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무관 186화
“지금 나랑 협상하자는 거야?”
백서휘는 날카롭게 뜬 눈으로 충술사를 바라봤다.
대표로 나선 충술사가 무척이나 당황한 표정으로 손사래를 쳤다.
“혀, 협상하려는 거 아닙니다. 그냥 대협께서 저희에게 자비를 좀 베풀어주십사 해서…….”
“그냥은 절대 안 말하겠다고 지금 이러는 거잖아.”
“그, 그러면 막을 방법을 그냥 말씀드리고 대협께 저희의 처분을 맡기도록 하겠습니다.”
“좋아, 그 파리랑 모기를 어떻게 하면 막을 수 있는지 한번 말해 봐.”
“먼저 파리를 없애는 법에 대한 설명을…….”
“아! 잠깐만 멈춰봐. 이걸 말하는 걸 깜빡했네.
백서휘는 유형화된 살기를 온몸으로 뿜어대며 충술사와 눈을 맞추었다.
충술사의 눈동자는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흔들렸다.
“다시는 내 얼굴 볼일 없을 거라고 생각해서 나한테 거짓말을 한다? 그러면 내가 가진 모든 걸 총동원해서 널 찾아낸 다음에 고통스럽게 죽일 거야. 그러니까 잘 생각하면서 말해.”
“아, 알겠습니다.”
“다시 설명해 봐.”
“파, 파리를 없애는 법은 간단합니다. 사람이나 돼지, 소의 배설물에 검은 털을 가진 쥐의 간과 검은색을 띤 두꺼비의 독을 섞어서 배설물 위에 뿌리기만 하면 됩니다.”
“그걸 파리한테 주면 죽는다는 거지?”
“예.”
“모기는 어떻게 죽여?”
“돼지랑 소에게 싸구려 화주를 사흘 내내 먹이면 모기들이 환장해서 달려들 겁니다. 이게 함정입니다.”
“함정?”
“피를 빨아 먹어 배를 충분히 채우면 그놈들의 비행 속도가 느려져서 흑회무(黑灰霧)를 그대로 다 흡입하게 됩니다.”
“흑회무? 그건 어떻게 만드는 건데?”
“그게 좀 복잡합니다.”
충술사는 재료부터 만드는 법까지 모든 걸 적어 백서휘에게 건넸다.
“알려준 정보대로 만들어서 죽이면 모기랑 파리는 끝이란 거지?”
“네, 역병이 유행하기 전에 죽인다면 아무 문제 없을 겁니다.”
“모기나 파리는 이쯤 하면 된 것 같으니까 이제 다른 주제로 넘어가자. 메뚜기 떼를 조종하는 법이나 없애는 법을 아는 사람?”
백서휘가 충술사 하나하나와 눈을 맞추었다.
충술사들은 입을 꾹 다문 채로 두 눈을 밑으로 내리깔았다.
“아무도 모르는 거야?”
“……메뚜기에 대해서는 문주님 혼자만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놈이 깨어나기 전까지는 알 수가 없다는 거네?”
“예.”
“후~ 좋아, 지금까지 나온 것과 비슷한 가치를 지닌 정보를 알고 있다면 손들어.”
“하, 하나 알고 있는 것이 있는데 그게 비슷한 가치를 지닌 정보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젊은 충술사가 손을 번쩍 들어 올리며 말했다.
“뭔데?”
“다른 지부에 잠깐 파견 갔다가 들은 건데, 부정력이란 힘을 혼천회주가 모으고 있다고 합니다.”
“그건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야.”
“끄응.”
“부정력을 모으는 도구의 생김새나 부정력을 모아서 어디에 쓰려는 건지는 모르지?”
“부, 부정력을 모으는 도구의 생김새는 압니다.”
“그걸 안다고? 어떻게?”
“호, 혼천회의 직속 무인들과 일꾼들이 부정력을 모으는 도구를 수레에 실어서 작업 나가는 걸 봤습니다.”
“어떻게 생겼지?”
“사, 삼척이 조금 안 되는 크기의 말뚝인데, 전체적으로 검게 칠해져 있고 위에서부터 아래로 진언이 붉은 글씨로 빼곡하게 적혀 있었습니다.”
“어디에 박혀 있는지 알아볼 방법은 없나? 특징에 대한 것도 좋아.”
“머리 부분이 사각추(四角錐) 모양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게 끝입니다.”
백서휘는 흑회무를 만드는 방법이 적힌 종이에 부정력을 모으는 도구의 특징을 아주 작은 글씨로 기록했다.
“이제 더 다른 정보는 없는 거지?”
“……네.”
백서휘는 정보를 알려준 놈들을 제외한 모든 충술사를 죽였다.
정보를 알려준 놈들도 상단전에 금제를 가한 후 다른 곳으로 내쫓아 버렸다.
“이제 이놈한테서 메뚜기 떼를 다룰 방법만 알아내면 되는데…….”
백서휘가 입술을 비죽거리며 기절해 있는 충왕문의 문주를 바라봤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놈이 자신에게 제대로 된 방법을 알려줄 것 같지 않았다.
‘당장 나만 해도 이놈에게 도움 되는 일은 조금도 하기 싫으니…….’
충왕문의 문주도 자신과 같은 마음을 품고 있을 거라 생각했다.
‘진짜 고문이라도 해야 하나?’
감각을 증폭시키고 고문해서 정보를 못 캐낸 적이 없지만 이번엔 상대가 상대이니만큼 실패를 기록하게 될 가능성이 컸다.
‘거짓 정보를 주거나 말을 하지 않거나 둘 중 하나의 행동을 취하겠지.’
백서휘는 충왕문의 문주가 거짓 정보를 주는 쪽을 선택할 거라 확신했다.
완전히 거짓을 말하거나 사실에 거짓을 조금 섞는 쪽이 자신을 방해하기 좋기 때문이었다.
‘확실한 정보를 캐내겠다고 오랜 시간 동안 이놈을 살려두는 일은 하고 싶지 않은데…….’
충왕문의 문주는 아버지를 죽일 때 직접적으로 관여했을 거라 추정됐다.
그런 불구대천의 원수를 오래 살려둘 만큼 백서휘의 마음이 넓지 않았다.
충왕문의 문주가 사과하며 진심으로 용서를 구해도 죽일 거고, 진짜 정보를 알려줘도 죽일 생각이었다.
‘아까운 시간 다 지나가네. 신문을 해서 정보를 한 번 뽑아보기나 하자. 고문은 정 아니면 그때하고.’
백서휘는 훈혈에 있는 진기를 다시 회수해 충왕문의 문주를 해혈했다.
반각이 조금 안 되게 지났을 때, 충왕문의 문주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주위를 둘러보던 그는 백서휘를 발견하고는 눈이 뒤집혀서 달려들었다.
“이놈!”
백서휘는 날아오는 주먹을 가볍게 피한 후 손바닥으로 충왕문 문주의 뺨을 세게 때렸다.
고개가 홱 돌아간 충왕문 문주는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쓰러졌다.
“상황 파악이 아직도 안 돼?”
“상황 파악은 진작 끝났어. 내게 원하는 게 있어서 살려둔 것 같은데, 난 너에게 그 어떠한 것도 주지 않을 거다.”
“알고 있어. 고문을 한다고 하더라도 거짓 정보를 말하거나 진실에 거짓 일부를 섞겠지.”
“그걸 알면서 왜 계속 살려두는 거냐.”
“그건…….”
백서휘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생각이 있었다.
‘사선 모양의 흉터를 놀리면 발작한다고 했었지?’
얼굴에 똑같은 흉터를 하나 더 만들어주는 것도 나쁘지 않겠단 생각이 들었다.
“별 이유 없어. 그냥 내 분노를 온전히 투사할 상대가 필요할 뿐이야. 겸사겸사 정보를 얻을 수 있으면 좋고.”
“분노를 투사한다고? 화풀이 대상이라는 거냐?”
“맞아. 정답을 맞혔으니 상을 줘야겠지.”
백서휘는 검지 손톱에 기를 응집시켜 조강(爪罡)을 만들었다.
그다음 왼손으로 충왕문 문주의 머리채를 잡았다.
“무, 무슨 짓을 하려는 거냐!”
“상으로 인상을 더 강하게 만들어주려고 그러지. 지금은 흉터가 하나만 있어서 삼류 건달처럼 보이거든.”
“그, 그만둬!”
“싫어.”
백서휘는 왼쪽 관자놀이에서 오른쪽 턱 부분까지를 강기가 형성된 검지 손톱으로 그었다.
“끄윽!”
“됐다. 이제 이게 잘 나으면 똑같은 모양의 흉터가 생…… 아, 회복할 시간이 없네.”
“이런 개좆같은! 네 아비를 난도질해 죽였어야 했는데…….”
“도발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지금 얼굴에 가로로 선을 하나 더 그어주고 싶은 걸 참고 있거든.”
“긋든가 말든가 맘대로 해라. 어차피 네놈이나 네놈 아비가 만든 상처로 내 얼굴은 엉망이 됐으니까.”
“아비? 이게 내 아버지가 만든 상처라고?”
충왕문의 문주는 침묵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백서휘는 정체 모를 이상한 감정을 느꼈다.
“아침부터 욱신거려서 길보다 흉이 많을 날일 거라고 예상은 했다만, 이렇게 될 줄이야…….”
백서휘는 흉터에 집중하고 있었던 터라 충왕문의 문주가 중얼거리는 말을 듣지 못했다.
“뭐?”
“어서 죽이기나 해라.”
“메뚜기 떼를 흩어지게 만들거나 없애는 방법이 있다면 내게 알려줘.”
“그러면 깨끗이 죽여줄 거냐?”
“그래.”
충왕문의 문주는 한참 동안 고심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의 표정에서 느껴지는 심각함이 대단하여 연기를 하는 건지 아니면 실제로 고뇌한 건지 구별이 되지 않았다.
“……날 살려줄 수는 없는 거냐?”
“그건 안 돼. 너랑 내가 어떤 사이인지 잘 알잖아.”
“제기랄.”
“넌 둘 중 하나를 택해야 돼. 메뚜기 떼에 대해 말하고 지금 이 상태 그대로 깨끗이 죽거나, 온갖 고문과 모욕을 받고 죽거나.”
“둘 다 죽는 거라면 전자를 택하는 수밖에 없겠지.”
“잘 생각했어.”
백서휘는 해결 방법을 어서 말해보라고 손짓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지금에 와서 메뚜기를 없애는 건 불가능하다.”
“장난은 이쯤 해두는 게 좋아.”
“난 사실 그대로를 말하고 있다. 메뚜기가 녹충에서 황충으로 변하면 막을 수 없어.”
“정말이냐?”
“그래, 벌레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라면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일 거다.”
“그럼 문제 해결은…….”
“방법은 있다.”
“뭔데?”
“그건 알려줄 수 없지. 열심히 뛰어다니면서 찾아봐.”
충왕문의 문주가 씨익 웃어 보이더니, 혀가 잘려 나갈 정도로 강하게 깨물었다.
이런 일을 한두 번 겪은 게 아니기에 백서휘는 재빠르게 움직였다.
말려 올라가면서 기도를 막아버린 혀를 떼어내고 훈혈을 짚어 충왕문의 문주를 기절시켰다.
“혀를 깨문 걸 보면 독단은 없는 것 같은데…….”
혹시 모르는 일이었기에 기절한 충왕문 문주의 입안을 샅샅이 뒤졌다.
다행히 독단은 발견되지 않았다.
“정보를 캐낼 방법이…… 아! 그 방법을 쓰면 되겠군.”
백서휘는 충왕문 문주를 업고는 호남성을 향해 출발했다.
* * *
“자, 됐다. 이제 이놈에게 궁금한 걸 물어보기만 하면 된다.”
목인걸이 권태로운 표정으로 말하고는 휘적휘적 옥좌를 향해 걸어갔다.
“죽지는 않겠지?”
백서휘가 목인걸의 뒤통수에 대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머리에 술법이 걸려 있지 않은 걸 확인했다. 그 충술사가 말했던 것처럼 고를 이용해서 술법이 걸리는 걸 피한 모양이야.”
“그 고에 대해서 말하니까 묻는 건데, 그 충술사가 말했던 이론적인 방법 진짜 가능한 거야?”
“술법 연구를 좀 해보고 연습을 몇 번 한다면 그 충술사가 말했던 방법을 쓸 수 있을 것 같다.”
“다른 것보다 그 연구 위주로 좀 일을 해줘.”
“그러지.”
목인걸은 반쯤 감긴 눈으로 옥좌에 앉아서 백서휘와 충왕문의 문주를 바라봤다.
“메뚜기 떼를 조종하거나 없애거나 흩어지게 만들 방법이 있으면 말해 봐.”
“녹충일 때는 충술사들의 명령이 통하기 때문에 죽이든 살리든 그건 마음대로 하면 된다.”
“황충이 되면?”
“스무 마장마다 메뚜기를 유도하는 주술이 걸린 막대를 꽂아 넣으면 된다.”
“목인걸!”
목인걸이 조금 전과 다르게 흥미를 품고 백서휘 쪽으로 왔다.
“자, 그 주술에 대해 말해 봐.”
확실히 충술사도 주술사의 일종이긴 한 모양이었다.
충왕문의 문주가 술법에 대해 천천히 말하는데 이해할 수 있는 게 몇 가지 되지 않았다.
“쉽군.”
“쉽다고?”
“어떻게 해야 할지는 알았으니까 이제 다른 질문을 하든가 해.”
“다른 질문이라…….”
백서휘가 턱에 난 까끌까끌한 수염을 긁적거렸다.
“아! 이게 좋겠네. 혼천회의 본단에 가본 적이 있어?”
“있다.”
백서휘의 동공이 확장되었다가 다시 작게 줄어들었다.
“진짜?”
“진짜다.”
“본단은 어디에 있어?”
“……회주가 있는 곳이 곧 본단이다.”
“하!”
어이가 없는 충왕문 문주의 대답에 백서휘는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회주에 대해 알고 있는 게 있으면 확실한 거로 하나씩 말해 봐.”
“……많은 걸 알지는 못하지만, 하나 확실하게 아는 게 있다. 회주에게는 황실의 피가 흐른다.”
“뭐? 황실의 피? 그럼 황제랑 친족 사이란 거야?”
“지금의 황제보다 선대의 사람이다.”
“회주의 이름이 뭔데?”
황실 사람인 것과 이름이 뭔지 알게 되면 조사하는 건 금방이었다.
백서휘가 기대감 어린 시선으로 충왕문 문주를 뚫어지라 바라봤다.
“회주의 이름은 ‘윤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