하겠지?”
“제가 시주의 말을 들어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불경 아는 걸 자랑할 일은 더더욱 없고요.”
“끝까지 아닌 척을 하겠다?”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
휙휙휙!
백서휘의 손가락 끝에서 나온 지풍이 가짜 승려의 아혈과 마혈을 동시에 점혈했다.
“혼천회 소속 맞으면 눈 세 번 깜빡거려.”
겁을 먹은 가짜 승려는 백서휘가 시키는 대로 했다.
“오! 진짜 혼천회 소속이었어? 원래 뭐 하던 놈인데? 혈루단 같은 애들인가?”
겁을 먹은 가짜 승려는 눈물을 뚝뚝 흘렸다.
“울지 말고 지부 안으로 들어가려면 어떻게 해야…… 아, 이건 아혈을 풀어주는 게 낫겠네. 다시 말할 수 있게 해줄 건데, 소리를 지르거나 돌발 행동하면 그냥 그대로 살수를 쓸 거야. 알아들었으면 눈 세 번 깜빡거려.”
가짜 승려가 눈을 세 번 깜빡거렸다.
백서휘는 가짜 승려의 아혈을 풀어주고 살수를 쓸 준비를 했다.
아주 멍청하지 않은 모양인지 가짜 승려는 돌발 행동을 하지 않았다.
“지부 안으로 들어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말해 봐.”
“흑흑흑! 주지 스님이 머무는 곳에 승복을 보관하는 목함이 있습니다. 그 목함의 뒤편에 그려진 원을 누르면 지부로 가는 입구가 열립니다.”
“그게 전부야?”
“흑흑! 전부입니다.”
가짜 승려의 표정이나 말투에서 거짓을 말한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다.
‘믿어도 되겠군.’
백서휘는 가짜 승려의 머리에 대고 진각을 있는 힘껏 밟아 버렸다.
수박 깨지는 소리와 함께 그의 머리가 터지면서 사방으로 잔해가 흩어졌다.
“가볼까.”
은형잠종술을 쓴 채 흥교사의 경내를 돌아다니다 오늘내일하는 기운을 가진 늙은 승려를 발견했다.
늙은 승려는 잠시 바람을 쐬러 나온 건지 사찰을 둘러보고는 커다란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여기군.’
데려다줘서 고맙다고 속으로 말하며 늙은 승려의 사혈을 짚었다.
늙은 승려는 힘없이 쓰러지며 그대로 죽어 버렸다.
백서휘는 승복을 담아놓는 보관함을 찾아서 한쪽으로 빼 버렸다.
그러자 가짜 승려의 말대로 낙서처럼 그려진 원 모양이 나타났다.
‘제발…….’
원 모양을 꾹 하고 누르니 기관 장치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리면서 바닥이 열렸다.
바닥에 있는 계단을 밟고 내려간 후 문이 나올 때까지 계속 앞으로 걸어갔다.
‘철문이다!’
소림의 무공인 백보신권을 펼치듯 진각을 밟으면서 권풍을 날렸다.
쾅!
철문이 부서지면서 안에 있는 자들이 백서휘를 보게 됐다.
“누구…… 헉! 백서휘다! 백서휘가 나타났다! 모두 약속한 절차대로 서류를 불태우고…… 커억!”
“서류들 불태우지 마! 태우다 걸리는 놈은 온갖 고문을 해서 죽일 거야!”
적들은 협박에 굴하지 않고 서류를 태우고 밖으로 도망가려 했다.
예상과 다른 일이 벌어졌지만 백서휘는 당황하지 않았다.
‘군사의 수하가 누군지 모르니까 일단 다 살려놓고 보자.’
백서휘는 발 빠르게 움직이면서 지풍을 날려 불을 꺼 버렸다.
서류를 파기하지 못하게 되자 적들이 당황하기 시작했다.
‘멍청이들.’
백서휘는 적들에게 지풍을 날려 마혈과 아혈을 동시에 점혈했다.
적들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통나무처럼 쓰러졌다.
“이제 개방이랑 하오문 놈들만 기다리면 되나.”
백서휘는 개방과 하오문에서 보낸 사람이 오길 기다렸다.
그들이 보낸 사람이 도착한 건 여덟 시진이 지난 후였다.
“헉헉헉! 느, 늦어서 죄송합니다.”
“이,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
“됐고 안에 서류랑 혼천회 놈들 있으니까 정보를 쥐어 짜내서 가져와. 고문 심하게 해서 죽이지는 말고.”
“아, 알겠습니다.”
백서휘는 흥교사의 경내를 돌아다니면서 화두에 대해 참오했다.
‘비물질적인 것을 벨 수 있다면 어쩌면 사람의 영혼도 베어낼 수 있지 않을까?’
보이지 않아서 그렇지 진운처럼 영혼이 눈에 보이면 검으로 베는 것도 가능할 것 같았다.
물론, 이건 느낌만 그런 것이라 실제로 벨 수 있을지 없을지는 아무도 몰랐다.
‘영혼을 감각적으로 느끼는 게 먼저일 것 같은데…… 아난타, 혹시 용안을 지금보다 더 강화해서 영혼을 볼 수는 없는 겁니까?’
『네가 완전한 용이 된다면 두 눈으로 영혼을 보는 것도 가능해지겠지.』
백서휘는 아난타의 말에서 가능성을 봤다.
‘평범한 인간일 때는 부분 용인화를 해서 용안을 쓸 수 있었어. 그러면 용인화가 된 상태에서 두 눈만 부분적으로 진짜 용의 그것으로 변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가능은 하겠지만 그 방법을 추천하지는 않는다.』
‘왜죠?’
『도를 닦으면서 네 몸 안에 흐르는 용혈을 지금보다 훨씬 늘린다면 모를까. 지금의 용혈로는 용이 되기에 턱없이 부족하다.』
‘부족한 상태에서 진짜 용안으로 바꾸면 어떻게 되는지 알 수 있겠습니까.’
『죽음을 각오해야 한다.』
아난타는 거짓말을 하지 않으니 용안을 바꾸면 죽음을 각오해야 한다는 건 사실이리라.
‘아쉽네. 영혼을 한 번이라도 베어보면 다음 경지에 대한 실마리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래도 용혈을 늘릴 수 있다는 걸 알게 됐으니 나름의 소득은 있었다.
백서휘는 흥교사의 경내를 돌아다니는 걸 멈추고 하오문과 개방이 정보를 뽑아오길 기다렸다.
“관주님!”
“무슨 일이야?”
“혼천회 이인자의 수하라고 주장하는 자를 발견했습니다.”
“주장이 아니라 사실일 거야. 내가 이 지부에 있는 놈들을 한 놈도 안 죽인 건 그놈을 찾기 위해서거든.”
“아, 그렇습니까?”
“뭐 뽑아낸 정보라도 있어?”
“고문이란 고문을 다 했는데도 정보를 뽑아내지 못했습니다.”
“술법에 발동해서 죽을까 싶어 말을 안 한 건가.”
고문을 받아서 죽을 확률보다 술법이 발동해서 죽을 확률이 더 높아서 군사의 수하가 정보를 토해내지 않은 것 같았다.
“술법이요?”
“그놈 나한테 데려와 봐.”
“예!”
하오문도가 상처투성이의 늙은 남자를 데려왔다.
“가봐.”
“예!”
하오문도는 얼마 전까지 혼천회의 지부였던 곳으로 돌아갔다.
백서휘는 군사의 수하라는 늙은이와 함께 책 속의 세계로 들어갔다.
“오늘은 또 무슨 일로 온 거냐.”
“이놈 머리에 걸린 술법 좀 제거해 줬으면 해서 왔지.”
“뭐 하던 늙은인데?”
“혼천회 이인자였던 군사의 수하라고 하던데.”
“그러면 아는 것도 많겠구나.”
“그렇겠지?”
“그러면 술법을 제거할 수 없다.”
“왜?”
“이론적 연구는 충분히 했지만, 연습이 덜 됐다. 자칫 잘못하면 아까운 정보원을 잃을 수 있어.”
“그러면 다른 놈들 데려올 테니까 그놈들로 충분히 좀 실험을 해봐.”
“그러지.”
백서휘는 개방과 하오문이 조사하던 놈들을 모두 책 속의 세계에 집어넣었다.
사흘 정도의 시간이 지나니 목인걸의 아들이 책 속의 세계를 빠져나왔다.
“아버지께서 충분할 정도로 술법이 숙련됐다고 합니다.”
“좋아.”
백서휘는 사흘 동안 상처를 치료한 늙은이를 다시 책 속의 세계로 데려갔다.
“여, 여긴 어디요.”
“네가 정보를 토해낼 곳.”
“그, 그럴 일은 없을 거요.”
“술법 때문에 그러는 거면 걱정 안 해도 돼.”
“그게 무슨 소리요?”
“네 머리에 걸린 술법을 제거해 주겠단 뜻이지.”
“……지, 진짜로 그렇게 해준다면 당신들에게 무조건적인 협조를 하리다.”
“좋아. 믿어보겠어.”
백서휘는 늙은이를 목인걸에게 맡겼다.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있어.”
늙은이는 백서휘의 눈치를 봤다.
“저 인간이 하라는 대로 해.”
“……알겠소.”
늙은이는 목인걸이 시키는 대로 가만히 있었다.
목인걸이 품속에서 벌레가 들어 있는 호박(琥珀)을 꺼냈다.
“그건 또 뭐야?”
“길들인 고를 보관하는 도구다.”
진언을 중얼거리니 호박이 녹으면서 자그마한 벌레가 나타났다.
목인걸은 두려움에 몸을 떠는 늙은이의 콧속에 고를 집어넣었다.
“흡!”
“가만히 있어.”
“으윽! 알겠…….”
말을 제대로 마치지 못하고 늙은이가 기절해서 쓰러졌다.
“이거 제대로 일이 진행되는 중인 거 맞지?”
“일단은 그렇다.”
목인걸은 무심하게 말하고는 늙은이의 이마에 손을 가져갔다.
“옴 브레 라 브그 인…….”
늙은이의 코에서 피가 줄줄 나오기 시작했다.
백서휘는 목인걸의 아들을 쳐다봤다.
목인걸의 아들은 괜찮다는 의미의 수신호를 그에게 보냈다.
‘별일 아닌가 보네.’
조금 기다리니 늙은이의 코를 통해 다시 고가 빠져나왔다.
목인걸은 지친 얼굴로 고를 다시 멀쩡한 호박에 집어넣었다.
“이제 원하는 대로 신문해도 된다.”
“진실만을 말하는 술법을 거는 건…….”
“시간이 흐른 후라면 모를까 지금 당장은 이 자의 머리를 건드리지 않는 게 좋아.”
“그러면 고문하는 수밖에 없겠네.”
“그건 네 선택이다.”
“여기서 고문해도 되나?”
“이제는 휴식도 못 하게 하려는 거냐?”
사흘 동안 휴식 없이 일만 한 목인걸에게 자신이 너무하긴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안.”
“정말 미안하면 이곳을 나가서 일주일 후쯤에 들어오도록 해.”
“노력은 해볼게.”
백서휘는 늙은이를 데리고 밖으로 나왔다.
책 속 세계의 인공적인 조명이 아니라 자연 그대로의 햇살을 받으니 늙은이도 정신을 차렸다.
“여, 여긴…….”
“어디일 것 같아?”
“아!”
늙은이가 벌떡 일어나서는 무릎을 꿇고 백서휘를 바라봤다.
“태도는 맘에 드는군.”
“뭐든 말할 테니 몸에 손대는 건 더는 하지 말아주시오.”
“그건 그쪽이 하는 거 봐서 결정하도록 하지.”
“아, 알겠소.”
“자, 첫 번째 질문은 간단한 것부터 갈게. 회주의 이름은?”
“주윤문으로 알고 있소.”
늙은이는 또박또박한 발음으로 말했다.
“오! 꽤 진실한데?”
“당신에게 내가 거짓을 말할 이유가 없으니 진실만을 말하는 건 당연하지 않소.”
“거짓을 말할 이유가 왜 없는데?”
“살기 위해 이곳에 왔기 때문이오.”
“그게 무슨 소리지?”
“내 상관이 죽었소.”
“군사를 말하는 거면, 나는 군사를 죽인 적 없는데?”
“회주께서, 아니, 회주가 죽였소.”
늙은이에게서 고급 정보를 듣게 되니 백서휘의 눈빛이 반짝거렸다.
“혼천회의 이인자가 일인자 손에 죽었다?”
“이인자이긴 하나, 이인자가 아니오.”
“그게 무슨 말이야?”
“이인자에 올랐다가도 회주의 뜻이 바뀌면 그냥 죽기 때문이오.”
“혼천회에 소속된 다른 문파에선 그런 이야기는 듣지 못했는데?”
“그건 회주의 직속으로 움직이는 곳이 아니라서 그렇소.”
“그래, 그렇다 치자고. 회주가 군사를 죽인 이유가 뭔데?”
“나도 모르오. 그냥 죽었단 것만 듣고 나한테 화가 미칠까 싶어서 바로 이곳으로 숨어들었소.”
“군사의 직속 수하 아니야? 어떻게 죽은 이유를 모르지?”
백서휘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단 얼굴로 늙은이를 바라봤다.
“직속 수하긴 하지만 군사가 보낸 서신과 전언을 통해서만 명령을 들었소. 그래서 상관이었던 군사의 얼굴도 모르오.”
“잠깐만, 그러면 본단의 위치도 모르겠네?”
“항상 전서응을 보냈기에 어디쯤 있는지 대충은 알고 있소.”
“그래? 어디에 있는데?”
“본단은…….”
백서휘는 늙은이의 말이 진실인지 파악하기 위해 모든 감각을 동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