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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무관-184화 (184/202)

귀환무관 184화

‘정말 그놈 말처럼 메뚜기들을 멈출 방법이 없는 걸까?’

완전히 망했던 문파를 혼천회 밑으로 들어가서 되살린 걸 보면 충왕문의 문주는 수완이 좋은 편이었다.

그렇게 수완이 좋은 사람이 나중에 혼천회에서 벗어날 때를 대비 안 했을까?

백서휘는 절대 아니라고 봤다.

자신이 충왕문의 문주였다면 메뚜기들을 통제할 방법을 혼천회 몰래 마련해놓았을 것이다.

이러한 추측이 헛된 기원에서 비롯된 오상(誤想)일지도 모르지만, 백서휘는 여기에 마지막 희망을 걸고 싶었다.

‘방법이 있었으면 좋겠군.’

백서휘는 응룡비천신법을 펼쳐 목적지인 빙상을 향해 달려갔다.

휴식을 최소화한 덕분에 도착하는 건 금방이었다.

빙상 안으로 들어서기 무섭게 위화감이 느껴졌다.

뭔가 이상하다 싶었던 백서휘는 주위를 둘러봤다.

지나다니는 사람들은 절망이나 불안을 느끼긴 하지만 다른 도시처럼 심하지 않았다.

사람이 많은 시장 쪽으로 이동해 사람들의 얼굴을 살폈지만 달라진 건 없었다.

모든 사람이 중원 전역에서 일어난 난리와 무관한 것처럼 굴었다.

‘여긴 왜 이런 거지?’

그때 여러 종류의 채소가 가득 담겨 있는 수레를 보게 됐다.

‘저만큼 많이 남아 있다고?’

백서휘는 커다래진 눈으로 주위에 있는 점포들을 둘러봤다.

원래 시세보다 훨씬 비싸긴 하지만 과일이며 약재며 안 파는 게 없었다.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빙상으로 오면서 봤던 여러 장면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메뚜기 떼에 싹 쓸린 논을 보며 아이처럼 울던 늙은 농부.

어미가 굶어 죽은 줄도 모르고 젖을 빨던 아기.

한 되밖에 안 되는 쌀을 두고 싸우던 사람들.

이러한 광경만 보다가 평범한 일상의 모습을 보게 되니 기시감이 느껴졌다.

‘설마 여기 메뚜기 떼의 공격을 받지 않은 건가?’

몇몇 운 좋은 곳이 있기는 했지만 충왕문의 문주가 있다는 곳까지 그럴 줄은 몰랐다.

‘왜 공격하지 않은 거지?’

골똘히 생각하니 답이 금방 나왔다.

제정신을 가진 인간이라면 자기 집을 때려 부수지 않는다.

충왕문도 마찬가지였다.

빙상이 그들의 기반이 되어주는 곳이라 일부러 공격하지 않은 게 분명했다.

‘쌀이고 돈이고 땅만 파서는 나오지 않으니 놈들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겠지.’

거기다 이곳은 북경과 한참 떨어진 변방이고 오지였다.

대도시처럼 사람이 많이 살지 않아서 한번 무너지면 재건하기 어려웠다.

당장 이건 불사림에 의해 무너진 운남성의 도시들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잠깐만 이거 뭔가 이상한데? 혼천회는 도대체 왜 그러는 거지?’

혼천회에 속한 단체는 대개 중원 정복을 노렸다가 수호문주에 의해 저지된 곳들이 많았다.

그렇기에 그들이 그토록 수호문의 멸문을 바라고 있는 것이었다.

‘아무리 부정력을 위해서라고 해도 그렇지, 나중을 생각하면 중원을 이 지경으로 만드는 게 절대 좋은 선택이 아닌데?’

한참 동안 머리를 굴려봤지만 중원을 개판으로 만드는 이유를 도통 알 수가 없었다.

그때였다.

흑의를 입은 자들이 단체로 시장에 나타났다.

시끌벅적하던 시장이 순식간에 조용해지면서 사람들이 거리의 양옆으로 비켜났다.

자세히 살펴 보니 흑의를 입은 자들을 이끄는 자의 얼굴에 사선 모양의 상처가 있었다.

‘저놈이 충왕문의 문주인가 보네.’

충왕문의 문주와 충술사로 보이는 자들은 시장을 지나쳐 어딘가로 바쁘게 걸어갔다.

은형잠종술을 펼친 백서휘는 은밀히 그들의 뒤를 밟았다.

거리를 걸어오던 포두와 포쾌들이 충왕문 사람들을 보고는 바로 허리를 굽혔다.

‘포두랑 포쾌가 저렇게 굽실댈 정도면 충왕문 놈들이 대놓고 빙상에 영향력을 발휘했다는 건데…….’

음지에서 조용히 있어야 할 놈들이 변경이라고 자기들 마음대로 행동한 것 같았다.

정말이지 건방진 자식들이 아닐 수 없었다.

‘근거지만 알아내면 바로 죽인다.’

커다란 장원 앞에서 충왕문 사람들이 걸음을 멈추었다.

백서휘 역시 따라가는 걸 멈추고 그들이 하는 행동을 살펴봤다.

“현판을 교체하고 상의를 본문의 것으로 바꿔 입어라.”

“수호문주가 우리의 존재를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충왕문 문주의 바로 옆에 있는 남자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실험시설이 무너지면서 우리의 존재는 어느 정도 그놈에게 노출이 됐을 거다.”

“혼천회에서도 싫어할 겁니다.”

“약속을 모두 지켰으니 그들도 별말을 하지 못할 거야.”

“문주님.”

“오랜 생각 끝에 내린 결정이다.”

“……알겠습니다.”

충왕문의 문주와 충술사들이 장원 안으로 들어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충왕(蟲王)이란 글자가 수놓아진 상의를 입은 자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송가장(宋家莊)이라고 적힌 현판을 떼어내고, 충왕문(蟲王門)이라고 적힌 현판을 걸었다.

잠시 후, 충술사들 십수 명이 밖으로 나왔다.

그들은 감회가 새로운 표정으로 바뀐 현판을 바라봤다.

‘좋아 죽는군.’

백서휘는 충술사들을 향해 걸어가면서 은형잠종술을 풀었다.

그가 갑자기 모습을 드러내자 충술사들이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누, 누구냐!”

“너희들 최대의 적을 몰라보면 어떡해.”

“최대의 적? 설마…….”

“네가 한 생각이 맞아.”

백서휘는 씨익 웃음을 지어보였다.

“백서휘다!”

“수호문주가 나타났다!”

충술사들은 각자 조종하는 벌레들에 명령을 내렸다.

옷 속에 숨어 있던 혈침독봉들이 백서휘를 향해 날아갔다.

부아아앙!

‘독령, 신순을 발동할 준비해.’

『양기나 음기를 섞을까요?』

‘저 개미 새끼들이 인화성 물질을 내뱉으니까 음기 위주로 써.’

『알겠습니다!』

혈침독봉이 백서휘를 향해 독침이 달린 엉덩이를 내밀었다.

‘혈침독봉이나 금사지주를 확실하게 맞힐 수 있다면 기시에 양기를 담아도 괜찮아.’

『예!』

쐑쐑쐑쐑─!

백서휘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기시들이 혈침독봉을 때렸다.

퍽! 화르륵!

기시에 맞은 혈침독봉이 극양의 기운에 의해 불타올랐다.

금사지주들이 바쁘게 달려와서는 백서휘의 팔과 다리를 향해 금빛 거미줄을 내뿜었다.

‘독령.’

『이미 준비 끝났습니다.』

음기가 담긴 기시가 금빛 거미줄의 앞부분을 정확히 때렸다.

금빛 거미줄이 얼어붙으면서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땅에 떨어졌다.

쐑쐑쐑쐑─!

극양의 기운을 담은 기시가 한 박자 늦게 날아와서 금사지주에 박혔다.

퍽! 화르륵!

어느새 주위를 둘러싼 설칩의들이 백서휘에게 인화성 물질을 내뱉었다.

폿폿폿폿폿!

백서휘는 허공으로 도약하며 충술사들을 향해 검을 내던졌다.

쐐애애액!

검이 바람을 가르며 빠른 속도로 날아갔다.

거리가 가까웠기에 무조건 죽일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부아아아아앙!

위협적인 소리를 내며 날아온 백여 마리의 혈침독봉이 검첨 앞으로 날아들었다.

혈침독봉의 몸은 만년한철만 못해도 단단한 편이었다.

혈침독봉을 때리는 바람에 검의 비행 속도가 줄어들었다.

충술사들은 바로 사방으로 흩어지면서 거리를 벌렸다.

“백서휘!”

장원 안쪽에서 충왕문 문주의 성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놈이 오기 전에 더 죽여야 돼.’

충왕문 문주와 싸우는 동안 충술사들이 다 도망갈 수 있었다.

아버지의 원수들에게 살 기회를 줄 수 없었다.

‘전력을 다해서 기시를 발사해.’

『예!』

온몸에서 발사된 기시가 벌레와 충술사를 가리지 않고 날아갔다.

쐑쐑쐑쐑쐑───!

백서휘는 의념을 발휘해 검을 조종하면서 난화만천수를 펼쳤다.

보랏빛 수영이 공간을 장악하며 충술사들을 덮쳤다.

충술사들은 조종하는 벌레를 희생시켜 살아보려고 했다.

‘뒤로 돌아가!’

보랏빛 수영에 시선을 뺏긴 충술사들은 검이 뒤로 가는 걸 알아차리지 못했다.

“다들 뒤를 조심해라!”

“커헉!”

“크아악!”

충왕문의 문주가 경고했을 때는 이미 충술사들의 3분의 2가 목에 바람구멍이 나서 죽은 후였다.

“가라!”

충왕문의 문주가 청두전갈(靑頭全蠍)들에 명령을 내렸다.

장원 안에서 나온 청두전갈들이 커다란 파도가 되어 백서휘를 덮치려 했다.

‘청두전갈이면 해독제가 있긴 한 걸로 아는데? 그놈은 왜 없다고 그런 거지?’

백서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검이 있는 쪽으로 손을 뻗었다.

빠르게 날아온 검이 그의 손에 안착했다.

탁!

‘광풍번천!’

검에서 시작된 미친 바람은 청두전갈을 향했다.

기시가 청두전갈에 박히는 소리와 검에 썰리는 소리가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청두전갈들이 계속 죽어 나가는데도 충왕문 문주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물량에는 자신 있다는 건가?’

아무리 그래도 청두전갈들이 무한히 많지는 않을 것이다.

이런 싸움이 계속되면 유리한 건 자신이었다.

애초에 ‘광풍번천’이란 초식은 한 명의 강자가 아닌 다수의 약자를 상대하기 위해 만들어진 초식이었다.

‘기시와 광풍번천을 뚫고 접근해도 괜찮아. 내겐 독령이 있으니까.’

청두전갈의 독침에서 나온 독이 몇 명을 죽일 수 있든 간에 극독은 독령에게는 맛 좋은 요리에 불과했다.

‘누가 이기나 해보자고.’

그때 장원 안쪽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쿵쿵쿵!

뭔가 싶어 보니 웬만한 마차보다 다섯 배는 더 큰 전갈이 이쪽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그것도 엄청난 속도로!

‘저건 또 뭐야?’

청두전갈이나 설칩의, 혈침독봉, 금사지주까지는 보기도 하고 잡아 죽였던 기억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 달려오는 거대전갈은 아니었다.

생전 처음 보는 크기와 생김새를 가진 영물(靈物)이었다.

‘저놈을 부를 시간을 벌려고 했던 거구나.’

거대전갈이 충왕문 문주의 앞에 서자 청두전갈들이 공격을 멈추고 뒤로 물러났다.

잠시지만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청두전갈들을 희생하면서 기다렸던 거보면 저놈이 충왕문 문주가 가진 비장의 무기인 것 같은데…….’

백서휘는 숨을 고르게 쉬며 거대전갈의 몸을 빠르게 훑어봤다.

집게와 독침은 웬만한 바위보다 컸고 몸을 둘러싼 껍질은 잘 관리한 갑옷처럼 반질반질했다.

조금 전에 달려오던 모습을 보면 움직이는 속도도 재빨라서 어떻게 죽여야 할지 감이 안 왔다.

검강이 깃든 검이라고 해서 모든 것을 단번에 벨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정말 단단하고 질긴 건 여러 차례 공격해야만 타격을 주는 게 가능했다.

‘일단 얼마나 단단한지 한번 볼까?’

백서휘는 거대전갈을 향해 검을 냅다 던졌다.

쐐애애액!

검강이 깃든 검이 공기를 찢어발기며 날아갔다.

충왕문의 문주가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이 상황에서 여유를 부린다고?’

미친 건지 진짜 자신이 있는 건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백서휘가 날린 검이 박히려는 순간, 거대전갈의 껍질에서 빛이 아주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카아앙!

백서휘가 날린 검은 껍질에 흠집을 남기고 뒤로 날아갔다.

“금강불괴의 몸에 흠집이 나다니…….”

여유로운 얼굴이었던 충왕문의 문주가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중얼거렸다.

이유는 조금 달랐지만 놀란 건 백서휘도 마찬가지였다.

‘흠집 내는 정도가 끝이라고?’

거대전갈의 껍질이 가지는 단단함은 백서휘의 예상을 초월했다.

‘외갑이 이 정도로 단단하면 방법은 내가중수법 말고는 방법이 없어.’

내공을 실은 공격으로 외부를 타격해 내부를 진탕시키는 내가중수법이라면 거대전갈에게도 통할 거라 생각했다.

‘한번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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