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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무관-185화 (185/202)

귀환무관 185화

백서휘의 눈동자가 거대전갈의 빈틈을 찾기 위해 바쁘게 움직였다.

‘빈틈이 많군.’

단단한 몸을 믿고 있는 건지 거대전갈은 방어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마음먹고 공격하려고 들면 얼마든지 공격을 꽂아 넣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이 정도로 무방비한 걸 보면 함정을 판 건 아닌 것 같은데…….’

눈동자만 움직여 스리슬쩍 충왕문의 문주를 바라봤다.

그는 입가에 비릿한 미소를 띤 채로 이쪽을 보고 있었다.

한 방 먹여주고 싶다는 생각이 아주 강하게 들었다.

‘못 할 일은 아니지.’

백서휘가 갑자기 구천현현보를 밟으면서 앞으로 나아갔다.

거대전갈이 그를 향해 집게발을 힘껏 내려쳤다.

콰아앙!

급제동과 급가속을 반복해 공격을 피한 백서휘는 거대전갈의 옆 쪽으로 돌아갔다.

그의 재빠른 움직임에 충왕문 문주의 얼굴이 굳었다.

“흐아아앗!”

백서휘는 거대전갈의 옆구리를 손으로 밀치며 경(勁)과 내공을 안으로 흘려 넣었다.

부르르르!

거대전갈은 몸을 좌우로 빠르게 진동시키고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집게발을 휘둘렀다.

‘왜 아무런 타격도 없는 거지? 내가 뭔가 실수를 한 건가?’

백서휘는 계속 거대전갈의 공격을 피하면서 조금 전 상황을 떠올렸다.

손에 경과 내공도 충분히 모였었고 자세는 더할 나위 없이 완벽했다.

거기다 공격 시기도 좋았고 타격점을 정확하게 때리기까지 했다.

‘그런데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거지? 실수한 건 없는데…….’

어떤 게 문제인지 찾으려면 똑같은 상황을 만드는 수밖에 없었다.

백서휘는 이전보다 더 신중하게 공격할 때를 기다렸다.

‘기회는 온다. 조금만, 아주 조금만 더 기다리면…… 지금이다!’

백서휘는 뒤도 안 돌아보고 달려들어 아까와 같은 부위에 다시 한번 내가중수법의 공격을 꽂아 넣었다.

부르르르!

거대전갈의 몸이 조금 전에 그랬던 것처럼 좌우로 빠르게 진동했다.

‘진동한다고? 아까도 그랬던 것 같은데?’

백서휘는 거대전갈의 이상 행동에 처음으로 의문을 품었다.

그때 충왕문의 문주가 비웃음을 머금고 입을 열었다.

“멍청한 놈! 너같이 내가중수법으로 흑운(黑雲)을 공략하려고 했던 놈이 한둘인 줄 아느냐? 백날 그렇게 내가중수법을 써봐라! 그게 통하는가!”

“내가중수법이 통하면 어쩌려고 그렇게 입을 놀리시나.”

“흑운의 먹이가 되고 싶은가 보구나.”

“흑운인지 뭔지를 내가중수법으로 죽일 테니까 두 눈 똑바로 뜨고 잘 봐.”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다.”

“그건 네 생각이고.”

“꼭 죽은 네 아비처럼 미련하구나.”

“아비?”

백서휘의 눈빛에 살기가 감돌았다.

“그래, 네 아비. 군자검 백상훈 말이다. 석년에 내가 그자를 죽인 바 있지.”

“너……!”

“설마 모르고 있었던 건 아니겠지?”

분노가 극에 달하니 백서휘는 도리어 차분해졌다.

“그래도 난 누나라도 있지. 넌 아무것도 없잖아.”

“아무것도 없다? 그게 무슨 소리지?”

“네 가족 전부 다 우리 스승님한테 몰살당한 거로 아는데? 아니야?”

“이 개자식! 감히……!”

“먼저 시작한 건 너라는 거 잊은 거야? 진짜 돌대가리도 이런 돌대가리가 없네. 가족들 얼굴 기억이 나긴 해?”

“크아아아아!”

충왕문의 문주는 분노로 얼룩진 얼굴로 거대전갈에 백서휘를 죽이라는 의념을 보냈다.

쾅쾅쾅쾅!

명령을 받은 거대전갈이 땅을 울리며 백서휘를 향해 달려갔다.

백서휘는 거리를 계속 벌리면서 거대전갈의 공략법을 생각했다.

‘내가중수법으로 공격했을 때 두 번 모두 거대전갈이 진동한 건 우연이 아닐 거야. 진동은 아마 몸 안으로 들어온 힘을 해소하는 행동이겠지.’

셀 수 없이 많은 백서휘의 전투 경험은 단번에 진실에 다가서게 해주었다.

‘저놈이 진동을 아예 하지 못하도록 막거나, 진동으로 힘을 해소하는 것보다 빠르게 공격해 내부를 진탕시키면 내가중수법으로도 저놈을 죽일 수 있을 것 같은데…….’

공략 방향이 정해지니 어떤 식으로 움직여야 할지 감이 왔다.

“도망만 다닐 셈이냐!”

“생각할 게 좀 있어서 말이야.”

“네 아비는 그래도 너처럼 겁쟁이는 아니었다.”

“맞아, 아버지는 언제나 정의롭고 용기가 넘치는 분이셨어. 그런데 네 아비는 안 그랬지?”

“이놈!”

충왕문의 문주는 살기가 감도는 눈으로 백서휘를 바라봤다.

백서휘는 피식 웃어 보이고는 전력을 다해 구천현현보를 펼쳤다.

잔상도 남지 않을 만큼 빠른 그의 움직임에 충왕문 문도들의 얼굴이 굳었다.

“저게 어떻게 가능한 거지?”

“이, 인간이긴 한 건가?”

“믿을 수 없어.”

거대전갈은 전광석화처럼 빠른 백서휘의 움직임을 본능으로 포착해 냈다.

쐐애애애액!

압사시키기 위해 날아드는 거대전갈의 양쪽 집게발.

백서휘는 땅을 힘껏 박차며 크게 도약했다.

허공에서 움직일 수 없는 게 치명적이라 일반적인 무인은 잘 선택하지 않는 행동이었다.

“꼬리를 사용해서 죽여.”

충왕문의 문주가 나직하게 중얼거리자 거대전갈이 그 말을 그대로 따랐다.

공중에 떠 있는 백서휘를 향해 거대전갈의 꼬리가 날아들었다.

‘내가 생각 없이 행동한 줄 아나 보네.’

백서휘는 허리춤에 있는 검을 뽑아서는 어검비행을 펼쳤다.

갑자기 날아다니는 그를 보고는 충왕문의 문주가 벙찐 표정을 지었다.

“잘 봐라! 네 애완동물이 죽는걸!”

백서휘는 거대전갈의 등판에 자연스럽게 안착했다.

“다, 다들 저놈을 공격해라!”

위기감을 느낀 충왕문의 문주가 소리쳤다.

“예?”

“어서! 공격하라니까!”

구경하고 있던 충술사들이 혈침독봉과 설칩의, 금사지주를 다시 조종하기 시작했다.

백서휘는 그들을 슬쩍 한번 보고는 양손에 경과 내공을 잔뜩 담았다.

그러고는 거대전갈의 등판에 난화만천수를 펼쳐 공격했다.

부르르르!

거대전갈은 몸을 빠르게 진동시켜 몸 안에 들어온 힘을 어떻게든 해소하려고 했다.

“그렇겐 안 되지.”

백서휘는 이를 악물고 더 위력적으로 난화만천수를 펼쳤다.

보랏빛 수영이 등을 때릴 때마다 거대전갈이 귀청을 때리는 소리를 내질렀다.

거대전갈이 몸 안으로 들어온 힘을 진동으로 해소하는 것보다 백서휘가 때려 박아 넣는 힘이 더 많아졌다.

내부가 진탕된 거대전갈이 캑캑거리면서 파란 피를 한 양동이 토해냈다.

“우웩!”

충왕문의 문주도 거대전갈처럼 갑자기 피를 한 바가지 토했다.

그때 뒤늦게 날아온 혈침독봉들이 몸을 날려 백서휘를 막으려고 했다.

“흥!”

백서휘는 코웃음을 치며 허공을 떠다니는 검에 의념을 보냈다.

난화만천수를 펼치는 건 단순 노동에 가까워서 검을 조종하는 것에 별 어려움은 없었다.

허공을 떠다니는 검을 통해 신기에 가까운 검술이 펼쳐졌다.

혈침독봉은 가까이 접근하지도 못하고 허공에서 날아다니는 검에 썰려 나갔다.

“어서 저놈을 막아보란 말이다!”

충왕문의 문주가 미친 인간처럼 길길이 날뛰었다.

충술사들이 허겁지겁 금사지주를 거대전갈 쪽으로 보냈다.

“빨리!”

“예!”

충술사의 명령을 받은 금사지주들이 백서휘를 향해 금빛 거미줄을 쏘아 보냈다.

“독령!”

『아까부터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진짜 미리 준비한 건지 평소보다 신순의 발동 속도가 빨랐다.

쌕쌕쌕쌕쌕!

극양의 기운이 담긴 기시가 혈침독봉들을 학살했다.

“설칩의! 설칩의는 도대체 뭐 하는 거야! 빨리 공격해서 저놈을 어떻게든 해보란 말이다!”

충왕문의 문주가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악을 썼다.

“인화성 물질이 잘못 튀면 흑운에게 피해가 갈 수도 있습니다.”

“네가 걱정할 문제가 아니다! 어서 백서휘나 공격이나 해!”

“예!”

충술사들이 입으로 바람을 ‘후!’ 하고 불었다.

그들의 입에서 나온 달큼한 향은 사방으로 퍼졌다.

멍청히 있던 설칩의들이 자기들끼리 바쁘게 움직이더니 공성탑 비슷한 것을 만들었다.

“흑운이 죽고 나서 백서휘를 공격할 셈이냐?”

“최, 최대한 빨리 공격하겠습니다.”

충술사들은 이전과 미묘하게 다른 달큼한 향을 내뱉었다.

설칩의들이 고개를 치켜들고는 백서휘를 향해 인화성 물질을 내뱉었다.

“독령!”

극음의 기운이 섞인 기시는 몸에 붙을 가능성이 있는 인화성 물질만 정확하게 요격했다.

위협적이지 않은 인화성 물질은 그대로 땅에 떨어지거나 거대전갈의 등판, 발, 꼬리 등에 묻었다.

“독령! 인화성 물질에 불을 붙여!”

극양의 기운이 섞인 기시가 인화성 물질에 불을 붙였다.

거대전갈은 외갑을 달구는 열기를 막기 위해 금강불괴의 힘을 쓰려고 했다.

‘저항이 이전보다 약해졌어. 뭔가를 하려는 건가?’

어느 정도 의도를 알아차린 백서휘는 지능적으로 기운이 모이는 곳에 내가중수법을 썼다.

쿠웨에엑──!

가뜩이나 내부가 진탕되어 힘든 상황에서 백서휘가 교묘히 금강불괴의 기운을 끊어내자 거대전갈은 절망하고 말았다.

“흑운!”

충왕문의 문주가 거대전갈을 구하기 위해 달려왔다.

백서휘는 혈침독봉을 상대하던 검을 그가 있는 쪽으로 보냈다.

“이놈! 이 검을 치워라!”

“입 다물고 네 애완동물이 내가중수법에 죽는 모습이나 봐.”

백서휘는 경과 내공이 가득 담긴 양손으로 거대전갈의 등판을 있는 힘껏 내려쳤다.

콰아앙!

거대전갈이 이리저리 비틀거리다 쓰러졌다.

충왕문의 문주는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바닥을 데굴데굴 굴러다녔다.

“그런 표정을 지으니까 못난 얼굴이 더 못나 보이잖아. 사선 모양의 흉터도 더 도드라져 보이고.”

“끄으윽! 가만두지 않겠…….”

“왜 내 얼굴에도 너처럼 사선 모양의 흉터를 만들어주려고?”

“크아아아악!”

백서휘는 훈혈에 지풍을 날려 충왕문의 문주를 기절시켰다.

“하, 항복하겠습니다.”

“저, 저도!”

충술사들은 도저히 이길 가능성이 보이지 않자 항복부터 하고 봤다.

“가치 있는 정보를 가진 놈한테만 항복을 받겠다.”

“저, 저한테 가치 있는 정보가 있습니다.”

맨 처음 항복했던 충술사가 손을 번쩍 들어 올리며 말했다.

“뭔데?”

“다, 다음 작전에 대해 압니다.”

“알면 뭐해. 말을 못하잖아.”

“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거짓말하지 마. 술법 때문에 못하잖아.”

“저, 저희들에겐 그걸 무력화할 방법이 있습니다.”

“어떻게?”

“머리에 미리 고(蠱)를 심어놓으면 됩니다.”

“고를? 자세히 설명해 봐.”

“뇌의 한 부분에 술법이 걸리는데 그 위치는 모든 사람이 같습니다. 그래서 그곳에 고를 심어놓으면, 주술이 고에 걸리게 되고…….”

“뇌가 멀쩡하니 열쇠가 되는 말을 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네.”

“머리에 있던 고는 그럼 어떻게 되는 거지?”

“코를 통해서 다시 빼낸 다음 죽이기만 하면 됩니다.”

“이걸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되지?”

“벌레를 다루는 저희 말고는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이미 걸린 사람의 술법은 어떻게 푸는지 아나?”

“이론적으로는 술법을 고에 그대로 옮기면 되는데 쉽지 않은 거로 알고 있습니다.”

“이론적으로는 일단 되긴 한다는 거지?”

“예.”

“좋아, 궁금증은 다 풀렸어. 이제 혼천회의 다음 작전이 뭔지 얘기해 봐.”

“파리와 모기를 이용해서 역병을 퍼뜨리는 겁니다.”

“역병?”

백서휘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파리와 모기가 원래 역병을 품고 있는 존재인 데다 그걸 주술적으로 강화해서…….”

“아니, 걸리면 어떻게 되는데?”

“역병이 한 종류가 아니라서 다 말씀드리기가 곤란합니다.”

“그 역병들을 치료할 약은 있는 거지?”

“있긴 한데 여러 역병이 동시에 창궐하면 치료할 약을 찾는 건 힘들 겁니다.”

“그 모기랑 파리는 어디 있는데?”

“이곳과 하북성, 사천성, 절강성에 모기와 파리들을 키우는 곳이 있습니다.”

“진짜 사방에 다 있는 거네?”

“……예.”

“돌겠군.”

백서휘는 지끈거려오는 관자놀이를 손으로 지압했다.

“대, 대협께서 먼저 나서시면 막는 건 가능할 겁니다.”

“어떻게 막으면 되는데?”

“그, 그걸 알려드릴 테니 저희들을 살려주십시오.”

대표로 나선 충술사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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